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간(북경) : 오후 09~10시 6030 KHZ
명혜망대법서적
  • 시사&평론
  • 수련교류
  • 꼬마제자
  • 나의 사부님
  • 전통문화
  • 천인사이
  • 천음
  • 수련이야기
수련교류
애플 팟캐스트, 팟빵에서 명혜라디오 팟캐스트 방송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한글명혜주간 제753호 【수련교류】  
   2021-01-12 21:07:22 | 조회 : 211

한글판 제753호


   수련교류

   공직 해임 등 법을 위반한 ‘제로화’ 박해를 법률 각도에서 대하다  
   의문이 있을수록 견정히 믿는다 
   반석같이 견고한 신념과 평온한 마음 
   누굴 믿어야 하는가?
   우리가 찬양하는 건 마땅히 대법이어야 한다 
   당문화의 한(恨)을 닦아버리다 
   ‘엄정 성명’에 관한 작은 소감 
   수련생을 도울 때 ‘자아’를 제거하는 것에 관한 작은 깨달음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공직 해임 등 법을 위반한 ‘제로화’ 박해를 법률 각도에서 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의 각지 정보에 따르면 악당의 ‘제로화’ 행동 중에 일부 수련생은 직장 지도자 및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의 협박을 받거나 공직에서 해임되거나 임금 지급이 중지되는 등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수련인의 입장에서 사람의 방법으로 피하지 말고 발정념으로 고층의 흑수를 제거하는 동시에 선념을 내보내고 이치에 맞게 진상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반드시 신을 향해 나아가는 수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직면해야 한다. 일반인의 측면에서 보면 본인이 소속된 직장 및 부서의 구체적 상황과 결부해, 법적 각도에서 책임자에게 이런 행위가 모두 법을 어긴 것이고 책임지게 될 거라고 침착하게 설명해야 한다(설득해도 듣지 않으면, 그 정도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가 공직에서 해임되거나 일자리를 박탈당하면 법에 따라 권리를 수호할 거라고 그들에게 태도를 밝힐 수 있다). 또한, 정의 포럼이나 현지 변호사에게 문의하거나 적절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법에 따라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 불합리한 공직 해고는 심각한 위법이므로 관련 책임자를 고소할 수 있다.

수련생이 정말로 해고된다면 친척 친구뿐만 아니라 그가 소속된 직장의 임직원들에게도 부정적인 견해를 산생할 수 있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현대인으로서는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표면의 결과를 볼 것이다.

견해를 좀 낸 것으로서 합리적이거나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해주시기 바란다.


의문이 있을수록 굳건히 믿는다
-우리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의 위치이다


글/ 중국 하얼빈 대법제자

[밍후이왕] 의문이 있으면 지혜로 그것을 타파한다. 더욱 큰 의문이 있으면 더욱 큰 지혜로 그것을 타파한다. …… 깨뜨리기 전에는 그 속에 빠져있는데, 대법제자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의문이 생길수록 더욱 믿고, 더 큰 의문이 있으면 더욱 믿는다. 이는 대법이 육성한 생명의 본성이며 법 중의 입자이다. 대법에 대한 신념은 대단히 견고해 파괴할 수 없다.

법의 입자가 법에 대해 질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법에 대해 질의하는 것은 법을 이탈한 것이고 그것은 법의 입자가 아니다. 따라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그저 표상일 뿐이다. 미혹 속의 일종 표상이다. 이해되는지 되지 않는지 하는 표상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설사 이해한다 해도 각종 층차에서의 이해이며 근본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해는 바로 믿음이다! 최고의 지혜는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다!

나는 미국 대선 중에 텍사스주 연방 법원 소송에서 꼭 승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각되자 실망이 컸다. 요새 발정념도 잘했고 전 세계에서 발정념을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법관이 보수층인데 왜 그렇게 됐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런저런 의문이 나타나면 이미 법에 대한 정념에 누락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려야 할까? 어떻게 해야 대단히 견고해서 파괴할 수 없을까? 나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나를 동요하는 것일수록, 대법을 믿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표면적인 이치로는, 흔들릴수록 마의 교란과 검증이 큰 것을 설명하므로, 법을 더 굳게 믿어야 한다. 또 한 층 함의는, 우리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기에 우리의 뿌리는 대법에 있고, 따라서 굳게 믿고 근본을 지켜야 한다.

매 한 차례 정(正)과 사(邪)의 전투에서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오면 확신이 생기고 사부님을 확고히 믿는다. 결과가 좋지 않은 쪽으로 나왔다면 더욱 확신을 해야 한다. 법에 따라 자신을 찾고 자신을 정화하는 동시에 더욱더 사부님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이렇게 매 한 차례 정사(正邪)의 검증에서 자신이 더욱더 확고히 믿으면 사부님과 법에 더욱 가까워진다.

이 인식은 내 마음속의 견정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셨고, 사부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당하신다. 따라서 모든 것이 사부님께 귀속되며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으로서 가장 가치 있는 표현이란, 대법과 사부님께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할수록, 의문이 생길수록 모든 사상 활동을 멈추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 이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며, 할 수 있다.

사람의 사유는 일반적으로 받고 확인하며 이로운 것이 있으면 비로소 믿는다. 또는, 믿었더니 그다음에 받았고 확인됐으며 혜택도 보게 되면 깊이 믿는다. 그렇다면, 받지 못하고 확인도 되지 않으며 이득도 보지 못했다면 믿을까? 심지어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며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닐 때 믿을 수 있을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여전히 굳게 믿을 수 있을까?

대법제자는 대법을 견정하게 믿는다. 그러나 수련 과정에서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시련에 빠진다. 대법제자는 매번 사부님께서 너무 많이 감당하시게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기뻐하시고 위안이 되시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은 표상이며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만이 근본이다. 수련 과정은 대법에 대해 끊임없이 더욱 견정히 믿는 과정이며, 부족함이 없이 대단히 견고해 파괴할 수 없을 때까지다.

병업 문제, 정법(正法) 시간의 문제, 또 많고도 많은 문제를 우리는 수련 중에서 자신의 오성(悟性), 지혜, 심성에 근거하며 다소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너무 이해되지 않을 때,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의문이 늘 나타나고 어떤 것은 나타나지 않았어도 은폐된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을 믿는 중에서 부족한 점이다. 시간이 길어져 많이 쌓이면 여러 문제나 교란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이해를 내려놓으며 자기 인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 깨달음이건 인식이건 모두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을 위한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때 그것을 내려놓으며 그것에 방해받지 말고 뛰쳐나오자. 나는 의문이 있을수록 더욱 믿는다.

수련 과정에서 일부 문제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의문이 나타날 때 자기의 각종 생각이 중요한 것인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마음에 법이 있고 사부님이 있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귀하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우리 마음에는 자아가 없고 오직 사부님과 법이 있지 않은가. 우리 생명의 일체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모든 것은 또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이기에 마음은 오직 사부님께 가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의 입자가 되도록 하셨기에 우리 마음은 오직 법에 있다.

혼란스러울수록 믿고 의문이 들수록 더욱 믿는다. 소침할수록 믿고 뜻대로 되지 않을수록 더욱 믿는다 ……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마음은 오직 법, 거기에 있다. 혼란, 의문, 의기소침,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는 대법제자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 …… 우주 중 생명 고유의 사유 틀에서 벗어나, 최후시각에 매 대법제자는 완전히 이 능력을 갖추었다.

사실 우리 마음이 어디에 있으면 우리 위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선 이미 일찍이 우리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놓으셨다. 우리는 자신을 아래로 내려오게 할 수 없다. 의문이 있을수록 더 믿고 마음을 시종일관 대법에 놓고 사부님께 놓자!

정말로 해내면 모든 혼돈, 교란은 스스로 사라진다!



반석같이 견고한 신념과 평온한 마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미국 대선 소식을 에워싸고 각종 논평과 추측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데 미국 대선 자체가 바로 하늘이 사람을 구하려고 배치한 한 수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국면을 특수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나는 우리 매 대법제자가 마땅히 자신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고 각종 집착과 관념을 제거하여 정념을 단호히 하고 아울러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대선이 보여주고 있는 각종 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층차에서 말하면 이는 공산주의와 자유 사회의 싸움이고 부정한 수법과 정당한 취득과의 싸움이고 아부 세력과 양심을 단호히 지키는 것의 싸움이고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것과 진상을 널리 알리는 것과의 싸움이며 어찌할 방법이 없이 받아들이는 것과 입장을 단호히 하는 것과의 싸움이다. 사람을 초월한 층차에서 보면 사악과 정의의 싸움이고 마귀를 선택하는지 신과 동행하는지의 싸움이다. 수련자의 각도에서 말하면 그것은 바로 마귀가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과 수련자가 노력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과의 싸움이고 낡은 배치를 수호하는 것과 낡은 배치를 타파하고 사부님을 수호하며 선택하는 것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나는 대법제자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마땅히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사명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대선 속에서 정사(正邪), 선악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동시에 발정념하여 붉은 마의 교란을 청리하며 세인을 도와 정확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지극히 적게 남은 시간 내에 사람을 빼앗아서 구해야 한다.

현재 나는 대법제자 속에서 나타난 몇 가지 현상을 보았는데 인식하고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도로 인간 세상에서의 손실을 감소시켜야 한다.

1. 인간 세상의 이치를 안고 대한다. 이번 대선은 표면에서는 정치이고 아울러 미국의 정치이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우리는 또 중국어를 말하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2. 사부님을 믿기 때문에 이로써 눈 감고 사부님께 의지하고 주동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많은 수련생은 사부님을 단호히 믿으며 일은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발전할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주동적으로 사악을 청리하지 않고 한사코 사부님께 의지하고 일의 결과를 기다린다.

나는 이것 또한 일종의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다리고 의지하는 자체는 세인구도에 어떠한 바른 힘도 증가시켜주지 않는다.

3. 소극적으로 대하고 날마다 부정적인 소식이라 신심을 잃었다. 이 점은 상술한 두 가지와 인과관계가 있다.

어쨌든 나는 우리가 모두 마땅히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가늠하고 자신을 순정하게 하는 과정에서 강대한 염력을 집중하여 낡은 배치를 타파해야 한다. 사람 여기서 우리는 또한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적극적이며 이성적으로 사람들이 대선 속의 진상을 보게 해야 한다. 최대한도로 바른 장을 형성하여 사람들이 그의 가장 좋은 선택을 하도록 이롭게 해야 한다.

수련인으로서 형세에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우리 여기서 어떠한 교란이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대법에 대해 사람을 구함에 대해 모두 반석같이 견고한 신념을 유지하고 아울러 반석같이 견고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행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면 우리의 행위는 정법의 요구에 도달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비로소 실증할 수 있다.


누굴 믿어야 하는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신과 마, 정과 사의 대전은 위험한 양상을 띠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밍후이 편집부 문장이 발표된 후 나는 즉시 대선을 위한 발정념을 했다. 동시에 매일 형세 변화에 주의를 기울였다.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읽고 나의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으나 조정을 거친 후 마음이 안정됐다. 그 기간 수련생의 발정념에 관련된 교류 문장을 보고 나의 상태를 조정했고 정념의 힘이 강해졌으며 자신감도 커졌다.

트럼프는 신이 선택한 사람으로서 어느 시점에 반드시 뜻밖의 사건이 발생해 위험한 국면을 만회하고 대세를 바꿀 것으로 나는 믿었다. 줄곧 싸워 소송이 대법원에 이르렀다. 속으로 이것이 바로 연극이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보수파 영향력 영역이고 게다가 그렇게 많은 인증, 물증이 있고 장물이 모두 갖춰져 있는데 확실하게 이길 것이 아닌가? 이튿날 아침 일찍이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뜻밖의 결과에 나는 매우 실망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은근하게 의존하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대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는 것은 속인을 크게 의존하는 마음이 아닌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발정념하면 어찌 세인을 구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말한다면, 이른바 자연변화, 외재적 변화, 속인사회의 변화, 혹은 누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인가 이런 것들에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은 바로 신(神)이며, 당신들은 바로 미래의 부동한 우주의 주재자(主宰者)인데, 당신들이 누구에게 희망을 걸겠는가? 중생들은 모두 당신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박수) 정말로 이런 것이다.”[1] 주격의 위치를 바꿔서는 안 된다!

이번 교훈을 통해 우리는 부패한 민주, 정치, 법률 등 시스템에 공산 사악(邪惡)의 침투와 매수로 인해 한때 자부심을 느꼈던 ‘자유의 등대’가 지금 이미 변한 것을 보았다. 수련인으로서 표상에 미혹되지 말고 인간 세상의 형세에 따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누굴 믿어야 하는가?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어야 한다. 더는 누구의 힘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正信)이다.

자신의 강한 의존심을 다시 한번 직시하고, 이를 제거하고, 자신을 바로 잡아 미국 대선 일련의 사건에서 자신을 빠르게 성숙시켜 걸어 나왔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우리가 찬양하는 건 마땅히 대법이어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인으로 말하면 우주 진리에 대한 갈망은 일생의 추구이지만, 미혹 속의 수련자로 말하면 우주 진리를 만질 수 없으니 또 수련 중의 미혹이 되었다. 미혹을 타파하고 의혹을 풀기 위해 많은 사람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을 접촉하기 좋아하는데, 일을 만나면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 오래되면 관념이 생겨 천목이 열린 수련생을 우주 진리의 전도사로 생각하고 본보기로 여긴다. 이것은 일정한 정도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 제고하는 작용을 하지만 역시 쉽게 집착심을 불러일으킨다.

법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우리가 가는 길은 갈수록 어려운데, 사람 마음이 조금만 있어도 줄곧 상생상극의 우주 진리의 제약을 받는다. 수련에서의 체현은 아무리 많은 좋은 일을 해도 생명에 아직 순정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만약 바로 잡지 않고 억제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 자신과 타인의 수련에 손실을 준다.

S수련생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고 동시에 정념이 강한 수련생이다. 예전에 사악한 당의 감옥에서 반(反) 박해할 때도 아주 잘했다. 한번은 그녀가 영감이 떠올라 스스로 노래 한 수를 창작해 경찰과 감옥 바오자(包夾, 수련생을 감시하는 죄수)와 수련생에게 불러주었는데, 많은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후부터 그녀를 박해하던 경찰과 죄수들이 박해를 많이 자제했다. 그 후 그녀는 L수련생과 S, G수련생을 알게 됐고, 어느 날 무심코 감옥에서의 일을 언급했다. G수련생은 이미 일을 알고 있었고 가사를 기억하고 있어 여러 사람에게 이 노래를 불러줬다. 가사는 아주 좋았고 노랫소리도 좋았다. 하지만 L수련생은 은근히 어딘가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뒤돌아 오랫동안 생각해보니 마음속에 수련생을 숭배하는 마음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게 됐다. 우리는 대법제자다. 마땅히 대법을 숭배해야 하고 사부님과 대법을 찬양해야 한다! 어찌 수련 중의 사람을 숭배하는가? 그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대법의 가지(加持) 하에 한 것이다. 만약 대법의 가지가 없으면 반박해는 근본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일은 대법제자 속에서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도리어 늘 순정할 수 없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이런 원인으로 나중에 뒷감당을 수습하기 어렵다. M수련생은 외지인이고 고향을 떠난 지 17년이 됐는데, 동북지방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 한번은 고향 수련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M수련생에게 언제 고향에 돌아오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많이 도와달라고 했다. M수련생은 이 말을 듣고 후회했다. 17년이 지났는데, 자신에 대한 수련생의 인상은 아직도 그 천목이 열린 선지자로 심성이 아주 좋고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사실 그해 그런 상태는 많은 집착심 때문에 조성됐다. 얼마나 많은 것이 진수(真修)하여 나온 상태였나? 자신의 인상도 어렴풋한데, 오히려 고향 수련생에게 집착심을 조성해 주었고 강대한 의뢰심을 형성했는데, 이렇게 집착한 지 이미 17년이 됐다. 이것은 범죄다!

사부님은 자비롭고 널리 중생을 구도하신다. 속인 사회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수련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쉽다. 하지만 수련자에 대한 심성 표준은 전혀 낮지 않고 수련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세간 시련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의 시련에도 부딪혀야 한다. 비록 약간의 미혹을 타파했지만 요구는 더욱 높다. 세간의 명리정(名利情) 유혹이 그렇게 많아,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파악하지 못해 때로 우주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속인의 집착심이 섞여 있어 수련생을 잘못 이끈다. 자신에게 업력을 지었고 그 후 기로로 걸어 들어간다. 전에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자신은 천목이 잘 열려 자주 주변 수련생을 지도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수련생은 큰 병업관을 넘긴 후 눈도 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만약 주변 사람이 선의적으로 그녀를 일깨워주고 혹은 그녀가 제때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20여 년 수련의 길을 뒤돌아보고, 대법제자의 수련 단체를 뒤돌아보면,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숭배하고 아부하는 현상은 여태껏 끊긴 적이 없다. 이것은 마치 외줄을 타는 것처럼 훈련이 잘된 사람은 균형을 파악할 수 있지만, 파악하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대법제자 수련의 길에서 정면적인 작용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부하고 숭배하는 수련생은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한다. 당신의 아부는 남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당신이 사람에게 아부하는지 아니면 대법을 찬양하는지? 만약 구별할 수 있으면,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나타난 것도 대법과 사부님의 배치라는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하고, 목적은 함께 제고하는 것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숭배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으로서는, 시시각각 집착심을 찾고, 바르고 바르지 않는 것을 분별하고, 수련생의 아부 숭배를 심성제고의 좋은 기회로 보고 자신의 명리정을 제거한다면, 우리의 수련은 더욱 신성한 것이다. 세간의 마지막 먼지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이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삼가 기록하겠다. 수련생들이 함께 제고하고 정진하기를 희망한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1]

이상은 단지 개인 수련의 인식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는 자연히 그 중에 있다’



당문화의 한(恨)을 닦아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A가 나에게 수련생 B에 대한 불만을 말하자, 나는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바로 B에 대한 불만 하나를 말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B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그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 한편으로는 다른 수련생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실제 내용은 반만 이야기하고, 내가 자기를 신임하는 것을 이용해 나머지 부분에 대해 합리화하려 한다. 일이 밝혀지고 나서야 B가 고의로 그렇게 말한 것을 알게 된다. 그 목적은 나를 자기 생각에 따르게 하려는 것인데, 그것을 알고 나면 그가 남을 속인다는 생각에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다. 그가 참 대하기 어렵고 계략을 꾸민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 말을 하다가, 내가 틀렸고 수구(修口)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어서 A에게,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왜 지금도 심기가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미 그 일에 대해 담담해졌는데, 왜 또 불평하고 있지? A와 함께 분석해봤다. 나는 관념을 버리지 않았고, 타인에게 속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수련생에게 속는 것을 싫어하고, 속이는 것은 곧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A도 B에게 속은 적이 있다며,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고 그와 상의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간 듯 보였다. 며칠 뒤 수련교류 한 편을 읽고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원한심에 관한 문장이었다. 내가 B의 부족한 점에 대해 불평한 것이 원한이 아닐까? 나는 당시 내가 안을 향해 찾았던 과정을 떠올려봤다. B가 속임수를 썼지만, 부담이 너무 커서 그렇게 한 것이니 나는 마땅히 양해하고 이해했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당시 내가 안으로 찾은 것은 단지 자신에게 불평할 이유를 찾아준 것에 불과했다. 다른 수련생이 잘못했고 내가 옳으니, 틀린 사람과 비교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옳은 쪽, 높은 곳에 있다는 일종 만족감이었다.

정말 안을 향해 찾았을 때, 내가 옳은 것을 알았고 사심도 제거했다 하더라도, 마땅히 더욱 선념을 가져야지 어떻게 한참 지나서도 여전히 화를 낼 수가 있겠는가.

내게 자신을 찾을 수 없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당(黨)문화의 한(恨), 증오의 한, 자기를 뽐내고 내세우려는 마음을 찾았다. 나는 다른 수련생의 잘못이 곧 절대적인 잘못이라 말로 깨우쳐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바로 일종 한이었다. 원망하면서 나는 자신을 바른쪽에 놓았다.

나는 한 때문에 선념(善念)이 없었고, 정말로 처지를 바꿔서 다른 수련생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당문화의 한은 정말 사람을 해치고, 작은 일에서도 수련생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만들게 한다. 다른 수련생의 부족한 점이 보일 때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이해가 아니라 못마땅함이었다. 만약 한이 없다면 숱한 불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의 배후에는 또 과시의 그림자가 있다. 타인의 잘못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안목이 있는 듯하지만, 거꾸로 자기 잘못은 무시한다.

몇 년간 나는 많은 경우 내가 B를 너그럽게 대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쓰니 누가 누구를 너그럽게 대한 것인지, 정말 부끄러워 진땀이 난다.


‘엄정 성명’에 관한 작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중국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이른바 ‘제로화 운동’을 실시했다.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교란받았다. 일부 수련생은 두려워하는 마음과 기타 집착심으로 인해 사악에 속거나 협박과 이익을 내세운 회유에 서명했으며 일부는 사악에 매우 협조했다.

어떤 상황에서 서명했든지 수련생은 모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행위는 아니라는 걸 알고 이후에 대부분 ‘엄정 성명’을 써 밍후이왕에 올렸다. 그런데 일부 수련생은 마치 ‘엄정 성명’ 발표를 자기 잘못을 빠져나가는 수단으로 여겼다. 성명 중에 말하는 ‘대법에 조성한 손실을 배로 만회하겠다’를 진정하게 하지 않았다. “서명했어요? 성명을 써서 밍후이왕에 올리면 돼요.” 마치 성명만 쓰면 대법을 배신한 행위가 모두 취소되는 것 같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참회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참회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더욱 잘 하려고 하는 것이지, 참회를 하는 한편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오늘 사람을 죽였는데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내일 당신이 또 한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당신이 또 참회하며 용서를 빈다면, 누가 당신을 용서해 주겠는가? 이 이치가 아닌가? 당신이 나쁜 짓을 한 것을 참회하면서 앞으로는 더 하지 말아야 하며 정말로 더 하지 말아야 한다.”[1]

우리 모두 신불이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걸 안다. 세인이 가명으로 ‘삼퇴’를 해도 평안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련하는 사람이 실명으로 성명을 썼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짜라면 성명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성명을 발표하는 수련생에 대해서 성명하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렇지 않다면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법에 대해서 수련생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

예전에 나는 전통문화를 일반인이 배우게 하는 것이고 일반인이 도달해야 하는 표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전통문화는 수련하는 사람도 역시 도달해야 하는 표준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의(義)와 충(忠)’을 지킨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와 악비, 양가장(楊家將)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사당(邪黨)의 변이된 문화의 영향을 받아 고대 사람들보다 비교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오랫동안 수련 과정에서 사존님께서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신 덕에 우리는 모두 대법을 통해 많은 혜택을 얻었다. 자신 혹은 남편, 아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복을 얻을 땐 사존과 대법에 감사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악이 이런 복과 이익을 이용해 협박할 땐 곧바로 신불의 은혜를 잊고 사악에 타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으로 도달해야 하는 충과 의도 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물며 속인을 넘어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일부 수련생은 매주 밍후이주간에서 몇 명이 ‘엄정 성명’을 썼다면서 거기에서 핑계를 찾는다. 얼마 전 며칠 동안 나는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지만, 사상 속에서는 스스로 그리 느슨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을 지원하는 꿈을 꿨는데, 나는 정규 고등학교 지원자가 아니라 실업고 지원자였다. 하지만 꿈에서 나는 “적어도 수능시험에 참가는 할 수 있다”며 위안했다. 깨어난 후에도 서둘러 자기 상태를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또 꿈을 꿨는데 이번에는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마침내 나는 최후일수록 더욱더 엄숙하고 요구도 더욱 엄격해짐을 깨달았다!

주변 어느 수련생이 몇 년 동안 법공부와 연공도 하지 않았는데 올해 다시 진정하게 수련하려고 했을 때 꿈속에서 그녀는 교실에 있었지만 자기 자리는 없었고 바닥에만 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자신이 이 수련생보다도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생명마다 내원이 다르고 사명, 서약, 책임이 다 다른 것으로 법이 매 사람에게 대한 요구도 다른 것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기타 수련생이 못한 부분과 비교하면 안 된다고 인식했다.
이상은 단지 개인적인 인식이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수련생을 도울 때 ‘자아’를 제거하는 것에 관한 작은 깨달음


글/ 중국 제자

[밍후이왕] 법학습 팀에 오랫동안 병업관을 넘지 못하는 한 노수련생이 있었다. 그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잇따라 왔다.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해요…….” 다음에 오는 사람들도 말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셔야 합니다.” 모두 이러쿵저러쿵했는데 아주 강성인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이 수련생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 수련생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며칠간 마음이 무거웠다. 안타까웠지만 그를 탓하는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오성(悟性)이 좋지 않아도 정념(正念)만 강했으면 가지 않았을 텐데.’ 몇 년 후 이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줄곧 ‘자아’ 속에서 맴돌았다. 겉으로는 타인이 좋게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사실 자기가 깨달은 것을 중하게 여겼기에 속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말만 들었어도 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이러한 생각을 품은 수련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업관을 넘거나 심성관을 넘고 있는 수련생과 교류하려면 반드시 기점을 바로 놓아야 한다. 자기를 의사처럼 여기면서 끊임없이 ‘처방’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런 상태는 흔히 많이들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 자신이 청성해야 한다. 어려움에 부닥친 수련생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 교류가 효과가 없다면 아무리 많이 말해줘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수련인은 모두 누락이 있는데, 다른 수련생의 사소한 단점에 경악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수련에서 모든 것이 매끄러울 수는 없다. 관건은 무엇이 내 눈에 거슬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마음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어려움에 부닥친 수련생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하므로 다른 사람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행동했다. 누가 병업관을 넘지 못하거나 심성관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가서 방할(棒喝)하고 가르쳐주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나중에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 생각해봤는데, 찾아보니 다름 아닌 자아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순조롭게 수련해왔고, 몸 상태도 큰 문제가 있은 적이 없다 보니 수련생들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이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만하고 스스로 인격이 고결하다고 여겼으며, 수련생에게 결점이 있으면 내 장점과 비교했다. 어떻게 비교해봐도 내가 낫다고 하는 방식은 수련인에게는 금기이다.

대법은 끝이 없다. 자만하고 좀이 쑤신 것은 경박한 행동이다. 나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감히 방할하며, 심지어 10여 년간 줄곧 자신이 관을 넘은 일들을 생생하게 입에 올렸다. 이는 자기가 수련한 것이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수련인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세 가지 일을 얼마나 많이 했건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우수하다고 말해도 대법의 지도와 사부님의 보호하에 지나온 것이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시고 점화해주지 않으셨다면, 제고는 물론 약을 달고 살았던 나는 일찌감치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련인의 일체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이루어졌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야 제고가 빠르다. 꼭 자아를 제거하고 침착하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면 타인이 자기 말을 잘 듣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만이 자기 사상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명히 보아낼 수 있고 사람마음도 빨리 제거할 수 있다.

타인을 돕는 것이 자기를 돕는 것이고, 타인을 성취시키는 것이 곧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련생의 문제가 보일 때 가상일 수도 있기에 자기를 높이지 말고 다가가서 친절하게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라고 한 마디 물을 수 있다. 따스한 말 한마디는 한 줄기 햇빛처럼 어려움에 부닥친 수련생의 신심을 북돋아 주고 재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연약해진 수련생의 마음을 설상가상으로 만들어 잘못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수련생에게 방법을 짜주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인식은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경지가 다르기에 논쟁하거나 동의할 필요도 없다. 상대는 수긍하지 않을 수 있는데 현재 있는 위치가 달라서이다. 만약 당신이 자기 말만 한다면 간격이 생기게 할 수 있다. 나는 왜 항상 교류해도 성과가 없는지 생각해봤다. 한나절을 이야기해도 상대가 수긍하지 않고 더욱이 압력을 느끼거나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는데, 그럼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패는 쉽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에 아마 다음에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교류하는 가운데 제고나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한 것과 같다.

나는 또 수련생을 도울 때는 수련생의 관점에서 도와야 한다고 깨달았다. 상대가 상태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이해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말며, 눈을 보며 말하고, 내려다보듯 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분명히 당신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할 것이고 당신이 따뜻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특히 수련생이 부끄러운 일을 말할 때는 수구(修口)에 주의해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말하면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고 그를 해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왜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아무 수련생에게도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까?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소문이 퍼질까 봐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므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수련교류 발췌


미국 대선 문제에서 우리의 목적은 중생구도입니다. 속인의 진념이 다른 공간 홍마(紅魔)의 통제와 조종을 받는 전제하에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란이 없는 상황에서 진정하게 자신의 선택을 하도록 대법제자는 발정념으로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발정념을 하든 무엇을 하든 대법제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 놓아야 합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속인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제때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모두가 트럼프라는 이 속인에게 마음을 기탁한다면 사악은 곧 틈을 타게 될 것이고 끊임없이 교란하고 파괴하여 중생구도에 교란과 어려움을 가져옵니다. 발정념을 하여 홍마 난귀(爛鬼)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중생구도를 위한 것이고, 세인이 교란받지 않는 상황에서 바른 것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대법제자 자체가 바로 곧 정신(正神)이며 마땅히 이러한 생각이어야 합니다. 신께서 사악한 공산당을 종식하려면 방법이 있고 누구를 지정할 것이므로 우리는 속인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발정념을 하여 먼저 자신을 바로 잡자’

사상 속에 경찰관이 찾아오는 것을 교란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상을 이해할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념이 충분하면 장은 곧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할 것입니다. 사람의 겉모습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하고 협력하지 말아야 하며 경찰관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에 순종하지 않으면 곧 그를 구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진정한 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상 알리기에는 여러 입장이 있으며 자비롭게 사람의 선념을 불러 일깨울 수 있고 사악한 박해를 폭로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자신의 표현에 집착하지 말고 사부님의 가지하에 행한 일체는 모두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정체협력하여 사람을 많이 구하고 찾아오는 경찰관을 자비롭게 구하다’

과거에 저는 “법이 사람을 연마함(法煉人)”, “공이 사람을 연마함(功煉人)”.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단장취의하고 단편적으로 이해했으며 연공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안일한 마음을 위해 핑계를 찾아 자신의 수련에 어려움을 조성했습니다.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며 발정념을 하면 모두 흐리멍덩하고 피곤해서 졸렸으며 몸도 장기적으로 일부 정확하지 않은 상태의 교란을 받았습니다. 대법을 잘 실증하여 사람을 많이 구하려 했지만 늘 힘이 모자라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전법륜) 자신이 연공을 잘 할 수 없는 것 자체가 곧 심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무슨 근거로 당신에게 공을 자라게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법을 얻은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연공을 대하다’

최근 해외에서 계속 많은 대법제자를 조직해 미국대선을 위해 끊임없이 계속 24시간 릴레이 발정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록 모두 개인적인 행동이지만, 해외는 필경 현재 미국 대선의 정사대전 실제 상황을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중국 대법제자들은 더욱 마땅히 미국 대선을 중시해 발정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라는 곳이 현재 정사대전의 펼쳐 보임이라면 진정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을 교란하는 것을 지탱하고 있는 이런 사악한 요소는 가장 주요하게 여전히 중국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 공간이든 다른 공간이든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국에 있는 대법제자로서 여기에 배치된 것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손오공이 요괴의 뱃속에 들어간 것처럼 손오공이 밖에서 요괴와 맞붙어 싸우기는 비교적 힘들지만, 요괴의 뱃속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요괴가 바로 용서를 비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울러 중국 대법제자는 지금 바로 이 일을 가서 해야 합니다.
—‘뱃속과 배 바깥’

지금 사악이 납치당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대부분 개정하는 이런 형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늘 매를 맞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되며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련은 이처럼 신성하고 엄숙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늘 자신의 수련이 죄의 유무 여부와 합법적 여부의 문제에서 변론만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어 놓는 것 아닌가요? 자신을 낮추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사상 속에는 그들이 통제당해 죄를 범하고 있으며 그들은 무지한 가운데 자신을 소멸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범죄를 저지해야 하고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 하며 구할 수 없어도 그들이 죄를 범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고 그들이 개정한 뒤 암암리에 죄를 정하는 박해를 하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매 하나의 박해 사건 사례는 기본적으로 모두 개정의 형식으로 가고 있으며 암암리에 어떻게 죄를 정하는가를 논의하며 이 부분도 우리의 돌파가 필요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사악한 정치 망나니 집단은 대법제자들에게 무슨 법률을 말한 적도 전혀 없는 것”(정진요지3-정념으로 문제를 보자)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악은 이렇게 날뛰며 무법천지입니다. 하지만 기왕 사악이 반드시 허울좋게 개정하려 하므로 우리 대법제자는 곧 사악을 물리치고 올바름을 받들어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일으켜야 하고 법정에서 주역을 잘 해내고 대법에서 수련해낸 지혜와 능력을 운용해 이런 건성으로 하려는 밀실공작을 해체해야 합니다.
—‘사악한 법정에서 건성으로 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이 갈등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저를 수련에서 일에 부딪히면 늘 상대방의 안색을 살폈고 주견이 없었으며 강한 사람을 만나면 종종 상대방을 따르면서 자신의 정념적인 주견이 없었던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사람과 다투고 싶어 하지 않고 갈등을 빚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배후는 정과 체면 및 명을 구하는 마음이었고 속인의 삶, 업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때때로 오로지 순종하는 것으로 표현될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견해를 감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표현하려 하지 않았고 감히 원칙을 견지하지 못했으며 수시로 변했습니다. 이것 역시 진실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주이스(主意識)가 강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처신하는 사람 됨됨이가 진실하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찾자 마음이 단번에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밖에 일에 부딪히면 정념적인 주견으로 일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마치 자신이 정말 다른 사람보다 한 수 아래인 것 같아서 자신을 얕잡아봤습니다.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중하게 보았기 때문에 비로소 열등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100개의 USB가 주는 사람 마음을 없애는 기회’

이렇게 한번 찾다 보니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딸에 대한 정, 원망하는 마음, 쟁투하는 마음, 위사위아의 마음이 전부 남김없이 폭로되어 나와 부끄럽고 송구했습니다. 왜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이런 마음이 곧 올라오는 걸까요? 자신을 돌이켜보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 수련생 사이, 속인사이에서와 같은 평소 일부 사소한 일들에서 제때에 이런 마음을 닦아 없애지 않아 그것을 자양시켜서 문제에 부딪히면 그것들이 이처럼 강렬하게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저는 늘 수련생에게 물어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깨달았습니다. 왜 제게는 자비심이 없을까요? 왜 저는 자비심이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걸까요?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지 않으면 가서 쟁투하게 되고 쟁투심을 없애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쟁투하게 되어 선이 없습니다. 선이 없으면 또 어떻게 자비심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몇 가지 마음을 닦아 없애면 위사위아하는 마음도 곧 해체되어 마음도 평안하고 평온해집니다.
—‘가정에서 원망하는 마음과 쟁투심을 닦아 없애다’

1011 한글명혜주간 제754호 【수련교류】 2021-01-20
1005 한글명혜주간 제753호 【수련교류】 2021-01-12
1001 한글명혜주간 제752호 【수련교류】 2021-01-04
998 밍후이왕 제17회 대륙법회 특간(5) 2020-12-29
997 한글명혜주간 제751호 【수련교류】 2020-12-29
996 밍후이왕 제17회 대륙법회 특 간(4) 2020-12-22
995 한글명혜주간 제750호 【수련교류】 2020-12-22
985 밍후이왕 제17회 대륙법회 특 간(3) 2020-12-15
984 한글명혜주간 제749호 【수련교류】 2020-12-15
983 밍후이왕 제17회 대륙법회 특 간(2) 2020-12-09
982 한글명혜주간 제748호 【수련교류】 2020-12-09
981 밍후이왕 제17회 대륙법회 특 간(1) 2020-12-01
980 한글명혜주간 제747호 【수련교류】 2020-12-01
979 한글명혜주간 제746호 【수련교류】 2020-11-24
978 한글명혜주간 제745호 【수련교류】 2020-11-17
12345678910
ⓒ 2007-2011 명혜라디오 한글판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