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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사이】참을 ‘인(忍)’에 관한 중국과 서양의 이야기  
   2021-02-23 01:16:46 | 조회 : 363
참을 ‘인(忍)’에 관한 중국과 서양의 이야기


글/ 간루(甘露)

[밍후이왕]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의 영웅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생활하는데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태양신 아폴로의 불씨를 훔쳐 인류에게 주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문화를 준 은인이 되었으나, 그로 인하여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산 낭떠러지에 쇠사슬로 묶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바람을 맞고 햇볕에 쪼이며 독수리가 부리로 간을 쪼아 먹어서 극심한 고통을 매일 겪었습니다, 그 다음날 간이 다시 자라나면 독수리가 또다시 쪼아 먹었습니다. 수천 년 후 헤라클레스는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원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데, 그 죽음이 어느 때는 태산보다 더 무거운 것도 있고, 어느 때는 기러기 털보다 더 가벼운 것도 있다. 그것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의 부친 사마담은 죽기 전에 사마천에게 “천하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마천은 부친 생전에 다하지 못한 뜻을 이루기 위해 선친의 유지를 받들었습니다. 그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스런 궁형을 당하여 고자가 된 후에도 감옥에서 끝까지 역사책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에 남겼습니다.

사실 참을 ‘인(忍)’은 일종의 수양으로서 의미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참을 ’인(忍)’을 단지 참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방면으로써 참을 ‘인(忍)’에는 인내, 고난, 손해, 인식, 받아들임, 견딤, 책임, 성취를 포함합니다. 또한 귀하되 교만하지 말아야 하고, 전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현명하면서 겸손하고, 강직하면서 인내할 줄 압니다. 참을 ‘인(忍)’ 중에 버림이 있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롭고 타인을 배려하는 등등 여러 가지의 함의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세간에서 “한자 참을 인(忍)’자는 마음 심자 위에 칼(刀)이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에서는 마음에 칼을 하나 꽂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 아래에 있는 마음처럼 모순을 없애고 즉 인내함으로 모순을 없애는 것입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위험에 직면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때에 즉시 결단하여 적의 사기가 날카로울 때는 피하고 지혜로써 모순을 없애 정면충돌을 피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소모와 손실을 줄여 타인을 위하고 선한 마음으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참을 ‘인(忍)’이란, 마음속에 담아두고 울화가 치미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울화가 가슴에 차면 기가 통하지 않고 우울함이 쌓여 하나로 엉켜 간과 신장이 상하게 됩니다. 간이 상하면 쉽게 분노하고 신장이 상하면 지력이 낮아집니다. 지력이 낮아지면 말을 실수로 잘못 말하게 되고 말과 행동과 태도에 예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참을 ‘인(忍)’이란 마땅히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감당하여 풀어내는 것으로, 그래야만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과하지욕(胯下之辱)-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

중국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은 말했습니다. “필부가 치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 들고 몸을 던져 싸운다. (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鬥)” 이는 진정한 용감함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갑작스런 침해를 당했을 때 상대방과 쟁투하지 않고 인내하며 양보하여 모순을 해결해, 상대방에게 내려올 계단을 마련해 줍니다. 이유가 없는 모욕을 당하여도 담담하고 태연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서한의 개국 공신 한신(韓信)의 남다른 인내심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은 매우 감탄할 만합니다. 한신(韓信)은 탁월한 군사 전략과 용병술을 남겨 후세 병법가들이 우러러 사모하고 추앙하고 있습니다. (新唐人 ‘笑談風雲’ 제공)

한신은 소년 시절에 보검을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한신이 장터에서 걷고 있었을 때 한 젊은이가 대중 앞에서 그를 모욕하며 말했습니다. “네 놈이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 밤낮 허리에 칼은 차고 다니지만 사실 네 놈은 겁쟁이일 뿐이야.” “만약 네가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칼로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러나 죽기가 두렵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

한신은 젊은 사람을 한참 빤히 쳐다본 후에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 사이로 기어갔습니다.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모두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훗날 한신이 유방의 대장군이 되어 옛날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던 젊은이를 불러 군중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때 이 사람이 저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 저는 이 자를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를 죽이는 것은 명목이 없었기에 참아내어 오늘날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그때 일로 용서를 비니 한신은 그의 죄를 사면하고 작은 벼슬까지 주었습니다.

인내하고 양보하는 것은 약하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하고 양보하는 것은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피하고 서로 간에 화목을 위하여 인내하는 자의 드넓은 흉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는 불편한 섶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써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합니다. 와신상담에서 와신은 오나라 왕 부차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잔다는 것과 상담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에게 패배한 후에 수십 년 동안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매일 식사 전에 쓰디쓴 쓸개를 맛보았다는 것이 합쳐서 된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참을 인(忍)’은 하나의 견지와 하나의 책임감입니다.

기원전 498년,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파병하여 월(越)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월나라 왕 구천에게 패하였고 합려 또한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병상에 누운 합려는 죽기 전에 아들 ‘부차’를 불러 이 원수를 갚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부차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잠자리를 펴고 자며 복수를 준비했습니다. 2년 후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병력을 이끌고 월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월나라 왕 구천을 오나라로 압송하여 오나라 왕의 노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나라 왕이 병이 들자 구천이 자발적으로 오나라 왕의 똥을 맛보더니 만면에 희색이 감돌면서 오나라 왕 부차를 축하하며 말했습니다. “똥의 색깔과 맛으로 판단할 때 전하의 몸은 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치료하셔도 좋습니다.”

3년 후 오나라 왕 부차는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오나라에서처럼 더욱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관원들을 위안하며 병졸들을 훈련했습니다.

구천은 한편 복수를 위하여 자신의 침소에 쓰디쓴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자주 쓸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식사하기 전에도 먼저 쓸개를 맛보았습니다.

월나라 왕 구천이 22년 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후에 오나라를 평정한 후 으뜸가는 왕(霸主)이 되었습니다. 구천은 또한 오나라가 점령한 땅을 초(楚)나라, 송(宋)나라, 노(魯)나라에 돌려주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위대한 일이나 업적을 이룬 사람은 모두 일반 사람과 같지 않은 의지력과 반석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무목양(蘇武牧羊)-소무가 양을 치다

**소무(蘇武)는 중국(中國) 전한(前漢) 시대의 충신(忠臣)이며 자는 자경입니다. 한 무제 때 흉노(匈奴)의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억류(抑留)된 지 19년 만에 귀국(歸國)했는데 절개(節槪ㆍ節介)를 굳게 지킨 공으로 전속국에 임명(任命)되었습니다.**

기원 100년 전 흉노족이 한(漢)나라에 호의를 보이며 이전의 교우관계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한 무제는 즉시 소무(蘇武)에게 100여 명을 인솔케 하여 흉노에 사신으로 파견해 흉노족의 군장 선우(單于)에게 답례 하였습니다.

소무 일행이 한나라로 돌아가려 할 때 흉노에서 내란이 있었습니다. 소무 일행이 흉노에 구금된 후, 흉노에 귀순할 것을 요구 당했습니다. 흉노족의 군장 선우는 먼저 위율(衛律)을 파견해 금전과 관직으로 소무를 설득했지만, 소무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선우는 명령을 내려 소무를 물과 식량이 끊긴 노천 땅굴에 가두었습니다. 소무는 땅굴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이 마르면 눈을 먹어 갈증을 풀고 배고프면 몸에 입은 양가죽 옷을 먹었습니다. 선우는 소무의 의지가 강한 것을 보고 소무의 절개에 탄복하여 차마 그를 죽이지는 못했으며, 또한 그를 한나라로 돌려보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뭇가지에서 어린잎이 새로 돋아났지만, 한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여전히 기약 없이 막연했습니다. 소무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을 느껴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무가 손을 들어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자 양 한 마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소무에게 매매하고 울었는데 마치 그를 위로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선우는 소무에게 북해 일대에 가서 양을 방목하게 하였는데 양이 새끼를 낳아야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소무는 유배지에 도착한 후에야 양이 모두 숫양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매일 한나라 조정의 사신을 상징하는 부절(符節)을 걸고 양을 방목했습니다.

19년 후, 한나라 사신이 소무의 동료를 통해서 그의 상황을 알아채고 그를 북해에서 장안(長安)으로 모셔왔습니다.

소무가 출발했을 때는 한창 장년이었는데 돌아왔을 때는 이미 머리가 온통 백발이 되었습니다. 소무는 흉노에 사신으로 떠날 때 시를 지어 아내에게 이별 인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떠나는 곳이 전쟁터이니 만날 날 기약이 없어라. 살면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죽으면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이네(行役在戰場,相見未有期。生當復來歸,死當長相思)”

고대 사람들은 이익 때문에 임금을 배신한 사람을 ‘역모’한다고 여겼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해 절개와 의리를 포기한 사람은 ‘반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무가 행한 참을‘인(忍)’은 한나라에 대한 충심이었습니다. 정의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고생으로써 인내하고 금전과 관직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꽃이 피고 꽃이 지며 흑발이 백발이 되어도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원문발표: 2020년 12월 19일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20/12/19/4167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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