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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67호 【수련교류】  
   2021-04-20 20:27:18 | 조회 : 854

한글판 제767호



수련교류

원망은 자기 수련과 사람 구하는 데 어려움을 더한다 
착실히 수련해야만 제고할 수 있다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생각 
표상에 이끌리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마음이 변해야 진수(眞修)하는 것이다
딸과 함께 대법을 수련하고 심성을 지키다 
왜 눈이 잘 보이지 않을까 
공능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에 관한 몇 가지 깨달음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원망은 자기 수련과 사람 구하는 데 어려움을 더한다
밍후이 교류 문장을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제 밍후이 교류 문장 ‘모세 이야기가 나에게 준 계시’를 읽고 나서, 사부님께서 고생스럽게 만드신 5천 년 신전(神傳)문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

나는 전에 사부님께서 만드신 5천 년 전통문화는 사부님께서 대법을 전하시기 위해 사람들이 대법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하는 바탕이 되는 문화를 만드셨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부님께서 만드신 5천 년 신전문화에는 대법제자들의 정법수련을 지도하는 높고 심오한 함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신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인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라고 하자, 모세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 신에 대한 불신(不信)이었다. 몇 가지 신적(神跡)이 드러난 후, 모세는 신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인을 데리고 이집트에서 떠났지만, 사람들은 생각했던 어려움에 부딪혔고, 이스라엘인은 신에 대해 원망을 품기 시작했다. 신에 대한 원망,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인들이 본래 11일이었던 노정을 40년 동안 걷게 된 원인인데, 겪지 말았어야 할 많은 시련이 닥쳤다.

이 ‘11’을 보면서 다른 또 하나의 ‘11’이 생각났다. ‘서유기’에서 당승은 천신만고, 구구팔십일 차례 마난(魔難)을 겪으면서도 전혀 불경을 구하려는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부처를 원망한 적이 없었는데, 결국 부처의 안배에 따라 11년에 걸쳐 진경(眞經)을 얻어, 중원 대지에 불법(佛法)을 널리 알렸으며, 오늘날 대법을 널리 알리는 데 기반이 되는 문화를 마련했다. 만약 당승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원망이 생기면, 아마 걷는 길은 11년 만이 아니었을 수 있고,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후 결과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의아해하는 수련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수련생은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대한 사고(思考)와 예언’이라는 교류문장이 올라오자, 더 많은 수련생이 사람 마음을 움직여 원망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인 안으로 찾는 것을 잊어버렸다. 자기에게 존재하는 ‘사(私)와 나’의 불순한 요소를 깨닫지 못했을뿐더러, 우리에게 존재하는 ‘사와 나’가 오늘날 이러한 세간의 환경을 초래했고, 사부님의 정법이 추진되는 것을 가로막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성취하고 더 많은 중생들을 구도하시기 위해, 더 크신 감당으로 장계취계(將計就計) 하시면서 대법제자들이 제고할 시간을 안배하셨다. 이러한 문제의 실질을 대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표면만 보면서 사람 마음으로 원망하며, 심지어 사부님을 의심하다니 참으로 부당하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제자로서 정진하지 못해 초래한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사부님을 원망하고 의심한다면, 정법수련의 시간이 길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점오(點悟)해 주시고 가지(加持)해주셔서 내가 쓴 교류 문장이 밍후이왕에 발표됐는데, 나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장 속의 바르지 않은 많은 부분을 편집하는 수련생이 바로잡은 것을 보고 아주 부끄러웠다. 그날 밤 꿈에 내가 일부 사람들과 함께 연단로(煉丹爐) 같은 거대한 항아리 밑부분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주 높은 항아리 입구에는 거대한 신 같은 모습을 한 네 생명체가 항아리 속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때 한동안 참고 견디면 모두 나갈 수 있다는 일념이 생겼다.

이때 안에 있는 일부 사람이 왜 이렇게 덥냐며 원망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시원한 바람이 내게 불어와 나는 전혀 덥지 않게 느꼈다. 머리를 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어딘지 찾아봤더니, 항아리 밖의 푸른 하늘에 보살 모습의 생명체가 있었는데 옆에 동자 두 명을 두고 있었다. 그 생명은 손에 작은 거울 같은 직사각형 기물을 들고 있었는데, 그 면에서 하늘색 빛이 나왔다. 시원한 바람은 바로 그 거울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즉시 두 손으로 허스(合十)하여 감사를 표했다! 나는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쪽에 오면 시원하니 오라고 했다!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이때 한 사람이 원망하며 욕설을 했는데 일부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그때 보살 모습 생명의 손에 작은 거울 같은 기물이 추가로 생긴 것이 보였는데, 그 기물은 면이 하늘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욕한 사람과 맞장구친 사람에게 그 기물을 비추자 그들은 더워서 뒹굴면서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이때 나는 그들에게 “금방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거예요. 빨리 잘못을 시인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사부님 설법 한 소절을 찾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세력(舊勢力)의 말로 하자면, 중국 그 지역은 매우 많은 고층 생명들이 집중되었고, 심지어 더욱 높은 고층 생명이 모두 그곳에서 법을 얻는다. 그렇다면 그 지역은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 그 연단로(煉丹爐)처럼, 그 불은 반드시 맹렬히 타올라야 하고 왕성하게 타올라야 한다. 정말로 사나운 불길의 고험 아래서 걸어 지나올 수 있고 이 엄혹한 박해 중에서 당신이 그래도 견지해 나갈 수 있으면 당신은 바로 수련자이며 천상에서 당신을 승인하고 당신은 원만(圓滿) 할 수 있다. 걸어 지나오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곧 이런 목적인데, 바로 제련이다. 그것은 바로 그 찌꺼기를 제거하고 진짜 금을 제련해 내는 것이다.”[1]

나는 구세력이 안배한 박해는 대법제자들을 연단로에서 제련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자신의 ‘사와 나’의 불순한 요소를 제거한다면, 구세력이 안배한 박해는 당신과 관계가 없어진다. 만약 이러한 요소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의 안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만약 사부님과 대법을 원망하거나, 의심하거나 흔들리면 심한 박해를 당할 것이고, 박해당하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사실 원망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사와 나’에서 오며, 본성이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대법의 입자인데 원망이 가능하겠는가? 나는 또 깨달았다. 현재 수련에서나 사람을 구할 때 마주친 문제는 모두 법리에 대한 인식이 올라오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법에서 좋은 인식이 있는 수련생은 마땅히 법리 방면에서의 교류 문장을 많이 써야 한다. 좋은 교류 문장은 수련생의 제고를 돕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매일 비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수련생들에 대해 나는 정말 감탄하게 된다. 사실 이런 수련생의 경지는 구세력의 연단로에 포함되지 않으며, 박해라는 것은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 아직도 일부 수련생은 오늘날의 사람은 구하기 어렵고, 환경도 예전처럼 여의치 않다고 원망한다! 그러나 나는 대법제자의 수련 경지가 올라오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며, 근본적으로 ‘사와 나’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깨달았다. 오늘날 세인들이 구원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그 사람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들인데, 이러한 사악한 요소가 존재하는 심층 원인은 아직 법에 의해 바로잡히지 못한 낡은 우주의 고층 생명이 있어서다. 그것들이 저층차의 구세력의 안배를 이용해 오늘날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제자에게 ‘수련환경’을 제공하게 했고, 대법제자들로 하여금 그것들이 제공한 ‘수련환경’에서 수련 성취하게 하려 했으며, 그것들이 인정하는 표준에 도달해야만 대법제자들이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그제야 대법제자를 인정하고 지나가는 것을 허용한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대법제자가 버리지 못한 ‘사와 나’의 요소가 그들에게 이용당해, 이것을 핑계로 세인들이 구원되지 못하게 안배했다.

4년 전쯤 우리 지역 수련생 몇 명은 운전해서 시골 장터를 방문해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장터에 도착한 다음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서, 나와 한 수련생은 북쪽 절반을, 나머지 수련생들은 남쪽 절반을 맡기로 했다. 나와 그 수련생은 당시 마음이 깨끗했고 자아에 대한 생각이 없이 그저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배포할 곳에 이르렀더니 상서로운 장에 휩싸인 느낌을 받았는데, 몸이 아주 가뿐하고 마치 우리가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장터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우리를 맞이하고 오랜 친구처럼 먼저 인사를 했다. 우리가 진상 자료를 그들에게 건네주자, 모두 아주 즐거워했고, 어떤 사람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으며, 사람마다 희색이 만연했다! 마치 우리가 함께 성대한 명절을 지내는 것 같았다. 자료를 다 배포하고 나서 남쪽으로 가 다른 수련생들을 찾았다. 이때 우리는 좀 전에 장터 북쪽에서 몇 분 만에 자료를 배포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다른 공간에서 걸어 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수련생 몇 명이 아직 자료를 다 배포하지 못했고 “자료가 잘 안 나가요!”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장터 남쪽은 상서로운 장이 없는 느낌이었고 세인들이 모두 무감각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련생들은 예전에 우리가 자료를 빨리 배포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고 비교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환경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문제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고, 대법의 표준에 이르지 못해 수련 경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사와 나’를 내려놓는다면 모든 바른 생명이 대법제자들을 도와줄 것인데, 사람 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수련이 경지에 이르지 못해 구세력의 안배에 끌려든 것이며, 올바른 생명들이 우리를 도와줄 수 없어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현상이 생긴 것이다. 수련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하며,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올해의 션윈 공연에서 대법의 원용(圓容)한 지혜와 생명에 대한 자비로운 구도가 표현된 것을 보았다. 특히 첫 번째 성악곡 ‘실패하지 마세요(不要失敗)’에서는 창세주께서 제자들과 오늘날 법을 얻으러 온 세인들을 무량하고 자비롭게 구도하신다는 것이 체현된 것을 느꼈는데, 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곡이 내 생명 가장 깊은 곳까지 울렸다. 또 하나 가장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사부님께서 생명을 대하시는 것은 내가 예전에 생명에 대해 인식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인데, 나는 내가 이기적이고 자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늘 어떤 생명은 구도될 자격이 없고, 어떤 생명은 도태돼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체 공연에서 한 생명에게 한 가닥의 선(善)한 생각이라도 남아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그 생명을 자비롭게 구도하시고 원용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전체 공연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러한 함의가 내포돼있다고 느꼈고, ‘훼멸’과 ‘도태’란 없었다.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러 왔는데, 만약 우리가 마음에 훼멸과 도태를 품고 있다면 어떻게 중생을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음에 ‘훼멸’과 ‘도태’가 없이 구도만 있어야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구도(救度) 때문이지, 훼멸과 도태가 아니다.

더는 원망하거나 의혹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수련과 사람 구하는 어려움만 크게 한다. 정법수련 시간이 거듭 연장되는 것은 우리의 수련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인데, 우리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지 사부님에게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된다! 시간을 거듭 연장하시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들을 성취시키시고, 미래를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이다! 제자로서 더욱 소중히 해야 하고,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 약간의 개인 인식으로, 대법에 부합되지 않거나 원용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고 원용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착실히 수련해야만 제고할 수 있다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적지 않은 해외수련생이 안을 향해 찾거나 자신을 수련할 줄 몰라 장기간 한 층차에 멈춰 있어 각종 마난(魔難)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발견했다.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수련하여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믿음을 잃었다. 이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1강의 앞 두 소제목 “진정하게 고층차(高層次)로 사람을 이끌다”,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에서 이미 명시하셨다.

내 층차에서 인식하기로는, 사부님께서 첫 시작부터 이 두 소제목에서 이미 천기를 제자에게 명시해주셨다. 즉, 일단 수련을 시작하기만 하면 우리를 이끌고 끊임없이 고층차로 올라가시며, 사람에서부터 부동한 경지의 신, 즉 부동한 층차의 신이 마땅히 알아야 할 천기와 법리를 끊임없이 명시해주신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착실한 수련을 견지할 수 없고, 부딪힌 모순과 마난을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하고 업력을 없애며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고 신과 더 높은 신을 향해 가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없다면, 우리는 장기간 사람의 경지 혹은 그중 한 층 수련의 경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로써 업력은 산처럼 쌓여 최후에는 심지어 마난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이것은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은 결과이다.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착실히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개시해주시는 각 층의 천기와 법리를 볼 수 없고,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고층차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없다. 이로써 법을 볼 때, 끊임없이 경지를 제고한 후 법이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부동한 층차의 법리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법에 대한 미혹이 생기고 심지어는 믿음을 잃는다.

일부 해외 대법제자는 심지어 중국처럼 고험을 진행할 엄혹한 박해 환경이 없어 자신이 높이 수련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심지어는 자신의 근기가 안 좋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는 완전히 대법 수련에 대한 오해이다.

사부님께서는 못 하는 일이 없으시고, 대법의 법력은 끝이 없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수련할 수 있고, 당신의 신분 고저, 학력 수준도 보지 않고, 직위가 어떻든 박해를 당한 경험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신이 모순을 당당하게 대면하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만 본다. 사람 마음을 감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누구도 차별 없이 대하신다. 대법 중에서 수련하면 층차의 승화는 비약적으로 빠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석가모니 부처를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 “그는 49년간 내내 법을 전하는 중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提高)했다. 그가 매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돌이켜보면 방금 자신이 말한 법이 모두 맞지 않았다. 다시 제고한 후에 그는 말한 법이 또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가 또 제고한 다음에, 그는 방금 말한 법이 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49년간 내내, 그는 모두 이렇게 끊임없이 승화했으며, 매 층차를 제고한 뒤마다, 그가 이전에 말한 법이 모두 인식상에서 매우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1] 나는 이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내가 수년간 수련하면서 경험한 진실한 체험이기도 하다. 많은 대법제자도 이런 절실한 체험을 했을 것으로 보는데, 법리는 우리의 착실한 수련에 따라 끊임없이 승화하여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수련됨이 빠르게 된다.

내 주위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작년에 그녀가 가정의 모순에서 엄격하게 안을 향해 찾고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제거함으로써 법리가 끊임없이 그녀에게 펼쳐지는 것을 훤히 지켜보았다. 매 차례 마난과 모순에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쁘든지 그녀는 자신의 안을 향해 찾았다. 그녀는 나에게 안을 향해 찾고 착실히 수련하는 천기를 겨우 알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는데, 원래 법리는 파헤쳐내는 것이 아니라 착실히 수련하고 사람 마음을 제거한 후에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펼쳐 보여주신 것이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머리를 짜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거라고 했다.

예전에 그녀가 각 지역 설법을 볼 때는 착실한 수련을 하지 않아도 새로운 법리, 더 높은 천기를 볼 수 있을 거로 여겼고, 완전히 호기심, 사람 마음으로 신이어야만 알 수 있는 내포를 얻고자 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얼굴이 다 빨개진다고 했다.

이번의 착실한 수련을 경험하고서 그녀는 몇 번이나 격동되어 내게 자신이 수련에 흠뻑 빠졌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겨우 안을 향해 사람 마음을 찾아내고 덮어 감추지 않고 남편과 아이를 원망하지 않으며, 안을 향해 찾는 법리에 따라 진심으로 행했을 뿐인데도, 사부님께서 그녀가 법을 보기만 하면 즉시 새로운 법리를 펼쳐주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때로는 책 전체 내용이 새것과 같다고 했다. 점오의 과정이 그녀에게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여러 번 내게 “저는 마침내 알았어요. 어디에서든 수련할 수 있고 수련 성취할 수 있어요.”

법리의 승화로 그녀는 밍후이 문장에 있는 많은 중국 내의 수련생의 마난이 왜 생겼고, 박해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지를 알게 되었으며, 자신이 문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승화하고 내심에서 신의 상태가 갈수록 뚜렷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수련을 20여 년간 했지만, 이 2년만 수련을 제대로 한 거로 칠 수 있고, 헛되이 10여 년을 낭비해 너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부님께서 아직 자기에게 기회를 주시고, 모든 제자를 위해 종결 시간을 연장해주시고, 사람에게서 걸어 나와 신을 향해 가도록 우리 모두를 기다려주고 계심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매 1분 1초라도 수련하는 시간을 진귀하게 여겨야 사부님의 고심한 기다림과 보살핌에 면목이 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수련해오면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무슨 큰일도 없었고, 신분은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일 뿐이다. 편집 일을 하는 외에 대부분은 생활 속 작은 일로 자신을 닦는다. 비록 이렇지만, 사부님께서는 마찬가지로 내가 매번 엄격하게 안을 향해 찾을 때면 즉시 업력을 제거하고 층차를 제고해 주시며, 신의 기적과 고층의 법리를 펼쳐 보여주신다. 그 수련생이 말한 책 전체 내용이 전부 달라졌다는 느낌은 나도 최근에 항상 경험하고 갈수록 뚜렷해지는데, 대법의 위대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보자. 딸은 이미 성인이 되어 나에게 자기의 사적인 일에 많이 간섭 못 하게 하는데, 현대의 관념과 법률은 바로 이러한 것으로, 나도 딸을 존중할 뿐이다. 하지만 엄마로서 딸에 대한 정이 있기에 혹시나 부도덕한 남자친구를 사귈까 봐 걱정했다. 물론,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하루는 딸이 아주 단정하게 차려입고는 나에게 인사도 없이 외출했다. 내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다. 어떤 남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건가? 그 사람이 딸을 속이면 어쩌지? 왜냐하면, 딸은 수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의 두려움이 나오기 시작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며, 이는 사람 마음이고 딸에 대한 정을 닦아 없애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줄곧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도 끊임없이 이 두려움을 멸(滅)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나에 대한 사부님의 표준이 이미 변했고, 늘 이렇게 해서는 소용이 없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이번에 나는 이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리를 명백히 알게끔 해주셨지 않은가?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는 것으로 모두 잘 정해졌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알려줄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것을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과거의 수련 경험과 방법인데, 여전히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수련생의 전화로 점화를 주셨다. 나는 수련생에게 걱정하는 마음의 과정과 어떻게 수련했는지 그 과정을 말했다. 나는 내가 제때 안을 향해 찾아 두려움을 닦은 것을 수련생이 칭찬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한마디로 내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 “당신은 제고해야 해요. 늘 원래의 수련 방법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돼요. 당신은 당신의 두려움을 달래주고 있잖아요. 당신의 두려움이 사부님의 법리를 찾아 그것을 달래고 있잖아요. 그건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당신의 두려움을 항상 제거해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당신은 아직도 그것을 자기 자신과 떼어놓지 않았네요.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을 닦으면, 두려움을 영원히 뿌리째 제거할 수 없어요. 당신의 진정한 생명은 신이에요. 두려움은 절대 존재하지 않지요. 이 두려움은 당신이 아니에요. 이 두려운 감각은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가짜 자아이지요. 한 층의 신체가 당신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니 어서 그것을 떼어내요. 그래야 사부님께서도 당신을 도와 그것을 제거해주실 수 있어요.”

나는 이 말에 크게 깨달았다. 원래 그런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통해 점화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이와 동시에 내 몸은 가벼워졌는데, 내 신체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꼈고, 그 후로 법공부의 내포가 전부 달라졌으며, 모든 마음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완전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층차의 승화를 실재적으로 체험했다. 알고 보니 모든 정서의 감각은 내가 아니었다. 과거에 사람 마음으로 보던 것과는 달라졌으며, 사람 층차의 것이 매우 뚜렷하게 보였고, 더는 그것에 쉽게 이끌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나를 이 인식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시고, 또 본래 모든 사람 마음, 가짜 자아의 형성이 모두 구세력의 배치이고, 생생세세의 배치 중에서 쌓아 온 것이며, 완전히 구세력이 가강한 것임을 빠르게 발견하도록 해주셨다. 어떤 하나의 마음이든 배치가 아닌 것이 없는데, 언제 어떤 마음이 나올지는 모두 구세력이 원래부터 설계해놓은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도 진짜 자신이 없었으며, 인체 자체에 있는 집착심, 각종 부정적인 정서부터 외래의 교란까지 모두 자신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작은 일을 통해 안을 향해 찾아 명백해진 것이다. 즉, 이때부터 집착심에 대해 나의 이해는 더욱 명확해졌고,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에 대해 더 명백히 알게 되었다.

안을 향해 찾으니 어느 때든 어디서든 제고할 수 있었고, 법리는 따라서 승화되었다. 이후로 나는 이런 사람 마음을 매우 견결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타나기만 하면 즉시 명백해졌다. 이것은 나의 사람 마음이 아니라 구세력이 내 육체에 배치한 것으로, 나에게 이것을 느끼고 승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곧 그것이 더 심해지게 하여 미리 배치해놓은 난(難)을 내게 가중하려는 것이다.

그것들의 수법을 꿰뚫어 본 나는 견결하게 부정했다. ‘모든 사람 마음은 모두 내가 아니다. 기회를 틈타 나쁜 짓을 할 생각을 하지 마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착실히 수련하여 서서히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사람 마음의 느낌, 고통 등 감정을 모두 자신으로 여긴다면, 법리가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라고 알려주어도, 당신은 이런 설이 있다는 것만 알지 진실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층차는 한계가 있고, 매 사람이 제고하는 상태는 다를 수 있다. 나도 단지 작고 작은 예시만 들었을 뿐이고, 단지 나 개인의 길일뿐이다.

나는 고층의 법리는 착실히 수련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음을 몸소 체득했다.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람의 층차를 벗어날 수 없고, 사부님께서 펼쳐주시는 고층의 법리가 없이는 고층 법리의 가르침을 얻을 수도 없으며, 신을 향해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이다. 착실히 수련해야만 신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바짝 틀어쥐고 모순 속의 기회를 소중히 하여 서둘러 제고해 올라가자.

개인 층차에서 약간의 깨달음이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서: ‘전법륜’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생각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한 수련생이 병업 가상이 나타나 생활이 곤란해졌다. 나는 수련생을 돕는 동시에 나 자신이 걸어온 일부 생각의 여정을 되돌아보다가, 내가 때로는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고, 그 속의 강렬한 이기심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아주 괜찮고 법에 대해 견정하다고 여긴 것을 발견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중생을 구도하는 데 손실을 초래하고 자신에게는 번거로움을 가져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남편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강제적인 수단으로 수련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여러 번 이혼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때, 나는 늘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했는데, 당신이 이혼하려 하시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와 같은 말들을 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진실한 상태는, 정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기 싫었고, 그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로 두려웠다. 하지만 마치 대법에 대해 필사적이고 주저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는 그 정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어떻게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대법이 좋고 나를 수련 못 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으며, 어떻게 해야 착실히 수련하는 것이고 진수(眞修)인지는 오히려 몰랐다.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곤 전부 강경한 태도와 불복종의 쟁투심이었다. 수련을 위해서는 가정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하였기에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의 개인적인 수련상태로 말하자면, 위타(爲他)의 마음이 적고 위아(爲我)의 마음이 아주 강했다. 상대방이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에 영향을 주면, 어떻든지 간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두려움 없이 강경하게 맞섰지 정작 대법을 실증하거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가정과 수련환경을 소중히 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 나타나서는 안 되는 상황도 내 책임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늘 그렇게 대하면서도 자신이 아주 견정하다고 여겼다. 수련생과 이 얘기를 할 때도 당당하게 했고, 스스로 꽤 괜찮고 대법을 보호하는 마음이 견정하여 파괴할 수 없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은 조금도 좋지 않은데, 그때 생각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대법을 보호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보호한 것은 자신이었다. 사람과 다투고 싸우는 것이었지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도리를 말하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을 품고 빙산도 녹일 수 있는 마음으로 모순을 해소하거나, 원한 없이 따스한 태도로 가족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잘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는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참았다. 내가 잘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모순이 끊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마난이 닥쳤다. 관을 넘지 못할 때, 심지어 마음속으로 ‘떠들 테면 떠들어라. 내가 언제 잡혀가기라도 하면 당신 좋겠어.’ 하고 삐딱하게 생각했고, 이 나쁜 사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거나 부정하지 못했다. 훗날 심각한 남녀지정, 부부의 정, 일하는 마음 등등의 교란으로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이 따라가지 못하게 됐고, 일에 끌려다니고 정마(情魔)의 조종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사악이 틈을 타 불법으로 형을 선고당했다. 정말로 중생을 구도하는 데 손실을 주고, 자신의 수련에 오점을 남겼다.

마난을 겪고 난 후, 나는 대법의 지도하에 심성이 제고되어 걸어 지나왔다. 하지만 당시 법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심각하게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더는 예전처럼 강경한 마음가짐으로 모순을 대하지 않아도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 서서 문제를 잘 처리하여 많이 평화로워졌으며, 법 공부와 마음을 닦는 데 많은 공을 들여 안을 향해 찾을 줄 알게 되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로 갈수록 이성적으로 성숙해졌고, 가정환경도 갈수록 좋아졌다. 늘 평화로운 장 속에 감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수련생의 문제를 보기 전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속인적인 용기에 득의양양해 하며, 마치 자신이 대법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처럼 느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마땅히 인식을 제고해야 했고, 그해의 인식 상의 부족함을 바로잡아야 했다.

또한, 내가 불법감금 당해 아이의 학업에 영향을 준 문제로 남편이 나를 원망할 때도 나는 줄곧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매번 사당이 박해해서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남편은 이 일에 대해 줄곧 나에게 불만이 있어 때로는 원망 섞인 말을 몇 마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사악의 박해이기는 했지만, 수련 상에서 보자면 자신의 심성에 거대한 빈틈이 생겨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주어 가족에게 거대한 심리적 감당과 상해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닌가? 나는 자신의 수련이 부족해 가족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마음속으로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자, 남편도 더는 이 일로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앞으로 모순과 마주쳤을 때, 당신은 그것을 우연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모순이 생길 때 갑자기 나타나지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1]

우리는 자기가 옳다고 강조하거나 이게 나쁘고 저게 나쁘다고 상대방을 탓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속인의 이치로 가늠해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고 심지어 너무하다 싶은 점도 있지만 우리는 마땅히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우리가 속인의 이치로 가늠하면, 우리는 곧 속인이 아닌가? 속인과 다를 게 무엇인가?

수련생의 문제를 보고 나 자신의 수련과정에서의 부족함을 반성했고, 우리에게 모순을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심성을 제고한 기회를 준 중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고부 사이, 형제자매 사이, 시누이와 올케 사이, 이웃 사이, 동료 사이든 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있는데, 모두 자신이 닦아 없애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을 향해 찾아 그것을 제거하고 해체할 필요다. 우리 곁의 인연 있는 사람, 특히 가족들, 우리는 모두 멀고 먼 천체에서 최후에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구도를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저버리면 안 된다. 인간 세상의 은원(恩怨)은 명리정(名利情)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너무 작고 너무 작다. 하지만 중생을 구도하는 일은 너무 크고 너무 큰 일이다.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2]

대법제자 중에도 이혼 현상이 있다. 많은 수련생은 박해받다가 핍박에 못 이겨 이혼했다. 당사자 수련생과 신변의 수련생도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이 혼인가정과 수련을 대하는 문제에서 관계를 바로잡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가정은 하나의 중추와 같아 큰 하나의 집단, 우리와 큰 인연이 있는 중생과 연결되어 있다. 가정 관계를 바로잡는 것 또한 중생을 구도하고 중생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다. 나는 대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정을 소중히 하고 중생을 아끼는 것도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하세(下世)하여 조사정법(助師正法)을 하는 대법제자로서, 오직 자비로 중생을 구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원은 모두 연극으로서, 개인적인 은원을 버리고 그것을 초월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제1위이다. 그런 은원을 설령 즉시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하찮고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일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만이 우주 중의 근본적인 대사(大事)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외 것은 다 중요하지 않다.

몇 년 전에 남편이 외도했다. 나는 내연녀에게 전화해 “어찌 되었든 오늘은 우리 사이의 개인적인 은원을 한쪽에 놔두고 얘기를 해보지요. 당신에게 파룬따파가 어찌된 일인지 알려줄 텐데 당신이 구도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연분이 있든, 그게 선연이든 악연이든, 얼마나 많은 은원을 맺었든, 그것은 단지 개인 간의 은원일 뿐이고 당신이 대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법 진상을 아는 것만이 가장 큰 일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어서 왜 3퇴를 해야 하는지(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를 알려주었다. 내 말을 다 듣고 그녀는 “제 동창의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해서 저는 이미 탈퇴했어요.”라고 했는데, 나는 그녀가 대법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로써 그녀도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이미 구도받은 한 생명이었기에 나는 매우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비록 그때 그녀에 대한 원한과 불평은 내려놓지 못하고 우선 한쪽에 놓아두었지만, 반드시 그것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 그녀는 본래 자리로 잘 돌아갔고, 우리 가정은 사존의 불은호탕(佛恩浩蕩)으로 마난을 지나 많은 지인이 선망하는 가정이 되었다.

불법감금 당했을 때 핍박으로 이혼을 한 수련생도 있다. 어떤 수련생은 돌아온 후에 전남편이 후회하고 재결합하고자 했으나, 수련생이 거부했는데, 물론, 각기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위타의 각도,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 서서 이 문제를 자세히 생각해보자.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관용, 자비의 마음을 품고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리고 모순을 해소하여 진정으로 사람을 구해야 한다. 자신이 정을 내려놓아 가정에 근심과 교란이 없으면, 자신이 수련하는 데 더 유리하고, 더 많은 시간이 생겨 외출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보기에도 잘못이 없는데, 수련을 위하고 법을 위하며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를 바로 놓지 않고 이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많은 친인척, 친구, 주위 사람의 몰이해를 초래할 수 있고, 구도받을 기연을 잃어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조성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이혼 수속 후에 재결합 수속도 없이 동거하는데, 대법 수련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마난 혹은 병업 교란을 불러와 사람을 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대법제자 중에 나타난 이혼 현상, 여기에는 사악의 박해, 구세력의 안배와 교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잘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도 많다. 어떨 때는 수련생이 정을 제거하기 위해 남편에게 미온적이고 무관심할 때가 있고, 어떤 이는 속인의 말을 하지만 본래 아무런 공통 언어가 없으며, 어떤 이는 정이 너무 심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고 통제하려 한다. 또 어떤 이는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 일에만 바쁘고 가족을 소홀히 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가족에게 대법을 위해 냉혹하고 무정하다고 느끼게 하는데, 마음속에는 오직 대법만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컨대, 자신이 잘하지 못해 일단 외래 교란이 나타나면 결혼에 쉽게 금이 간다. 이것은 모두 가정과 수련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가정은 수련의 환경이고, 친인척과 친구를 구하는 창구인데, 가정을 잘 보호하는 것은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가정생활에서 발생한 모든 일은 다 우리가 수련하고 씬씽(心性)을 높여야 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상의 개인의 약간의 인식이다. 나는 보고 들은 일부 대체적인 정황만 말했을 뿐이다. 맞지 않는 점이 있다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이런 현상을 예로 들어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인식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편파적인 점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표상에 이끌리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1년 3월 10일 밍후이왕 교류문장 ‘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나에게 계발을 주었다. 이 문장을 쓴 수련생에게 감사드리고 수련생의 문장을 통해 나의 집착과 문제를 일깨워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공안·검찰·법원의 일부 관계자가 파룬궁(法輪功)수련생에 대해 법률을 지키지 않고 완전히 사당(邪黨)의 박해 각도에서 박해를 가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들을 몹시 원망했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납치, 판결한 것은 모두 이 공안·검찰·법원이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도리어 표상에 이끌렸다.

법공부할 때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에게 자비로 사람을 구하고 수련에는 적이 없다고 알려주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악랄한 태도와 박해를 직면하면 그들을 증오하게 됐고 그들의 태도에 심하게 이끌려 아예 자비심이 나오지 않았으며 그들을 마주하기 싫어서, 찾아가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 필요하면 억지로 갔지만, 마음속은 평화롭지 못했고 그들을 자비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그리니 더욱더 그들을 직면하기 싫었다. 그래서 이 몇 년간 나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에 아주 적게 참여했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을 직면할 때, 그리고 사실 직장에서도 나는 피동적이었다. 나는 교사지만 몇 년 동안 학교 측은 계속 나의 수업권을 박탈했다. 나는 전에 여러 번 서기, 원장과 ‘610’(장쩌민이 만든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기구) 관계자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수업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사무적으로 대할 뿐 아예 대화하지 않으려 하거나 대충 얼버무렸다. 매번 나는 효과가 좋지 않고 달리 방법이 없자 이 몇 년 동안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직장에서 점점 아웃사이더가 됐고 해마다 고과 압력도 감당해야 해서 가슴이 매우 답답했다.

일의 표상에 이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정말 일 속으로 빠졌고 표면의 가상에 심하게 이끌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을 싫어하고 증오하게 되어 마음속에 부정적 정서가 가득했다. 직장 상사에게도 반감이 생겼고 그들이 정의와 양지가 없다고 원망하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직장생활이 즐겁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

이 문장에서 필자는 실제로 법관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원래 중국 법조인들은 생각 외로 법률적 의미의 판결권이 없고 권력에 눌려 중공에 협박당해 선량한 사람을 탄압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박해에 일조해 범한 죄업은 도리어 법조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은 원래 이렇게 불쌍한 것이었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작년 말에 지국 경찰이 전화로 소란을 피운 일이 생각났다. 그들은 계속 내가 거주하는 주소를 캐물었지만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전화할 때 나의 태도와 말투는 평화롭지 못했고 귀찮게 여기고 증오했으며 심지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경찰이 전화로 내 직장에 찾아오겠다고 하자 나는 그 며칠 동안 마음이 답답하고, 긴장됐다. 경찰이 직장에 찾아오면 어떻게 경찰과 직장 상사를 대해야 할지 어떻게 그들에 대항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나는 절치부심하며 그들과 맞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문장 마지막 단락에서 필자는 “파출소 지역 경찰, 지역사회 관계자를 포함하여 우리가 접촉하는 매 사람에게 수련인의 선량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라고 썼다. 나는 미소가 나왔다. 사실 경찰, 지역사회 관계자, 직장 상사, 동료뿐이겠는가. 모든 사람과 일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고 그들이 어떤 표현을 하든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면서 자비롭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련생과 이 문장을 보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생각났다. 하나는 가족 수련생을 구출할 때였는데, 당시 나는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과 1년 반을 줄곧 접촉했다. 그때 모함 사건도 검찰원이 체포령을 내려 두 번이나 밀려서 공안국에서 보충하고 다시 법원에 기소했다. 표면 현상이 한 걸음 한 걸음씩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희망이 없는 상실감을 겪어봤지만 계속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정념을 강화하여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일만 했다. 어쩔 수 없어 할 때 수련생들은 나를 격려하면서 “가보세요.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되죠. 동수님이 가기만 하면 다른 공간에서는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함께 악을 제거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이 문장에 나온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리에 의지하고 수련생들이 격려해주어 계속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거듭 그들과 평화롭게 대화하고 거듭 우편으로 자료를 보내자 마지막에 법원은 생각 외로 정말 사건을 마무리하고는 입안도 하지 않았다. 내 주소가 있는 도시는 파룬궁을 가장 심각하게 박해하는 곳인데, 특히 10여 년 전 그때도 사악이 아주 창궐했다. 법원에서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는 기적이며 속인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 초상적인 결과가 나타난 원인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선의적으로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관계자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하고 법관과 관계자들의 양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은, 수련생 몇 명이 동시에 불법 체포당한 모함 사건을 법원에 제출했던 때였다. 그중 한 여자 수련생의 어머니는 고령으로 역시 수련생이었는데 나와 함께 법관을 찾아간 적 있다. 몇 번 찾아갔지만, 법관은 바쁜척하며 아예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번 찾아갔을 때 그를 만나지 못하거나 혹은 만났어도 몇 마디만 하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진상을 알리는 기회는 아예 없었고 법관이 냉정한 태도인데 우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우리는 법관에게 편지를 써서 딸이 사리가 분명하고 무고하니 선하게 대해달라고 했다. 어머니 수련생은 내용을 한 자 한 자씩 편지지에 베껴 써서 편지를 완성했다. 사실 당시에 우리가 편지를 쓸 때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나와 그 어머니는 서로 격려하면서 바라는 마음 없이 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려 했다. 그 결과 수련생 몇 명이 함께 불법으로 재판받았지만, 그 수련생의 딸은 무죄로 석방됐다.

유감인 것은 그녀와 함께 있던 수련생들이 모두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그 수련생의 가족들은 법관을 찾아가지 않았고, 노년 수련생 아주머니가 가족들에게 연락도 해봤지만, 그들은 찾아가기 싫어했다(가족은 모두 수련하지 않는 일반인임). 같은 사건이지만 결과는 달랐다.

‘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장과 연관해서 내가 10여 년 전 겪은 두 가지 일이 생각나니, 내가 이 몇 년간 어쩌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정념을 잃었나 싶었다. 바로, 일을 할 때 결과를 추구하며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이 문장은 다시 한번 나를 일깨워 줬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어떠한 태도에 직면하건 대법제자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라고 알려주셨으면 우리는 가서 하면 되고 표면상의 좋고 나쁨에 이끌리지 말고 일 속으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가 경찰, 직장 상사에 대한 반감이 많이 적어지고 선심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장을 쓴 수련생에게 감사드리며, 수련생 문장을 통해 나의 정념을 강화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마음이 변해야 진수(眞修)하는 것이다


글/ 지린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닦을 줄 몰라 문제와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에게서 찾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았고 본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고 여겼다.

사실 사람의 이치로 옳고 그름을 따졌던 거다. 수련인은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대하지 않고 수련의 이치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함을 알지 못했다.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대한다면 사람의 경지와 표준이 아닌가?

수련인은 사람의 이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닦고 자신을 보아야 한다. 사실 표면적인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마음이 진정하게 변해야 진수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아내고 마음으로부터 변화해야 진정으로 제고하고 점차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신으로 향해 가며 진정으로 승화한다. ‘서유기’의 저팔계는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바꾸지 않아 마음이 승화되지 못해 결국 수련이 헛되었다.

어릴 적부터 내향적인 나는 사람이 많으면 부자연스러웠다. 많은 사람이 보기만 해도 나는 긴장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기분이 들었고 비판적인 눈길로 나를 주시하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일하는 부서의 대부분 사람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일해 소통이 비교적 적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임이 직원 단련을 위해 회의에서 발표하게 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긴장했다. 가장 힘든 일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사전에 다 준비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나는 긴장했고 공포심이 나를 습격했다.

나는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웠다. ‘긴장, 두려운 마음, 공포심,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 내가 아니다.’ 사실 좋지 않은 관념과 사상업이 나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이 나를 통제할 때가 많았는데, 이런 관념을 자신으로 여기고 마음대로 나를 좌우지하게 방치했다. 사실 주이스(主意識)가 강하지 않아 배척하지 못했고 정념으로 이 배후의 좋지 못한 요소를 해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는 나는 두려운 마음을 배척하며 자신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가, 뭘 두려워하는가?’라고. 나는 또 자신에게 알려줬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걷겠다.’ 이어 나는 또 자신에게 말했다. ‘미소를 유지하자. 미소를 유지하자. 이것은 수련 제고 과정이다. 나는 공포, 두려움,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걸어 나가겠다.’ 그러자 진정하게 자신이 강대해짐을 느꼈다. 공포와 두려움이 바로 사라져 몸은 홀가분해졌으며 표정도 자연스러워졌다. 마침내 나는 사존의 가지 하에 공포심을 돌파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가뿐히 발표를 마쳤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 내 마음은 즐거웠다. 진정으로 공포를 분별해 배척하고 자신의 주이스와 정념을 강화하자 이전에 극복할 수 없다고 느꼈던 두려움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심성을 제고하니 사존께서 제자를 도와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셨다.

원망하는 마음 역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그런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고 좋은 일을 좋아하는 데에서 양성되며, 그렇지 않으면 곧 원망한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것은 안 되며, 수련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줄곧 말했듯이, 수련인은 반대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좋지 못한 일에 부딪혔을 때 당신은 좋은 일로 여겨야 하고 당신을 제고시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여겨야 하며, 이 길을 나는 잘 걸어야만 하고, 이것은 또 넘어야 할 관이며 수련하라고 온 것으로 여겨야 한다. 당신이 좋은 일에 부딪혔을 때 당신은 생각하라. 아이고, 나는 너무 기뻐하지 말자, 기쁜 일은 제고할 수 없고 또 떨어져 내려가기 쉽다. 수련이라, 당신은 곧 반대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곤란이 오고 좋지 않은 일이 왔는데, 당신이 모조리 배척하고 모조리 막으면, 당신은 바로 관을 넘기를 거부하고, 당신은 바로 위로 향해 가기를 거부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2]

원망하는 마음은 이미 습관으로 형성돼 이끌리고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최근 수련생들은 이 방면으로 교류를 많이 해 점차 똑똑히 보아내고 있다. 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방법과 표현은 너무 많다. 이익지심이 나올 때 원망하고, 쟁투심이 나올 때 원망하며, 질투심이 나올 때 원망하고,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원망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억울하게 대하면 원망하고 다른 사람이나 일이 눈에 차지 않아도 원망한다. 원망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은 즐거울 때가 적고 마음이 평온치 않으며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과 결점을 볼 때가 많다.

수련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되고 선을 닦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아름다움과 빛과 희망을 보지 못한다. 원망하는 마음은 흔히 질투심, 이익지심, 쟁투심,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과 한데 엉켜 나타난다. 원망은 사람의 마성을 증강해 불평하고 시기하게 한다. 결국 사람은 방향을 잃어 자신을 망치게 된다. 이제 나는 원망을 의식하고 분별해 발정념으로 제거한다. 점점 원망하는 마음은 약해져 서서히 다른 사람의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은 관용할 수 있게 됐다. 곤혹스러운 문제도 해결돼 주변 환경이 모두 아름답게 변했다.

또 인류 사회는 온갖 유혹들로 가득하다. 휴대폰 인터넷에는 색정, 폭력, 증오 등 불량한 정보가 넘쳐, 보기만 하면 오염되어 자신의 욕망과 집착은 확대된다. 나는 인터넷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몸에도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게 됐다.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마음은 또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한동안 소침해져 상태는 더 나빠졌다. 수련생들은 나의 문제를 보아내고 나를 도와 발정념해줬다. 수련생들의 진심 어린 도움으로 엎어졌던 나는 용기를 내, 정념으로 법 외우기를 견지해 수련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다시 한번 수련생들에게 감사하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배척하지 않고 격려해주고 도와주었다.

지금도 때로는 색욕 관련 사상업이 여전히 반영되어 나오는데 이런 사악한 사상 염두를 반드시 배제하고 발정념으로 해체한다. 이전에는 이를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더러운 사상이 자유롭게 내 공간장에 존재했다. 이는 나쁜 사상을 인정하고 보호하고 심지어 키운 것이다. 더는 이를 방치하지 않으며 발정념을 많이 해 나쁜 사상과 구세력이 배치한 사악한 기제(機制)를 해체한다. 최근 들어 색욕심이 좀 제거되면서 몸의 부정확한 가상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나는 심신의 변화에서 매우 미묘함을 느꼈다. 나는 더 잘해서 법에 동화되어 정념을 강화할 것이다.

이생에 대법 홍전(洪傳) 시기에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 직접 위대한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게 되어 정말 행운이다! 제자는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얼마 남지 않은 수련의 길에서 제자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서약을 실천해야 한다. 사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딸과 함께 대법을 수련하고 심성을 지키다


글/ 장쑤(江蘇)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법을 얻은 초기에 천목으로 각종 신기한 장관을 보고 늘 사부님의 법신을 보았다. 내 심성이 제고할 때면 사부님께서는 날 위해 관정을 해주셨고 나는 정수리에 한 줄기 강한 에너지흐름을 느꼈다. 머리부터 발까지 관정해주셨는데 그 느낌은 말로 형용할 방법이 없다.

2000년 말 딸이 태어났다. 아이가 세 살 때쯤 국영기업에서 제도를 개혁하느라 직장을 나왔고 이후 택시 여러 대를 사서 사업을 했다. 나는 사업하다 만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대법이 박해를 받고 있으며 우리가 박해를 받은 상황을 말했다. 대략 1년이 넘었을 적에 나는 경영에 대해 잘 몰랐기에 한 운전기사가 내 빈틈을 탔다. 그 기사가 차를 충돌해 망가뜨렸는데 이것을 나 혼자 부담했고 그에게 월급을 전부 다 주었다. 이후에 나는 사업을 그만뒀는데 밑져서 본전도 안 남았다.

날 곤경에 빠뜨린 그 기사는 아직도 뒤에서 날 바보라고 말하고 이웃들도 내 앞에서 날 비웃는다. 나는 이것은 내가 사람 중에서 행복한 생활을 지내려 하다가 초래된 시련임을 알았다. 집에는 쌀과 기름을 살 돈도 없었다. 승용차도 없었기에 나는 오토바이로 손님을 태우고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손님이 타는데 내 오토바이를 타는 손님이 없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도 내 오토바이에 타는 손님이 없었고 수입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몸에는 100여 위안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딸이 먹을 것을 사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돈을 꺼냈을 때 어디에서 온 바람인지 돈이 바람에 날려갔다. 나와 딸은 돈이 한 집 마당에 들어간 것을 보았다. 우리가 들어가자 한 노인이 발로 돈을 밟고 주지 않았다. 나는 심성을 지켰고 아마 이전에 그에게 빚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나는 골목길에서 한 번 뛰었고 딸은 기뻐하며 따라서 뛰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아빠, 돈이 없어 먹을 것을 못 먹잖아요!”라고 외쳤다. 나는 딸에게 “오늘 네 생일이니 아버지가 너에게 케이크를 사줄게”라고 말했다. 주머니에 2위안의 동전이 있었는데 마침 2위안짜리 케이크가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케이크를 담은 둥근 종이상자를 잘라 왕관을 만들어 아이 머리에 씌워주었다. 딸은 아주 즐거워했다. 나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이 매우 소중하다고 느꼈다!

나는 한 번도 사람 속의 고통을 겪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 앞에서 고생을 참고 견디는 것을 보여줬고 매우 즐거운 모습도 보여줬다. 나는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살피고 또 매우 엄격했다. 그 사람 중의 변이된 교육을 나는 모두 막고 아이에게 전통적인 신전(神傳)문화로 교육했으며 ‘서유기’, ‘봉신연의’ 같은 사람의 선량한 본성을 일깨우는 문화로 아이에게 기초를 다져줬다.

딸은 영리한 아이가 아니며 학습 성적도 평범하고 늘 업신여김을 당한다. 한 번은 딸과 함께 슈퍼에 갔다가 딸에게 먹을 것을 사줬다. 그 당시 나는 매우 가난했다. 슈퍼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사라고 추천하자 딸은 “우리 아빠는 돈이 없어서 저는 1위안짜리 작은 과자를 살래요”라고 말해 그 아주머니는 감동했고 나도 깜짝 놀랐다. 딸은 철이 들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딸은 어려서부터 손에 동상이 생겨 해마다 추위로 갈라졌다. 딸이 10살쯤에 나는 “대법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묻자 딸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배우라면 배우죠”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거실에서 아이에게 동공을 가르쳐줬다. 아이가 포잔첸서우파(佛展千手法)를 배울 때 나는 아이의 머리, 손에 번갯불과 자색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멈춰서 보니 수년간 있던 아이의 동상이 없어졌다. 기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급히 아이를 당겨 사부님께 허스(合十)하게 하고 감사드리게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딸에게 정공을 가르쳤다. 아이는 내 맞은편에 앉았고 가부좌를 아주 잘했다. 가부좌 과정에서 나는 아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들었다. 나는 “왜 그러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은색 용이 아버지 정수리에서 빙빙 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것은 아버지가 수련해 낸 것이라고 알려줬다.

딸이 본 광경에 나는 법에 대해 더욱 확고한 신심이 생겼다. 나는 아이의 공능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아이의 환희심을 조장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천목이 열린 것에 대해 평소처럼 대하고 아이의 공능을 숭배하지 않고 되도록 수련생 중에 전파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타인도 이러하며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했다.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격려하느라 선용(善用)한 적은 있었다.

나는 아이의 공능을 이용해 집착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다. 아이가 좋지 않은 일을 하고 심성을 지키지 못하면 똑같이 훈계했다. 나는 아이를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수련인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아이는 여러 번 울며 “잘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수시로 사부님을 볼 수 있다. 나는 “너는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들어봐, 너는 왜 맞았니?”라고 말했다. 아이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자 사부님께서 딸에게 ‘너는 늘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고치지 않는다. 맞았으니 고칠 수 있겠지?’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꼭 고치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의 심성을 교육하는 문제에 있어 나는 조금도 모호하지 않았다. 딸도 사부님의 제자이기에 나는 잘 이끌어야 한다. 나는 법을 먼저 얻었으며 딸의 아버지다. 내가 진정으로 딸을 위한다면 대법을 딸에게 전해주고 딸의 심성수련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공능은 딸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짜 부처가 내려와 일을 함에도 모두 새로 수련해야 하며 원래의 공을 모두 주지 않는데, 다만 현재 수련함이 조금 빠를 뿐이다.”[1] 나는 공능은 층차를 대표하지 않으며 많이 보든 적게 보든 우리 수련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수련생 중에서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법의 요구를 위배한 것이다. 우리는 볼 수 있거나 다른 능력이 있으면 마땅히 수련 제고에 사용해야 한다.

딸이 대법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기에 지금 20살이 넘었지만 공능은 여전히 약해지지 않았으며 수시로 정(定)에 들 수 있었다. 발정념을 할 때 딸은 나에게 우리 많은 수련생은 발정념을 할 때 사상이 정(定)에 들지 못해 다른 공간에서 보면 그 빛 덩어리가 안정되지 못해 번쩍번쩍하고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심지어는 꺼진다고 말했다. 이것은 정말 우리가 자신의 수련을 중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련을 잘한 수련생은 과위가 있고 또 호법(護法)과 각종 신통이 있다고 한다.

부동한 천체를 대응하고 수련해낸 생명 형상도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신장(新疆), 티베트[西藏]의 신의 옷차림은 우리 한지(漢地)와 다르며 각종 신의 형상이 있다. 발정념을 할 때 수련생은 각자 신통이 나타나며 대응한 천체의 신께서도 도와주신다. 많은 수련생은 과위 중에서 자신을 원만하고 있는데 사부님 신변의 그 불, 도, 신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고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난다.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 오거나 명절마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여러 방식으로 사존을 만나 뵙는다. 전국, 전 세계에서 온 대법제자, 그들이 수련한 그 일면은 사부님께 과일을 바치고 각 세계의 순수한 물품을 바친다. 사부님 신변의 그 큰 신과 큰 부처님이 매우 공경히 받아 사부님 앞에 배열하는데 수련생들이 집에서 사존께 바친 물품을 사부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

“정법(正法)은 반드시 성공한다”[2] 우리가 한층 더 분발하고 계속 용맹정진하며 사람 마음에 이끌리지 않고 예언에 이끌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잘하고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1] 우리는 자신의 환경을 보자. 우리의 마음과 관계가 있는지, 안으로 자신을 찾고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으면 타인도 바로 잡을 수 있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눈에 띄지 않지만 그들이 수련해낸 그 면은 광염이 끝이 없다. 그러나 사람 여기서는 그들 자신마저도 모른다. 그들은 심정이 평온하고 일을 하는데 심성이 착실하다. 1999년 전에 원만한 그 수련생, 그들은 묵묵히 당신 곁에 있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을 하고 있으며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나 다 알며 어떠한 사람 마음도 없다.

평소에 누가 높고 누구는 낮다고 하며 심성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인터넷 세계에 있다. 특히 자신의 공능에 집착하는 그 몇몇은 중국 인터넷에서 엉망진창인 문장을 쓰고 자신의 마환(魔幻) 속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자신이 본 것을 억지로 다른 수련생에게 집어넣는다.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일부 사람은 마지막에 보통 사오(邪悟)한다. 여러분은 그것 배후의 구세력이 한사코 당신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부터 이어져 온 기연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다. 만약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 구(舊) 대궁이 소멸되는 규율 중에서 우리도 일찍이 없어졌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금신(金身)을 다시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다! 소중히 여기자, 우리는 손에 손잡고 공동정진하며 사존을 확고히 믿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3-문안’



왜 눈이 잘 보이지 않을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작년 언제부터인지 시야가 흐려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머릿속에 자주 병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배척했다. 한동안 지나자 눈이 또 뻑뻑해졌다. 속으로 둥타이왕(動態網)을 너무 많이 봐서 눈에 피로가 누적돼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 하는 시간을 줄이겠다며 뉴스 제목만 보고 내용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좋아지지 않았고 심할 때는 책을 펴고 법을 배울 때도 힘들었다. 나는 그제야 경각심이 생겼다.

왜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 아닐까? 집착심이 두 눈을 가린 것이 아닐까? 뼈를 깎듯 안으로 찾아보았다. 많은 집착심을 찾았다. 예를 들면 시간에 대한 집착심, 박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심, 쟁투심,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공능에 집착하는 마음, 색욕심, 일하려는 마음, 조바심, 의지심 등등인데, 이것들이 이런 사람 마음, 집착심 배후의 요소이다. 비록 이번 마난(魔難)은 지속한 시간이 좀 길지만, 그 사이 몇 차례 씬씽을 연마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부님의 가지 하에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 잡자 나의 눈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번에 안으로 찾은 과정을 글로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다. 층차의 한계가 있어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안일을 구해서 마난(魔難)을 초래하다

나는 안일심이 심각한 사람이다. 이 안일심은 단단한 돌처럼 내 수련의 길을 가로막고 있고 내가 제고해 승화할 방법이 없게 한다. 다들 말하길 정진하려면 새벽 연공부터 하라는데, 수련에 소질이 있는 대법 제자에게는 새벽에 연공 하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일을 구하다 보니 늘 작심삼일이고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어느 날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정체제고(整體提高), 정체승화(整體昇華)”[1] 나는 깨달았다. 내 몸에 그저 초상적인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 안 되고, 속인을 넘어선 사상 경지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속인은 생로병사의 제약을 받아서 매일 6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몸이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수련인은 삼계를 벗어난 생명이므로 속인 공간 시간장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안일심은 사실 속인의 아름다운 생활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인은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며”[2]인데, 양자는 차이가 매우 크다. 안일심과 긴밀히 연결된 마음이 바로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편안해지고 싶기 때문인데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하려 하지 않는다. 고생이 두려워서 자기도 모르게 고생과 맞선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은 이 한동안 눈을 좀 더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스탠드를 바꾸고 또 바꾸고 했다. 백열등, 형광등, 주백색등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3] 하지만 나의 잠재의식은 오히려 고생을 적게 하려 하고 심지어 고생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관념은 이미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어, 나의 수련을 심하게 교란한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수련생이 병업에 관한 교류문장을 쓴 것을 보면 머릿속에 간혹 가끔 생각이 떠올랐다. ‘병업이 붙잡히는 것보다는 났지.’ 바르지 않는 일념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철저히 부정하지 않아 무의식중에 구세력의 배치에 빠지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구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4]

법리를 깨달은 후 나는 즉시 강대한 정념을 발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5] 수련인이 업을 없애는 것은 제고를 위한 것이며, 어떤 형식의 박해든 나는 모두 갖지 않는다. 수련을 교란하는 모든 사악 생명과 요소를 즉시 해체하고 소멸한다.

2. 밖을 내다볼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나는 함께 협력해온 수련생 A와 다툼이 생겼다. 표면적인 원인은 그가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에 일부 기타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이다. 나는 계속 그를 지켜보면서 그가 마음대로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했다. 비록 매번 다투고 나면 나는 안으로 찾고 쟁투심을 닦아버리겠다고 결심했지만, 또 만나기만 하면 시끄럽게 싸우게 돼서 괴로웠다. 어느 날 나는 크게 깨달았다. 쟁투심 배후에 사실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있다. 왜냐하면, 다툼을 통해 내가 옳고 남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을 거두고 A의 부족한 면을 지켜보지 않았다. 다툼은 마침표를 찍었다.

나중에 나와 A는 한번 솔직하고 성실하게 교류했다. A는 나에게 내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A에게 물었다. “제가 왜 그러는지 아세요?” A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그에게 알려줬다. “몇 년 전 저는 사람을 따르고 법을 배우지 않았는데 그때 수련생의 ‘도움’을 받다가 넘어진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수련생에 대해 불신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렇게 지켜보다 보니 우리가 협력하는 데 교란을 받은 것이에요.”

나와 A가 자주 싸웠던 그때, 눈은 어렴풋하고 좀 흐리게 보였다. 사실 밖으로 보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수련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경 문제로 생각했다. 일반 수지 렌즈는 수명이 2, 3년이라는데 나는 6년이나 썼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자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점화(點化)해주셨다. 어머니는 한동안 청소만 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어떻게 된 거니. 바닥이 온통 쓰레기잖아.” 이는 내가 눈이 어둡다는 것이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오히려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웃고 지나갔다.

이렇게, 눈은 처음에는 좀 흐리게 보이더니 나중에는 물체를 볼 때 어렴풋했다. 분명히 시력이 떨어졌는데 마지막에는 눈이 빡빡한 증상까지 나타났다.

3. 원망하는 마음이 두 눈을 가렸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귀여움을 받지 못하고 당(黨) 문화에 오염되기까지 하면서, 수련 전에 나는 화가 많았다. 수련 후 끊임없이 연공하면서 갈수록 원망하는 마음이 적어졌지만 뿌리는 남아있었다. 때로는 닦아버린 것 같아도 주의하지 않으면 또 나온다. 자꾸 그러다 보니 너무 괴로웠다.

몇 개월 전 수련생 B는 핸드폰 번호를 가득 적은 종이 몇 장을 가져와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했다. 글씨체가 가지런하지 않아 어떤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번호는 자릿수가 하나 더 있거나 적거나 하고 겹치는 번호도 있었다. 그래서 매번 올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B는 일정한 시기마다 내게 인터넷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왔는데 나중에 내가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더 도와주지 못했다.

마지막에 B의 부탁을 받고 인터넷에 올릴 때 눈이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작업하면서 조바심이 나고 원망하고 화내는 마음이 올라왔다. ‘B는 왜 이렇게 남한테 기대어서 하려 하지.’ 수련생은 거울이다. 그때 자기와 대조해서 안으로 찾아 닦고 제때 조바심을 제거해야 했는데, 나는 남의 문제만 봤다. 이 원망의 기(氣)가 내 두 눈을 가려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말 여동생 집에 가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나도 모르게 집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집이 세 채였다. 두 채는 평수가 좀 되는데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한 채씩 주고 부모님은 12평짜리 원룸에 사신다. 부모님은 백 년 후에 그 원룸은 내게 주겠다고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가 중태에 빠져 다른 지방에 계신 숙부님이 문안을 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숙부님은 친척들 앞에서 우리 삼 남매를 보고 말했다. “부모님이 이제 연로하신데 너희가 모셔야지 않겠니.” 당시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때 삼촌이 내게 말했다. “네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모님을 모시기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었다. 집이 작아서 방이 두 개뿐이었고 어려서부터 부모님과는 딴 세상 사람처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수련인 이니 타인을 위해 생각하자며 억지로 동의했다.

나는 부모님께 그 원룸을 팔고 내 돈을 보태서 우리 집 근처에, 방 두 칸짜리 집을 사자고 했다. 그러면 돌봐드리기 쉽고 나중에 도우미를 부르기도 좋다고 했다. 부모님은 동의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집을 파시더니 다른 집을 사지 않고 우리 아이가 유학 간 뒤로 비어 있는 방에 들어오셨다. 아이는 귀국하고 다른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집을 판 돈을 부모님 명의로 저금해놨다.

여동생은 부모님 집을 자기 앞으로 하려 했다면서 나에게 그 집을 팔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게 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듣고 화가 났다. 이건 분명 빼앗는 것이잖아! 여동생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언니한테 돈을 얼마나 주셨어?” 나는 여동생에게 알려주었다. “부모님은 퇴직금까지 합쳐서 매달 7천 위안(한화 약 119만 원)이 안 되셔. 너도 알겠지만, 엄마는 매일 몇십 위안어치 되는 약값도 필요하시잖아.” 여동생은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언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나 봐? 세상에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다 있어?” 나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참고 여동생 집을 나왔다.

돌아와서 내내 억울했다. ‘왜 이렇게 생억지를 부리는 거야. 부모님을 모시기는커녕 시비를 거네.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해? 언제 가야 끝날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여동생은 아버지를 부추겨서 나를 난처하게 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는 생트집을 잡았다.

어느 날 법 공부를 하는데 사부님의 법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자비심(慈悲心)에서가 아니다. 그는 그 명리심(名利心)을 전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아예 생길 수 없다.”[1] 나는 단번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때 억지로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을 판 것은 나중에 번거로운 일이 있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억울하고 불만이 있었다. 애당초 자비심은 없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자를 위해 이 원한의 뿌리를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4. 공능에 집착한 교훈

나는 어려서부터 천목이 열려 있어 돌아가신 친인을 볼 수 있고 그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수련할 때는 천목으로 자주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되어 사부님께 천목을 닫아주십사 빌기도 했다. 나중에 천목이 다시 열렸지만 나는 될수록 적게 보려 한다. 천목 외에 또 감응이 있는데, 간혹 장래 발생할 일과 지나간 일(그때 나는 그곳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감응은 의식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한번은 내가 감응한 것을 수련생 C에게 알려주고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다. 당시 그는 믿지 않았는데 1년 뒤에 그 일이 발생했다. C가 위험에서 벗어나자 나는 내가 감응한 상황을 또 그에게 알려줬다. 이때는 그가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었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감응한 것이었다.

얼마 후 뚜렷한 꿈을 꾸었다. 꿈에 두 가지 장면이 나왔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내가 친구를 도와 스웨터를 팔아주었는데, 내가 손님에게 말했다. “이 스웨터는 모양이 예쁘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다른 데서 한 벌 살 돈으로 여기서는 두 벌을 사실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손님에게 캐시미어 함량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웨터를 들고 보더니 좋아하며 두 벌을 구매했다. 그런 후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이 무대에서 셔츠를 팔고 있었는데 나는 무대 밑에 앉아서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보이네.’ 이때 두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말했다. “사모님, 이 옷을 구매하시지요.” 나는 괜찮다고 거절하고 옷을 뒤집어 보았는데, 안쪽이 손상돼있었다.

깨어난 후 생각해 봤다. 무슨 뜻일까? 첫 번째 장면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캐시미어의 함량을 말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단지 겉만 보았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셔츠가 안쪽은 망가진 제품이었다. 눈으로 본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다. 층차는 한계가 있으므로 내가 본 것은 진상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보는 것은 모두 가짜로서,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이며, 수심이화(隨心而化)라고도 한다.”[1] 나는 일부러 감응했는데, 그것은 생각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생각을 움직이면 본 것은 가짜가 아닌가? 만약 C가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으면 사부님께서 그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교란한 것이 아닌가? 후회막심했다. 무의식중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는 수련생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즉시 C에게 편지를 써서 내 말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법을 사부로 모셔야 한다고 알렸다.

인식했는데, 공능에 집착하는 것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때부터 나는 감응이 있어도 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5. 시간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번거로움

나는 2년간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상사가 임무를 배치하려는 것이다. 나는 “은퇴할 텐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죠.”라고 말한다. 이 꿈을 7, 8번 꾸었고 다만 은퇴까지 남은 시간이 달랐다. 어떨 때는 반년 남았고 어떨 때는 몇 개월, 어떨 때는 보름이었는데, 단 하루를 남기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시간을 다그쳐 정진해야 한다고 점화해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이 문장을 쓸 때도 그 꿈을 또 꿨는데, 깨어나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구나. 왜냐하면, 꿈에서 나는 은퇴할 때가 다 됐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으로, 앉아서 그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을 뒤돌아보면 내가 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을 알겠다. 특히 우한 폐렴이 발생하자 매일 둥타이왕 뉴스를 주목하는데, 겉으로는 진상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사실 박해가 언제 끝날는지 알아보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완전히 끌려갔다. 인터넷에 파묻혀 새로운 소식을 구하고 이런 예언 저런 예언, 보기만 하면 2시간이다. 어떤 때는 이런 것을 프린트해서 수련생에게 주면서 지인에게 보여주라고 하기도 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계속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단지 검색 시간을 줄인 것뿐이었다.

안으로 찾아봤다. 왜 이렇게 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강할까?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지 않나? 나는 몇 차례 사악한 박해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사부님의 보호와 법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걸어 나왔다. 박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비로소 시간에 집착하고 끝나기를 바라는 배후에 있는 근본 원인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해 주셨다. “생사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바로 신(神)이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바로 이 구별이다.”[6] 진리를 깨달은 후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법을 실증할 수 없고 사명을 완성할 수 없다면 이 육신으로 뭘 할 것인가.” 몸이 움찔했고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느 날 속으로 사부님께 ‘제자는 법리상에서 명백해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수련하기에 어떤 일도 모두 좋은 일이다.”[7]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이때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계산해야 한다.”[8] 나는 어리둥절해져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음속으로 무한한 기쁨이 생겼다. 그 후 나는 아주 뛰어난 장면을 보았다. 발밑에 하늘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옆에서 제자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어 용맹하게 앞으로 갔다.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나 천목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경지의 진실한 존재이다. 마치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사람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원인은 사람 마음과 집착심이 있는 외에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아 사악을 자양한 것과도 관련 있다. 나는 발정념을 줄곧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요해지지 못했으니 그리 중시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네 번의 정시 발정념 중에 특히 아침 6시 발정념 때는 거의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몇 개월 전에 발정념 하는데 천목으로 침팬지 같은 큰 동물이 보였는데,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랐고 이어서 일념을 보내 멸했더니 그 괴물은 사라졌다. 얼마 후에 또 작은 여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좀 망설이다 ‘멸(滅)’ 일념을 내보자 아무것도 없이 사라졌다. 이 여우는 이전에 발정념을 할 때 나타난 적이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후 나는 내가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는 것과도 관계 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신의 공간장에 나쁜 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발정념하는 힘을 강화했다. 매일 전 세계 동시 발정념 시간 외에 3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자신의 공간장에 있는 패괴물질을 청리했다. 어느 날 아침 6시 발정념을 하며 속으로 흐리멍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분도 되지 않아 손이 넘어갔고, 다시 입장하니 또 손이 넘어갔다. 눈을 뜨고 보니 갑자기 내 왼쪽에서 주황색 같은 물체가 눈 깜빡할 새 사라졌다. 바로 깨달았다. 그 작은 여우가 나를 흐리멍덩하게 한 것이구나, 신속히 일념을 보냈다. 내가 발정념 하는 것을 교란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청리한다.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1]

발정념을 한동안 견지한 후 눈은 확실히 호전됐다. 이번에 관을 지나가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지만 나는 집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런 마난들이 앞당겨 왔는데, 비록 받은 압력이 매우 크고 씬씽(心性)에 대한 고험도 넘기기가 매우 어려우며 때로는 넘어야 할 관이 매우 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이런 마난들을 모두 넘어가야 하고 결산해야 하며 계산해야 한다.”[8]

제자를 이끄시어 마난(魔難)에서 걸어 나오게 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 은혜에 절을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대원만법-1. 공법특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마음 고생’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공능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에 관한 몇 가지 깨달음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최근 몇몇 수련생들이 제가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고, 이에 대해 저는 자신의 상황과 결합해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닫혀서 수련하는 수련생은 공능이 있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많은 수련생이 닫혀서 수련하는 상태에 있기에 자신이 부딪힌 일의 시작과 결과, 원인을 알고 싶어 합니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은 경우 법에서 가늠하지 못해 쉽게 이끌림으로써 자신을 교란합니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오직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남의 공능이라든가 신통이라든가를 보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 것을 보면, 당신은 곧 그를 따라갈 것이고, 곧 이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은 그를 해칠 수도 있는데”[1]라고 매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기왕 우리를 미혹 속에서 수련하도록 안배하셨다면 이는 우리 자신을 놓고 말하면 가장 좋은 안배이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안배입니다. 반드시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을 들어도 모두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이끌려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는 것에 도달해야 합니다.

2. 공능이 있는 사람은 닫혀서 수련하는 수련생을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공능을 주신 것은 우리가 수련생을 교란하거나 수련생들 가운데서 명리를 구하는 데 쓰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련의 길을 더욱 잘 걷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닫혀서 수련하는 수련생과 협력할 때, 반드시 상대방의 상태와 상대방이 걷는 길을 존중해야 합니다. 가능한 상대방의 실제 상황에 근거해 상대방을 호기심, 환희심, 바라거나 기타 사람 마음을 지닌 상황에서 협력해 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절대 자신이나 공능 자체를 중요하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제한성 등 각 방면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다른 수련생에게 매우 큰 교란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심지어 손실을 보완할 수 없게 됩니다.

간단히 제가 부딪힌 상황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많은 각지 수련생들은 모두 저를 알고 있고 모두 저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어떤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저는 절대 누군가를 만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접촉한 후 수련생이 피드백해준 것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경우, 부러움, 숭배와 호기심 종류의 사람 마음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 마음의 표현에 마주해 저는 접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상대방에게 부족함을 지적해주는 것은 일종 방식이지만 어떤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은 이에 대해 형태를 바꾸어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상황을 만나면 적게 접촉하는 것은 매우 좋은 선택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집착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2]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열려서 수련하는 상태에 있는 수련인은 일부 자신이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알아야 하는 일부 일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때 일부 문제와 사람 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범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마땅히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고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기억해야 비로소 자신과 수련생을 책임지는 표현입니다.

3. 서로 법에서 협력하다

어떤 종류의 다른 수련 상태에 있든지 막론하고 오직 자아 관념을 품고 있지 않을 때라야만 비로소 매우 쉽게 서로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서로 법에 있지 않고 표면적으로 지나치게 많이 접촉하면 서로에게 교란과 상처를 가져다줄 뿐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집착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수련생은 무엇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제가 봐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그가 법을 이용하고 있고 수련생의 공능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신에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번 말하자 그는 더 이상 이 같은 일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며칠이 지날 때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다른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제가 생각났으며 저를 보고 싶었고 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만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뼛속 깊은 곳에서 제 공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고 다만 형태를 바꾸었을 뿐임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왜 제가 보고 싶거나 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말할까요?!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숭배하지 않는 것 외에 더 주의해야 할 점은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은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보다 층차가 결코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공능은 본디 작은 재간이요 대법만이 근본이로다”[3].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각자의 제한이 있고 다른 정도의 미혹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공간의 복잡함, 교란과 알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생명은 최대로 자신이 머문 층차에서 인식해야 할 것만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매 사람의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만이 아시며 사부님만이 안배하실 수 있으십니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설령 직접 공능으로 일부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능력을 중요하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저 개인으로 말하면 수련생이 제게 집착하는 것이 표면적으로 보일 때, 저는 수련생과 매우 드물게 접촉하며 상대방이 이성적이고 법에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떻게 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수련생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교란하지 않는 동시에 함께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기를 희망합니다.

요약해 조금 써서 이런 종류의 상황을 만난 수련생 여러분들에게 참고용으로만 제공해드릴 뿐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은 정치가 아니다’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정법문을 구하다(求正法門)’



수련교류 발췌


며칠 전, 수련생은 저의 어떤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때 저는 분명하게 배척하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서 수련생에게 그것은 그녀 개인의 생각이며 법이 아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여전히 배척입니다. 저는 제게 자신의 법에 대한 인식이 있고 자신은 법에 따라 수련하려 하며 자신의 인식에 따라 수련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수련생은 또 제가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때 저는 또 ‘무엇이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인가? 나의 인식은 모두 법에 있지 않은가!’하고 생각하면서 이때 저는 또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불현듯 수련생이 지적한 문제를 저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상에서부터 관념, 집착심에 이르기까지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서서히 자신이 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있고 자아의 안배 속에서 자신을 어떠어떠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깨닫자 머릿속이 또 텅 비었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에도 이어서 발정념을 할 때, 갑자기 하나의 매우 커다란 ‘나’라는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때, 저는 단번에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그 강한 자아를 깨달았고 자신이 수련에서 모두 ‘나는 무엇을 하겠다, 나는 무슨 일을 하겠다, 나는 어떠어떠하게 하겠다’며 ‘나’라는 글자가 앞장섰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했을 때, 저는 자신이 법을 자신이 인식한 대로 고정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밤에 또 한 가지 또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침대에서 끌어당겨 쫓아내었습니다. 저는 보고 매우 화가 나서 가족을 미워하면서 모진 마음이 일었고 그를 죽여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때,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저는 ‘내가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꿈속에서 나는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왜 그렇게 모진 마음이 일었을까? 현실 속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미움과 모진 마음은 모두 내가 아니야. 나는 법에서 이룩된 생명으로 나는 법에만 동화할 뿐, 그런 나쁜 것은 모두 내가 아니며 나는 갖지 않겠다. 하지만 왜 꿈속에서 이런 상태가 나타났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저는 자신에게 마음속에 억눌려서 폭로되어 나오지 않은 가족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저를 점화해주신 것이며 저를 자신의 집착을 보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어서 법공부를 하다가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밖에 과거 수련인은 모두 집착심을 진정으로 제거하지 못한 채 단지 그런 좋지 못한 마음, 좋지 못한 사상을 제압 혹은 억제했을 뿐이다. 오직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만이 진정으로 철저히 일체 집착을 제거하고 있는바, 오직 대법만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중부법회 설법) 여기까지 배우자 저는 ‘아, 자신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계속 참으면서 부정적인 물질을 안에 억누르고 억제하며 강압적이어서 폭로돼 나오지 않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부딪히면 마성이 폭발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깨우쳤습니다.
—‘‘나’라는 글자가 자신이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다’

발정념은 법을 선용하여 사람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 각지에서 어느 한 법률적인 명의를 내걸고 하는 박해의 방식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배후에는 사령이 공검법(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을 통제하여 수련인의 각종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사령에 의해 통제된 공검법 및 정부부문의 관계자들은 강도인 사령이 납치한 인질이며 이런 인질의 언행은 배후 강도 사령의 각종 수법에 불과하므로 수련인은 이에 의해 이끌려 움직이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인질을 자비롭게 구도하는 것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위타의 이 선(善)은 배후의 강도 사령을 해체하고 있으며 이런 인질을 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하게 발정념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수련인이 세 가지 일 중에서 법공부와 연공 그리고 발정념을 제대로 했을 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기듯 자연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 전체가 모두 중생을 구하는 즐거움 속에 녹게 되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길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모든 박해 형식을 포함하여 모두 중생이 대법제자를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전가와 곤경으로 보여지는 것은 전부 수련인이 위로 제고되어 올라가는 계단이고 그것은 순수하게 자신을 바로 잡고 한 걸음씩 자신을 바로 잡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자신과 인연이 있는 중생을 구하고 대법의 진상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법률을 선용하여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정념을 중시해야 한다’

비록 저는 자신의 공(功)을 보지 못하고 발정념의 효과가 어떠한지도 알지 못하지만 저는 자신의 신체도 의념으로 통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력을 집중할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예를 들어, 자신이 물이 가득 담긴 그릇 하나를 들고 계속 앞으로 걸어갈 때, 조금이라도 주의력이 분산되면 흘릴 것이므로 분명 이 그릇에 온 정신을 다 기울일 것입니다. 사존께서는 우리를 ‘멸(滅)’자에 사상을 집중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저는 곧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모든 사상의 집중 포인트를 선두에 두고 ‘멸’자를 생각하며 심지어 사상 속에 ‘멸’자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때에 사상은 확실히 매우 고요하고 약간의 정(定)의 느낌이 들긴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시간이 곧 지나가 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발정념을 많이 하면 마음이 자연히 고요해진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은 절대 개인 원만(圓滿)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자신의 범위 내의 중생을 신우주로 동화시키는 것이며 수련에서 걷는 길은 점차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 우리는 정법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매 대법제자의 내원(來源)은 모두 다르지만 최종적으로 원만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고 매 개인이 걷는 길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책임은 같습니다. …… 감당할 때, 만약 개인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그러한 감당은 극한적인 것입니다. 대법제자가 아직 인간 세상에 하루라도 있는 한 그것은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 하루입니다.
—‘수련 과정에서의 감당’

많은 수련생이 교류문장을 쓸 때, 자주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이 사부님께 박해를 완화 받도록 그(그녀)에게 이 ‘병업위기’라는 가상을 연화해달라고 청을 드리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대법이 세상에 홍전되면서 우선적으로 사람에게 펼쳐 보여주는 것은 병을 제거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고 사람의 마음이 선량하게 변하고 좋은 사람으로 변하는 사회적 영향력입니다. 많은 경우 수련생들도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이런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세인에게(그런 박해자도 사악에 의해 조종을 당하는 사람이며 마땅히 구도 받아야 하는 세인임)펼쳐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수련하면서 병을 제거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점인바 이보다 더 속인을 소멸의 궁지로 몰아갈 수 있는 직접적인 것이 있을까요? 속인은 바로 ‘실제적인 표현’을 보는바 어떤 때에는 아무리 힘들게 얼마나 많은 진상을 알린다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눈으로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다’보다 못합니다. 이 수련생을 접촉하여 아는 모든 세인을 포함하여 모두 당신의 ‘병업위기’의 표면적인 현상에 견해가 있게 되어 그들의 당신에 대한 경멸과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박해를 가중하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실질적으로 당신이 법을 실증하지 못했기 때문임).

환경은 대법제자의 심성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도 우주 중의 제일의 칭호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비록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있고 아직 미혹 속에 있지만 저는 박해를 부정하는 것은 정정당당한 정념에 의한 것이고 평소에 진정하게 법공부를 하여 심성경지를 제고한 후의 견정함과 명백한 깨달음에 의한 것이며 시련 속에서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후에 세인에 대한 자비에 의한 것이고 악한 경찰관 배후에 지탱하고 있는 사악을 소멸함으로써 이쪽의 사람을 감동시킨 정념정행한 위대함에 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령 그를 구하는 데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박해를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그 몇 년 동안에도 그런 사악이 이용한 경찰관들이 모두 정념정행한 수련생에 대해 다른 정도의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 대법을 실증하는 위대한 대법제자는 절대 속인이 보기에 구치소에서마저 받지 않는 ‘몸이 백 가지 병에 시달리고 병이 위중한’ 수련생이 박해를 부정한 수련생이 아닙니다. 바른 면이어야 법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박해가 발생한 이래, 모두에게 신체의 표현에 마땅히 있어야 할 그런 건강한 화력이 펼쳐 나타난 신체 상태는 얼마나 많은 박해자와 세인에게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될까요? 대법제자가 법을 펼쳐 보여주는 위력이 클수록 사악은 작아지며 어디에 있든지 모두 한 대법 수련생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가 있어야 사악의 박해가 최소화할 것입니다.

제가 접촉한 많은 경찰관이 수련생에 대해 관찰하고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이 표현한 부정적인 면이 갈수록 많아져 그들이 비로소 대법을 믿지 않게 된 것이고 거짓말이 비로소 더욱 거리낌 없이 진 것입니다. 비록 그들 배후는 모두 사악의 통제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는 필경 사람의 몸이 있고 사람의 견해와 선택이 있기에 대법 수련생이 얼마나 많은 정념정행의 표현이 있는가에 따라 어떤 정도의 시련이 대응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평소에 그런 바르지 않은 면의 방식으로 마치 박해를 완화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욱 엄중한 결과를 빚게 됩니다. 평소에 진정하게 법공부에 힘쓰고 부딪히는 일마다 안으로 찾는 데 공을 들이며 사악한 박해를 부정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며 곳곳에서 대법의 훌륭한 이미지와 자비로운 이미지 및 지혜로운 이미지를 체현한다면 박해가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까요?
—‘절대 ‘병업상태’를 시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인간세상에서도 반드시 체현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속인사회라는 이 한 층차에서 중국의 현행 법률 시스템은 ‘헌법’의 효력이 가장 높으며 기타 입법 활동의 법률적인 근거이며 어떤 법률법류도 ‘헌법’을 위반할 수 없고 헌법은 상위법입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제정한 법률 및 최고 인민 법원과 최고 인민 검찰원 사법에서 해석하고 중국 정부가 가입해 넣은 국제조약 등 효력은 ‘헌법’보다 낮습니다. 국무원의 행정법규 효력은 법률보다 낮으며 국무원 각 부처와 위원회 등 직속기관이 제정한 부문 규정효력과 지방정부 규정은 법규보다 낮습니다. 파룬궁 박해는 공개적인 문건마저 없는 구두 명령으로 위헌위법의 중죄입니다. 구두 명령을 발표한 사람은 마땅히 체포돼야 합니다. 따라서 대면했을 때, 마땅히 그들을 기가 꺾이게 하고 제 발 저리게 해야 올바른 것입니다. 이 점을 포착하고 우리는 마땅히 피동에서 능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법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지혜는 우리를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게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민위원회에서 우리를 찾으면 그들의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번거로움을 찾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그들에게 그들이 우리와 함께 박해를 받고 있으며 우리가 서명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제로화’교란에 직면해 정념으로 능동적으로 장악해야 한다’

‘걱정’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또 걱정이 나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체현이라고 여겨 매우 쉽게 경시되고 있습니다. 걱정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어떤 때에는 강렬하게 당신을 ‘생각’하게 하고 걱정은 생각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면서 그것을 배척해야 끊임없이 줄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어르신들은 “하늘은 눈먼 참새를 굶겨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뜻인즉 참새는 비록 눈이 멀었지만 신은 참새에게 한 갈래의 살길을 주어 굶어 죽게 하지 않는 것도 안배이고 업(業)을 갚는 것이며 천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늘은 누구에게 빚지겠습니까? …… 매 개인은 모두 역사적 연극 무대 위의 한 배역에 불과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며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누가 누구를 개변할 수 있고 좌우지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으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 관념은 자신의 수련에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 솔직히 말씀드리면 걱정은 곧 천리를 명백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매우 무거운 정(情)이며 수련인의 함정입니다. 깨닫는다면 ‘걱정’ 속에서 배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염두가 생길 때, 더는 이 염두를 따라서 아래로 더 나아가 생각하지 않고 즉시 소멸해버릴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감정이 튀어나올 때, 미끄러져 내려가지 말고 즉시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걱정을 내려놓다’

최근 수련생을 구하는 협력 과정에서 협력하는 수련생이 저에 대한 태도가 나빴고 갈등이 서서히 올라왔습니다. 저는 왜 이 문제가 생겼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일의 자체적인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착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나니”[정진요지-원용(圓容)]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참는 동시에 우리의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왜 저를 이렇게 대하는가 하는 것을 안으로 찾아보면 여전히 저의 집착심이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해왔기 때문에 일부 사람의 정이 오갔고 먹고 마시면서 일부 사람의 정의 것이 더해져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그녀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소양을 갖추었다고 생각해 변호사를 만나러 갈 때 그녀가 동반해 가기를 바랐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좋은 말을 듣는 것에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 수련생은 예전에 저를 매우 존중해왔고 지금은 반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세력이 이런 사람의 것을 이용해 수련생 간의 간극을 만들어 정체를 형성할 수 없게 하고 교란하고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키게 한 것도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정진요지-뿌리를 캐다(挖根)] 이런 문제를 찾은 후, 저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사부님이 계시니 반드시 제게 모든 것을 부여해주실 것입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모든 것은 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서 해주신 것이므로 저는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집착심을 찾은 후, 저는 평온한 마음으로 수련생에게 똑똑히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백팔십도 태도가 바뀌어 “변호사 선임에는 당신이 저보다 경험이 있으시니 무엇이든 필요하면 우리는 당신과 협력할게요”라는 답변을 주었습니다. 서서히 올라오던 갈등은 이렇게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풀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다시 함께 이어지게 되었고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는 미묘함을 진정으로 체득했습니다
—‘‘참음’에 대한 약간의 인식’

지역사회는 젊은 구역 담당 경찰관들로 바꾸어 지난해부터 이른바 민감한 시기면 찾아와 노크로 교란했으며 태도와 기세는 무시무시했습니다. 진상 알리기를 통해 구역 담당 경찰관과 협경은 모두 삼퇴했습니다. 저는 이번 교란을 반성해보았고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키는 과정에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체득이 있었습니다. 1. 우리의 정념이 충족할수록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더욱 좋습니다. 교란에 직면해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반대로 마음속으로부터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사람을 구하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야 합니다. 자신이 집착하려는 것 없이 정정당당하게 위타의 마음만 있어야 하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기억하라. 어디에 문제가 나타나면 그곳이 바로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는 곳이다.(박수) 효과가 좋고 나쁨은 당신들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상대방을 보지 말라. 당신이 그것에게 좋게 되라고 하면 그것이 좋게 될 수 있으나, 당신이 그것에게 좋게 되라는 생각이 없거나 혹은 마음속으로 불안하다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서 정념이 충족해야 한다.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구도하고 있으며 나는 정말로 당신에게 진상을 알린다고 생각한다면 효과는 곧 좋을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대법제자야말로 주인공이며 대법제자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전반 과정에서 비록 말투가 평온해야 하지만 조금도 그들의 요구에 협력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는 이 한 가지 목적을 둘러싸고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협력하게 하려는 일이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은 삼퇴를 했으며 즐겁게 떠났습니다. 3.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관심사를 착안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선 먼저 진상이 무엇인지를 알립니다. 그가 진상을 모를 때, 그 자신에 끼친 해가 어떤 것이며 후과는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면 상대방이 쉽게 깨닫습니다.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 전혀 무관심하지 않은’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전반 과정에서 겉으로 보기에 한 걸음씩 자신이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사부가 안배한 것이며, 사부가 한다. 그러므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한다. 당신 자신은 다만 이런 소원만 있고 이렇게 생각할 뿐, 진정 그 일은 사부가 해준다.”(전법륜)
—‘정념으로 찾아와 교란하는 경찰관을 대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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