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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최고의 앞잡이에서 최고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2021-05-16 22:27:47 | 조회 : 108
최고의 앞잡이에서 최고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글/ 원쓰루이(聞思睿)

[밍후이왕]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문호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쓴 이 명언은 주인공 햄릿 왕자의 명언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중대한 선택에 직면할 때 모든 사람이 스스로 정확한 답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최고의 앞잡이에서 최고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과정

(1) ‘당에 무조건 복종’한 예조프

1934~1940년, 약 1900만 명이 소련에서 체포되었고 많은 사람이 노동 수용소에서 죽었다.
예조프는 1934~1939년 KGB(국가보안위원회) 책임자였다. 그는 스탈린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로 알려졌고, 소련 공산당이 하달한 임무에 무조건 복종했다.

KGB 스파이 조직은 소련공산당(소공)이 억울한 사건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최고의 앞잡이다. 예조프가 집권하자마자 그는 처음으로 KGB 내에서 대규모 숙청을 시작했다. KGB의 숙청 탄압에 가담했거나 이에 대해 알고 있던 많은 간부를 총살했다. 그가 집권한 마지막 2년인 1937~1938년, 소련 내부에서 대숙청이 절정에 이르러 약 350만~450만 명이 탄압받았다.

소공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조프에게 각종 영예와 레닌 훈장, 영예비상위원회요원 메달 등을 수여했다. 그의 대형 사진이 신문에 실렸고, 그의 업적은 선전 포스터, 조각, 소설, 시와 같은 예술 형식으로 소련 화가와 작가들로부터 널리 칭찬을 받았다. 많은 마을과 거리 및 장소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 소공 지도자 흐루쇼프는 한때 비밀 보고서에서 “예조프는 제2의 악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공의 대숙청 때마다 억울한 사건이 엄청나게 발생했고 모든 억울한 사건은 누군가 책임져야 했다. 중국공산당(중공)과 마찬가지로 소공도 그들의 결정이 영원히 “위대하고 정확하다”고 표방했다. 억울한 일을 처리할 때마다 밑에서 집행하는 사람은 늘 착오를 범하게 되고 따라서 밑에서 집행하는 사람 중에 언제나 최고의 희생양을 찾았다.

이번에 최고의 앞잡이인 예조프가 최고의 희생양이 됐다. 1939년 4월 10일, 예조프가 체포됐다. 검찰 기소에서 소공은 “예조프는 소련과 적대적인 외국 정보기관 및 국가와 스파이 관계를 맺는 한편 내부 인민위원회 부서가 음모 활동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밝히면서, 예조프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했던 혐의를 고스란히 예조프에 돌려줬다.

KGB 우두머리 중 5명은 총살당했다. 모든 사람은 소공이 자신을 선택해 불충실한 전임자를 끝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공산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해하는 동시에 자신이 다음의 살처분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역대 KGB 수장의 운명’(레오니트 멜친 지음)에서 저자는 “많은 사람이 박수 속에서 루비얀카 광장에 있는 이 유명한 건축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권력과 상을 받았지만, 자발적으로 혹은 직무 승진을 위해, 루비얀카를 떠난 사람은 드물었다.”

(2) 식량을 강요하는 자는 결국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1959~1961년 3년간의 대기근 동안 중공의 식량 징수 목표가 너무 높아 농민들이 상납할 수 없게 되자 중공은 바로 새로운 투쟁 목표를 세웠다. 그러자 생산대는 식량 생산량을 숨기고 식량을 몰래 분배했다.

‘식량을 숨기고 몰래 분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1960년 12월 6일, 허난성 신양(信陽) 지위(地委) 제1서기인 루셴원(路憲文)은 전화회의에서 식량 은폐 투쟁 경험을 널리 보급했다.

신양 관할구의 현(縣), 향(鄉), 촌(村) 간부들은 정치적 압력과 정신적 괴롭힘 그리고 잔인한 폭력을 써서 농민들이 남긴 식량과 종자를 수탈했다.

1959년 10월 15일, 슝완(熊灣)촌 농민 장즈룽(張芝榮)이 식량을 상납하지 못하자 심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대대(大隊)의 간부는 불집게로 사망자의 항문에 쌀과 콩을 찔러 넣으면서 “너의 몸에 식량이 자라나게 할 거다!”라고 욕을 했다. 장즈룽이 맞아 죽은 후 8세와 10세인 두 아이를 남겼는데 두 아이도 잇따라 굶어 죽었다.

1959년 11월 13일, 슝완촌의 촌장 펑서우샹(馮首祥)은 촌에 온 대대 간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대 간부를 무시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를 대대식당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귀까지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때려 결국 6일 후에 사망했다.

당시 신양에는 이런 일이 무수히 많았다. 주먹질, 발차기, 추위, 굶주림 외에 대나무 막대기로 손바닥 꿰뚫기, 솔잎으로 양치질하기, 천등에 불붙이기(옷을 다 벗긴 후 삼베로 싸서 기름독에 담갔다가 밤이 되면 통나무에 묶어 놓고 발에서부터 불을 붙이는 고문), 불붙은 숯을 입에 쑤셔넣기, 젖꼭지를 불로 지지기, 음모 뽑기, 음도 쑤시기 등 10여 종의 잔혹한 고문이 사용됐다.

이런 고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량을 상납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약진 운동 중에 강철을 제련하느라 농경지를 내버려 두는 바람에 농민들의 수중에 식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1959년 12월, 신양 지역에 굶어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도 허난성 위원회는 여전히 식량 징수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 겹겹의 봉쇄를 뚫고 마침내 베이징에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때에는 이미 신양 지역에 105만 명이 굶어 죽었다.

중공은 신양 사태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1960년 10월, 중공 중앙이 전달한 ‘신양지역 위원회의 정풍 운동과 생산 재난 구조사업 상황에 관한 보고’[중발(61)4호]에서 마오쩌둥의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사람을 때려죽이고, 식량이 감산되어 밥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민주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봉건 세력은 더욱 방해하며 사회주의에 대해 더욱 적대시하고, 사회주의 생산 관계와 생산력을 파괴한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중공은 신양 사태에 대해 “공산당의 탈을 쓴 지주, 국민당은 노동 인민에 대해 잔혹한 계급 보복을 했다.”라고 확정지었다.

각급 당정(黨政) 조직은 지주, 국민당으로 변해 인민을 공격하는 본거지가 됐다. 각급 지도간부는 인민을 지배하고 해를 끼치는 조직자, 지도자, 살인 흉수가 됐다.

중공 공안부는 신양 지역 위원회 서기 루셴원 등 39명을 검토 대상으로 정하고, 현급 이하의 공사(公社)와 대대,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말단 간부에 대해 죄상을 성토하게 하고 비판 투쟁을 했다. 지난 2년간 간부들이 농민들에게 가했던 10여 종의 형벌이 거꾸로 말단 간부들에게 가해졌다.

신양 지위 부서기 장수판(張樹藩)은 신양 지역에 잇따라 20만 명 간부들을 집중적으로 심사했는데 심지어 식당 관리자와 회계 등 사람들도 포함됐다고 회상했다. 

신양에서 100만 명이 굶어 죽어도 공산당은 여전히 ​​“정확하고 영광스러웠다.”라고 했다. 중공의 명령을 수행한 말단 간부는 결국 희생양이 되어 중공에 의해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 됐다.

2. “중공을 믿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1) “맞아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중공이 묻어 놓은 함정

1999년 7월,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잔인한 박해를 일으켰다. 추악한 장쩌민은 노골적으로 앞장섰다.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명령을 내려 시행하도록 했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탄압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면서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고 했다.

밍후이왕의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으로 지난 20년 동안 납치된 파룬궁 수련자의 총 수는 8만 6050명(여러 번 납치된 사람은 1명으로 계산), 불법으로 선고받은 사람은 1만 8796명, 세뇌반에 감금된 사람은 1만 9566명에 달했다. 그리고 1999~2013년 사이에 노교소에 수감된 수련생은 2만 8430명인데 그 중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은 4334명이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여전히 매일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중공이 법정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심문할 때 “파룬궁에 대해 법률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흔하게 듣는다고 한다.

마(魔)의 우두머리 장쩌민이 집권했을 때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은 권력에 눈이 멀어 파룬궁에 대해 온갖 박해를 자행했다. 장쩌민은 보시라이에게 공개적으로 “당신은 파룬궁에 대해 강경히 대응해야 올라갈 밑천이 있다”고 말했다. 다롄(大連)에서 랴오닝(遼寧)에 이르기까지 보시라이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잔인하게 박해하고, 경찰들에게 “파룬궁에 대해 인정사정없이 단단히 혼내주라!”고 명령했다.

저우융캉은 쓰촨성 위원회 서기 재직 기간인 2000년부터 2002년 12월까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적극 선전하고 가담하게 했다. 어느 날 장쩌민이 쓰촨을 시찰해 보고를 들을 때 파룬궁 수련생 43명을 박해해 죽게 한 저우융캉을 크게 칭찬하고 중용했다.

이를 통해 승진 비결을 눈치챈 저우융캉은 “살인과 방화는 상관하지 않아도 되지만 파룬궁은 붙잡아야 한다”는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사회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장쩌민의 부패가 중국 사법제도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KGB의 두목 예조프와 베리아가 소공에 의해 버려진 것처럼,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등 중공 관리들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악행을 다 한 후에 똑같이 투옥되거나 중공에 의해 낙마했다.
(2)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반드시 자멸한다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반드시 자멸한다”는 말이 있다. 중공은 18년간 총 164명의 중공 성부급(省部級) 고위관료를 낙마시켰는데 그중 정법위(중앙정치법률위원회) 계통이 47명을 차지했다. 밍후이왕의 악인방(惡人榜)에서 이 164명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등재되어 있다. 표면적인 낙마 원인은 부패이지만, 수천 년 이어온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고 믿는다.

최근 중공은 정법위에 관해 ‘20년 역조사’를 거쳐 ‘체로 걸러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그 증에 헤이룽장, 장쑤, 허난, 쓰촨, 산시(陝西) 등 35개 정법기구에 모두 ‘20년 역조사’를 채택해 시범적으로 조사했는데, 법원, 검찰원, 공안국, 사법국, 국안국, 감옥 등이 포함되었다.

중공 관방매체에 따르면 2020년 11월 말까지 시범 지역에서 경찰관 1만 6천만 명이 심사에 포함됐고 2247명이 처리됐다. 그중에 처급(處級)관리가 227명, 입건 심사가 448명, 사법부에 이송된 사람이 39명이었다.

홍콩 언론은 8명 중 1명이 처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20년 역조사는 실제로 후진타오(胡錦濤) 장쩌민 시대를 포괄한다. 즉 저우융캉이 공안부장일 때부터 시작해, 뤄간(羅幹)이 정법위 서기로 있을 때까지다.

최근 몇 년간 정법위 서기는 멍젠주(孟建柱)와 궈성쿤(郭聲琨)이였다. 현재 20년 역조사 운동은 이미 정치법률 계통에서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4월 18일, 베이징시 공안국은 베이징시 검찰원 정치부 주임 마리나(馬立娜)가 거처에서 투신자살했다고 통보했다. 정부 측은 형사사건 혐의를 배제하고 사망 전에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발표했다. 한 네티즌은 “또 우울증이군. 우울증이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 필요한 병이 됐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중공 ‘18대’ 이래 ‘호랑이 때리기(打虎)’ 운동에서 중공 정법위 계통 사람들은 모두 위험에 처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관료 최소 81명이 자살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정치법률 계통 고위관료였다.

맺음말

“예로부터 꾀가 많으면 그에 따른 화도 많아, 양심을 속이고 부귀(富貴)를 탐내서는 안 된다. 처마 밑 낙숫물은 어김없이 떨어졌던 그 자리에 또 떨어지거늘, 응보는 예나 지금이나 비켜 간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에 대해 중공은 여전히 은폐하면서 현 정법위 관계자들에게 계속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사실 상당수 정치법률 계통 관계자는 이미 진상을 분명히 알고 선량(善良)을 택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직도 중공을 대신해 목숨을 팔고 있는데 자신이 벼랑 끝에 몰려와 있다는 것도 모른다.

모든 정치법률 계통 관계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깨달아 이지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대하기 바란다. 선량한 마음이 나오면 자신을 위해 공을 세워 그 대가로 죄를 면할 수 있고, 일의 마지막 단계를 잘 마무리 지을 기회가 생기게 된다. (발췌)

원문발표: 2021년 4월 2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원문위치: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8/4238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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