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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72호 【수련교류】  
   2021-05-26 12:26:54 | 조회 : 554

한글판 제772호



수련교류

비바람 치는 21년간 직장에서 법을 실증하다 
밍후이왕 대륙종합소식을 보고 생각한 것 
그 ‘제로화’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견정함이다 
수련인의 마음으로 속인 형식의 모순을 대하다 
당(黨)문화를 제거하여 숨막히게 말하지 않다 
기술 담당 수련생과 하나의 정체를 형성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바른 믿음을 수련해 내다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비바람 치는 21년간 직장에서 법을 실증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떤 사람들이 파룬따파 수련생으로서 내가 어떤지를 우리 학교 교장에게 물었을 때,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나를 이르는 말)는 총명합니다.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지 마세요. 당신은 그녀를 바꿀 수 없어요.”

한 교직원은 말했다. “그것은 그녀의 신앙 자유이고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파룬궁이) 좋지 않다면 누가 수련하겠어요?”

또 다른 직원은 내가 “직무평가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중국공산당 지지 관련 제1조에서 점수를 모두 잃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점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우리 학교 지도자들의 태도는 다른 직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도 내가 수련하는 파룬궁을 더 지지하게 되었다.

다음은 지난 21년 동안 내가 우리 학교에서 대법을 실증한 이야기이다.
* * * * * * *

나는 1999년 7월부터 교편을 잡았다. 보름 후, 중국공산당이 전국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신(新) 수련생이었고 이 도시에서 다른 수련생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혼자서 천안문 광장에 갔다.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부님! 제발 도와주세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박해의 시작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학교 교사들은 걱정이 컸다. 중국공산당의 선전에 현혹된 한 직원은 1999년 4월 25일 평화청원의 책임을 수련생들에게 돌리며 말했다. “당신들은 청원하러 천안문 광장에 갈 수 없다! 마음 내킨다고 어디든지 가서 청원할 수는 없다.” 나는 설명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부에 말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나를 공격했고, 목소리를 높여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나는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원칙에 따라 자신을 차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내가 맞서 싸우지 않고 있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소동을 듣고 교장에게 개입해달라고 했다. “됐어요. 그만합시다.” 교장 선생님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말했다.

그 후, 지역 경찰이 교정에 자주 나타났다. 그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왔다”라고 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나의 안전을 걱정했다. 나는 항상 파룬따파의 가르침을 기억했기 때문에 경찰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우리의 대화는 간단했다. 나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시다시피 당신의 고향에서 이 도시로 호구를 정식 전입하지 않으면 계속 임시직이라며 내가 언제든지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당신과 학교가 상부로부터 받는 압박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의 지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나는 천안문 광장에 가서 현수막을 펼쳤고 일주일 동안 구금되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군 주택가에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우리 학교 사람들이 구치소로 와서 나를 데리고 나와 나는 가택 연금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내 대법 책을 가져갔고 사람을 지정해서 매일 내 거처를 방문하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들이 우리를 나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어떻게 좋은지를 알릴 수 있고, 오직 선한 일면으로 그에게 이치를 말해야 한다.”[1] “우리는 착한 마음씨를 말하고 선심(善心)으로 남을 대한다. 나는 늘 이런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고 남과 말하면서 남에게 그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그에게 무엇을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1]

나는 이 말씀을 명심했다. 누가 와도 피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그들에게 파룬따파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고, 수련에 대한 나의 기쁨과 내가 깨우친 원리를 나눴다. 학교 직원들은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고, 종종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일주일 내내 배추를 먹고 살면서 학교 식당에서 음식을 사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종종 식료품을 가져와서 함께 요리하고 먹었다. 파룬따파에 대해 이해한 후, 그들은 내가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그들 중 몇몇은 ‘전법륜(轉法輪)’을 읽겠다고 책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다른 사람이 나의 믿음에 대해 오해할 때 나를 옹호했다.

정규직으로 전환

얼마 후, 나는 원래대로 교직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을 아끼고 열심히 일했다. 이 학교가 채용한 여타 최근 대졸자들과 비교하면, 학생들 성적, 체육, 교실 청결도, 그리고 다른 교사들 피드백을 보면 내 성적이 매우 뛰어났다.

당시 나는 특정 학년 중 최악의 학급을 배정받았다. 경험 많은 이전 담임교사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최근 대졸자인 내가 그 자리에 갔다. 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학생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나를 존경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성취도가 높았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효율이 높아지도록 학생을 도울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를 좋아했다.

하지만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종종 숙제를 빼먹고 수업 듣기도 힘들어했다. 다른 교사들이 그의 문제를 나에게 알려왔다. 나는 더 잘하도록 그를 격려하고,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반 학생들 앞에서 내 뺨을 때렸다. 파룬궁 수련생으로서, 나는 그 모욕을 그냥 넘겼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았다.”[2] 매일 법을 배우며 수련의 기초가 있었기에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그 학생이나 학교에 좋지 않을 것을 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수업 끝나고 얘기하자.” 나는 돌아서서 깜짝 놀란 학생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예정된 수업을 마쳤다. 나중에, 학교 직원들이 다른 학생들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 들었다. 한 명이 물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서 그 일을 그렇게 처리한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필부(匹夫)는 모욕을 당하면 검을 뽑아들고 싸운다.”[3]라고 말씀하신 것을 말해줬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한신이 모욕을 참은 것을 예로 들어 주셨다. 만약 내가 그 학생과 싸웠다면, 다른 학생들도 싸움을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모욕에 대해 친절과 용서를 베풀었으므로, 학생들은 더 나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수련생으로서 잘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되었다. 나는 다른 신입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정규직이 됐고, 호구 이전도 별 탈 없이 처리됐고, 다른 사람들처럼 직원 복리후생도 받았다.

노동교양소에서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발정념에 대한 법리를 이해하지 못해 발정념을 할 수 없었다. 다른 공간의 개념도 혼란스러웠다. 많은 경우 사람 마음에 의지해 어렵게 했으며, 사부님께 부탁드릴 줄 모르고 수련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집의 아이가 꿈에 배에 물이 새서 내가 물에 빠졌다며 겁에 질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납치돼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로 끌려갔다. 파룬따파에 대한 믿음 때문에 독방에 갇혔고 나를 감시하기 위해 수감자 몇 명이 배치되었다. 그래서, 나는 신고함에 고소장을 넣어 그들이 나를 학대한다고 신고했다. 상급자들은 나의 불만 사항을 조사했고 나중에 내가 속한 부서의 팀장을 질책하고 좌천시켰다.

이후 불법으로 훈련팀에 옮겨졌지만, 여전히 신고함을 통해 수련생 학대를 신고하려 했다. 나를 감시하도록 배정된 수감자들은 종종 나를 바닥에 밀치고 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등 나를 막았다. (그들은 항상 수건을 들고 다니며 수련생들 입을 막았다.)

한번은 한 경찰이 몰래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쓴 편지는 실제로 효과가 있어요.”

훈련팀 부대장 한 명이 나에게 우리 학교에 편지를 쓰라고 거듭 제안했다. 당시 학교장이 교체된 상태였고, 나는 노교소에 갇혀 있는 동안 직장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정념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데만 집중했다. 게다가, 내가 학교에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내가 파룬따파, 박해와 강제노동에 관해 쓴다면, 그 편지는 결코 노교소에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학교 직원들이 나를 위해 내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고 토론할 수 있을까? 안부 편지를 쓸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차장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으므로 거절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법제자로서 정의와 합리성, 지혜로 법을 실증할 필요가 있었다. 편지에서 불평하거나 동정을 구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이 한 법문,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이 부분은,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며 최대한 속인과 같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3]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진심 어린 편지를 썼다.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과 떨어져 지내니, 학생들이 매우 그립습니다. 저는 저의 일을 사랑하고 학교 직원들의 지지에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족 같았는데 차 한 잔도 함께하지 못해 착잡합니다. 학교에서 저를 잘 아는 분들이 저를 위해 몇 마디 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분들 아니면 제가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또한, 제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교사로서 정직, 공정, 인내의 윤리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저는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양심을 어기거나 원칙을 굽히지 않을 것이며, 학교 직원들과 다른 선생님들이 제게 주신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고생은 되겠지만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그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 역사의 장이 끝나고 나면 학교 관계자들과 교사들은 저를 돕는 것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며칠 후, 나는 그 편지가 발송되었다고 들었다. 대법제자의 정념이 금강처럼 견고하여 사악한 요소를 녹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그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교장이 나에게 매달 월급의 일부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나는 여동생의 말을 자르며 그건 석방된 후 이야기하자고 했다. “어떻게 된 거요? 지금 고용주가 당신에게 돈을 지급하고 있나요?” 한 경찰이 우리 대화를 엿듣다 헤드폰을 벗으면서 물었다. 나는 “지금은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먼저 여기서 나가야 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알겠어요?” 우리 학교나 학교 직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수많은 고용주가 수련생들을 해고하기 위해 노교소에 오는 것을 봐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내 편지를 받은 후 교직원들이 중국공산당 위원회 회의에서 이 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편지에서 파룬따파를 직접 언급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도움을 줄 수 없으므로, 최소한 급여의 일부를 나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수련생이 수련의 길을 잘 걸으면 주변 환경도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풀려났을 때, 노교소에서 나를 데리고 나온 한 경찰이 말했다. “아마 당신은 가정교사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돈은 벌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내가 직업을 유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친절에 감사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시 ‘정념정행(正念正行)’을 외우고 있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4] 그 순간, 나는 직업이 있든 없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당일에 나는 학교에 전화해서 귀가했다고 알렸다. 전화 받은 사람이 한마디로 답했다. “잘됐네요, 그럼 다시 출근하세요.”

타인을 배려하고 직장에 정착하다

나는 석방된 지 이틀 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새로운 지도자들과 새로운 선생님들이었고,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장벽이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나와 거리를 두었다. 과거에는 파룬따파에 호기심이 많았으나 지금은 “누구든지 당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했다. 대법에 대한 언급이나 그와 관련된 어떤 것도 ‘민감한’ 주제로 여겨졌다.

업무와 일상적인 화제 이외에는 모두가 이 화제를 피하는 듯했다. 직원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누군가 나를 신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감히 선을 넘지 못했다. 한편으로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사부님께서 시 ‘빨리 알려라’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진상을 알리려고 입속의 예리한 검 일제히 뿜어내네. 썩은 귀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나니 다그쳐 구도하고 빨리 알리세”[5]

그 직원들이 내 월급과 일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증오 선전과 대법에 대한 일반 대중의 오해, 그리고 위에서 내려온 온갖 박해 정책들 속에서, 환경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대법 수련생들에 대한 그들의 지지는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나는 수련생으로서 장벽을 극복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교직원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들은 파룬따파의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는 기본적인 권리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수련생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도 체포되고 있었는데, 누가 감히 공공장소에서 파룬따파 자료를 받아들일까 싶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3] “연공인은 시시각각 모두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6]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교직원들을 더 배려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나와 같은 수련생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의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파룬따파 정보가 담긴 DVD를 신문에 싸서 직원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신문을 테이블 위에 살며시 올려놓은 후, “○○님, 신문을 가져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살펴봐 주세요. ○○님이 경영진이시라서 이것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게다가, 저는 당신을 신뢰하거든요. 이렇게 하면 무슨 일인지 아실 수 있겠죠.” 나는 신문 안에 DVD를 넣은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도 했다.

한 직원이 “파룬따파를 홍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저와 파룬따파에 대해 오해하는 환경에서 동료들과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주요 교직원들에게 DVD, USB 드라이브, 또는 파룬따파 정보가 담긴 개인 편지를 주면서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갔다. 나의 배치는 그들에게 정보자료를 주고 그들의 피드백이나 조언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호 이해와 상호 신뢰와 같았다.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나는 직장에서 낮은 자세를 지키며 항상 존중하고 기꺼이 도와줬다. 겉으로는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상황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나를 돕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쓸 수 있었다. 직장에서의 나의 업적을 인정하고 회의에서 파룬따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동료들도 이것을 알아챘다.

때때로 경찰관들과 610(장쩌민이 조직한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기구) 관계자들이 학교에 와서 내 상황을 확인했다. 우리 학교 직원들은 처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내가 ‘문제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박해가 심해진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사실 이(공안과 610사무소)분들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라며 교직원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자주 나누거나, 아니면 직원들에게 “이 일(파룬따파)에 대해 잘 알고 계세요. 그러면 경찰이 방문할 때 처리하기 쉬울 거예요”라며 격려했다. 때로는 단호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나쁜 짓도 하지 않았고 나쁜 짓 비슷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어요. 저를 믿으세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더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파룬따파 수련생으로서 내가 어떤지 내가 다니는 학교 교장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교장이 답했다. “그녀(나를 이르는 말)는 총명합니다.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지 마세요. 당신은 그녀를 바꿀 수 없어요.” 일부 교직원도 그들끼리 이에 관해 이야기하며 말했다. “그것은 그녀의 신앙 자유이고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파룬궁이) 좋지 않다면 누가 수련하겠어요?” 일부 중간 관리자들은 내가 “직무평가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중국공산당 지지 관련 제1조에서 점수를 모두 잃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점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들의 태도는 다른 직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일부 동료들은 “누군가 그녀(나)를 힘들게 하면, 우리는 모두 중국공산당을 그만둘 것이다!”라고 용감하게 소위 ‘부적절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한 명은 “중공은 마피아와 같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사무실에서 나눈 것이다. 여론이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발전하여, 나는 대법 정보가 담긴 USB 드라이브를 일반 동료들에게도 줬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신뢰하는 데 대해 고맙게 여기며 받은 것을 안전하게 뒀다. 공안이나 특수요원들이 학교에 와서 나에 관해 물으면 동료 몇 명은 차를 내주었고 학교 관계자들은 음식을 대접했다. 공안은 “그녀는 좋은 교사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자녀도 잘 크고 있다. 파룬따파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녀는 일을 잘 하고 있고 우리는 그녀와 함께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현지 공안도 나를 보고 기분좋아 하며 나에 관해 좋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오늘 세상의 일체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왔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이 점을 청성(淸醒)하게 인식하게끔 하려면 당신은 진상을 알려야 한다. 이것이 만능열쇠이며, 중생에게 오랫동안 봉해져 있었던 그런 일, 중생이 이미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일을 열 수 있는 열쇠이다.”[7] 나는 이제 이 가르침을 더 잘 이해했다.

동료 수련생 구출

얼마 후 조직개편이 있었고 지도부가 바뀌었다. 새 지도자들과 교사 1000여 명이 하는 첫 학교 전체 회의에서, 이 학교의 당 비서가 연설한 다음 나를 호명했다. 나는 약간 긴장했다. 당 비서 겸 인사과장은 나를 모르지만 새 직책을 맡은 이후 경찰이 다섯 차례나 학교에 왔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여러 해 계속되었다”라며 “우리는 합법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으며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계속하려고 하자, 그녀는 내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디 조심하세요.” 이들 새로운 관리들을 마주하며, 나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나는 구금된 수련생들을 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고, 경찰이 종종 학교에 와서 나를 위협했다. 어떤 학교 직원들은 나에게서 대법에 대한 사실들을 들어 알았고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경찰이 자주 찾아와서 걱정했다. “그 사람(나를 가리킴)은 불법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왜 오겠나?”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녀는 매우 능력이 있고 심지어 일부 관료들도 속았다”라고 다른 한 사람이 덧붙였다. 그들은 또한 연루되는 것을 피하려면 내 말을 믿지 말라고 사석에서 관리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때 매우 바빴고 이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감옥에 갇힌 한 수련생이 고문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나는 병보석을 준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가족과 연락하려 했지만, 그녀의 가족은 지지하지 않았다. 또한, 몇몇 다른 젊은 수련생들이 체포되었다. 나는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러 지역 경찰서에 여러 번 갔다. 나는 실명으로 군 국보 과(경찰 1개 부대)에도 연락했다. 자신의 안전이 위험했지만, 나는 구금된 수련생들을 도와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차츰 나는 경찰들과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 걸고, 그들에게 자료를 보내며, 수련생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들은 변했고 자료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젊은 수련생들은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출옥 직후 휴대전화나 위챗 관련해서 보안대책이 부족해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들 수련생과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었고, 씬씽(心性) 제고의 기회가 많았다.

그 후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나를 폭풍의 중심에 놓이게 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사부님의 도움과 자비가 없었더라면 나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모순

그 당시 나에 대한 소문이 많이 나돌았다. “언제나 지각한다”, “조퇴했다”, “중간에 수업을 빼먹었다.”, “책임에 집중하지 않는다” 등이었다. 어느 날 상사가 이런 말을 듣고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부서는 시간상으로 매우 빠듯해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은 좌천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배치에 따르기로 했다.

그 학교에는 좀 외로운 A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종종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A와 기숙사를 같이 쓰던 다른 선생님들이 갈등 때문에 모두 나갔다. 그녀는 울면서 나에게 와서 잠시 같이 살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얼마 후, 한번은 그녀가 나에게 왜 수업을 빼먹었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제가 파룬궁 수련하는 거 모르세요? 그것과 관련 있어요.” 놀랍게도 그녀는 정말 그것을 알지 못했다. 파룬따파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인해, 그녀는 매우 두려워했다. 그녀는 몇몇 관리들에게 가서 불평했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고 그녀는 다시는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를 돕겠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두 달 후 A를 우연히 만났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인사했다. 디스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고 화장실도 기어서 다녀야 했다고 했다. 그녀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매우 적은 임금을 받았다. 매우 동정이 갔다. 그녀가 말했다. “있잖아요, 나는 몇몇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어봤고 그들 중 한 명은 파룬따파가 괜찮다고 말했어요. 다시 같이 살면 안 돼요?” 나는 망설였지만, 그녀가 고집해서 이사를 왔다. 그녀는 여전히 대법을 반대했다. 내가 대법에서 깨달은 것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중국공산당을 토론하자, 그녀는 겁을 먹고 다시 나갔다. 나중에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그녀는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상사가 나에게 새 부서에서 일하게 했을 때 선생님 두 명이 방해가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이미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A였다.

내가 새로운 부서에 출두한 첫날, A가 말했다. “1분 늦었어요.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다른 선생님이 동의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A가 내 얼굴에 손가락질하며 나를 사무실 밖으로 밀어냈다. 며칠 동안 심한 압박을 받고 거의 법공부를 하지 못한 후, 나는 매우 나약해졌고, 눈물만 흘렀다. 나는 새 부서 책임자에게 갔다. 그녀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문제도 해결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당황해서 무기력하게 울며 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단 사람이 수련이란 이 길을 걸으면 그의 앞날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왜냐하면, 수련은 순서 있게 배치한 것이고 시간은 그렇게 아주 충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없으며, 모두 아주 긴박하게 배치된 것이다.”[8] 이 말씀을 생각하자, 나는 다소 진정되었다.

바로 그때, 지역 국보과 직원들이 오고 있다고 전화로 말했다. 그들은 도착해서 경비실로 갔다. 나는 망설이면서도 경찰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갔다. 사무실 문 앞에서 크게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녀는 우리 집안을 망치고 중공을 탈당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내 물건을 훔쳤어요. 그녀를 찾아 파룬궁 수련생들이 많이 왔어요.” A였다. 다소 마음이 진정되어 울음을 그쳤다.

어쨌든, 나는 대법 수련을 오래 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 알았다. 문을 열었다. A가 몇몇 경찰관들과 학교 B 이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운데 앉아 울고 있었다. 나이든 경찰관은 괜찮아 보였지만, 젊은 경찰관은 지루하다는 듯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가!”라고 B가 소리쳤다. 우리는 동료였지만, 그는 나를 범죄자 취급했다. 모두 그 굴욕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의 말씀 ‘참음’을 생각하면서, 이 압박감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나의 연민과 용서, 그리고 금강 같은 결단력을 다져줬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경찰관들이 아직 여기 있는지 궁금했어요. 나는 그분들을 교정에서 모시고 나가려 했어요. 괜찮아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나는 돌아서서 걸어 나왔다.

젊은 경찰관이 따라 나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녀를 믿지 않습니다. 돌아와서 한마디 하시죠.” 그 청년의 얼굴을 보며 나는 친절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고마워요.”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요. 다시 들어가서 몇 마디 할 수 있어요.” 그가 덧붙였다. 그의 친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그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할 말 있나요?” 그 경찰이 물었다. 나는 “별로 그렇지 않아요”라며 “혹시 제게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다 괜찮고 저도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마치 폭풍우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A에게 배신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나는 굳이 나를 방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A를 다치게 할 수 있지?’ 그녀가 나를 나쁘게 말했다고 내가 그녀를 나쁘게 말한다면, 나는 더는 수련인이 아닐 것이다. 잠시 후, A는 우리가 함께 일하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를 봤다. 나를 무고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그녀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실수로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바닥이 온통 음식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그 뒤 여러 날 나는 학교 관리자들을 찾지 않았다. 경찰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A의 불평에 대해 아무도 무슨 액션을 하지 않았다. 폭풍의 중심에서 나에게 유일한 길은 정념정행이었다. 대법제자로서, 나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더 높은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안으로 찾았다. 집착을 확인할 때마다, 그것을 적고, 닦아내, 제거했다. 나 자신의 참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우리 수련생들은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따르는데, 나는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하면 안 된다.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칼에 찔린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수련에서 잘했고 이것이 내가 조금씩 발전할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안으로 누락을 찾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는 것을 알았고 안으로 누락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두 가지 집착이 있었다: 수구(修口)하지 않았고, 유위(有為)가 있었다.

A는 가족 간 갈등이 많았다. 본인 명의 아파트가 세 채였지만 딸과 사위를 어느 한 곳에도 살지 못하게 해 그들은 아파트에서 세를 살아야 했다. 딸은 가정 내 갈등으로 아이를 낳은 뒤 우울증에 걸렸다. 병원에 입원했고, 직장도 영향을 받았고, 남편과 항상 싸웠다. 싸움이 격렬하고 빈번하게 벌어졌고, 젊은 부부는 여러 차례 경찰을 불러 가정 분쟁을 해결했다. 동료들은 A의 가족 문제를 재미있어하며, 일부는 심지어 A가 그녀의 딸과 싸우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딸에게 동정이 갔고 그 젊은 부부가 측은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딸에게 아파트 한 곳을 내주어 살게 하고 그 부부에게 재정 지원을 하라고 A를 설득했다. 그 부부가 이혼할까 봐 걱정도 했다. 이런 말을 자주 하며 이기적이라고 A를 비난했을 때, A는 나와 말다툼 하고 집안일에 간섭하는 나를 원망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의 최근 행동은 오랜 시간 쌓인 분노의 표출일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여 그가 사람을 발로 차고, 그가 사람을 주먹으로 치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이전에 그에게 빚을 졌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둘은 결산을 한 것이다. 당신이 상관한다면 그들 사이는 결산하지 못해 다음번을 기다려 또다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인연관계를 보지 못해 나쁜 일을 하기 쉽고, 이렇게 하여 德(더)를 잃는다는 것이다.”[3]

나는 이 단락을 적었고, 자신을 제고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A에게 사과하며 내가 잘못했고 더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도 안심했다.

약 한 달 후, A가 달라졌다. 그녀는 한 학교 관리자가 나를 내쫓으려 해서 경찰에 항의했다고 했다. “나는 당신이 다른 관리들 앞에서 반격하고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다른 형태의 복수를 할까 봐 걱정했어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책상에 앉아서 글씨를 쓰고 있네요.”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나는 또한 당신이 쓴 글들이 당신의 심성을 높이고 인내심을 키우는 것이라는 걸 봤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어요.”

그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이 직장에 출근했는데 직장 내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알려주었다. ‘누구누구가 당신에 대한 말을 심하게 퍼뜨렸고 상사에게 당신을 일러바쳐 당신을 아주 납작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일반인이 이 어찌 견뎌낼 수 있겠는가? 이런 모욕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그가 나를 헐뜯는다면 나도 그를 헐뜯겠다. 그가 사람이 있으면 나도 사람이 있는데, 우리 한번 맞서 보자.’ 속인 중에서 이렇게 했다면 속인들은 당신을 강자(強者)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는 그건 한심하기 그지없다.”[3] A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은 말이네요.” 그녀는 그날 경찰이 왔을 때, 그들이 파룬따파 수련생들을 체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든 경찰관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수련생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당신에게 중공을 탈당하라고 말했지만,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A가 달라진 후, 그녀는 B에게서 내 ‘전법륜’ 책을 가져다가 나 대신 보관했다. 그녀는 나의 안전도 걱정했다.

나는 나의 집착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 이 기회가 감사했다. 과거에 항상 나를 도와준 사람은 학교 관리자였다. 이번에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 경찰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다른 수련생을 구할 때 그들에게 확실하게 진상을 알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새로운 부서의 근무시간이 빠듯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시간을 더 유연하게 쓸 수 있었다.

두 통의 편지

나중에, A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내용 일부는 이렇다. “처음 그녀를 알았을 때 겁이 나서 관계자들에게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녀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정말 그 무엇과도 싸우지 않습니다. 단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이제 왜 대학교수들을 포함한 많은 지식인이 감옥에서도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법륜’의 가르침이 그들 성품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녀가 뛰어난 이유입니다. 그녀는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을 매우 잘 대하고, 아이도 아주 뛰어납니다. 저는 그녀가 스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스파이는 항상 물질적인 관심을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반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두부를 살 때 그녀는 안 그러면 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거의 신맛이 나는 것을 샀습니다. 손해를 보면 그녀는 침착하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도왔습니다. 이런 일은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동합니다.”

그녀는 또한 딸을 교육하는 데에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 “그녀[나]를 봐라. 예전 시아버지가 고위관료였지만, 손자의 양육권을 며느리가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시아버지는 그녀가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이지) 그 아이는 반에서 1등이 되었다. 얘들아(A의 딸과 사위) 봐라. 너희들은 이혼하면서 아이의 양육권 때문에 싸웠지.”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연줄이나 뇌물 없이 한 무리 관리에서 다른 그룹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파룬따파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 그녀를 해고하기 위해 중공의 정책에 따라 그녀를 해고하는 관리자는 없었다. 왜일까? 그건 그녀가 후덕하기 때문이란다.”

그즈음, A는 파룬따파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종종 수련생들을 도왔고, 허리 디스크도 나았다. 그녀는 가족에게 더 많이 헌신했고, 가정이 화목해졌다. 그녀는 또한 무고한 사람들을 지지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B가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먼저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9페이지 분량 편지에 대법에 대한 사실과 사건 전체를 적었다. 나는 B와 다른 학교 관리자들에게 주기 위해 많은 복사본을 출력했다. 나는 그들의 지지에 감사했고, 내가 파룬따파와 내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반복적으로 받았을 때 왜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지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양심상 대법을 수련해야 했고, 나와 아이가 생활하려면 직업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파룬따파 수련을 했는지, 왜 박해받았는지도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지지하면 그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를 다 쓴 뒤 학교 관리자들이 경찰에게 편지를 보여주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했다. 나를 체포하라는 압력을 경찰이 견딜 수 있을까? 결국, 나는 학교 관계자들과 편지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편지가 깃털처럼 가볍다고 느꼈다. 그러나 날아가면서, 그것은 대법의 힘을 지녔다.

편지를 보내자 A에 대한 모든 의심과 소문도 사라졌다. 그녀의 긍정적인 변화는 관리자들과 그녀의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기 위해 이 부서에 잘 정착했다.

맺음말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을 구해준 분이 사부님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부님은 나와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셨고, 그 과정에서 나의 망설임에 주목하셨다. 그리고 사부님은 나에게 집착을 버릴 기회를 마련해 주시고 앞으로 밀어주셨다. 후퇴는 없다. 사부님이 내 수련의 길에서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주셨다. 대법제자와 축복받은 중생을 만들어 낸 것은 사부님의 무한한 지혜와 위덕이다.

지난 21년간,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 일터에서 자신을 수련했다. 나의 경험은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증명했고, 파룬따파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입증했다. 학교 지도부가 여러 번 바뀌었어도, 나는 직장을 잃은 적이 없다. 경찰과 상호 작용하여 대법 수련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들이 알게 했다. 그들이 종종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정말 인격이 높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내 직업 덕분에 변호사, 경찰관, 구금된 수련생 가족들과 더 잘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수입이 괜찮은 교사이고 내 아이가 유명 대학에 다니는 것을 알면 내 말을 더 잘 받아들인다.

나는 앞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救度)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자신을 더욱 잘 닦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겠다.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洪吟二)-정념정행(正念正行)’
[5]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洪吟二)-빨리 알려라’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法輪功)-제3장 心性(씬씽)수련’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 설법-뉴욕좌담회 설법’



밍후이왕 대륙종합소식을 보고 생각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담이 작았고 수련한 후에도 여전히 두려움이 많아 박해 후에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수련했다. 대법 수련은 나에게 사람이 되고 수련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박해가 가장 심했던 그 몇 년 동안 모두 정념으로 지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두려움의 물질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형성된 관념으로 인해 나쁜 생각들이 아주 많았다. 늘 당 문화에 빠지고, 자기에 대한 협박에 시달렸으며, 박해 중에 잘하지 못해 십 년 가까이 의기소침했다.

예전에 밍후이왕 대륙종합소식을 볼 때마다 괴로움에 시달렸고 볼수록 더 두려웠다. 마치 박해가 나한테 발생한 것처럼 몸도 딱딱하게 굳고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사실 이때는 정념이 없기에 당연히 정념으로 문제를 볼 수 없고,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도 싫었다. 공산당의 생각으로 문제를 보면서 이러면 쉽게 남의 눈에 띄고,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악에 붙잡혀 갈까 봐 두려웠다. 부정하고 발정념을 해도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기에 나쁜 생각이 계속 올라와 개인 수련은 물론 중생구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나는 세 방면에서 돌파가 있었고 이 때문에 대륙종합소식을 볼 때 정념이 나왔다.

첫째,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으로 법을 외우면서 관념을 돌파했다. 20여 년 수련하면서 한 번도 ‘전법륜’을 다 외우지 못했고 이제 겨우 제3강을 외우고 있다. 몇 년 전 언니가 법을 외우면서 공부하는 걸 보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았고 나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 법을 외우지 않았다. 이건 예전의 나였다. 후에 생각해보니 노동교양소에 갇혔을 때 나는 법 암기와 단식으로 뛰쳐나왔고 법을 외울 때의 미묘함이 그토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질투심을 버리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도 하루에 한 단락을 외우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생각나면 한 구절, 한 구절씩 외웠고 변화가 아주 컸다. 마음이 평온하고 일에 부딪혀도 놀라지 않으며 주이스(主意識)가 갈수록 강해져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성격이 불같아 세 마디도 하기 전에 화를 냈고, 마음에 일을 담지 못해 무슨 말이든 모두 남한테 들려주고 함양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말을 담을 수 있게 됐고, 가끔 참지 못해 울기도 하지만 울고 난 후 법공부를 하면 마음이 탁 트인다. 지금은 할 말이 있으면 사부님께 하면서 나쁜 버릇을 개변하고 관념을 버리며 정념만 나올 수 있도록 점화해주시라고 사부님께 빈다. 지금 나는 수련의 아름다움에 더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둘째, 발정념에 돌파가 있었다. 예전에 발정념할 때 늘 졸아 2003년쯤 한 수련생은 나보고 발정념할 때 항상 흔들거리면서 원을 그린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어 마치 나와 상관없는 얘기 같았고 마음이 씁쓸했다. 후에 늘 손이 넘어갔고 심할 때는 자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위 수련생들은 나보고 책임감과 중생을 구하려는 소원이 없다고 했고, 나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에 열심히 법을 외우면서 발정념도 본질적인 돌파가 있었다. 입장할 때 나의 공능에게 자발적으로 사악을 쫓아가 제거하라고 요구했고, 나 자신이 에너지 구로 변하여 하나의 항성, 하나의 우주, 더 나아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우주 같았다. 예전에는 나에게 공능이 있다는 걸 확신하지 못했는데 마치 발정념할 때 에너지가 내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끄럼을 타듯이 맴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념이 산을 가르고, 내가 명령한 어떤 곳에든 도달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내보낸 정념을 믿어야 하는바 신사신법하면 자연히 믿게 되고 이로써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

셋째, ‘9평 공산당(9평)’을 열심히 한 번 읽었다. ‘9평’이 막 발표되었을 때 열 몇 번 읽었지만, 그 후에는 읽지 않고 듣기만 했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고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책을 보려 해도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집중해 보지 못했다.

며칠 전 물건을 정리하면서 ‘9평’ 한 권을 찾아냈다. 현재 중국의 박해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기에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지만 이렇게 비겁하게 살기 싫었다. 이 두려움은 사악이 강요한 것이란 걸 알기에 마침 ‘9평’을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한 평씩 읽으려 했고 처음 3일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제4평부터는 참지 못하고 이틀 만에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제목도 다 외우고 목록도 여러 번 열심히 읽었다.

읽는 과정에서 나의 당 문화 표현과 두려움이 형성된 과정, 그리고 주위 속인들이 당 문화 주입을 받은 후의 심리상태를 보게 됐다. 지금까지 나는 박해 중에서 가족들이 나를 버린 것에 대한 원망을 버리지 못해 줄곧 고민했고 거듭 고비를 넘고 있었다. 이번에 ‘9평’을 읽으면서 그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진정한 원흉은 공산 사령이 사람에 대한 박해이다. 정말 자비심이 나온 것 같았고 웃음으로 모든 원한을 없애는 도량을 느꼈다.

지금은 대륙종합소식을 보면 예전과 다르다. 예전에는 사악의 창궐함과 좋은 사람에 대한 박해를 보았고, 박해 중에서 형성된 관념들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악이 힘이 부족해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보아냈다. 진상을 명백히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악은 더 걷잡을 수 없이 미쳐 날뛰고, 수련자는 정념으로 사악의 악행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지금의 ‘제로화’ 운동에 대해 나는 정념을 유지하고, 수시로 떠오르는 바르지 못한 생각을 부정하는 동시에 생각의 근원을 찾아내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다.

개인 인식으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그 ‘제로화’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견정함이다
대법제자가 가족을 이끌어 ‘제로화를 타파’한 사례 5건


[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보도) 중국 공산당이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제로화’ 운동은 지난해 일부 대법제자의 가족들을 속여 대법제자 대신 서명하게 했는데 가족 중의 대법제자가 더는 수련을 하지 않겠다고 보증하는 증명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련생 가족에게 대법에 죄를 짓게 하는 것이고 박해를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게 한 것이다. 동시에 현지의 일부 대법제자들은 자신이 정념을 견정히 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의 공과 위덕으로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가족은 비단 정사(正邪)를 인식하고 식별하며 선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뿐더러, 또 가족 중의 대법제자를 도와 사당의 강경책과 유화책을 확고히 저지하고 사악을 위해 일해 주는 사람에게 더는 감히 하지 못하게 했다. 아래에 사례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책임자 추적

지난해 11월 노년 대법제자인 A는 80여 세로 이전에 무료로 봉사하는 보도원 역할을 한 적이 있어 중점대상이 되었다. 구(區), 동사무소, 그리고 단지 관련인이 A의 집을 일곱 번이나 찾아갔다. 처음에 그들은 유화책을 사용하여 쌀과 식용유, 찻잎, 사탕, 과자와 디저트류 등을 여러 번이나 가져다주었으며 한 더미나 되었다. A 수련생이 그런 것들을 전부 돌려주면 그들은 또 가져왔다. 하지만 A는 그들의 유화책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서명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권유하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동시에 동사무소와 구에서 온 사람들에게 진상 알리는 것을 견지해 그들에게 파룬따파가 정법(正法)인 것을 알게 했다.

유화책이 실패하자 사악은 A 수련생을 성도(省都) 세뇌반에 데려가겠다며 주말에 통지하고 월요일에 가야 한다고 위협했다.

A 수련생은 단호히 이 같은 박해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고 사부님의 보호를 빌었다. 현지 수련생들도 도와서 발정념하며 거들었다.

이때, A 수련생 아들이 나서서 사악의 졸개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 어머니는 올해 80여 세의 고령이다. 당신들이 어머니를 세뇌반에 보낸다면 어머니가 견딜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 일을 누가 저질렀는지 나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그 사람을 찾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누구도 감히 소리 내지 못했다. 그의 이 말이 사악을 확실히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이다.

월요일 아침, 구, 동사무소 그리고 단지 내 관련인들이 와서, “세뇌반에 가지 않을 거라면 이 일은 그냥 없었던 거로 하자.”고 했다. 그들은 A 수련생에게 “당신은 앞으로 조심하세요. 나가서 뭐, 뭐 등등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일은 이렇게 끝났고 그 후로 A 수련생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 D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과 집에 있을 때 단지 내 관련인들이 찾아와 노크했다. 그녀의 남편이 문을 열어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들은 D 수련생이 사인해야 한다고 했다. D 수련생의 남편은 “아내가 집에 없어요.”라고 했는데 그들은 “당신이 대신 서명해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서명하지 않았는데 단지 관련인 일행들은 가버렸다. 후에 D 수련생의 남편은 D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는데 D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다가 무고를 당해 구치소에 끌려가 불법으로 1년간 감금되었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D는 “나는 간수소 안에서도 서명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또 서명하라는 말인가? 나는 절대로 서명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도 서명하지 마세요. 그들은 바로 이렇게 사람을 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D의 남편은 듣고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관련인들에게 매우 화가 나, 바로 그들을 찾아갔다. 그는 단지 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X 주임을 만나겠다고 외치며 그녀에게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당신은 얼른 나와! 오늘 나에게 먼저 서명해주면 그다음 내가 서명할 테니! 당신이 먼저 서명하지 않으면 나도 서명하지 않을 거요!”라며 D의 남편은 단지 내 1층에서 한참 호통을 쳤는데 X 주임은 2층에 숨어 감히 내려오지 못했다. 나중에 단지 내 다른 관련인이 “주임이 안 계셔서 당신은 이만 돌아가도 좋으니 화내지 마세요.”라고 그를 말렸다. 이렇게 D의 남편이 단지 내에서 한참 호통을 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단지 내 관련인들은 더는 D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2. 이치가 정당하여 엄중히 도리를 설명하다

B 수련생은 단지 내 관련인들이 그녀의 집에 찾아왔지만, 그녀는 정념정행(正念正行)을 견지하며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단지와 동사무소 관련인들은 그녀의 아들을 찾아가서 “당신의 어머니가 서명하지 않으니 세뇌반으로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B의 아들이 이 말을 듣자마자 매우 반감이 들어 즉시 “뭐라고? 우리 어머니를 강제로 세뇌반에 데려간다고? 당신 이건 납치 아니야? 우리 어머니가 범법한 것도 없고 헌법도 어기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우리 어머니를 강제로 세뇌반에 보내려고 하는 거냐? 지금은 조화로운 사회를 만든다며?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데 사회가 조화로울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B 아들의 한마디가 사악을 돕는 사람들을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워지자 서둘러 “그런 뜻이 아니고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오늘은 없던 일로 합시다. 오늘 우리가 한 말 절대 어머니에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알고 보니 B의 아들은 그들과 만나기 전에 이미 어머니에게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집에서 발정념을 하여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동사무소와 단지 관련인들 배후에 사악을 깨끗이 제거했다. 그리고 사부님께 아들의 정념을 가지해주시길 빌었다. 사악을 저지하고 사악의 음모가 철저히 파괴되도록 아들이 정념정행할 수 있도록 사부님께 빌었다. 그 결과 B의 아들은 사부님 위덕의 가지 하에 힘입어 정말로 침착하고 정념에 찬 말을 하여 동사무소와 단지 내 관련인들이 듣고 나서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법을 어긴 관련인들은 이번에는 먼저 강경책을 썼는데 효과가 없으니 그제야 유화책으로 바꾸었다. 동사무소의 주임과 단지의 관련인을 바꿔서 물건도 사고 카드도 선물했는데 카드에 돈까지 들어있다고 했다. 그런 후 다시 아들을 찾아왔다.

B의 아들은 “당신들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세요. 우리는 받지 않을 겁니다. 우리 어머니 일에 대해서는 나나 내 아내나 모두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어머니가 ‘누구도 어머니를 도와 사인해서는 안 되며 누구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저희도 사인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에게 우리 어머니를 내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절대로 우리 어머니를 쫓아내지 않을 겁니다. 우리 어머니도 저에게 한 치의 미안한 일을 하신 적도 없고 내가 어머니에게 미안한 게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동사무소 사람들이 B의 아들에게 “당신의 어머니는 왜 파룬궁을 수련하나요?”라고 물었다.
B의 아들은 “저의 어머니는 과거엔 건강이 좋지 않아 늘 기공을 찾아 건강해지고자 하셨는데 후에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 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견지해왔어요.”라고 했다.

아들은 이어서 “당신들이 우리 어머니를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들이 할당받은 지표가 하나 줄어드는 게 아닌가요?”라고 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위에서 하려고 하니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그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중에 B의 아들은 단지 내 인터넷 시스템 관리자를 찾아 “당신들이 우리 어머니를 어디로 보내거나 핍박하여 쫓아낸다면 그러면 우리 가정을 파산시키는 것이고 내 아이도 돌볼 사람이 없어 나는 출근하지 못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나는 생계비도 마련할 수 없어 당신들을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관리자들도 조금 긴장했고 그녀는 나중에 동사무소 사람들에게 “사람을 너무 압박하지 마세요. 인명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알고 보니 사악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두려워했다. 그들도 B의 아들을 심하게 압박하면 극단으로 가서 자신들의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울까 봐 무서워했다.

후에 B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를 말씀드렸다. 수련생 B는 그들과 만나서 구체적으로 대법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이렇게 약속 시각과 장소를 정했다.

수련생 B는 그들과 만난 후, 자비롭게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나서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대법제자를 보호하면 그들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주니 자신들을 위해 좋은 미래를 선택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모두 받아들였으며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 뒤로부터 그들은 더는 수련생 B와 그녀의 아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3. 가족을 보호하고 박해를 저지하다

수련생 C가 있었다. 어느 날 단지의 관련인이 그녀의 집에 문을 두드렸고 그녀의 남편이 문을 열고 그들에게 뭘 하러 왔는지 물었다. 관련인들이 이유를 설명하자 C의 남편은 바로 화를 냈다. “당신들은 앞으로 더는 이곳에 와서 이런 일로 말도 꺼내지 말라! 내 이 몸은 듣기 싫어한다! 썩 꺼져버려!”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 당시 남편의 “꺼져버려!”라는 말이 목소리가 매우 컸기에 단지 내 관련인들은 난감해하였다. 그녀들은 C의 남편이 이렇게 기세가 넘치는 것을 보고는 누구 하나 말도 못 하고 허둥지둥하며 떠난 후 다시는 감히 오지 못했다.

E 수련생이 있다. 그녀의 딸이 단지 내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는 “현재 위쪽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수련을 포기한다고 보증하는 서명을 받으라고 합니다. 당신의 어머니도 수련하니 서명해야 합니다.”라고 요구했다.

E의 딸은 듣자마자 큰 소리로 관련인에게 “직장 일이 아주 바빠서 당신의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앞으로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세요. 저는 듣기 싫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찾아가지 마세요.”라고 했다.

E의 딸이 단호하게 한 말을 들은 관련인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후에 단지 내로 어머니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지금 중국의 대법제자들은 아직도 중공의 심한 박해환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대법은 끝없는 것으로서 수련인 자신이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확고히 수련하고 평소에 착실하고 착실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한다면 가족들도 진상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관건 시각에 이런 대법제자는 자신의 공과 위덕으로 가족을 이끌어 수련인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여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게 할 수 있다.



수련인의 마음으로 속인 형식의 모순을 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랫동안 수련생이 배후에서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 마지막에 무의식중에 내 귀에 들렸다. 나는 그때 듣고 아주 분개했다. 수련생이 모두 자신의 유리한 입장에서 나의 잘못을 말하는 느낌이었는데, 단장취의(斷章取義)했고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때로 나는 화가 나면 다른 수련생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지 원인을 말한다. 말하고 나서 내가 당당하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나쁜 말을 한 수련생이 은근히 더 눈에 차지 않은 동시에 간격이 점차 커졌다.

이 일은 수련생 사이에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부 속인도 알게 됐다. 그들은 수련생의 입장에서 불만을 느꼈고 나를 만난 후 좋지 않은 뜻으로 자극적인 말을 했다. 매번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나는 속인의 마음으로 참느라 수련이 아주 고통스러웠고 속으로 괴로웠다. 수련생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고 진실하지 않은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의 유리한 위치에서, 속인의 위치에서, 그 속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머릿속에 나타나면 자신도 화가 났고 늘 자신은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상업력은 매일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도 의심이 생겼고 누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수련생이 다른 사람과 또 내 뒷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나의 마음을 괴롭혔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때 사부님께 비는 것이 생각나,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늘 이 층차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합니까?’

며칠 후 꿈을 꿨다. 어느 방이었는데, 잘 꾸민 여자가 억울한 듯 나에게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일을 했는데 반대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좋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권했는데, 서운해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두 마디 하자 갑자기 밖에 차 한 대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경찰이 노기등등해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 여자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예요!” 내가 해명하기도 전에, 자초지종도 모른 채, 경찰은 내 머리에 총을 쏘려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바닥에 꿇어앉아 어떤 사상 압박도 없이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십시오!”

그때 눈을 떴고 꿈에서 깨어났다. 총구를 머리에 들이댄 느낌이 생생했다. 어쩌면 남에게 해명할 필요가 없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한 말에 집착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런 것에 신경 쓸수록 이런 나쁜 것이 살 공간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더욱 표현하고 나는 그들에게 더 교란당한다. 그들에 대한 나의 반감이 자신의 사상업력을 가중시켰고 더욱이 마음에 닿게 법 공부할 수 없는 악순환이 됐다. 나중에 이 일이 다시 생각나면 자신에게 타이른다. 자신의 업력 때문에 남이 나에게 잘 대하지 않는 것이다. 꿈에서 그랬듯이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밍후이 어린이제자마당’에서 사부님의 시사 ‘홍음3-논쟁하지 말라’가 나왔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으로 찾는 것이다.

이어 또 몇 가지 일이 발생했다. 같은 일인데 표현이 완전히 달랐다. 일의 사실 여부는 나와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수련생의 설명을 듣고, 나의 관념은 이러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실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또 이러해야 하는데, 당신이 옳든 그르든, 이 문제는 한 수련인에 대해 말한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논쟁하고 논쟁하고 하지 말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강조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1]

나의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하지 못했고 단지 속인의 이치만 따졌고 사람의 관념을 기준으로 문제를 인식했다. 사실 수련인 자신은 법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안으로 찾으며, 자신의 집착심을 똑똑히 알고 발정념하거나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비로소 수련의 길이다. 사람의 이치, 사람 속에서 양성된 관념과 사상업력이 안으로 찾는 착실한 수련의 길을 가로막았다.

나는 자신이 이전에 수구(修口)를 하지 않은 것을 인식했고, 자신과 관계없는 것도 의논하며 질투심이 폭로됐는데 그것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며 수련생께서는 법을 사부로 모시기를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당(黨)문화를 제거하여 숨막히게 말하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번은 엄마가 끓인 죽을 내가 식탁에 올려놓았다. 죽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때 엄마가 다가와서 물었다. “죽이 다 됐어?” 이럴 때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 되지 않았으면 갖다 놓겠어요? 죽에서 김이 올라오는 게 안 보이세요!” 가끔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아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대체 왜 이러셔?’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다 됐어요.” 엄마는 이어서 물으신다. “이렇게 빨리?” 나는 “네, 빨리요.”라고 했다.

내가 샤워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샤워하니? 물 끓었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이요.” 그럼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얘가 말을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끓었어요.”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샤워하면 바로 이어서 샤워하시는데, 절약하느라 물을 더 끓이지 않으려고 그러신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속으로 화가 났다. ‘물이 뜨겁지 않으면 샤워를 하겠어요? 엄마는 뻔히 알면서 또 물어본 것이잖아요?’ 나는 엄마가 사람을 귀찮게 한다고 여겼다.

엄마는 습관이 또 하나 있는데, 밥과 반찬을 할 때마다 묻는 것이다. “맛있어?” 나는 좀 귀찮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왜 매번 맛있냐고 물으시는 거야?’ 내가 맛있다고 하면 엄마는 아주 즐거워하시면서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묻는데, 대답할 때까지 물으신다.

지금 나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것도 일종 효도의 표현이라고 느낀다. 엄마가 수십 년 밥과 반찬을 해오셨는데 맛없을 리가 있겠나. 맛도 괜찮다. 그런데 엄마에게 호응해서 “맛있어요”라고 하는 것이 내 입에서 나오기가 왜 이리 어려울까? 나는 때로 온종일 밖에 있어서 엄마와 식사 한 끼 하지 못한다. 언니 오빠도 타지에 살고 나만 어머니 곁에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식사 개념이 별로 없고 되는대로 먹었다. 예전에 가끔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엄마와 점심을 먹으면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엄마가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대법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게 다였고, 나는 참 번거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내가 선(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중국인은 다들 중공의 당(黨)문화에 푹 잠겨서 성장했다. 말하는 체계, 사유 습관, 사상 관념, 행위 방식 등이 업무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수련에서 모두 표현되고 뿌리가 아주 견고한데 자기는 또 정말 느끼지를 못한다. 속사포 쏘듯 질문하고, 반문하는 식의 어투, 좋은 말도 거꾸로 말하고, 바른말도 반대로 말하고, 역반응하는 심리, 거꾸로 하고, 맞받아치고, 입으로 말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서로 꼴보기 싫어하고, 제멋대로 말하고 입을 열었다 하면 아무 말이나 하면서 타인의 기분은 안중에 없고, 남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즐거우면 되고 자기가 맞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전부 그 당문화 속의 원한, 투쟁, 사(私)가 간계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정부기관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당문화가 아주 심하다. 그래서 늘 ‘해체당문화(解體黨文化)’시리즈 방송을 듣는데 천천히 일부 나쁜 것들을 고쳤다. 다른 수련생은 자기 수련의 거울이라고 다들 말한다. 나는 집에서 수련하지 않는 엄마를 거울로 삼는다. 수시로 자기를 비춰보고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제고하도록 스스로 독촉한다.

내 주변 수련생들도 집에서 가족들과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족들이 우리를 다른 눈으로 보게 했다. 평소 집에서 오가는 말은 다 집안의 그런 일들인데, 우리 자신을 한번 보면, 부부 사이에 정말로 서로 손님처럼 존경하는 것을 해냈는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했는가? 자녀를 교육하면서 전통문화의 방식으로 했는가?

수련생들이 진지하게 대해서 당문화가 그렇게 심하지 않으면 좋겠다. 또 당문화가 자기 수련과 제고에 영향주지 말기 바란다.



기술 담당 수련생과 하나의 정체를 형성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틀 전 기술수련생에게 존재하는 문제에 관한 문장이 올라왔다. 그건 기술수련생 본인이 제고해야 할 부분이며, 동시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련의 기회와 인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기술수련생들과 잘 알고 지냈다. 내가 보기에 기술수련생 개인의 문제는 그 지역 일정한 범위 내 전체 수련생이 제고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정진하는 수련생들은 모두 하루 시간이 이것뿐이고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술수련생에게 이는 큰 시험인바 수련생들이 조급히 기다리기에 늘 밤늦게까지 바삐 보내야 한다. 법리는 다들 알고 있지만 정말 마음을 내려놓고 법 공부를 잘 한 후에 일하려면 청성(清醒)하고 착실한 수련 기초가 있어야 한다. 이 기초는 단번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반복이 올 수 있다.

기술수련생의 도움을 받을 때 우리 주위 수련생들은 그들에게 법 공부를 잘 하라고 일깨워줬는가? 아니면 자기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는 데 급급한가? 기술수련생이 바삐 보낼 때 그들을 도와 발정념을 해주어 그들이 사악을 제거할 시간이 부족한 문제를 보완해줬는가? 이런 문제는 오랫동안 일부 기술수련생을 만나면서 늘 느꼈다.

또한, 주위 수련생들은 기술수련생에 대해 얕보는 태도가 좀 있었다. 이런 태도는 좀 모순되는데 한편으로 수련생의 기술지원을 받아야 하기에 대놓고 문제점을 많이 얘기하지 못하고 분위기가 훈훈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술수련생의 부족한 부분을 보고 속으로 꼬리표를 붙이고 결론을 내리는데 이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닌가?

기술수련생은 만나는 사람이 많은데 만약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사람과 일을 대한다면 이는 우리 정체 문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기술 일을 한다고 해서 기술수련생의 문제를 특별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의 문제는 마찬가지로 우리 수련의 거울이고 우리가 제고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진심으로 수련생을 위한다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찾는 동시에 선의로 수련생과 소통해야 한다.

전에 나는 기술수련생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어서 빨리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누락을 갖고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여러 번 소통했다.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놓고 반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우 씬씽(心性)이 요구에 도달하면 수련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 소통했고 그러면 결국 상대방도 받아들였다. 가끔 씬씽이 요구에 도달하지 못해 수련생이 말로 반격하면 마음이 아주 괴로웠고 더는 말하기 싫었다. 후에 나에게서 원인을 찾자 수련생은 나를 찾아와 내가 지적해 준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았다며 여태껏 누구도 이렇게 그녀와 소통한 적이 없다고 했다.

두려움이 많은 문제는 주위 수련생들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다.

1) 기술지원을 하는 수련생은 늘 여러 수련생과 만난다. 현지 수련생 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도 있고 젊은 분도 있으며 많은 사람이 장기간 휴대폰 안전문제를 중시하지 않았다. 몇 해 전에 한 기술수련생은 곤혹스러워하며 나와 교류했다. 휴대폰 안전에 대해 그녀가 견지한 것들이 잘못된 건 아닌지 말이다. 날마다 진상을 알리는 현지 노년 수련생들이 대부분 휴대폰 안전을 중시하지 않아 그녀가 거듭 일깨워주면 다들 그녀보고 담이 작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 수련생들이 높게, 그리고 잘 수련된 거냐고 나에게 물으면서 그녀만 고립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나도 법리와 정념이 강하지 못했기에 확실치 않았다. 그녀에게 높은 층차를 바라지 말고 우리의 경지에서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 자신을 위해, 수련생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이지적이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법에서 바르게 깨달은 게 아니라고 했다. 기술수련생도 그런 것 같다며 안전방면에서 여전히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견지했다.

2) 어떤 기술수련생은 다른 수련생 집에 가기 전에 휴대폰을 먼저 처리하라고 하고 상대방도 처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가서 수련생과 한참을 말하다 일어나면 휴대폰이 바로 옆에 있고 전혀 처리하지 않았다고 기술수련생은 나에게 말했다.

3) 어떤 사람은 기술수련생을 만나면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고 여러 해 동안 줄곧 이러했다. 이러한 것은 오랫동안 기술수련생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그들은 늘 부담과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수련생 집에 가야 했고 나중에는 아예 스스로 수련생의 휴대폰, 집 전화를 확인하고 전화선을 뺐다.

4) 기술수련생도 이러저러한 마난(魔難), 예를 들면 가정의 난, 신체적인 고통이 있다. 하지만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데다 기술수련생들이 흔히 말이 많지 않기에 혼자 마음에 쌓아두고 감당한다. 전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기술수련생이 혼자 힘겹게 비바람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점화해주신 적이 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기술수련생에게 물어봐서야 그의 집에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나는 법에서 그와 교류했고, 법에서 제고하라고 격려해주었다.

기술수련생의 일부 부족한 부분, 수련 중에서 여의치 않은 표현들은 기술수련생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적인 수련에서 씬씽을 제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위해 많이 생각하고, 수련생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면서 하나의 정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 수련생이 시끄러움에 부딪혔을 때 이를 정체 중생구도에 대한 교란으로 여길 수 있는가? 만약 사람마다 모두 정체를 위해 책임지는 태도를 갖는다면 기술수련생의 수련상태도 분명히 개변될 것이다.

아마 주위 수련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자. 당신은 휴대폰 안전문제에 신경 쓰지 않지만, 기술수련생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각도에서 휴대폰과 일반전화에 대한 안전처리, 그리고 수구(修口)를 중시하자. 또한, 경제여건이 된다면 컴퓨터 장치를 업그레이드하자. 돈이 많이 들지 않고 기술수련생의 시간을 많이 절약해 줄 수 있다. 수련생의 씬씽이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 때 사악이 교란하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럼 평소 사악을 제거할 때 기술수련생을 적당히 도와주면 그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생의 문제를 보았을 때 즉시 자신을 찾고 그 후에 선의(善意)로 수련생과 교류하는 것이다.

작은 인식으로서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들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바른 믿음을 수련해 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밍후이 라디오에서 ‘100가지 중국가정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오이시(高一喜)가 박해를 받아 사망했는데 장기마저 적출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사악한 자들의 녹음을 들었을 때 사람이 아닌 이런 짐승들은 세상에 살아있지 말아야 한다며 머릿속에 ‘사부님께서는 왜 이런 사람들이 응징받게 하지 않으실까.’ 하는 일념이 스쳐 갔다. 이 일념이 나왔을 때 나는 얼른 부정했다. 이 원망은 내가 아니다.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이런 머릿속 생각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1. 관념을 바꾸어 사람의 이치를 뛰어넘다

이 생각을 돌이켜보니 10여 년 전에도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받고 노교소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다. 마침내 보석으로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침대에 누워 극히 고통스러워하셨다. 숨이 간들간들하셨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왜 그를 구해주지 않으시나요? 그도 사부님의 제자인데요.’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일념이 나왔을 때 잘못된 것을 느꼈지만 그때는 법 공부가 깊지 않아 바르지 않은 이 일념에 사부님에 대한 원망이 있다는 것을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일념이 생겨난 근원에 대해서도 깊이 파보지 않았다.

그 일념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이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는지 깊이 파보았다. 나는 내가 수련생인 어머니께 했던 말이 생각났다. “수련을 잘 해보세요!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어요! 인간 세상에 사부님께서 전하신 대법보다 더 공평하고 공정한 것은 없어요. 인간 세상의 어떠한 일도 모두 뒷거래를 할 수 있지만, 대법 수련에는 뒷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 마음을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할 수밖에 없거든요.” 여기까지 떠오르자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머릿속 생각이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 관념에 의해 세상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가늠한 것이지, 진정으로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고 법으로 가늠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쁜 사람이나 일을 보면 원수처럼 미워하는 심리가 있었는데 어쩌면 역사상에서 무장(武將)으로 환생했는지 모르나 항상 내 안에 괴팍한 성질이 있고 세상의 불공정한 일을 보면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런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람의 관념이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 “죄는 세인(世人)들에게 있다. 부처가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는 까닭은, 사람이 모두 어리석은 견해 중에서, 이미 자신을 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대단히 큰 업을 지어 오래지 않아 큰 겁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징벌할 필요가 있겠는가? 실제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모두 나중 어느 한때에 보응(報應)을 받는다. 다만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으며 일이 발생하면 우연한 것으로 여길 따름이다.”[1]

나는 자신에게, “나는 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라고 물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을 위해 수련하는가? 아니다. 나는 진아(眞我)를 위해 수련한다. 그렇다면 나는 또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도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사람의 일체가 이미 내게서 아득히 멀어진 것을 느꼈다. 내가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것은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다. 이것 외에 인간 세상의 일체는 나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다. 수련인이 관념을 제거하지 않아 오히려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그는 전혀 믿지 않으며 아직도 속인 중의 것이 실익이라고 한다. 그가 고정된 관념을 품고 놓지 않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믿을 수 없게 했다.”[2] 이 고정된 사람의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관념이 사부님에 대한, 대법에 대한 나의 올바른 믿음을 저애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관념이 내가 법에 동화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사실 지난여름,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點化)해주셨다. 사정은 이러했다. 우리 집은 다들 수련하는데, 올케도 수련한다. 나는 올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열심히 수련해도 사람의 관념을 버리지 않아서 이 방면의 수련이 너무 고생스러웠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는 왕래가 매우 뜸했고 올케와 접촉하는 수련생마저 되도록 적게 접촉했다. 내가 접촉해서 올케에게 좋을까 봐 그랬는데, 나는 어디가 올케의 ‘지뢰밭’인지 몰라서, 그 ‘지뢰밭’을 밟을까 봐 걱정돼 돌아서 갔다. 하지만 여전히 올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선(善)을 수련해 내지 못했다.

올케와 나는 자란 환경이 다르고, 나아가서는 형성된 것도 다르다. 우리 집은 대대로 이 지역에 살았고, 속인 식으로 말하면 터줏대감이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인 사람 됨됨이의 이치를 중시해서 어릴 때 할아버지가 가정교육을 엄격하게 하셨다. 나에게도 사람의 이치가 중하게 형성되어서, 나는 언제나 이 사람 이치로 옮고 그름을 가늠하고 시비를 가렸다. 그러나 내게서 형성된 이러한 전통적인 사람 됨됨이의 이치는 올케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적으로 너무 맞지 않아서, 나는 늘 일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올케가 왜 이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한 것이 맞고 이치에 맞다고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자신의 관념으로 올케를 가늠했기 때문에 많은 원한심이 생겼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로는 올케와 가까운 수련생도 올케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지난여름 올케가 다른 일이 생겨서 내가 그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자료를 나눠주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수련생에게 의문점을 털어놨다.

수련생은 “올케와 당신의 생활환경이 다르고 성장환경이 다르기에 그녀의 생활환경이 현재의 이러한 성격을 만든 거예요. 저는 그녀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녀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저의 문제를 볼 수 있어서예요. 저는 진정으로 수련하려고 해요. 그래서 자연히 그녀의 부족함을 포용할 수 있어요. 여사님도 자신만을 수련해보세요. 1 더하기 1이 여사님 쪽에서는 2이지만 올케 쪽에서는 2가 아니고 다른 것인 그런 것이죠.” 그 수련생의 이 한마디로 나는 단번에 깨어났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1 더하기 1은 2’는 하늘에서 진리인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사유논리가 아니다.”[3] 그렇다. 나는 몇 년 동안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가늠하고 보고 있었지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지 않았다.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사람의 이치가 사람 여기에서 아무리 옳다고 해도 사람의 이치이므로 단지 사람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법 수련자로서, 마땅히 쩐‧싼‧런(真‧善‧忍)으로 자신을 가늠해서 자신을 수련해야 하므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과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쩐‧싼‧런(真‧善‧忍)에 동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의 이치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모순 속에서 뚜렷하게 제고하지 못한 관건적인 원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신의 용량이 확대되고 다른 사람의 언행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대법의 표준으로 나 자신을 가늠하겠다고 하고 이렇게 문제를 보자, 그 장기간 형성된 매우 무거운 물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단번에 홀가분해진 느낌이었고 올케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는데 사람의 그 관념이 내가 법에서 수련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고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하려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을 것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하지 않고 사람의 인식,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내가 늘 당신들에게 업을 없애 줄 수는 없다. 당신들이 나와 대법(大法)을 대하는 사고, 인식, 감격 방식에서도 모두 속인의 사유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속인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을 진정하게 인식해야 한다.”[4]

만약 내가 속인의 그 고정관념을 바꾸어 문제를 보지 않는다면, 사람의 이치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모두 사람 속에 있는 것이기에 모두 사람인 것이다!

2. 관념을 바꾸어 사람의 정에서 뛰쳐나오다

아버지가 이미 십여 년 전에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나셨고 남동생도 가정을 이뤄서 나는 줄곧 어머니(수련생)와 함께 생활했다. 이전에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녀서 어머니에 대한 정(情)이 매우 담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어느새 이 정을 키워 왔다.

얼마 전 어머니의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자 나는 어머니를 도와 발정념을 했다. 비록 어머니에게 발정념을 해주었지만, 내 마음이 심하게 끌려간 것을 느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살펴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 걱정은 어머니에 대한 정(情)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수련의 길에서 문제가 나타날까 봐 두려워했고, 심지어 어머니가 육신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으며,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서 매우 고독할까 봐 두려워했다. 자신을 돌이켜보면 사람의 이런 마음들은 모두 이 정 때문에 작용한 것이 아닌가? 이 정을 어떻게 수련해서 제거해야 하는가?

자신의 수련을 생각해보면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셨고 걸어지나 오도록 보호해주셨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수련의 길에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사부님의 대법제자이고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부님의 보호로 걸어지나 온 것인데, 나의 걱정, 두려움, 그것은 모두 사람의 마음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을 믿었는가? 내가 사람의 생각으로 신의 안배를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협애하다.

관념을 바꾼 후 나는 ‘일체를 사부님께서 모두 관리하고 계시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은 가장 좋은 것이므로 나는 사부님과 대법만 믿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에 이끌린 내 마음이 단번에 개운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오직 사람의 관념을 개변해야만 형성된 그 가짜 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 관념을 바꾸어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되찾다

몇 년 전 일찍이 이러한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 우뚝 솟은 공중사다리를 타고 있었는데 옆에 아무런 난간도 없지만, 열심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다리는 천근만근 같았고 멈춰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마음속에는 ‘언제야 끝에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뒤를 한번 돌아보았는데, 보자마자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내가 걸어온 길은 이미 망망한 휜 구름안개에 가려졌고 내가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방금 올라지나 온 짧은 구간의 사다리였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쓴 시처럼 그러했다. “하늘은 창창(蒼蒼)하고 땅은 망망(茫茫)한데 올 때의 길 보이지 않누나”[5]

내 머릿속에서는 ‘수련에는 퇴로가 없다’는 일념이 스쳐 갔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는데 내 곁에 누군가가 홀가분하게 위로 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저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도 이렇게 가볍게 위로 올라가는데 내가 쉬어서는 안 되겠구나. 나도 서둘러 위로 올라가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단번에 온몸이 힘으로 충만한 것을 느꼈으며 그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홀가분하게 위로 올라갔으며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정상에 이르렀다. 그 순간, 내가 곤란을 두려워했던 것은 종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앞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전쯤 어떤 정황이 나타났는데 꿈속의 상태와 너무 비슷했다. 나는 의지가 박약해 조금 소침하고 수련이 정체됐는데, 좀 마비된 것 같았다. 비록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었지만,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는 되찾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일종 사상이 있었는데 인간 세상의 일체가 모두 재미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신의 일면에 닿을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이를 수 없음을 느꼈다. 때로는 자신이 매우 고독하다고 느끼기까지 했지만 이를 돌파할 방법을 몰라 매우 고민스러웠다.

한번은 법 공부할 때 사부님의 이 말씀을 보았다. “언젠가 한번 나는 나의 사상을 층차가 극히 높은 네댓 명 대각자(大覺者), 대도(大道)와 한데로 연결했다. 그 높음을 말하자면 속인이 볼 때는 그야말로 높아서 놀랄 정도다.”[2] 이 한 단락의 법을 배우고 난 후 나는 “사부님께서 왜 이 한 단락의 법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지?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떠한 법리를 깨달으라고 하신 것일까? 사부님께서 이 한 단락의 법을 말씀하시기 전에 앞에서 어떠한 법리를 말씀하셨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가에서는 공(空)을 말하고 도가에서는 무(無)를 말한다.”[2]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인이 고층차에 이른 수련상태는 무위인 것이며 비어있고 고요한 것이고 사람마음이 없으며 더욱이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고 깨달았다. 사람 속에서 사람 속의 그런 북적거림과 소위 아름다운 것을 더욱이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적막을 두려워하는데 사람은 정(情)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단순히 이 하나의 수련 문제만 하더라도 우주의 낮은 층에서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고층차에 이르면 간단한 것으로 수련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로지 업력을 없애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더욱 높은 층에서 말한다면 모든 번거로움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 높은 층에서는 무슨 소업이요, 무슨 고생이요, 무슨 수련이요 하는 이러한 개념이 없으며 바로 선택이다! 우주의 고층차는 바로 이런 하나의 이치이며, 보아서 누가 되면 바로 그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이치이다.”[6]

그렇다. 나로서는 사부님의 선택을 받은 생명이고 사부님께서 나를 대법제자가 될 수 있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된다. 나는 사부님께서 선택하신 제자인데, 삼계에 와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 온 것이며 이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이다. 아울러 나의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은 모두 이 목적을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구(舊)우주 중의 생명은 위사(爲私)한 것이라는 법리를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나 이 구(舊)우주의 생명이 신(新)우주로 동화되어 가려고 한다면, 나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경지로 수련해야 하고, 오직 무사무아로 수련 성취해야만 비로소 신우주로 동화해 갈 수 있으며 구우주의 이치가 나를 제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이미 신우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후천 관념으로 형성된 그 가아(假我)를 닦아버려야 하며 진아(眞我)가 나 자신을 주재하게 해야 한다.

관념을 바꾼 후, 나에게는 일종의 상태가 나타났다. 머릿속이 늘 텅 비어있었고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움직이는 것도 매우 적었으며 법 공부를 하면 쉽게 조용해지는 상태가 나타났다. 관념이 바뀐 후, 나는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되찾아 수련이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꼈으며 그러한 고독한 감각도 없어졌고 더욱이 사람 속의 일체 재미없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수련은 그야말로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속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보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소극적인 상태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여러 해 수련의 길을 걸어왔고, 사람 속의 일체를 이미 매우 담담히 보았어도,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 중에서 형성된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하니, 수련된 그 일면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절실히 실감하지 못해, 그런 소극적이고 정체된 수련상태가 나타났고 자신의 수련이 매우 고생스럽다고 느끼기까지 한 것이다.

나는 현 층차에서 깨달았다. 대법제자로서 사람 속에서 수련해 나오려면 반드시 사람의 관념을 바꿔야 하고,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닦아버려 불성(佛性)을 닦아내, 진아(眞我)가 자신을 주재하게 해야 한다. 오직 사람의 관념을 닦아버리고, 사람 중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사고하지 말아야, 비로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바른 믿음과 정념(正念)을 수련해 낼 수 있고, 비로소 자기를 법 속에 녹아들게 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爲誰而修)’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精進要旨)-경고하는 말’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홍음5(洪吟五)-하늘로 돌아가다’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수련교류 발췌


마음이 저미고 뼛속을 파고드는 착실한 수련 과정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상처를 주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접촉하고 싶지 않은 이런 주변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수련이 승화되는 길에서 큰 힘으로 도와주는 조력자들입니다. 속인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가령 수련인의 집단 환경에서 우리는 흔히 이런 가상의 사실적이지 않은 가상에 빠져서 마찰이 끊이지 않고 정욕을 쉽게 버리지 못하며 겹겹의 갈등을 낳게 됩니다. ……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사람의 사유, 나쁜 관념 등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의해 얽혀있고 속박을 받고 있습니다. …… 이런 파란만장한 매 한 장면의 극의 줄거리 속에서 그런 조력자들의 리얼한 재연과 생동감 있는 묘사 과정에서 번뇌하고 우울해하며 질투하고 걱정합니다. 또한, 고통스러워하고 근심하며 향수하고 흡족해하며 기뻐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버리지 못합니다. …… 온갖 정, 여러 가지 마음과 집착…, 관념 등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 거의 다 전개됩니다. 아울러 이런 나쁜 것은 바로 우리가 신으로 걸어가는 과정에서 그런 것 또는 우리가 접촉하기 싫어하거나 서로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조력자들이 우리를 위해 표현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극의 줄거리 속에 빠져서 늘 상대방의 부족함을 보고 시시콜콜 따지면서 항상 마음에 두고 불평합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진정으로 우리를 깊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닦아 없애야 하는 그런 사람의 사유, 나쁜 관념, 각종 사람의 마음과 집착…, 사람의 정 등으로 근원적으로 위사위아(爲私爲我)하는 구우주의 속성이 우리가 잘 수련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체현과 조종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관념을 바꾸어 이성적으로 본질을 보면 사실 주변의 사람이나 일은 우리가 아직 닦아 없애지 못한 이 모든 나쁜 것을 건드려 우리를 마땅히 닦아 없애야 하는 부족함을 표현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수련의 길에서 동반 수련자가 되어줄 그들의 극 줄거리에서의 사람의 도리와 정에 맞는 재연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극의 줄거리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족함을 찾아내며 근원을 분석하여 법에서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신의 길에서의 조력자

최근 우리 지역의 수련생 두 명이 납치되어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저는 또 신통을 충분히 운용하여 수련생을 박해한 사악의 요소를 제거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로소 자신의 정념 위력을 강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을 신의 상태에 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의 상태는 마땅히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사부님의 설법을 돌아보며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 신으로서 마땅히 무사무아해야 하고 완전히 위타(爲他)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반드시 자신의 이기적인 염두를 모두 닦아버리고 진정으로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이 되어야 한다’라고 확고하게 다짐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앞으로 시시각각 매사에서 곳곳에서 어떤 일에 부딪히든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하고,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많이 감당하시고 걱정하시게 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일깨우며 경계했습니다. 발정념을 마친 후, 어머니는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보았다. 너의 가슴 앞과 손(그때 연화 수인을 하고 있음), 목, 얼굴에 모두 황금색 큰 꽃이 있었어”라고 했습니다.
—발정념 할 때 깨달은 것

저는 자신의 예전 이른바 ‘선’(善)은 사람의 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감정이 상할까 봐 상대방의 나쁜 행위를 지적하는 것을 난처해했고, 작은 나쁜 일들은 그럭저럭 양보하며 인정했습니다. 큰 나쁜 일은 자기가 지위가 낮고 의견을 내도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감히 관여하지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했습니다. 동시에, 언제, 어떤 일을 참아야 하고, 언제, 어떤 일을 참지 말아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저는 문득 자신의 이미지가 마치 ‘무골호인(老好人)’처럼 위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것은 이익을 내려놓지 못해서인가? 이것은 내 이익과 관계없다. 그럼 그의 행위가 못마땅해서인가? 그는 확실히 덕을 잃었다. 이건 인연 관계인가?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선의로 그의 문제를 지적해주면 안 되는가? 그가 덕을 잃는 일을 하지 말도록 완전히 그를 위해서 말이다.’
—거듭 ‘불성(佛性)’을 외운 소감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전화에 답신 전화를 걸어야 할까요? 아니면 걸지 말아야 할까요?” 문득, 한 가지 의념이 떠올라 이 의념을 따라 평생의 힘을 다해 마음속으로 구세력에게 외쳤습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나는 당신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오직 ‘찰칵’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큰 산 하나가 저에 의해 갈라졌습니다. “정념이 강해지기만 하면 정말로 신처럼 힘으로 산을 가를 수 있고, 일념으로 바로 산을 가를 수 있다. 그럼 당신은 구세력이 아직도 무엇을 감히 하는지를 보라.”(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그런 후, 거무스름한 사람의 모습이 저의 공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것은 아마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저는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느낌은 너무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는 줄곧 박해를 승인하면서 반박해를 해왔지만 스스로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 사악이 무슨 박해를 실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악을 마주하여 어떻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반박해로 보여지는 듯한 행동은 사실 박해를 승인하는 것입니다. 왜 박해소식을 듣고 봤을 때, 가장 먼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을까요? 이른바 ‘불법 및 음란 출판물의 제작 따위를 소탕하고’, ‘노크’행동을 하며 ‘악독한 세력을 소탕하고’, ‘제로화’교란을 하는 이런 것은 대법제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사악한 ‘제로화’를 깨끗이 제거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조용해지지 못하는가? 이는 당신이 속인 사회 중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업력이 조성한 사상 상태지, 이는 당신의 진정한 사상이 아니다. 당신은 수련하기에 그것을 모두 제거해 버리려 한다. 그래서 그것이 말을 듣지 않고 그것이 혼란을 피워대어 당신으로 하여금 입정(入靜)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에게 어떤 혼잡한 생각이든 다 하도록 한다.”(유럽법회 설법) 저는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저의 잡생각은 자신의 관념과 연관되는 것으로, 잡생각을 할 때 자신의 정념과 연결을 끊는 것입니다. 잡생각을 할 때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과 위배되었습니다. …… 다음 날 연공장으로 돌아가 연공하면서 연공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마음이 또 교란당했습니다. 마치 머릿속에 남을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신의 잡생각과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는 원인은 제가 어릴 때 무엇이든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관념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대법 수련 후 자신과 남을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염두는 격렬하게 제 사상 속에 반영됐습니다. …… 무엇이든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이 표면적으로 나오면 저는 즉시 그것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은 좋은 방향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런 후 저는 계속 연공했습니다. 저는 과시심의 추궁으로 잡생각을 하는 것을 또 알게 됐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했고 심지어 연공은 왜 하는지 마저 잊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또 이 과시심도 즉시 제거해버렸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저는 자신의 마음이 갈수록 바르게 되었고 갈수록 마음이 분산되지 않았으며, …… 저의 마음이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이 조용해지다

수련인에게 집착심이 있고 의존하는 마음이 있으며 앉아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며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매일 집에서 법 공부하고 연공해도 제고할 수 없으며 정법(正法)시기 대법제자는 더욱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세(下世) 전의 서약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사람을 구하는 서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끝나는 그날에 정말로 후회할 것입니다! …… 어떤 수련생이 제게 밍후이왕에 올라온 한 교류문장을 추천하며 “모든 것이 개변됐어요. 정법 시간은 어느 해에 끝나려 해요.”라는 등을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 끝나든지 막론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고, 정법이 끝나려 할수록 사람을 더 많이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도할 사람의 숫자가 차면 사악은 함께 끝장나리라”[홍음3-겁(劫)] 사부님의 설법에서 이미 모든 것을 똑똑히 말씀하신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제게 “저는 당신과 달라서요. 당신 집안은 딸이고 우리 집안은 아들이거든요. 할머니로서 마땅히 밥하고 아이를 돌봐줘야 해요. 책임이 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는 수련생이 이렇게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을 돌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우리 지역의 노년 수련생 A를 보세요. 아들과 며느리가 외지에서 장사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 8개월 된 손녀를 수련생 A에게 키우게 했어요. 수련생 A는 매일 아이를 돌봐야 했지만, 그녀는 집에 자료점을 만들었고 법공부팀의 수련생에게 진상자료를 제공해주었어요. 이뿐만 아니라 그녀는 또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진상자료를 배포했으며 근거리 발정념 항목에도 참가했어요. 이제 손녀는 8살이 다 됐어요. 8년을 하루와 같이 수련생 A는 세 가지 일을 여태 멈춘 적이 없어요. 당신이 법을 제1위에 놓고 사람 구하는 것을 제1위에 놓고 기점을 바로잡으면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무엇이든 순조롭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에는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있고 자신이 어떻게 다그쳐야 하는가 하는 것은 시간을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련은 달라서 시간을 동력으로 삼을 수 없고 시간을 조건으로 삼을 수 없으며 수련에서의 이런 시간관념은 집착입니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며 사람의 그런 사유패턴을 개변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나쁜 점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아직 끝날 시간이 2년이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모두 2년을 기한으로 카운트다운 한다는 것이며 모두 이 시간관념의 영향과 제약을 받습니다. 예컨대 진상을 알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탈퇴하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매우 긴박해보이고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의 마음속에 기대하고 있는 시간이 거의 다 됐다는 이 관념이 하게 한 것으로 자비심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든 다 시간 요인이 더해지게 됩니다. 이 시간은 가설적인 것이며 진정하게 끝나는 시간이 아니어서 기대에 못 미치면 나타나는 낙담과 실의는 모두 이 집착이 조성한 것입니다. 고층의 사유방식은 이런 것이 아니며 법의 힘의 추진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유지하며 시간이 하게끔 하고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는 것으로 동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글을 본 뜻밖의 수확

수련인이 중공 TV를 보는 것은 세뇌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2016년 이전의 한동안 저는 케이블TV와 휴대전화 위챗에 빠져서 드라마와 일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중독됐습니다. 사상은 대법에서 벗어나 책을 보기만 하면 졸렸고 발정념을 하면 다른데 주의력이 분산돼 손바닥이 무너졌으며 진상 알리기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2017년 제 동반자는 사악한 박해를 받아 수련을 포기했고 병마에 의해 인신을 잃었으며 저도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법공부와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문제의 소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TV와 휴대전화 위챗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나쁜 습관을 끊어내고 케이블 TV 중지 신청을 하며 위챗은 삭제하고 전심전력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련인이 중공 TV를 보는 것은 세뇌를 구하는 것과 같다

최근, 밍후이왕에 많은 수련심득 글이 발표돼 ‘사(私)’와 ‘나(我)’의 껍질을 타파하고 관념을 바꾸며 신우주의 위타하는 정법정각으로 일체를 대하는 것이 언급됐습니다. 읽은 후 깊은 소감이 있었습니다. 사존께서 또 우리를 하나의 새로운 층차로 밀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신우주와 구우주의 법을 읽을 때 예전처럼 자신이 구우주에서 사존께서 우리를 위해 개창해주신 신우주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존께서 우리에게 개창해주신 신우주 속에서 구우주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며칠 전에 밍후이왕을 열고 대륙종합소식에서 박해 내용을 보고 ‘왜 아직도 박해하고 아직도 진상을 알지 못하는가. 우리 중국 대법제자에게 책임이 있지 않은가!’하는 한 가지 염두가 저절로 우러났습니다.
—‘밍후이왕 대륙종합소식을 보고 생각한 것’을 읽고

이번 시련은 결국 자신의 두려운 마음이 불러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왜 두려울까요? 왜 두려워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할까요? 저는 마침내 자신을 두려움이 일게 하는 뿌리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한 수련인으로서 자신을 수련하여 제고하게 하는 대법을 모든 것을 능가하는 첫 자리에 놓지 않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중생의 생명을 첫 자리에 놓지 않고 자신의 생명과 이익을 모든 것을 능가하는 첫 자리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사위아한 제 마음의 상태가 어떻게 대자비심을 생기게 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하며 시련과 박해에 부딪혔을 때 반석같이 확고하고 마음이 고인 물처럼 고요할 수 있게 할까요…. 또한 어떻게 강한 에너지와 정념의 장이 생겨나게 하고 어떻게 자신의 생명과 이익이 다치고 손해를 보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자아와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시련에서 사람 구하는 것을 잊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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