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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녜위안쯔 등 홍위병들의 운명을 아십니까?  
   2021-04-19 22:01:23 | 조회 : 84
녜위안쯔 등 홍위병들의 운명을 아십니까?

글/ 옌즈(顏智)

[밍후이왕] 55년 전 ‘문화대혁명’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중공의 성역으로 남아있어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진상을 모르면 역사가 남긴 죄악과 부패한 사상은 결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 진상을 아는 사람에게는 ‘국제 인터내셔널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라는 것이 더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목표가 아니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은 문화대혁명 때 신문, 방송에서 주목받았던 녜위안쯔(聶元梓), 탄허우란(譚厚蘭) 등 5대 홍위병 ‘반역파’ 우두머리였던 5명의 청년을 기억할 것이다.

첫 대자보에 ‘취푸(曲阜) 공자묘를 박살내자’ 등이 나붙었다. 이런 광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은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다. 이런 대자보를 쓴 홍위병 우두머리들의 결말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상당수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은 이전에 ‘당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기에 선봉에 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문화대혁명이 지나간 후 중공에 의해 문화대혁명 동란의 ‘희생양’이 됐다, 5대 홍위병 우두머리들은 모두 ‘반혁명죄’로 9~17년 사이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이런 소식은 중국 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천백만 홍위병의 운명은 또 어떠한가?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8차례 접견한 후

1966년 8월 18일, 천안문 광장은 들끓었다. 백만 명이 참가한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렸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첫 홍위병 접견은 곧 국내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후 홍위병은 미친 듯이 전국에서 때리고, 부수고, 빼앗았다. 홍위병의 ‘반란에 이유가 있다(造反有理)’의 불길은 중난하이(中南海)까지 옮겨붙었다. 비판투쟁을 하는 간부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져 중공은 다급해졌다.

1966년 11월 11일, 마오쩌둥은 7차례 홍위병을 접견했다. 이번 접견이 끝난 뒤 마오쩌둥은 조급해하며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이미 몇 차례 홍위병들을 접견했는데 왜 베이징에 이렇게 많은 홍위병이 또 접견하려고 하는가?”라고 묻자 저우언라이는 “당신이 만나주지 않으면 그들은 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오쩌둥이 8차례 홍위병을 접견한 후 중공 중앙은 초안을 작성해 앞으로 접견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

이어서 연루된 1000만여 청년의 ‘상산하향(上山下鄉, 도시의 청년을 농촌과 산간벽지로 보낸 운동)’이 시작됐다. 마오쩌둥은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가서 ‘빈하중농(貧下中農)’ 재교육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실종자의 발자취-문화대혁명 기간의 청년 사조(失蹤者的足跡——文化大革命期間的青年思潮)‘를 저술한 베이징대 인훙뱌오(印紅標) 교수는 “그들의 임무가 끝난 뒤 마오쩌둥은 새로 배치한 반란파가 지휘를 잘 듣지 않을 때 그들을 포기했다.”라며 “그들은 모두 뒤늦게 혹은 일찍이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위병 시대에 가장 큰 충격은 1971년 린뱌오(林彪) 사건이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주요 추진자 중 한 사람인 그가 어떻게 갑자기 반당(反黨)집단이 되었고, 또 쿠데타 미수에 그친 그가 죄가 두려워 도망치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서 떨어져 죽었을까?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린뱌오의 범행을 규탄하기 위해 중앙에서 하달한 비판문건에서는 그가 이전에 상산하향을 비방한 것이 형태를 바꾼 노동개조라고 했다. ‘형태를 바꾼 노동개조’란 말이 지식청년들 사이에 퍼지면서 그들은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은 듯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나?”

2012년, 중공은 전례 없는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자 세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댜오위다오(釣魚島)’ 반일 사건을 서슴지 않고 일으켰다. 중공이 통제하는 ‘댜오위다오 보호행동위원회’ 사람들이 상륙을 강행, 자발적으로 일본 측의 경계를 유발했다. 이로 인해 국내 여러 도시에서 시위하면서 닛산 자동차를 부수는 등 악성 사건이 발생했다.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 홈페이지에 발표된 한 사설은 “조국이 모멸당했을 때 솟구치는 애국심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국이 도발당했을 때 동포들의 분노와 항쟁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 베이징 안자러우(安家樓)로 일본 대사관 시위에 참여한 한 사람은 “이 시위대는 분명 당국이 조직한 것이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 입구에 들어서면 무료로 생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경계선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두 회수했다. 미리 출력해 놓은 구호가 있었고, 스피커를 들고 구호를 선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100명 정도가 네 줄로 나뉘어 1개 팀을 이루고, 경찰 감시 아래 한 팀씩 구호를 외친 다음 해산하고, 또 다음 팀에 따라붙었다. 수백 명의 경찰이 있었고, 베이징의 유일한 경찰 헬리콥터가 상공을 돌고 있었다.”라고 했다.

한 언론인은 “갑자기 집회가 더는 불법이 아니었고, 부수고 약탈하는 것도 더는 위법이 아니었다. 대중이 더는 진실을 알 수 없었고, 많은 사람이 안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크게 웃었고, 홍위병들을 불러내기란 이처럼 쉽군요!”라고 했다.

‘남방주말(南方周末)’ 베이징 뉴스센터 책임자는 그날 저녁 뉴스에서 “정부 측의 통제력을 말하면 535, 재스민을 대처하던 대규모 경찰 병력으로 오늘의 거리 운동을 통제하지 못할 리가 없다!”라고 했다.

민중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이번 행동은 중공이 조직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사복 차림의 군인 경찰이 무리 선두에서 앞장섰고, 심지어 때려 부수는 행위도 중공 당국의 경찰조직이었다는 것을 많은 민중이 발견했다. 시안(西安)에서 앞장서 부순 두목은 파출소 소장이고, 인터넷에서 활동한 인사 중 한 명은 공안국 국장으로 알려졌다. 허베이 창저우(滄州) 시위대 선두에 있는 승용차에서 중공의 혈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친 사람은 현지 교통경찰 대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둥 웨이하이(威海) 공안국 국장이 앞장서서 자스코(일본회사, 마트) 시위에서 댜오위다오를 지키자는 소식이 인터넷에 폭로되자 바로 삭제됐다.”

나라를 중시하지 않는데 애국을 논할 수 있는가?

공산당원이 나라를 사랑할까?

공산당을 발기한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동집필 ‘공산당 선언’은 시작 페이지에 “전 세계 무산자여, 단결하라!”라고 공언했다. 본문에서도 ‘국가’라는 개념을 심각하게 비판하면서 국가를 해체하고 멸망시키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은 조국이 없다’라는 이 유명한 언사는 공산주의 운동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안다. 그렇다면 조국을 중시하지 않는 자들이 무슨 애국을 말할 수 있겠는가?

소련 공산당 시기에 레닌은 애국주의를 ‘파기(破旗, 시대에 뒤떨어진 슬로건을 뜻함)’라고 불렀다. 그는 “한 나라의 정치·경제에 중대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애국주의의 파기가 악취를 풍긴다,”라고 말했다.

공산당에게 ‘애국’은 국민을 현혹하는 여러 가지 겉치레에 불과하다. 조국이 없는 공산당은 애국을 말하지 않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제 인터내셔널을 꼭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글로벌화, 글로벌 통제, 전 인류를 통제하는 것이다!

중공에 이르러 샤오펀훙(小粉紅, 맹목적 애국주의 네티즌)들은 반(反)NBA 곡이 아직 끝나지 않아 사람들이 흩어지지도 않았는데, 중앙TV는 이미 NBA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중공의 선전으로 신장(新疆) 지역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외자기업이 제재 대상에 오르자, 얼마 되지 않아 나이키 신형 스포츠화 구입 열풍이 흐지부지됐다.

한 네티즌은 중공에 대해 “외국업체 매장을 부숴버리고 약탈하면 ‘애국자’라 하고, 정부를 공격하면 ‘폭도’라 한다.”라고 풍자했다.

맺음말

그렇다면 애국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임금은 가볍다(民爲貴,社稷次之,君爲輕)”라고 천명한다. 아인슈타인도 “국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심 없이 국가를 스스로 설 수 있게 하는 도덕 이념을 지키고, 국민의 복지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다.

그해 상당수 ‘홍위병 소장(小將)’들은 공산당에 속고, 이용당하고, 버림받아 희생양이 됐고, 애국심은 중공에 의해 농락당했다. 오늘날 3억 7500만 명이 중공과 그에 부속된 당단(黨團) 조직에서 탈퇴 성명을 했고, 민중 특히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잔혹한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는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다.

민심이 깨어나고 있다. 당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듯,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우주의 진리는 봄볕처럼 대지를 비춰 만물이 소생하고 새롭게 태어나도록 보호하고 있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4/2/4228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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