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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부님】사부님따라 만리길-제2부  
   2021-01-03 23:21:57 | 조회 : 119

 

사부님 따라 만리 길 2

 

/미국 대법제자

원문발표: 밍후이왕(明慧網) 2002916

944월로 기억합니다. 저는 허페이(合肥)지역의 제2기 학습반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와 정말로 지쳐서 하루 밤낮을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다음 기는 장춘(長春)이었습니다. 장춘(長春)은 스승님의 고향입니다. 속담에 󰡐인걸(人傑)이 난 곳은 땅도 영험하다󰡑는데 더욱이 스승님의 고향에 가보는 것이 오래 전부터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장춘에 도착하니 장춘 수련생들이 안내판을 들고 번갈아 가면서 외지에서 오는 수련생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시 중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비교적 방값이 저렴한 여관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장춘 수련생들은 여관으로 가는 길에 열정적으로 장춘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초행길이라 아주 신선하게 느껴져 여행의 피로함도 모두 잊고 행복한 마음으로 버스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장춘 수련생이 손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저기가 스승님 댁입니다!” 우리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그것은 아주 수수한 외벽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돌 아파트로 겨우 4-5층 높이였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는데도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시다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우리 모두 조용히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습반은 지린(吉林)대학 밍팡궁(鳴放宮)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스승님께서 오전 9시에서 11시까지,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하루에 두 번씩 강의해 주셨습니다. 오전 표는 일찍이 구입했지만 저녁 표는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첫날 오전 강의가 끝난 후 숙소에 돌아와 있으려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강의를 듣기 위해 온 것입니다. 스승님의 저녁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숙소에 있다는 게 정말 답답했습니다. 이튿날 강의가 끝난 다음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지 않고 강당 밖 잔디밭에서 저녁 강의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모두 문 입구에 서서 환불하는 표를 사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시간은 일 분 일 초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무척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한 수련생이 표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얼른 표를 받고는 돈을 주었습니다.

 제가 기쁜 마음으로 강당에 들어 가 자리에 막 앉을 때, 평소 잘 알던 수련생이 멀리서 달려오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을 찾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녔어요.” 그의 말에 어이구, 이 표를 보존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상대로 당신은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니 표를 양보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칭하이(淸海)에서 온 한 수련생이 강의를 처음 들었는데 북경어를 잘 몰라 한 번 더 듣고 싶어 한다면서, 그는 칭하이에서 처음으로 학습반에 참가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쉬웠지만 표를 그에게 주고 자리를 떠나 또다시 큰 문 입구에 가서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들어갔고 강의를 시작한 지 꽤 되었습니다. 그래도 표가 없는 우리는 여전히 문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이때 강당 관리 직원이 정문을 닫자 작은 문을 통해 드문드문 사람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작은 문으로 몰려갔습니다. 작은 문과 멀지 않은 곳에 한 젊은이가 서 있었습니다. 방금 전에도 그곳에 묵묵히 서 있는 그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옆을 지나갈 때 그는 갑자기 표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저는 멍해져 있다가 표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표를 주었고 저는 손에 쥐고 있던 칭하이 사람이 준 돈을 그에게 표 값으로 주었습니다. 저는 또 다시 표를 구했습니다! 옆에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늘 학습반을 따라다니던 정저우의 한 젊은이에게 제 대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들어가는 게 마땅하다며 저에게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밍팡궁강당 지하에서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기에 무도회 표를 사서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강당에 가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톈진에서 온 젊은이는 우리가 만약 속이고 들어 가 스승님의 강의를 듣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제가 들어간 후 한참 지나 강당 문을 지키던 사람이 간절하고 끈질긴 수련생의 모습에 감동해서 다 들여보냈다고 합니다.

 이 학습반에서 우리는 여러 조로 나누어 스승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에 따라 스승님은 차례대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매일 집에서 강의 장소에 걸어서 오셨습니다. 차가 있는 수련생이 스승님을 모셔다 드리고 싶다고 했으나 모두 완곡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우리가 투숙한 여관은 지린 대학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버스 요금이 저렴해서 몇 십 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수련생들은 차비를 절약하려고 매일 아침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에게 왜 이렇게 먼 길을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절약해 한 푼 한 푼 돈을 모아야 다음 기 학습반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이는 스승님의 고향에서 강의한 마지막 학습반이었습니다. 마지막 강의를 끝마칠 때 스승님께서 간곡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어 수련생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와 몇몇 수련생들은 기차 출발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스승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밍팡궁강당에서 도로까지 나왔을 때는 기차 출발 시간이 십 몇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열차를 놓치면 일이 아주 번거롭게 됩니다. 제 기차표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겨우 구입했는데 그나마 일반석이라 톈진에 가서 북경 행 열차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저는 택시 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차를 몰아 달라고 부탁해 십분 만에 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택시가 역전 변두리에 내려 주어 기차 타는 곳까지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차 출발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고 몇 번 승차장에서 타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톈진에서 온 젊은이가 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날듯이 달렸고, 몇 사람은 짐을 어깨에 둘러메고 달렸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역 앞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승차장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 제대로 찾아갔습니다. 톈진의 젊은이가 열차에 발을 들여놓고 고꾸라지는 순간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그 날은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529일에는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에서 학습반을 연다고 했습니다. 이전 기 학습반은 충칭(重慶)이었습니다. 그동안 충칭에서 학습반을 연 적이 없어, 저는 파룬궁 보도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학습반이 열리는 곳마다 따라 다니면서 스승님께서 너무나 고생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톈진(天津)에서 학습반을 열 때 투숙했던 여관의 방값은 이십여 원에 불과해 시설이 좋지 않아 목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강의를 듣고 숙소에 돌아오면 잠잘 수 있었지만, 스승님께서는 24시간 우리들의 신체를 조절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로 스승님이 계시는 곳에 찾아와 절을 하고는 자기 가족의 병을 고쳐 달라고 떼를 쓰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이 아무리 타일러도 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는 어떠한 마음도 다 있습니다. 이미 먼저 수련한 수련생들은 이들이 스승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게 견디기 힘들어, 스승님께서 더 많이 휴식할 수 있도록 스승님 곁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제 남편은 청두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먼저 청두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청두 기공협회에 찾아 가 우리가 차를 제공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운영을 책임진 기공협회는 돈벌이를 위해 기공 학습반을 꾸리므로 돈을 쓰는데 아주 인색했습니다.

 그 날 충칭에서부터 스승님을 따라 온 많은 수련생들이 스승님과 함께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5월 하순이라 남방의 날씨는 이미 무더웠지만, 기차에 에어컨이 없어서 다들 매우 피곤해 보였습니다. 큼직큼직하게 묶은 󰡐파룬궁(法輪功)󰡑 수정본 책을 짊어 진 수행인원들의 몸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기공협회에서 택시 한 대를 보내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짐을 진 수행인원들에게 먼저 택시를 타라고 하셨습니다. 주차장에 있던 제 남편이 역 출구까지 차를 몰고 가 스승님의 걸음을 줄여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을 빠져 나오자 갑자기 어디서 몰려 왔는지 역 앞 사거리가 차량으로 꽉 들어차 길이 막혔습니다. 다행히 남편 차는 수입차라 자동 변속이 가능해 출발이 빨라 혼신의 노력으로 빠져 나올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입에 물집이 다 생길 정도였고 스승님을 역 앞에서 40여 분이나 기다리게 했습니다. 저는 너무도 죄송해서 며칠 동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스승님께서 이것이 교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는 길에 이런 시끄러움이 아주 많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두(成都) 학습반은 한 접대소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스승님의 파룬궁(法輪功) 학습반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광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각종 기공반이 많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첫날에는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강의는 다르다는 소식이 급속히 전해지면서 끝날 때는 8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매번 강의가 끝나면 남편의 차량으로 스승님을 여관으로 모셨습니다. 사람들 모두 머뭇머뭇하면서 스승님께서 차에 오르신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고생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게 아주 기뻤고 위안이 됐습니다.

 파룬궁(法輪功) 학습반은 사회적으로 누구와도 교섭하지 않고 독립적이었으며 기공협회에서는 돈만 챙겨갔습니다. 스승님께서는 공을 전하시는 일정, 숙식 등 모든 것을 스스로 배치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저는 청두에서의 날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스승님을 따라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첫날에는 문수원(文殊院)으로 갔습니다. 우리 차량이 선두에서 달렸는데 홍콩에서 온 한 사업가가 함께 동승했습니다. 그는 청두에서 학습반을 꾸린다는 소식을 듣고 줄곧 청두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는 북경 표준어를 잘 몰라서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스승님께서 가는 길에 그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뒤 뒤차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큰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스승님을 뒤따라 문에 들어서니 양 옆에 4대 금강이 서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우리를 향해 뒤를 돌아보시면서, 스승님께서 강의할 때 4대 금강 모두 현장에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들이 왜 저렇게 흉측하게 생겼는지 여쭙자 스승님은 그들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찰은 아주 난잡하여 각종 부체(附體)들 여우, 족제비, 귀신, 뱀 무엇이나 다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청리(淸理)해 주셨는데, 손만 한번 휘저으면 청리가 됐습니다.

 며칠 후 스승님께서 청성산(靑城山)에 가셨습니다. 동행한 사람들은 다롄(大連) 보도소장, 구이저우(貴州) 보도소장, 우한 보도소장과 기타 몇몇 수련생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옛날 사람들이 말한, 󰡐산의 가치는 그 높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선이 살고 있으면 영험하다󰡑는 의미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저의 이 허약한 신체로도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의 회사 동료들은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청두에서의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는 스승님과 함께 낙산(樂山)과 아미산(峨眉山)으로 갔습니다. 낙산의 나한당에서 동행했던 한 수련생이 달려와, ××보살(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이 스승님을 뵙고 매우 죄송하게 여겨 스승님께 예를 올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스승님께서 우리가 돌아갈 때 그들이 아주 멀리까지 배웅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 깜짝 놀랐는데, 제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흙으로 빚은 조각상에 불과했습니다. 나한당을 나올 때 뒤에서 한 승려가 이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했는데, 그는 분명 무언가를 본 것 같았습니다.

 아미산은 확실히 다른 곳과 달랐습니다. 금정(金頂)에서 저는 처음으로 천목(天目)을 진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과 같이 다니니 신기한 일이 너무나 많아 제 머리는 정말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서유기󰡑와 다른 전설들이 생각나서 스승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어째서 신화 이야기가 모두 진실한 것입니까?” 스승님께서 신화가 있는 것도 아무런 까닭이 없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00 【나의 사부님】사부님따라 만리길-제2부 2021-01-03
991 【나의 사부님】사부님 따라 만리길-제1부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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