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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71호 【수련교류】  
   2021-05-19 10:10:34 | 조회 : 801

한글판 제771호



수련교류

깨끗하고 맑은 법 속의 연꽃, 법 공부하고 마음 닦으며 사람을 많이 구하다 
‘이를 뽑다’의 깨달음 
진정한 초탈로 나아가다 
‘제로화 운동’ 소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다 
대법에 대해 견정함은 중생 구도를 위해서다 
정념이 나오면 사람 마음이 사라진다 
수련하면서 인식이 끊임없이 승화하다 
어린 수련생의 지적에서 얻은 교훈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깨끗하고 맑은 법 속의 연꽃, 법 공부하고 마음 닦으며 사람을 많이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고향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는데 예전에 진상을 알리면 별로 듣지 않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든 적든 나만 보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신다. 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린 후 만약 그가 삼퇴(중국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를 하면 그에게 진상호신부를 주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라고 알려준다. 가끔 길에서 진상을 알렸던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나에게 “우리는 온종일 외웁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동공(動功)을 연마하고 법 공부를 시작한다.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아이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손녀를 학교에 바래다준다. 그 후 사부님께 향을 올리면서 말씀드린다. “제자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려 하니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연 있는 사람을 보내주시고 나쁜 사람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진상자료를 지니고 출발하는데, 걸을 때도 차를 탈 때도 있다. 가끔 시장에, 가끔 가게에 가면서 동서남북으로 다닌다. 수량은 생각하지 않고 매 사람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넷째 동서는 나에게 말한다. “밭에서 일하면서 형님이 알려주신 걸 외우니 너무 좋아요! 우리 집 농작물도 얼마나 잘 자라는데요.” 넷째 시동생네는 10여 묘(畝) 땅에 땅콩을 심었고, 외손자와 외손녀 4명도 돌봐주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밭에 가 일할 때 날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더니 일할 때 힘들지 않다고 했다. 수확할 때가 되면 그들 집 땅콩은 하나하나 옹골져서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

나는 1998년에 운 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했고 이때부터 사존을 따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수련을 시작했다. 정법노정이 끊임없이 앞으로 추진됨에 따라 나와 남편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중요시했고 나중에는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큰 거리나 작은 골목에서 만난 사람, 동료나 친구들 모두 우리가 진상을 알릴 대상이었다. 2008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나는 혼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

법 공부를 많이 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을 실증하는 것은 속인이 하는 것이 아니며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해야 한다.”[1]
사부님의 말씀대로 나는 종래로 법 공부를 느슨히 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전법륜(轉法輪)’을 3일에 한 번 다 배우겠다고 스스로 정했다. 한 번 다 마치면 노트에 가로줄 하나 긋고, 또 한 번 마치면 세로줄 하나, 이렇게 다섯 번이면 ‘正’자 하나가 그려지고 한 달이면 2개가 그려졌다. 이렇게 하는 건 법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부담주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느슨해도 각종 잡다한 일들이 교란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에게 집에 얼마나 큰 일이 생기든 꼭 매일 세 강을 마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중에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하루에 한 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배웠고 짬짬이 ‘홍음’을 외웠다.

2020년 초, 중공바이러스(우한폐렴)가 점점 확산되자 우리 단지도 출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시간이 있으니 법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사니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하루에 두 끼 먹었으며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다. 처음 며칠은 빨리 외우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외울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가끔은 법을 외우면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외울수록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가끔 외우면서 온몸이 ‘쿵’하고 울리거나 참기 힘들 정도로 갑자기 더워지기도 했다.

한 달 좀 넘는 사이에 ‘전법륜’을 한번 외웠고 ‘홍음’, ‘홍음2’도 줄줄 외울 수 있게 됐다.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도 될수록 많이 배웠다. 역병이 조금씩 나아져 단지 봉쇄가 풀리면서 나는 다시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됐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매번 내가 집에서 법 공부를 하거나 법을 외우다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릴 시간이 됐을 때 나가지 않으면 법을 외우기가 너무 어렵고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상을 알리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단락은 아주 순조롭게 외울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두 손을 허스(合十)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를 드렸다.

진상을 알리다

진상을 알리면서 한 가지 느낀 바가 있다. 즉 사람을 봐야 하고, 그의 신분이나 받아들이는 능력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기차를 탔는데 한쪽에는 절에 다니는 사람, 다른 한쪽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앉았다. 그들은 심하게 논쟁하면서, 나보고 무엇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성경계시록에 짐승의 표기를 지운다는 말이 있는데 뜻인즉 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라는 겁니다. 그 당·단·대 조직이 바로 ‘짐승의 표기’입니다. 마귀나 사탄만이 신을 믿지 못하게 하고, 마귀만이 혈기(血旗)를 마크로 사용합니다. 예전에 주먹을 들고 목숨을 그것에게 바치겠다고 맹세를 했으면 그것은 당신 이마에 표기를 해둡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말하는데 짐승의 표기를 지우지 않고 어찌 영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얼른 말했다. “네, 그러네요!” 나는 말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늘 ‘사탄은 물러가라’고 하는데 자신이 사탄 편에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당신이 그것보고 물러가라고 하면 그것이 물러가나요? 당신이 사탄과 무신론 울타리에서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 믿는 게 맞나요? 이러면 주님도 당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가명을 지어드릴 테니 탈퇴하시지요.” 그러자 그는 “좋습니다. 탈퇴, 모두 탈퇴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절에 다니는 사람에게 말했다. “이해되세요? 신과 부처를 믿는다면 무엇을 믿든지 상관없이 모두 사악한 중공 조직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무신론 조직에 가입한 후 다시 와서 신불을 믿는다고 하면 안 되죠. 다시 말해 신을 믿지 않는 조직 안에서 부처를 믿으면 되겠어요? 이 자체가 모순되니 얼른 탈퇴하시죠.” 그러자 그녀도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되네요. 탈퇴하고 싶으니 얼른 가명을 지어주세요!”라고 말했다.

한번은 큰길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보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더운데도 일하세요?” 그리고는 일상적인 얘기를 좀 나눈 후 말했다.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셔서 사람들이 먼지를 얼마나 덜 마시는지 몰라요. 어릴 적에 붉은 넥타이를 맨 적이 있죠?”라고 묻자 그는 “고향에서 당 지부서기였고 오래된 당원입니다.”고 말했다. 나는 “공산당을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해도 지금에 와서 땅바닥을 쓸고 있지 않나요? 이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 들어가서는 안 되기에 탈퇴합시다. 얼마 전에 전염병이 얼마나 심각했나요? 다음에는 하늘이 사람을 도태시킬 것인데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 가입해 탈퇴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다 도태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네. 저도 원치 않습니다.”고 말하고는 실명으로 탈퇴했다.

우리 집 위층에는 경찰이 살고 있었고 그는 늘 경찰차를 우리 집 문밖에 세워 놓았다. 이렇게 몇 해 동안 아래위층에서 살았다. 어느 날 나를 만나자 그는 조용히 물었다. “여사님, 파룬궁에 악인 명단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시나요?” 내가 인터넷 할 줄 모른다고 하자 그는 나보고 악인 명단에 그의 이름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하면서 이름이 ○○○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인터넷 할 줄 모르지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입니까?”, “얼른 가입했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겁니다. 이후에 누가 당신보고 경적을 울리며 운전하고 다니라고 할 때 진상자료를 나눠주는 사람이 동쪽에 있으면 서쪽으로 운전하고, 남쪽에 있으면 동쪽으로 운전하세요. 당신은 산책하듯이 못 본 체하면 됩니다. 이러면 당신은 업무도 집행하고 파룬궁도 보호할 수 있죠.”

그는 말했다. “여사님이 오늘 들으신 음악이 저한테도 들렸고, 여기에 살면서 10년 들었죠. 여사님은 늘 활기찼고 저는 여사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저는 시골사람입니다.” 나는 말했다. “저도 시골에서 왔어요. 나이가 어리시니 자식처럼 생각해 말하는 건데 마음 졸이지 말고 우리 서로 보호해주지요. 제가 공산당에서 탈퇴시켜 줄게요. 이건 하늘과 땅, 우리 둘만 아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이후에 갈수록 더 잘 될 거예요.”

고향에 가게 되면 나는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어느 집을 가든 모두 선물과 진상자료를 지니고 친척방문 형식으로 우선 일상생활부터 문안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진상을 알렸고, 대대 간부든 평범한 주민이든 친척이든 이웃이든 사회 고위직에 있든 사회 밑바닥에 있든 모두 얕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나의 친인(親人)이었다.”[1] 나는 진상을 알리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 한 숙모는 내 손을 잡고 “얘야, 네가 날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너에게 감사드려야지?”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대법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겁니다. 감사를 드리려면 대법 사부님께 드리시면 되세요!”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나를 셋째 이모라 부르는 대대 서기가 있다. 그는 파룬따파를 믿고 삼퇴한 뒤 복을 받았다. 2016년 쯤, 한번은 그가 여행하러 갔다가 배를 타게 됐는데 누군가 배에 무슨 도구가 없다며 그보고 배에서 내려 도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배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갑자기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배가 폭발했고 배에 탔던 사람 중 그만 살았다. 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돌아온 후 그의 할머니에게 이 일을 얘기하면서 “셋째 이모님이 저보고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고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위험에서 벗어나 무사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니 정말 위험에서 벗어나고 신이 보호해 주시네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다

진상을 알리러 갈 때마다 나는 모두 깨끗하고 반듯하게 좋은 옷을 차려입고 나간다. 양치하고 세수를 한 후 몸가짐을 말끔하게 해 사람들이 무시할 틈이 없게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알릴 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동창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는 모두 참가해 대법을 실증했고, 삼퇴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켰다.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 오래된 친구들은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내가 모모라고 하자 다른 친구는 아주 놀라워하며 나를 자세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못난 오리가 백조로 변했네. 얼굴에 있던 주근깨는 다 어디 갔어?” 어떤 사람은 내 팔을 주물러보며 말했다. “너는 팔뚝이 여전히 튼튼하네. 우리는 팔뚝 살이 다 헐렁해졌어. 너는 젊게 변하고 우리는 늙어만 가네.” 나는 말했다. “내 신체를 보면 파룬궁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 너희들은 모두 배운 사람이니 따라서 함부로 얘기하면 안 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이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면 꼭 신체가 갈수록 좋아질 거야.”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때 상대방을 위해 생각해야 하고, 그들이 염려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매번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늘 한 사람씩 얘기한다. 사람이나 물건을 싣는 작은 삼륜차에 앉으면 길에서 기사에게 진상을 알린다. 전염병의 심각성에서 시작해 돈 벌어 먹고살기 힘들고, 공산당이 거짓말로 진상을 은폐해 도시나 단지를 봉쇄한 것을 말한다. 또 전염병에는 눈이 있고, 전염병이 나타난 원인과 명나라 말년 전염병부터 시작해 올해 전염병까지, 그리고 파룬궁이 박해를 받은 진상과 공산당의 사악, 삼퇴를 해야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등등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전염병을 피하고 무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는 그에게 진상호신부를 주면서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종일 밖에서 뛰어다니기에 무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진상 소책자도 주면서 소책자에 더 똑똑히 나오니까 집에 가서 잘 보고,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도 줘서 그들도 무사하게 하라고 했다. 많은 사람은 거듭 고맙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당신을 만났기에 진상을 알았지 아니면 구도 받지도 못했겠네요.”라고 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들 물건을 사는 것은 아주 좋은 착안점이다. 나는 늘 시장에 가서 한번에 1위안(약 170원), 2위안 정도 채소를 사면서 한 사람씩 탈퇴시켰다. 그 후에 또 다른 가게에 가서 채소를 사면서 한 사람을 탈퇴시켰다. 후에 많이 사니 사람들은 나만 보면 와서 채소를 사라고 하면서 “당신은 채소를 살 때 가격이나 양을 묻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덜 줄까봐 걱정되지 않나요?”라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나는 말한다. “뭘 물어봐요? 많이 주면 한 입 더 먹고, 적게 주면 한 입 덜 먹으면 되죠. 별 일 있나요?” 그러면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정말 다른 사람과 달리 도량이 넓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 채소 사러 갔다가 오전에 수세미외 2개를 사면서 한 사람을 탈퇴시켰다. 오후에 길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도 수세미외를 팔았다. 그를 구도하려고 나는 그한테서도 수세미외 2개를 사고 탈퇴시켰다. 집에 온 후 며느리는 이상해 하며 말했다. “어머님, 오전에 수세미외 2개를 사오셨는데 오후에 또 2개를 사오셨네요?” 나는 좋아보여서 2개 더 샀다고 말했다. 사실 며느리가 어찌 알겠는가? 이 수세미외 2개를 사서 곧 한 사람을 탈퇴시킨 것을.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가끔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보통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일심으로 상대방에게 똑똑히 알려주려고만 한다. 어느 한번,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 길거리가 시끌벅적해 큰 소리로 얘기했다. 정거장 옆에서 탈퇴시킨 후 그에게 진상호신부와 소책자를 주었고 그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떠나갔다. 그 후 반대방향으로 걷다가 정거장 다른 편에 순경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나와 그는 버스정거장 표지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나는 즉시 두 손으로 허스(合十)하고는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소리를 가로막아 주셨다.

한 곳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많이 하려고 욕심내지 않고 안전에 주의한다. 오늘 이 라인의 몇몇 가게에 들어가 진상을 알렸으면 그곳을 떠나 차를 타거나 걸어서 다른 곳에 가 진상을 알린다. 내일은 또 다른 곳에, 모레는 시골에 가서 진상을 알린다. 그리고 한동안 지난 후에 다시 돌아와 계속해 진상을 알렸다. 아직 알리지 못한 집을 기억한 후 연이어 찾아가 진상을 알렸고, 구도해야 할 사람들을 빠뜨리지 않았다. 마음과 생각이 바르면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가지(加持)와 격려를 해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자

끊임없이 법 공부와 연공, 발정념, 진상을 알리면서 심신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세 가지 일을 다 잘할 때 사부님의 법신이 내 눈앞에 나타나셨고, 금빛이 번쩍번쩍하셨다. 가부좌하고 연공할 때 가끔 다른 공간을 보기도 했는데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가 물씬 풍겼으며 동물과 식물들로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어떤 곳은 아무것도 없이 공백인 것을 보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여기에 가 사람을 구하라고 점화해 주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 하고 공백을 남겨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나는 최대한 날마다 법 중에 용해되려고 노력했고 늘 자신에게 인간 세상의 일체를 중히 여기지 말고 내려놓자고 일깨워주었다. 오직 대법과 중생구도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중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 수련인은 속인의 일체를 내려놓아야 하지만 동시에 대법도 원용해야 한다. 내 연령대 노인들은 대부분 각종 병에 시달려 여기저기가 아프고 다른 사람이 돌봐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아들, 손자들에게 밥을 해준다. 아들, 며느리에게 나는 “너희 엄마가 건강이 이토록 좋은 건 무엇 때문인지 너희들이 가장 잘 알거라 믿는다. 너희들도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길 바라며 대법 사부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들며느리, 손자손녀들은 모두 대법을 몹시 존경한다.

내가 진상 알리러 나가는 것을 그들은 종래로 막은 적이 없다. 작은아들은 종종 나에게 농담으로 “어머니, 이 가방 안에는 무슨 보물이 있기에 이토록 무겁나요?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까요?”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이건 보물단지이고 안에 든 건 모두 좋은 것들이야.”라고 말한다. 가끔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나는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대법을 수련하고 내 마음속에는 대법이 첫자리이다. 가끔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너희들 식사를 지체할 수도 있는데 미리 알고 있으렴.” 아들며느리, 딸과 사위는 모두 진상을 확실히 알고 삼퇴했다. 그래서 대법 속에서 혜택을 받아 직장생활이 모두 순조롭고 사업에 성공했다.

사람의 나이를 나는 종래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인간세상의 명리와 향락도 아주 담담하게 본다. 아들은 효도하려고 새 집을 사서 아늑하고 편안하게 인테리어를 한 후 나보고 들어가서 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고급단지가 번화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출입이 불편해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할 것 같아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인간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천당에 비할 수 없고, 인간 세상의 향락은 연공인이 정진하려는 의지만 소모할 뿐이라고.

날마다 나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어떤 수련생은 고생한다고 하지만 나는 고생으로 여기지도 임무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건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진상을 명백히 알고 구도받은 사람들을 보면 정말 너무 기뻤다. 만약 하루라도 나가 진상을 알리지 못하거나 잘하지 못하면 두 손을 허스하고 사부님께 말한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오늘 잘 하지 못해 너무 후회됩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 모두 사부님께 말씀드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연공하지 못할까 봐 아무리 더워도 나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이러면 쉽게 늦잠을 자지 못한다. 설날 이후, 아들며느리와 손자는 모두 우리 집에서 지냈다. 자녀들은 회사일이 바빠 가끔 아주 늦게 퇴근한다. 아침에 그들이 금방 잠들었는데 알람이 울리면 그들이 쉬는 데 영향 줄 수 있어 아침에는 알람을 설정하지 않는다. 나는 향락, 게으름을 적으로 여기는데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교란받기 때문이다. 그것에게 빈틈을 줘서는 안 된다. 밤 12시 발정념을 하기 위해 나는 보통 11시 전에 정공(靜功)을 연마하기 시작하고, 한 시간 정공을 한 후 일어나 얼굴을 씻고 물을 마신 후 정신이 나게 해서 발정념을 한다. 정사대전(正邪大戰)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정진하고 또 정진해서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갈 것이고,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이를 뽑다’의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갓 법을 얻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련생들이 권해서 보도원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수련생들을 조직해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이를 뽑다’에 관한 한 단락 법을 말씀하실 때 일부 수련생은 하하하고 웃으며 아울러 왈가왈부하기까지 했다. 이런 정황을 보고 나는 조금 화가 나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데 이야깃거리로 듣고 있고 엄숙하지 않군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리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수련은 바로 근본에서 집착심을 제거하면 무슨 관도 모두 넘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만약 사람의 방법으로 표면의 말만 보고 근본에서 자신의 사람마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정하게 개변될 수 없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련생들은 모두 말을 멈추고 조용하게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다. 바로 그날 한 수련생의 어린 딸이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오늘 법 공부하면서 나는 또 사부님의 ‘이를 뽑다’ 에 관한 한 단락 법을 배우면서 갑자기 이 단락 법의 또 한 층 내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대법제자의 정법(正法)수련과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해준 이른바 수련의 구별이 어디에 있는지를 개시해 주셨다는 것을 인식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배치해주신 정법수련은 마치 그 이를 뽑는 사람이 이를 뽑는 것과 같은데, 내재적인 근본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내재적인 근본 문제가 해결되면 표면의 일체 문제 가상은 사실 이미 해결했다. 이때 우리가 오로지 세간의 이치에 부합하여 손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전혀 무슨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안에서 밖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의 근본에서 철저히 해결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 사람이 사람의 ‘이를 뽑는’ 것은 그의 목적이 아니고 그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의 ‘약물’ 위력을 보게 하는 것이고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약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법수련 역시 이러하다. 수련과정 중에 부딪힌 문제에서 안을 향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근본 원인을 찾은 후 법에서 씻어내면 표면의 일체 문제 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가 오로지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세 가지 일은 아주 쉽게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행한 일체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법의 위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과정 중에는 사(私)와 ‘나(我)’가 없다.

그러나 구(舊)우주의 생명과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한 이른바 수련은 바로 그 양의가 ‘이를 뽑는’ 것과 같다. 외재적이고 강제적 수단을 써서 대법제자의 육신을 박해하고 대법제자에게 이른바 수련에서의 마난을 배치한다. 마난을 통해 외부에서 안을 향해 대법제자의 내재적 집착을 개변하는데, 목적은 대법제자로 하여금 이른바 수련제고를 제1위로 하고, 대법실증을 제1위로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작법은 대법제자의 내재적 근본 원인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며, 아울러 이런 작법은 사(私)와 ‘나(我)’가 그 속에 관통되어 있다.

나는 한 수련생이 나에게 자기가 박해 초기에 사악의 마귀굴에서 경험한 일을 말한 것이 기억난다. 나는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

어느 날 그녀가 감방 안에서 연공했다. 이때 재소자 반장이 그녀에게 말했다. 연공하지 마. 연공하면 신고할 거야! 수련생은 생각해 본 후 연공을 견지하지 않고 앉아서 자신을 찾았다. 내가 무슨 마음이 있어서 이 반장이 나를 연공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녀가 대법에 죄를 짓게 만들었는가? 수련생은 자신의 문제점을 찾았다. 그녀는 항상 이 반장이 눈에 거슬렸다. 수련생은 즉시 바로잡았다. 이때 그 반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180도로 바뀌더니 말했다. 여기서 연공해요, 누구도 신고하지 못해요! 수련생은 연공을 시작했고 그 반장은 수련생의 연공을 아주 집중해서 진지하게 보면서 또 내심에서 감탄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을 전에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이 공법은 진짜로 좋다!”

여기서 수련생은 안을 향해 찾았다.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니고 무슨 마난을 돌파하려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었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한 길에서 모두 이렇게 걸어왔다면 무슨 박해가 있겠는가? 우리는 한 길에서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대법제자를 성취하는 것이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대법제자를 성취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일부 수련생들이 문제에 부딪혀 안을 향해 찾을 때 모두 ‘자아’의 제고를 에워싸거나 혹은 무슨 마난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1위에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사(私)’와 ‘나(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낡은 법리 속에서 배회하게 되고 구세력이 배치한 일체 속에서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물론 수련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이 한층 한층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이전에 자신의 제고를 위해 안을 향해 찾은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시기 우리에 대한 법의 표준은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정법 노정은 이미 구우주의 최후, 가장 근본으로 추진되었고 대법제자의 수련 역시 최후 한 층의 껍질을 벗길 때가 되었으며 그 한 층의 껍질이 바로 ‘사(私)’와 ‘나(我)’로 구성된 것임을 인식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자신의 이전의 한차례 경험이 생각났다. 대략 10년 전에 나는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장거리 버스를 탔다. 차창 밖을 향해 바라보았는데 들판, 대지, 하늘 모두 그렇게 조용했고 사유도 천천히 청정해졌다. 이때 머릿속에 사부님의 설법이 들어왔다. “천지는 법이 만들었나니”[1] 그 순간 나는 한 층의 법리를 단번에 알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천지 만물 일체가 모두 대법이 만든 것이고 이루어진 것이면 내가 또 나의 생각, 나의 인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나의 일체를 모두 내려놓을 것이며, 대법이 나의 일체를 용련(熔煉)하게 할 것이다!

그 일각에 단전 가장 깊은 곳에서 쓰나미처럼 한 가닥 강대한 에너지 흐름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고 오로지 목놓아 울고 싶었다. 이때 나는 단전 부위에 진정한 자신이 마치 7, 8세 남자아이처럼 힘껏 밖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몸에는 얇디얇은 검정 투명막 같은 것이 한 겹 둘려 있었다. 나는 자신이 이미 속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곧 해탈되어 나올 것임을 느꼈다! 차에서 내린 후 나의 전반 세계가 모두 변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일체 물질 속의 쩐·싼·런(真·善·忍)을 느끼게 되었고 그 한 층 얇은 막이 바로 ‘사(私)’와 ‘나(我)’였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지금도 자아 제고를 위한다는 이러한 인식을 안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는다면 전혀 제고해 올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염두를 내보내는 것은 바로 진정한 나를 감싸고 있는 최후 그 한 층의 막, 바로 그 ‘사(私)’와 ‘나(我)’가 내보낸 것이지 우리의 본성이 내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아(眞我)는 대법의 한 개 입자이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생명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는 생명이지 이러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인식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私)’와 ‘나(我)’ 그 한 층 껍질이 이른바 수련을 하는 것인데, 즉 우리 진아(眞我)의 수련을 가로막는 것이고, 진아(眞我)는 오히려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 최후 그 한 층 껍질은 우리가 이 시각 대법의 우리에 대한 요구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구우주 최후의 일체에 의해 억제되게 하고 걸어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구우주 속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대법제자의 진정한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사(私)’와 ‘나(我)’ 이 한 층 껍질이 오늘날 대법제자가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주된 장애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것을 제거해야 비로소 사부님과 신(新)우주가 원하는 원만으로 걸어갈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기연은 한순간’




진정한 초탈로 나아가다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줄곧 고되고 힘들게 수련했으며 마난이 끊이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안을 향해 집착심을 찾아봤지만, 항상 초탈해 나올 수 없었다. 지금 한 가지 이치를 갑자기 깨달았는데, 나는 줄곧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외부 환경의 변화를 매우 강조했다. 외부 환경이 좋게 변하고 일이 양성적으로 발전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하면 나도 관을 넘어간 것이라고 늘 여겼다.

사실 이는 잘못된 인식으로 들어간 것인데,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추구하는 것이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진정으로 관을 넘는다는 것은 자신의 씬씽(心性)이 제고를 얻는 것인데, 어쩌면 외부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좋지 않게 대할 수도 있으며, 일도 양성적인 발전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씬씽이 그 속에서 제고되었고, 외부 환경이 어떻든 자신은 시종일관 자비롭고 상화한 심태를 유지하고, 자비와 선념(善念)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과 일을 대했다. 그리고 더는 주변 사람과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이 한 관을 넘은 것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병업에 있는 수련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신체가 좋아져야 이 한 관을 넘은 것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했을 수도 있다. 병업에 있는 수련생을 돕고 발정념을 해주는 수련생도 어쩌면 병업에 있는 수련생의 신체가 좋아져야 비로소 관을 넘은 것이라고 너무 강조했을 수도 있다. 사실 병업 중의 수련생이 진정으로 관을 넘는 것은 자신의 신체가 어떤 상태이든지 견정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자신의 신앙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경건함을 품고, 힘닿는 데까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신의 신체 상황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신체가 좋든 나쁘든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다. 설령 사망에 직면했더라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고, 사부님에 대해 비할 바 없는 경건함을 품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련생이 마음의 감옥에서 나오게 돕고 마음의 자물쇠를 여는 것이지, 구체적인 일이나 병업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수련생의 마음이 그 속에서 승화를 얻었다면 이미 관을 넘은 것이고, 그 외의 것은 우리 대법제자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행복, 사업의 원활, 신체의 건강, 총명하고 효성스러운 자녀, 속인 중의 성취, 이것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고 우리는 추구하지 않으며, 이것을 한 사람이 수련을 잘하고 못한 표준으로 삼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가장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가장 복잡한 환경에서야만이 높은 공을 수련해 낼 수 있다”[1] 우리가 현재 하는 것은 사람들 속에서 수련해 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는 것이 아니다.

인류사회는 복잡하고 번잡하며 난상(亂象)이 뒤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업력윤보 속에서 자신의 업을 갚는 것으로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자신이 직면해야 할 곤란이 있다. 수련하는 사람은 곧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해 내야 하며, 더러움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복잡한 것은 외부 환경이고, 자신의 마음은 갈수록 깨끗해지고 초탈해지며 마음이 더는 외부에 이끌려 움직이지 않게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2]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하여 창궁에 오르네 자비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3]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속인에서 초탈해 나오면, 속인의 일체는 이미 자신을 교란할 수 없고 자신을 이끌리게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중생이 모두 고통스럽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진심으로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도 더는 개인의 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중생이 대재난을 넘어 미래로 진입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층차의 한계가 있으므로 올바르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경지(境界)’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원만공성(圓滿功成)’



‘제로화 운동’ 소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추판(出凡)

[밍후이왕] 최근 악당 사령(邪靈)이 최후의 발악으로 전국 범위에서 또다시 ‘제로화 운동’을 일으켜 소란을 피웠습니다. 주변 수련생 두 명이 소란을 당했는데 한 명은 압력을 받아 강제로 서명했고 한 명은 가산 몰수와 납치당한 뒤 정념으로 돌파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대법 서적과 컴퓨터 등의 물품을 잃었습니다.

주변 수련생으로서 이 일은 비록 저에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형적인 압력이 똑같이 사람을 숨 막히게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걱정하고 왜 이렇게 두려워하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이리저리 찾다 보니 아주 깊은 곳에 파묻혀 꺼내기 부끄러운 문제가 폭로되어 나왔습니다. ‘나’는 잡혀가서 감당하지 못하고 사부님과 대법을 배신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수련하다 감당하지 못하면 사부님을 배신할 준비를 하려는 건가? 자신과 고통을 내려놓지 못하고 생사(生死)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아픈 것과 고생이 두렵고 괴롭힘당하는 것이 두려워 사악에게 괴롭힘당할 때 만약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하고 있을 것이다.”[1]라고 말하는 수련생도 있는데 비교하면 정말 부끄러워 진땀이 나고 낯이 뜨겁습니다. 저 자신의 수련 상태가 어찌 이 지경인지 용서가 안 될 정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 자신보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법리를 알지만 말입니다. 정법이 곧 끝나가는데 아직도 이러는 것이 수련을 진심으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 저의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전에는 저 자신이 수련을 그래도 괜찮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진하진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몰아붙이면 어쩔 수 없이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대로 하고 마음을 전부 내려놓아 난관도 곧 지나가게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늘 질질 끌고 집착하는 마음을 숨기고 없애기 싫어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을 보호하는데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란을 당하다 정념으로 돌파한 수련생과 교류했을 때 그녀도 제 말에 공감했습니다.

사실 사악이 왜 감히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에게 찾아왔을까? 한편으로는 사악이 사악해서 그렇지만 다른 한 편은 자신에게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소란 사건의 영향으로 단체 법 공부가 잠시 정지됐습니다. 정체적인 수련 환경을 잃으니 며칠간 풀이 죽었습니다. 사상업(思想業)은 미치듯이 온 머릿속을 차지했고 법 공부, 연공, 진상을 알리는 것에 모두 영향받았습니다. 정정당당하게 나가서 진상하지 못하게 됐는데 사실 이것도 사악의 속임수에 걸린 것입니다.

사악은 바로 이 ‘제로화 운동’을 통해서 수련인을 망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소원은 우리를 성취하여 우리로 하여금 중생을 구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정중히 되물었습니다. ‘하세 당시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아픈 것이 두렵고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물론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아(眞我)가 사부님을 따라 하세했을 때 틀림없이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구세력이 후천적으로 주입한 그런 관념들과 업력(業力)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정말로 진아(眞我)가 아닙니다!

오늘 ‘전법륜(轉法輪)’ 제6강을 공부했는데 사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두려워하기만 하면 곧 공포심으로서 그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당신의 집착심이 나오면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두려워할수록 더욱 병과 같이 되는데, 당신의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며, 당신에게 이번 교훈을 받아들이게 하여, 공포심을 버리고 제고해 올라오게 한다.”[2]

수련생이 가산을 약탈당하자 저는 곧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 한 그루 우설란(牛舌蘭)처럼 사악이 곧 저를 잡아갈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이 떨려 사악의 속임수에 걸렸습니다.

다행히 저는 드디어 두렵고 무섭고 의기소침하고 풀이 죽었던 마난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 외출해서 진상을 알렸을 때는 효과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녁 6시 발정념을 했을 때 자신이 마치 지구 밖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보낸 공이 삼계와 대륙 전체를 덮어 씌었고 ‘제로화 운동’과 다른 공간에서 사람을 조종하여 나쁜 짓을 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가 철저히 해체되게 제거했습니다. 발정념하는 에너지장이 아주 강했습니다.

박해와 수련은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사람 마음과 집착심이 자기가 신(神)의 일을 하는 것을 제한한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부님께서 이번 일을 통해 자기를 깨끗이 하고 제고해 올라오게 하신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 층차에 한계가 있으므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大曝光)’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대법에 대해 견정함은 중생 구도를 위해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5년 겨울에 법을 얻어서 지금까지 벌써 26년이 지났다.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나는 베이징에 간 적이 있고 감옥에 간 적도 있다.

대법이 부당하게 박해받는 속에서 용감히 나섰지만, 내 마음속에는 줄곧 불안한 염두가 맴돌았다.

나는 자신이 박해로 인해 전화(轉化)할까 봐 걱정하고 자신이 대법을 확고히 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자신이 떨어져 내려갈까 봐 염려했다. 나는 그동안 이런 근심들 역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초 위에 세워졌음을 깨닫지 못했다.

2021년 중공 사당(邪黨)은 ‘제로화’운동으로 대법제자에게 사서(四書)에 서명하게 했다. 사당은 대법제자들이 대법에서 이탈해 대법제자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다.

대법제자의 사명은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서에 서명하는 것은 대법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과연 중생들이 타협한 생명에게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순간 나는 대법제자가 대법에 대해 확고하면 중생들이 대법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느껴, 중생 구도에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것만이 아님을 인식했다.

나는 견정함 배후에 있는 위사위아를 인식하고 그 마음을 제거해 타인을 위한 기점으로 바로잡았다. 마침내 대법을 향한 견정함은 순수해지고 흔들리지 않으며 비할 바 없이 넓어졌다.

타인을 위한 것은 신(新)우주의 근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점을 바르게 놓아야만 비로소 대법을 수호하는 일에서, 중생 구도에서 더욱 바르게 그리고 끝까지 걸을 수 있다.

이상은 대법에 입문해서 수련한 개인의 얕은 인식이므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정념이 나오면 사람 마음이 사라진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모순 중에서 관을 넘은 작은 체험을 수련생들과 나누려 한다. 며칠 전 나는 가족 수련생인 아내와 모순이 일어났다. 당시 내가 아내를 배려하지 못해 아내는 나의 냉대에 매우 화를 냈다. 나 역시 사람 마음에 이끌려 너무 억울했고 무조건 안으로 찾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평소 모순이 일어나면 나는 항상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완화하고 자신을 바로잡았다. 그날 나는 화가 나 불평하는 마음으로 법을 보고 있었는데 아내 수련생이 또 다가와서 시비를 걸었다. 결국 아내는 좋지 않은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화를 내며 나가 버렸다. 나는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나가버린 아내에게 더욱 화가 났다.

마음이 불편한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내려놓고 자신을 변명할 이유를 찾아서 아내에게 자신을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이때 갑자기 나는 이런 사람 마음의 모순 속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사람 마음 중의 각양각색의 사람 생각, 각양각색의 사상 내원이 모두 당신을 교란할 것이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부류의 생명 상태에 부합되든, 그 부류의 생명은 즉시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의 복잡한 정도, 그것은 사람의 언어로 형용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층차(層次) 중에도 아주 많은 각종 요소로 구성된 종적인 공간과 횡적인 공간이 있다. 우주 중의 부동한 입자로 구성된 공간 중에는 또 아주 많은 각종 유형(類型)의 원소로 구성된 각종 공간이 있고, 입자 자체의 특성과 같지 않은 유형(類型), 같지 않은 크기의 입자로 구성된 각 부류의 생명이 있는데, 그 크고 작은 생명의 종류는 무량무계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 실은 단지 당신의 집착 때문에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켰고,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집착을 강화했다.”[1]

나는 사부님의 법리에서 깨달았다. 나를 화나게 한 이런 관념과 사상이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않자 그 계략에 빠져들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불평스럽고 화나던 감정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1초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져 마치 모순이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살짝 미소 지었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수 있었다.

20여 년을 수련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이런 변화의 미묘함을 아주 깊게 느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나의 사상이 대법에 부합함을 느꼈다. 대법의 위력이 내 몸에서 체현되고, 그 변화가 아주 뚜렷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층 한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바로 이런 다 제거하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기에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 마음의 교란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각성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덕이고, 이것이 곧 대단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걷는 길이다.”[2]

이어 나는 주동적으로 아내 수련생과 교류했다. 내 사상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법리에서 자신의 인식을 말한 후 진심으로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았다. 교류를 마친 후 아내 수련생의 마음도 점차 평온함을 회복하면서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았다.

우리의 수련은 마지막에 이르렀기에 남아 있는 집착과 관념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순이나 난관 속에서 우리가 수련자임을 생각하고 사람의 관념과 사상과 집착에서 뛰쳐나오면, 순간 바르지 않는 모든 요소는 해체된다.

대법제자가 중국에서 사악한 박해를 받거나 각종 고난과 난관에 부딪혔을 때 우리의 사상이 대법에 부합하거나 대법의 요구대로 한다면 우리 몸에서 대법의 위력이 체현되고 신기함이 나타나 대법을 실증하고 수호할 수 있으며 대법에 동화할 수 있다.

이상은 수련 중에 깨달은 옅은 인식이므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수련하면서 인식이 끊임없이 승화하다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씬씽(心性)이 줄곧 제고되고 인식도 승화된다. 그 속의 현묘함은 정말로 착실한 수련에서만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언어로는 그중 한두 가지만 말할 수 있다. 아래에 자신이 수련 후 체득한 것을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속인과 수련인의 구별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책임지신다

전에 수련생이 교류할 때 말한 적이 있다. 수련생이 한 어린이 수련생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속인이고 어떻게 해야 수련인이지요?” 어린이 수련생은 말했다. “속인은 신이 책임지지 않고, 수련인은 신이 책임져요.” 그렇다. 많은 어린이 수련생은 확실하게 보았다. 수련생마다 사부님의 법신이 보호해 주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매 수련생의 몸 뒤에는 모두 나의 법신(法身)이 있으며 또 하나만이 아니므로 나의 법신이 이런 일들을 할 것이다.”[1]

수련인은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2] 속인은 모순이 생기면 보통 밖으로 보며 상대방을 질책하고(특별히 수양이 좋은 속인은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고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지만 속으로 자기는 그와 견식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수련인은 어떤 모순에 부딪히든 심지어 상대방이 자신을 억울하게 대하고 상대방이 분명히 잘못해도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법에서 수련인에 대해 요구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셨기 때문이다. 모순이 생기면 자신이 제거해야 할 사람마음이 있는 것이다. 한 차례 씬씽을 제고할 기회다. 그러므로 일에 부딪히면 자신을 보는 것이 수련인이 속인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이 모순에 부딪힐 때 씬씽을 지키지 못하고 노여워하거나 화를 내면 다른 수련생은 수련인 같지 않다고 말한다.

수련인은 명(名), 이(利), 정(情)을 담담히 봐야 한다

명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속인 생활의 목표인데, 걱정되고 깊이 정에 빠져 스스로 헤여나오지 못한다. 명, 이, 정 원한(名利情仇)을 추구하면 백 년 후 수포로 돌아간다. 수련인은 법리상에서 알고 있다. 사람의 일생은 업력윤보이다. 명, 이, 정, 원한은 모두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미혹 속에 있고 속인의 염색항아리에 있기에 아직 명, 이, 정에 집착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면서 점차 담담하게 보게 된다.

수련인은 생명의 본질이 이미 바뀌었다

대법 수련은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명쌍수 공법, 그것의 에너지는 신체의 모든 세포 중에 저장된다.”[1] “당신 신체의 모든 세포는 모두 이런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된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의 신체는 아직도 오행으로 구성된 것인가? 아직도 우리 이 공간의 물질인가? 그것은 이미 다른 공간에서 채집한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것이다.”[1] “속인은 외관상 당신의 변화를 보아내지 못하는데, 그의 분자세포는 여전히 원래 그런 구조와 배열순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 에너지가 개변(改變)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때부터 자연 노쇠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세포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청춘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수련과정 중에 사람은 젊어 보일 것이고, 최후에는 거기에 고정된다.”[1]

법에서 알게 됐는데 수많은 대법 수련인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서도 실증할 수 있다. 수련인의 매 세포는 모두 다른 공간에서 채집한 고에너지 물질로 구성됐다. 그러므로 대다수 수련인은 얼굴이 갈수록 젊어진다. 속인은 여전히 생로병사의 규칙에 따라 사람이 젊던 데서 늙어간다. 서로 다른 나이이면 얼굴도 서로 다른 변화가 있다.

대법 수련인과 속인은 생명의 귀착점이 다르다

속인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다투다가 백 년 후 어떤 업력을 지었으면 왠선(元神)에 따라 육도윤회하고 윤회 중에 자신이 지은 업을 갚는다. 대법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에서 고생하고 소업하는 과정에 덕을 쌓고 공이 자라며 성명쌍수(性命雙修)하고 부동한 층차에서 원만하며 윤회에서 벗어나고 삼계에서 벗어난다.

2. 진짜 나(眞我)와 가짜 나(假我)를 분간

자기의 수련에서, 수련생과 접촉하거나 속인과 지낼 때 우리는 종종 자기의 표현, 수련생의 표현, 속인의 표현이 확실하고 진실한 자신, 진실한 수련생과 속인의 본래 면목이라고 간주한다. 사실 선천적인 나(진아)는 진선인에 동화됐고 선한 것이고 위타(爲他)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최초 생명은 우주 중에서 온 것이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층차 중에서 또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변해 그들은 또 있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 아래로 떨어져 최후에는 인류 이 한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1]

사부님의 법에 대조해 나는 깨달았다. 이기적인 마음이 있어서 사람이 층층이 아래로 떨어졌고 층층이 떨어지면서 선천적인 생명은 진선인에서 벗어난 사상과 관념에 오염됐고 거의 선천적 생명과 일체가 됐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살아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이렇게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면,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원망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으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일으킨다.”[3]

진짜 나와 가짜 나를 분간할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혹은 수련생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건 속인이 무슨 말을 하건 무엇을 하건, 악한 것이면 진선인에서 빗나갔기에 이는 선천적인 자신, 수련생, 속인의 본래 면목이 아니고 기타 생명에 통제된 것이다. 자신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노력해 법에서 바로 잡고 악한 염두를 제거하고 선한 어투와 선한 행동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 수련생의 선하지 않은 표현에서 먼저 안으로 자신을 찾는다. 수련인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셨다. 그중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집착심이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수련생 혹은 속인의 표현을 통해 당신이 안으로 찾아 층차를 제고하게 하시고 동시에 수련생을 이해하고 선의적으로 그에게 알려준다. 자신을 닦는 동시에 법에 부합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수련생을 질책, 원망하지 않는다. 속인에 대해 연민이 생기고 그의 선념을 불러일으키며 원한으로 원한을 갚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3. 수련인의 길을 누가 배치했는지 분명해야 한다. 자기? 수련생? 가족? 속인? 아니면 사부님이신가?

우리는 자주 이런 경향이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떠어떠하다. 머리를 쥐어짜며 자기 생활이나 수련 방면의 일을 배치한다. 주도면밀하게 잘 배치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는 수 없다는 느낌도 있는데, 가족과 기타 속인의 압력하에 그들의 말에 따라 한다. 때로는 수련생에게 어떤 번거로움이 있으면 친절하게 알려주거나 수련생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수련생을 위해 안타까워하기까지 한다. 수련인의 길은 도대체 누가 배치한 것인가?

법리에서 수련인의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신 것임을 안다면 자신이 만난 난과 번거로움에 대해 걱정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이것은 모두 좋은 일이며 사부님께서 나를 제고하기 위해 배치하신 것이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를 것이다. 수련인은 수련인의 표준, 법이 있다. 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고 법의 요구에 따라 하면 된다. 수련생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가운데 있기에 우리는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은 상태에 대해 조급해할 필요가 없고 급하게 그에게 지적해 주고 그를 도와줄 필요도 없다.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급히 남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은 랜턴으로 남을 비추며 자신을 닦지 않는 것과 같다. 수련생의 부족한 점과 그가 법에 부합되지 않은 상태는 사부님께서 나에 대해 점화해 주시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거울이며 나의 집착심을 비춰주신 것이다. 나를 깨닫게 하고 나를 닦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부님의 질서정연한 배치로서 나를 제고하게 한다. 누가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는 사부님께서 모두 똑똑히 알고 계신다. 수련생이 만난 번거로움에 대해 조급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수련생이 깨닫고 제고해 올라가게 한 것으로 수련생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수련생의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보살펴주고 계신다. 난에 처한 수련생에 가장 좋은 도움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수련생이 바른 장에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련생은 법에서 깨닫고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점화해 주신다. 사악한 생명이 수련생을 교란하면 예를 들면 수련생이 법 공부를 할 때 졸리게 하거나 수련생이 불안할 때 우리는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서 수련생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을 청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기 때문이다.

4. 시시각각 수련 속에 있고 일마다 자기가 제고할 요소가 있다

매 시각 우리가 수련할 요소가 있다

아침 연공과 발정념 시간에 깊이 잠들었을 때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가? 이것은 자신의 안일심을 제거할 때다. 밥을 먹을 때 앞에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졌는데, 이건 좋아하고 저건 별로라 하면서 입맛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려 했는가? 자신은 수련인이고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는가? 수련인의 가족이 무례하게 하거나 성처 주는 말을 할 때 그들이 내 수련을 돕는다고 생각했는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집착심을 찾고 심성 제고하게 배치해 주신 것이다. 그들은 법과 인연이 있고 사부님께서 나를 잘 닦고 그들을 구도하게 베치하신 것이다. 노년의 가족 수련생이나 다른 수련생을 보고 당신이 그들은 연세가 많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노년 수련생을 늙었다고 본 것이고 수련인으로 본 것이 아니다. 당신이 비좁은 버스에 탔을 때 자신은 수련인이고 중생구도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인연이 있는 미혹 속의 한 차 가득한 사람에게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아는 것을 방애하고 생명 구도를 방애하는 사악한 모든 생명 요소를 청리하는 강대한 발정념을 했는가? 세 가지 일을 하거나 발정념을 할 때 주이스[主意識]가 명석하게 신통으로 악을 제거했는가? 법 공부가 수만 세고 진도만 나갔는가, 법에 용해돼 법의 박대정심한 내포에 깊게 매료됐는가? 연공할 때 ‘선선허이[身神合一]’하고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연공했는가? 아니면 몸은 움직이고 사상은 딴 데로 갔는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기점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위덕을 쌓기 위해 하는가? 매 시각 우리가 수련할 요소가 있다.
일마다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왕 수련인 이상 우리의 수련 이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4] 사부님께서 우리가 잘 수련하게 배치하시고 제고하게 하셨다.

우리가 체면에 집착하고, 명에 집착하면 우리는 대중 앞에서 치욕을 당하거나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수련생과 속인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익에 집착하면 우리를 속이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혹은 이익에서 손실을 보는 일이 생긴다. 이때 우리가 안으로 찾아 명을 구하는 마음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육친정에 집착할 때 육친은 일마다 순조롭지 않다. 이때, 사악한 생명이 틈을 타게 될 때 역시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시어 우리에게 빨리 마음을 바로잡게 하고 층차를 제고하게 하신다. 질투심이 있으면 대가를 치른 것에 대해 배은망덕한 일이 발생하고 혹은 상대방의 명확한 질투심이 우리 눈에 보이게 한다. 우리가 어떤 마음이 있으면 수련에서 그에 상응하는 일이 나타난다. 여기에 구세력의 교란이 있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살펴 배치하시며 장계취계가 있는데 우리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법에 따라 대조하고 제때 안으로 찾으면 제고하는 좋은 기회이고 좋은 일이다.

이상은 개인의 씬씽이 처한 층차에서 몇 가지 체득한 것이니 부족한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어린 수련생의 지적에서 얻은 교훈


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들은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대법을 접촉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련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남편은 수련하지 않고 무신론과 ‘과학’에 중독돼 그의 관념이 아들에게 주입됐는데 어린아이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끼쳤다. 그 뒤 나는 종종 어린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했다. 다행히 아이가 수련의 길을 천천히 따라 올라왔는데 이에 대해 제자는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 늘 내 일부 문제를 지적했다.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아들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시는 듯했다. 나는 수련생 여러분께 참고가 되도록 몇 가지 항목을 써보았다. 잘못된 곳은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1)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가 발생한 후 아들은 매우 조심하며 외출할 때 마스크를 썼다. 나는 아들에게 “너는 대법제자이고 대법제자는 스스로 업력과 세균을 없앨 수 있으니 괜찮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저는 수련을 그다지 잘하지 못해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책임지신다”고 알려줬다. 그런 후 나는 아들이 더 이상 ‘과학’의 각도가 아닌 수련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어느 날 나는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며 배웠다. “우리는 또 속인에게 약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당신의 깨달음이 부족하여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또 당신이 수련하므로 약을 먹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말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았다.”[1] 그날 아들과 어느 수련생이 여전히 약을 먹고 있는 문제를 교류했는데, 내가 아들에게 곧바로 말해줬다. “봐라, 사부님 말씀에 약을 먹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 약 먹는 것은 마음대로 하면 된다!”

아들은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공격적인 태도로 사부님 말씀을 해석하세요?”

나는 즉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자신의 어조와 관념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나 자신이 맞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원래부터 항상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말하면서 자신의 어조와 좁은 이해의 틀을 보호하기 위해 사부님의 홍대한 내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감동해 눈물 흘리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이렇게 사부님의 법을 자신의 관점을 실증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너무나 불경한 것이다! 이것은 대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수년간 나는 늘 이런 식이었는데 어째서 인식하지 못했던가? 정말 부끄러웠다.

(2)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수련생은 당문화(黨文化)가 좀 심한데 수년간 적지 않게 고쳤지만 교류 중 그녀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말이 빨라져, 결국 그녀가 속 시원히 말을 다 마칠 때까지 다른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수련생이 나에게 전화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자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며 마치 기관총처럼 ‘따따따’ 쏘아붙였다. 나는 그녀와 몇 마디 논쟁하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 옆에 있던 아들이 말했다. “너무 크게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나는 비로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말할 기회가 없어”라고 변명했다. 아들이 말했다. “상대방 목소리가 크더라도 큰 소리 내시면 안 돼요. 차분하게 절제하고 심정이 편안해야 해요.”

나는 즉시 이해했다. 아들이 옳았다. 사실 수련생은 내 거울이 아닌가? 모두 당문화의 산물로서 목소리가 커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소리, 말의 속도라도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그 수련생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십보백보’에 불과했다. 나 자신에게 있던 당문화를 알려준 그 수련생과 어린 수련생에게 감사했다.

(3)
나는 새해(2021년) 비교적 안정적으로 1개월, 혹은 더 짧은 기간 동안 책 전부를 한 번씩 암기하고 복습하게 됐다. 사람들과 이에 대해 교류하는 시간은 매우 적은데 일부 수련생과 법암기 경험을 교류한 뒤 하는 일을 잘못했을 때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법을 외워도 이렇다면 아무 소용없어요”라거나 “당신은 이것도 못하면서 법을 외우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면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단지 부정적인 교훈만을 배운 사례다.(집착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법 외우기를 교류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임)

어느 날 나는 아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법을 외운 후 내가 모범인물로 하는 것마다 모두 잘해야 하는 것처럼 변했어”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때 물론 안으로 찾지 않았고 나에게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아들이 말했다 “사람마다 자질이 달라요. 어머니가 법을 잘 외우셔도 몇 번 읽은 다른 사람이 이해를 더 잘할 수 있어요. 사람마다 기점과 오성(悟性)이 다르기 때문이죠. 어머니가 법을 외우려고 노력하신 것은 단지 경건하게 정성을 드렸다는 것을 설명할 뿐 다른 것은 없어요.”

나는 듣고 입으로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실망했다. 나는 대법에 빨리 동화하기 위해 수년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법을 외웠다. 그런데 법을 방금 배운 사람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의 과시심이 장난친 것이었다. 법을 외워 과시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게 하려고 생각한 이런 마음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하고 나에게 ‘고초’을 겪게 한 것이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수련교류 발췌


구역 담당 경찰과의 이번 담화를 통해 저는 ‘협력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결함을 찾았고 대항했던 마음을 포용하고 자비롭게 돌렸으며 협력하지 않는 것은 표면적으로 정면으로 대항하여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로 협력하지 않는 이치를 말하여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고 자발적으로 각성하여 깨닫게 하며 더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을 자비롭게 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로화’의 음모를 간파하여 대법에서 승화하다’

이 일에서 저는 자신이 장기간 자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았습니다. 더는 승화하지 못하는 장애는 바로 그 일 자체에서 벗어나 100% 자신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예전에 늘 타인에게서 찾으면서 동시에 자신도 찾았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서 많이 찾았고, 타인에게서 더 많이 찾을 때도 있었습니다. ‘타인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덮어 감추기까지 했으며 마치 남이 잘되기를 위한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교활한 사람 마음인가요? 이 몇 년간 한 번씩 기회를 낭비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거듭되는 갈등 속에서 모두 밖을 향해 보고 있었던가요!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오직 100% 안으로 찾아야 비로소 진정한 수련입니다. 조금이라도 밖으로 보면 모두 진정하게 자신을 닦은 게 아닙니다. 오로지 100% 안으로 찾아야 비로소 겸손할 수 있고 진상을 볼 수 있으며 법리가 드러나고 경지가 승화됩니다.
—‘100% 자신을 닦으면 참으로 좋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 속인이 무술을 해도 부체는 두려워하는구나.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데 아이의 이런 바르지 않는 상태가 어떻게 대법제자 앞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발정념을 할 때 일념을 더했습니다. ‘대법제자의 가족도 조사정법(助師正法)하러 온 것이다. 법 실증을 교란하는 모든 요소는 반드시 해체돼야 한다. 누가 우리 집 공간에 들어오면 나갈 수 없고 전부 해체한다. 대법제자와 가족을 박해하는 사악은 감히 오지 못한다.’ 제가 이 일념을 내보내자 아이는 갈수록 바른말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게임을 하지 않겠어요. 이 나쁜 것에 빠지면 그들과 똑같아져요. 저는 바로 잡겠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대법이 신기하고 정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법이 아니었고 발정념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스스로 게임을 끊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생각을 바르게 하자 아이도 바르게 변했다’

몇십 년 이래, 희망 속에서 실망하고 실망 속에서 고통스러웠습니다. 정속에서 발버둥 쳤습니다. 남편이 저의 일생을 망쳤고 제 삶의 꿈을 망가뜨렸다고 미워했습니다. 저는 온유하고 덕과 재능을 겸비한 숙녀가 되고 싶었고 자신의 남편은 저를 돕고 지지해주며 저를 도와 제 꿈을 실현하게 해 줄 사람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다음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 속세에서 이 정을 붙안고 깨어나 깨우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무엇이 제 근본적인 집착일까요? 수련을 통해 자신을 완벽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 바로 저의 근본적인 집착입니다. 저는 예전에 줄곧 자신에게 근본적인 집착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제 드디어 이 극단적인 이기심, 자아의 근본 집착이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배후에 은폐돼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해체해야 합니다. 제고한 후, 다시 남편을 보았습니다. …… 중국이라는 이 분뇨 구덩이 속에서 간고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하는 과정에서 저는 불법적으로 두 번이나 수감됐었고 남편과 가족에게 매우 큰 압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줄곧 저의 대법수련을 확고히 지켜주었고 지지해주었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반대한 적이 없었으며 이 마음은 마치 금처럼 귀했습니다. 이로써 저는 남편도 분명 일반적인 생명이 아니라 금생에 저와 한 가족이 된 주요 목적은 속인의 삶을 어떻게 좋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대법의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 대법제자로서 저는 마땅히 정법수련의 입장에서 자신이 부딪히는 모든 사람과 일을 보고 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일(물론, 대법을 파괴하는 사악 제외)은 모두 우리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수련 제고를 돕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당연히 그들이 잘되기 바라는 태도에 서서 자신을 수련하여 바로잡아야 그들은 비로소 그 과정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됩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고 근본 집착을 찾다’

딸의 성장과정을 반성해보니 저는 자신이 많은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대법을 백으로 삼은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법공부를 하는 것이며 대법은 아이를 평안하고 무사히 순조롭게 성장하도록 보호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법을 이용해서 사람들 가운데서의 안일함을 구하여 얻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딸도 줄곧 법공부를 했지만,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비록 딸은 ‘전법륜’을 여러 번 읽었고 법리도 많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딸은 결코 진정으로 수련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진정으로 수련으로 걸어 들어오지도 못했습니다. …… 생각해보면 한 생명이 대법제자의 집에 태어난 것은 법을 얻기 위한 것이고 구도 받기 위한 것이지만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함으로써 아이를 속인 가운데서 망쳤습니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그것은 얼마나 큰 죄인가요!
—‘수련은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아이를 이끌어주다’

1204 한글명혜주간 제795호 【수련교류】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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