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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세계파룬따파의 날 특간(2)  
   2021-06-16 22:51:28 | 조회 : 498

경축 5.13  세계파룬따파의 날 특 간(2)



‘벙어리’ 사촌 오빠의 기이한 인연 
묵묵히 파룬궁 수련자를 도와준 선한 사람들 
가슴 깊이 맺힌 원한을 풀고 자비롭게 소원을 이루다 
대입 시험 지도교사의 성공 경험 
감방 속의 대합창 
큰 복을 받은 고향 어르신들 
가장 행복한 순간 
사부님께서 딸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다 
해외 어린이들이 대법을 배우다 
여성 독창: 사은호탕(師恩浩蕩) 
여성 독창: 감사를 말로 다하지 못하네 
예서: 말겁에 얻은 대법, 이 만고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 
피리 독주곡: 정도행(正道行) 
회화:마음 속의 도를 단호히 지키다 



‘벙어리’ 사촌 오빠의 기이한 인연


글/ 헤이룽장 자무쓰(佳木斯) 대법제자

[밍후이왕] 큰이모님은 가난한 시골에 살고 계시며 올해 60세인 아들 하나 두셨는데 듣지 못하고 말도 못 했다. 내가 큰이모님께 사촌 오빠가 예전에 어머니라고 불렀었는지 묻자 큰이모님은 부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사촌 오빠가 태어나서 12개월이 됐을 때 뇌막염에 걸렸지만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어린애의 병을 전문으로 보는 할머니를 찾았다. 그 할머니는 사촌 오빠 귀에 응급처치 소독약을 넣고 발에 약을 발라줬는데 그 이후로 사촌 오빠는 농아가 됐다.

사촌 오빠는 또 지능에도 문제가 생겨 어느 집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면 그들을 도와 일했고, 그들이 도울 필요가 없다고 쫓으면 가지 않으면서 오히려 화를 냈다. 마을 사람들은 사촌 오빠가 쫓아도 가지 않자 어쩔 수 없어 그대로 내버려 뒀다. 사촌 오빠는 살고 있는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갔으며 그들이 일하고 있으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함께 일했다.

사촌 오빠의 비정상적인 행동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은 모두 ‘바보’라고 불렀고, 나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보’라고 불렀으며, 다만 큰이모님만 ‘벙어리’라고 부르셨다. 큰이모부님이 돌아가신 후 큰이모님은 사촌 오빠와 서로 의지하시면서 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사촌 오빠는 자주 시골에서 수십 리를 걸어서 우리 집에 오곤 했다. 사촌 오빠가 어리숙해서 집에 오래 머무르게 하지 않았고 식사가 끝나면 손짓을 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촌 오빠는 집에 가면서 우리 집 물건을 가져갔는데, 아마 그것이 도둑질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어머니가 큰이모님 집에 가실 때마다 사촌 오빠는 우리 어머니가 방에 계시지 않을 때 어머니의 주머닛돈을 꺼내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사촌 오빠는 돈을 쓸 줄 모르고 돈을 숨기지도 않았다. 큰이모님이 돈을 내놓으라고 하시면 다시 꺼내서 우리 어머니께 줬는데 현재 60세이지만 여전히 이렇다.

큰이모님은 사촌 오빠가 1급 장애라고 하셨고 두 사람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매월 400여 위안(약 6만8천 원)의 기초생활비를 받는다. 큰이모님은 80세가 됐고 두 사람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땅을 다른 사람에게 매년 7천~8천 위안(약 130만 원)의 비용을 받고 빌려줬고 이러한 비용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2021년 3월 초 큰이모님은 사촌 오빠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하니 나에게 와서 닭과 오리에게 먹이를 주면서 집을 돌봐달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나는 매우 바빴지만 큰이모님과 사촌 오빠가 불쌍해서 도와주러 갔다.

집에 막 들어서니 큰이모님이 나를 대접하기 위해 만두를 빚고 계셨다. 내가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큰이모님은 왼손을 내미시면서 손가락에서 경련이 난다고 하셨다. 나는 서둘러 손가락을 주물러드렸다. 만두 몇 개를 빚자 손가락이 또 경련을 일으켜 나는 또 주물러드렸다.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사촌 오빠가 돌아왔다. 내가 보니 더러워서 손을 씻고 밥을 먹으라고 했다. 사촌 오빠는 앉아서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큰이모님은 사촌 오빠가 요즘 늘 이를 악물고 있는데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큰이모님의 손가락이 빈번히 경련이 일어나 내가 큰이모님의 손을 만져보니 두 손이 모두 차가웠고,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차가웠다. 나는 “큰이모님, 저를 따라 파룬궁을 배워보세요”라고 말하고 큰이모님께 정공(靜功)인 제5장 공법 ‘선퉁쟈츠파(神通加持法)’를 가르쳐드렸다.

연공을 시작하자 큰이모님의 손가락은 경련이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큰이모님은 왼손에서 찬 바람이 나온다고 하셨고, 또 조금 지나자 왼쪽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나온다고 하셨다. 나는 큰이모님의 팔에 문제가 있어 대법 사부님께서 병을 제거해주시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연공을 제인(結印)까지 했을 때 사촌 오빠를 보니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온 정신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나는 사촌 오빠가 좀 어리숙해서 연공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촌 오빠에게 간단한 제인 동작을 가르쳐주니 제인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조금 지나서 사촌 오빠의 손을 만져보니 차갑던 손이 따뜻해져서 나는 아주 놀랐다.

나는 바로 사촌 오빠에게 연공을 가르쳐야겠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사촌 오빠에게 동작이 비교적 복잡한 제5장 공법 타수인(打手印)을 가르치자 기본적으로 다 배울 수 있었고 조금도 정상인보다 서투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부좌는 반가부좌(單盤)도 할 수 없어 그냥 편하게 앉았고, 두 무릎이 모두 매우 높게 치켜들어 거의 세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한참 연공하자 두 무릎이 내려가서 두 다리가 곧 평평해졌다.

정공(靜功)을 다 하고 나서 동공(動功)도 가르쳤다. 사촌 오빠는 나와 함께 쉬지 않고 한 시간 넘게 연공했고 게다가 동작도 거의 다 정확해 나는 크게 놀랐다.

나는 매우 의아한 표정으로 큰이모님께 물었다. “연공 동작을 보면 전혀 어리석지 않은데요?!” 큰이모님은 정원에 있는 옥수수 담는 바구니와 손수레도 사촌 오빠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 손수레는 작은 마차처럼 커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더욱이 큰이모님 말씀이 아니었다면 사촌 오빠가 그 손수레를 만들었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큰이모님이 사촌 오빠에게 대법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하라고 하셔서 나는 MP3의 이어폰을 사촌 오빠의 귀에 꽂고 음량을 가장 크게 올렸다. 사부님 설법을 듣는 순간 사촌 오빠의 표정은 엄숙하고 의연해졌다.

사촌 오빠는 일어나서 하늘을 몇 번이나 가리켰다. 나는 말했다. “맞아요, 이것은 천법(天法)이에요.” 사촌 오빠는 다시 앉아서는 두 팔꿈치로 책상을 받치면서(사촌 오빠가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의 모습을 천목으로 봤다고 생각됨) 이 동작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말했다. “맞아요,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이런 자세셨어요.”

사촌 오빠는 또 일어서서 이분께서 자신보다 키가 크고 또한 ‘아주 높으신 분’이라고 손짓으로 표현했다. 이어서 사촌 오빠는 날아가는 동작을 흉내 냈는데, 나는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해서 했다. 때는 이미 한밤중이어서 사촌 오빠에게 온돌에 올라가 자라고 했다.

금방 눕자마자 나는 사촌 오빠가 부단히 규칙적으로 입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손으로 목구멍을 잡고 문지르며 아주 힘겹게 말하려 하는 걸 봤다. 입을 네다섯 번 움직이면서 입은 ‘어머니’ 모양이었지만 소리는 내지 못했다.

30분 넘게 되풀이하다가 갑자기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의 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고 너무 신기해 심장 및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큰 충격을 받았다. 사부님께서 정말 위대하시다! 60년 된 ‘벙어리’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촌 오빠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는 아주 컸다. 큰이모님은 감격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 엄마다, 샤오춘(小春), 샤오춘, 내가 네 엄마야!” 샤오춘은 사촌 오빠의 아명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눈을 감았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사촌 오빠는 내 모습을 흉내 내며 합장하면서 웃었는데, 몇십 년간 그렇게 정상인처럼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이것은 내가 직접 겪은 사실이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으로 사람의 가장 미시적인 부분부터 개변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있다. 파룬궁수련생들에게는 이런 신기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나는 간호사이고 아주 좋은 일자리도 있었지만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노동교양과 징역형을 선고받아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전혀 후회하지 않았고 수련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파룬따파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줬다.




묵묵히 파룬궁수련생을 도와준 선한 사람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6년 6월, 나는 베이징 간이 서점에서 ‘전법륜’과 ‘전법륜2’ 이 두 보서(寶書)를 얻었다. 그때 베이징의 크고 작은 서점과 간이 서점에서 모두 파룬궁 서적을 팔았다. 이때부터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섰고 진정한 인생의 의의를 깨달았다.

25년간 나는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중국공산당(중공)이 잔인하게 파룬궁을 박해한 후에도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생을 묵묵히 도와줬고, 그런 선행이 그들 생명에 복을 줬다. 여기에서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만 하려 한다.

1. 진상 알리기를 지지해 사업이 번창한 꽃가게 사장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나는 다섯 번 경찰에게 납치되고 두 번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 회사에서 내 공직을 불법적으로 제명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실업했다. 그때 내 한 달 실업 급여는 255위안(한화 4만 5천원 정도)였고, 질병 때문에 퇴직한 아내도 한 달에 146위안(한화 2만 6천원 정도)의 퇴직금을 받았다. 둘이 합쳐도 한 달에 겨우 401위안이니 어떻게 생활하겠는가?

그때 나는 회사에 복직을 요구하는 한편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수련생은 나에게 꽃가게를 소개했다. 출근한 후 나는 A사장에게 대법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려줬고, 꽃을 팔 때도 고객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 2주간 일한 후 A사장은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나를 해고했다. 그는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이 그의 장사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보름 뒤 수련생은 나보고 다른 곳에 가서 일하라고 하면서 거기도 꽃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이 B사장과 A사장의 가게는 아주 가까웠다. B사장은 46세에 키가 180이고, 잘생기고 훤칠했으며 얼굴도 선해 보였다. 내가 A사장 가게에서 파룬궁 박해 진상을 얘기할 때 그도 들었다.

출근한 후 나는 B사장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도 묵묵히 들었다. 나는 말했다. “파룬궁 수련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신앙에는 죄가 없습니다.” B사장은 중공의 사악함을 알기에 내가 말한 진상을 아주 믿었다. 그는 급여를 A사장보다 더 많이 주었고 이후에는 매월 정기승차권도 끊어줬다.

나는 날마다 고객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진상만 알리면 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장사가 잘됐다. 고객 중에는 경찰, 판사, 검사, 공무원, 장교, 경비원, 교사, 학생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명백히 알고 파룬궁수련생을 잘 대할 수 있게 됐다.

한번은 꽃을 사러 온 두 할머니에게 파룬따파가 좋다고 진상을 알렸다. 키 작은 할머니가 “좋으면 분신자살을 하겠어요?”라고 하자 키 큰 할머니는 “우리 거기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멀쩡해. 누가 ‘분신자살’을 해?” 그러자 키 작은 할머니는 태도가 바뀌었다. “그렇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다 멀쩡하지.”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 ‘톈안먼 분신자살’은 공산당이 거짓말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사람들을 속인 겁니다. 목적은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해 파룬궁을 적대시하려는 데 있죠. 파룬궁수련자는 ‘진선인’을 수련하지만 중공은 ‘가악투(假惡鬪: 거짓·사악·투쟁)’을 부추깁니다. ‘분신자살’은 악한 것으로 선과 대립되며, 이는 중공이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한 것입니다.” 두 할머니는 진상을 명백히 안 후 기뻐하며 꽃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 키 큰 아저씨가 꽃을 사러 왔을 때 내가 막 파룬궁을 언급하자 그는 얼른 말을 가로챘다. “내가 알려줄까요? 지금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당신들을 좋아하고 있어요!”

어느 날, 사법경찰 마크를 단 경찰이 선인장꽃을 사러 왔다. 나는 선의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경찰이니 절대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지 말기 바랍니다. ‘총부리를 1cm 높일 수 있고’, 선악에는 응보가 있습니다.” 그는 들으면서 꽃을 골랐고 마지막에 100위안(한화 1만 8천원 정도)어치 되는 큰 선인장 4개를 고르고는 만족하며 떠났다.

B사장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분명히 그에게도 진상을 알렸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럼 그렇죠.” 당시 긴장하던 사장과 달리 그 경찰은 선인장꽃 4개를 구매한 후 만족스럽게 돌아갔기에 사장은 아주 기뻐했다.

한 중년 남성이 화분을 사러 오자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나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라고 묻자 나는 “경찰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경찰이 맞아요. 내 친구 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곧 16차 대표대회가 열리니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고객을 도와 꽃을 배달하거나 옮길 때도 진상을 알렸다. 가끔 B사장도 나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귀띔해주면서 “이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에게도 진상을 알려 그도 구원받도록 해주세요”라고 한다.

또한 B사장의 친구들에게도 늘 진상을 알렸다. B사장은 친구가 많은데 관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자주 왔기에 나는 늘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B사장의 친구들은 그에게 “당신이 고용한 사람이 날마다 진상을 알리는데 장사에 영향 주지 않겠어?”라고 하면 B사장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도 살아야 하니 그가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하게 놔둬. 게다가 모두 사실인데 뭘”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B사장은 나에게 “당신은 이곳을 진상을 알리는 장소로 여기세요”라고 말했다. B사장의 선행에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의 사업은 영향받기는커녕 갈수록 잘 돼 대법의 복을 받았다. 사장 내외와 직원 두 명은 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냈고, 하루에 적어서 몇백 위안, 많으면 몇천 위안을 벌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파룬궁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하려고 나는 선한 마음과 진심으로 모든 고객을 대했다. 그래서 단골손님이 아주 많았다. 어떤 단골손님은 오기만 하면 “파룬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딱 봐도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고, 그러면 나는 파룬따파를 잘 대하면 복을 받는다는 이치를 알려줬다.

1년 뒤에 내가 떠날 때 B사장은 나에게 “당신을 대신할만한 파룬궁수련생을 찾아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 B사장은 파룬궁수련생이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감히 중공의 탄압을 무릅쓰고 나를 받아줬고 내가 진상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주며 장소를 제공해줬다. 이로 인해 그는 큰 복을 받았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소원은 파룬따파의 복음을 집집마다 전해 더욱 많은 사람이 신불(神佛)의 보호를 받게 하는 데 있다.

2. 선량한 경찰 누나

나와 경찰 누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건물 하나를 사이 두고 있다. 그녀의 집은 길 동쪽, 우리 집은 길 서쪽에 있으며 그녀는 우리 이웃과 친척이었다. 예전에 서로 몰랐고 그녀는 집에서 경찰복을 입지 않았다. 우리 둘은 시 마약퇴치센터에서 알게 됐다.

2000년 10월 2일, 나는 파출소로 납치됐고 납치된 이유도 아주 황당했다. 내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까 봐서였는데, 그러면 그들이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고 해서 나를 납치한 것이다. 이러면 그들도 ‘한시름을 놓을 수 있다’고 했다. 현지 정법(政法)위원회, 공안국은 시 마약퇴치센터에 ‘시 강제전향센터’를 세웠고 안에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된 수백 명 파룬궁수련생들을 가뒀다. 악인들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해 폭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파룬궁 수련을 포기)’시키고, 믿음을 포기하라고 강박했다.

나는 3층에 불법 감금됐고 경찰 누나와 여대장이 날 책임지고 관리했다. 우리는 벌을 받아 날마다 열 몇 시간 작은 의자에 앉아야 했고 파룬궁을 모욕하는 동영상과 라디오방송을 날마다 듣고 보면서 강제 세뇌를 받았다. 경찰 누나와 그 여경은 하루 종일 엄숙한 표정을 지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장모님과 아내가 나를 면회하러 왔을 때 먹을 것을 한 가방 갖고 왔다. 나는 그것을 모두 다른 파룬궁수련생에게 나눠줬고 포도 두 송이를 그 둘에게 줬다.

평소 경찰 누나와 그 여경이 당직을 서게 되면 경찰 누나는 파룬궁수련생들에게 편히 있으라고 한다. 그러다가 대문 벨이 울리고 다른 경찰들이 오면 큰 소리로 “똑바로 앉아!”라고 외쳤다. 사실 진상을 명백히 안 경찰들도 힘이 닿는 데까지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생을 도왔다.

경찰 누나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내 친척은 당신과 같은 아파트에 삽니다.” 나는 그녀에게 “꼭 파룬궁수련생들을 잘 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은 죄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녀는 우리 몇몇 수련생에게 식당에 가서 채소를 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런 것들을 들을 필요 있나요? 당신들이 좀 편히 있으라고 불러냈어요. 어디로 ‘전향’시키나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저보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비록 지금 파룬궁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저도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해요. 공산당 중앙에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할 때 저는 중앙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여러분과 만나면서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고 공산당 중앙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죠.” 겉으로 볼 때 그녀는 아주 엄하고 무표정이어서 몹시 엄숙해 보였지만 사실 선하고 두뇌가 명석한 경찰이었다.

우리에게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대대장은 날마다 파룬궁수련생을 찾아가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오자 난 말했다. “마약퇴치센터 내 TV, 고음 확성기에서는 날마다 파룬궁과 대법 사부님을 비방하고 모욕하며, 대법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사부님의 모든 대법 책, 모든 설법 동영상과 녹음자료를 다 찾아오세요. 우리가 당신 경찰들과 함께 우리 사부님께서 정말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화면을 하나씩 같이 보고, 녹음을 한 단락씩 같이 들으며 글자를 하나씩 대조해 봅시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고, 모두 중공이 거짓말로 세상 사람들을 속인 겁니다. 이는 중공이 사람을 박해하고 정치운동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수법이죠.” 대대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나와 대대장이 얘기를 나눈 이튿날, 대대장은 나에게 15일 행정 구류를 한다고 통지했다. 그때는 ‘전향’하지 않으면 불법 구류나 노동교양 혹은 판결을 받았다. 내가 ‘전향’되지 않았기에 마약퇴치센터에 16일 갇힌 후 불법 구류됐다.

구치소에 있을 때도 나는 날마다 진상을 알렸다. 네 번째 날, 장인어른은 시 공안국 감시관리팀 부대장의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때 나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대장은 나를 소장 사무실로 불러냈다. 부대장은 나에게 “나도 당신을 설득할 수 없으니 얼른 떠날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했고, 그날 나와 장인어른을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제자를 잘 대해주길 바라고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집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동네에서 경찰 누나를 만났는데 그녀는 말했다. “내가 아주 엄숙해 보이죠? 그 환경에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 붙잡혀 들어온 파룬궁수련생들을 보면 참 안쓰러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도 신지 못했고 수건, 휴지, 치약, 칫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신발, 속옷, 수건, 휴지를 사서 도와줬어요.”

“우리 소장은 홍콩에 갔다가 돌아와 ‘파룬궁은 홍콩에서 합법적으로 연공할 수 있고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파룬궁 자료를 나눠주거나 선전하는 것이 모두 합법적이고 공개적이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장쩌민은 정말 나쁩니다. 중국 경찰에게 파룬궁을 박해하라고 해서 그들이 죄를 짓게 했으니까요.” 나는 정말 그녀의 각성에 기뻤다.

이후에 현지 한 파룬궁수련생이 파출소에 납치되자 수련생은 경찰 누나를 찾아가 구조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직접 파출소 소장을 찾아가 사람을 석방하라고 했고 바로 그날 수련생은 무죄 석방됐다. 또 어느 한번 그녀는 박해로 집을 떠난 파룬궁수련생 부부에게 2천 위안(한화 약 35만 원)을 빌려줘 그들이 현지 경찰의 체포와 박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줬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경찰 누나를 믿었다. 그래서 노동교양소에 들어가기 전에 파룬궁 서적, 신분증 등 개인물품을 모두 누나에게 맡겨 보관하게 했다. 그들이 나오면 경찰 누나는 다시 그들에게 되돌려줬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세월 동안 우리 시에서 파룬궁수련생 800여 명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고, 400명 가까이 불법 징역형을 받았으며, 100여 명이 박해받아 사망했다. 마약퇴치센터, 구치소, 세뇌반에 들어간 파룬궁수련생은 수천 명에 달했다.

3. 우담바라 꽃이 연구소에 피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해외 수많은 곳에 우담바라라고 불리는 꽃이 폈다. 이 꽃은 흰색이고 아주 작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전에 우담바라 꽃이 필 때면 파룬성왕(法輪聖王)이 인간 세상에서 법을 전하시고, 사람을 제도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일요일, 한 연구소에 일하는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그의 회사에 우담바라 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그의 회사에 갔고 그곳은 연구소였다. 거의 마당에 도착하자 사무실 안에서 튼 자비롭고 장엄한 파룬따파 음악 ‘보도(普度)’ 음악소리가 들렸다. 대문 앞까지 걸어가니 흰색 우담바라 꽃 한 묶음이 철문에 활짝 피어있었고 모두 19송이였다. 수련생은 접수실 문 앞에 그림 한 폭을 붙였는데 내용은 불상 얼굴에 우담바라 꽃이 핀 사진과 아래 우담바라 꽃을 소개한 글이었다.

접수실 벽에는 파룬궁 진상자료가 한 줄 걸려있었는데 ‘명백’, ‘진상’, ‘희망’, ‘밍후이화보’, ‘하늘이 내린 복’ 등 열 몇 가지였고, 여기에는 파룬궁 박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느낌을 줬다. 1년 전 이 수련생은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한 정념으로 무죄 석방됐다.

이 수련생은 고급엔지니어다. 회사 상사는 압박에 못 이겨 그를 접수실에 배치해 당직을 서게 하고 그의 급여를 삭감했다. 하지만 수련생은 아무런 원망이나 후회가 없이 열심히 본연의 업무를 다하고 꾸준히 회사 직원들에게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렸다.

우담바라 꽃이 지속적으로 연구소에 만발하면서 사람들의 신성(神性)을 일깨워줬다. 연구소 동료들은 모두 지식인 엘리트들이고 문제를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파룬성왕이 정말 인간세상에서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하며, 파룬따파는 불가(佛家) 고덕대법(高德大法)이고, 대법제자는 복음을 전하는 ‘신의 사자’라는 걸 믿었다.

수련생은 늘 연구소 상사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 중공의 거짓말과 기만행위를 알렸다. 소장의 아내는 시 구치소 경찰인데 그들은 모두 파룬궁 진상을 명백히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고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라는 명령도 집행하지 않았다. 또한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중공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삼퇴)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4. 층층이 길을 만들어 파룬궁수련생이 복직하게 도와주다

2005년 7월, 나는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소에 2년 감금됐다가 집에 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 자칭 군 전역간부 사무실 주임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일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일을 배치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후에 일이 생기면 절 찾아오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신분증, 호구부를 지니고 구(區) 행정 서비스홀에 가라고 했다.

구 행정 서비스홀에 가서 물어보니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됐을 때의 차압된 월급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창 쪽에 앉은 여성과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박해받은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나보고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라고 했고 몹시 동정하며 참을성 있게 내 말을 들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나에게 은행카드를 한 장 줬고, 이렇게 나는 불법으로 차압당한 1만 위안(한화 약 175만원)를 돌려받았다. 창 쪽에 앉은 여성은 진상을 명백히 안 후 삼퇴했다.

이어서 나는 군 전역간부 사무실에 가서 주임을 찾아 일자리를 배치해달라고 하고 진상을 알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주임은 문을 닫은 후 내 일자리 문제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말했다. “‘헌법’은 국민에게 신앙자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제가 ‘진선인’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합법적이기에 마땅히 법률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중공 당국은 경찰을 조종해 불법 가택수색, 납치, 구금, 노동교양, 공직에서 제명, 급여 지급을 정지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위법입니다. 저는 일해야 하고 저의 생존권을 수호할 겁니다.” 이 주임은 아주 선했고 내가 말할 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줄곧 듣고만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 부대장병과 전역간부, 제대군인 사이에서 두 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 권은 ‘9평 공산당’이고, 다른 한 권은 ‘장쩌민 그 사람’입니다. 지금 부대장병, 전역간부 중에 진상을 명백히 알고 삼퇴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고, 군대 사령관부터 말단 사병까지 모두 삼퇴하고 있습니다. 장쩌민이 군대에 어떠한 재난과 화를 갖다줬는지, 돌아가서 ‘장쩌민 그 사람’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9평 공산당’을 보면 중공이 어떻게 파룬궁과 민중을 박해했는지 알 수 있고요.”

동시에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이치를 알려주면서 그에게 중공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를 박해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그에게 직권을 이용해 대법을 박해하지 말 것,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면 죄가 있고, 보호하면 그에게 복을 갖다주며 공덕이 무량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줬다. 진상을 명백히 안 후 그는 말했다. “주민센터 조직과장을 찾아가세요. 그가 동의하면 주민센터에서 상부에 보고하면 됩니다.”

주민센터 조직과에 가서도 나는 계속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명백히 안 후 과장은 나에게 “주민위원회에 서기를 찾아가 얘기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민위원회에 가서 주민위원회 서기와 파룬궁 박해를 전담한 두 사람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다. 주민위원회 서기는 “이미 상부에 올렸으니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2005년 7월 말, 군 전역간부 사무실 주임이 앞장서고 주민센터 조직과 과장, 동네 주임 등 7~8명이 현금 500위안을 들고 우리 집에 위로하러 왔다. 문에 들어서자 주임은 “8·1 건군절 전에 나는 당과 정부를 대표해 당신 집에 문안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이 당에 고맙지 않고 정부에도 고맙지 않습니다. 이 사악한 당과 정부는 신앙 자유를 파괴하고, 제 생존권을 박탈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고맙지 않고 당신들처럼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준 좋은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듣고 나서 그들은 매우 놀라며 탄복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모두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들의 양심을 일깨워 그들을 구하려 했다.

2006년 봄, 동네에서 나에게 그곳에서 주최한 컴퓨터학원에 무료로 참가하라는 통지가 왔다. 이어서 직장 훈련에 참가시키고 체형을 재서 옷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나를 6월 6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게 했고, 7월 첫 월급 때 4천여 위안을 보태어 지급해줬다. 나는 컴퓨터 한 대, 프린터 한 대를 구매했고 이때부터 내 가정자료점이 세워졌다.

중공의 박해 기간에 나는 꽃을 팔거나 신문 배달을 했고, 노점을 차리거나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 어떤 환경이든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릴 장소였다. 나는 겪었던 모든 과정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진상을 명백히 안 세인들이 도움을 줬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박해 중에서 선한 마음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도와줬던 좋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오늘날 그들의 선행이 내일의 복덕(福德)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슴 깊이 맺힌 원한을 풀고 자비롭게 소원을 이루다


글/ 창춘 대법제자 화위(華宇)

[밍후이왕] 나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 70세다. 퇴직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했다. 시아버지에게 맺힌 원한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한을 맺다

당시 시댁과 친정집은 모두 도시에 있었고 우리는 다른 지역에 살았다. 남편은 철도청에서 일했고 나는 학교에서 일했다. 딸애는 7살이라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일가족 세 식구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편안하고 행복했다.

1993년 4월의 어느 날 오후, 학생에게 줄 상품을 사고 돌아온 나에게 학교 상사는 어떤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가보니 낯선 남자 2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그들은 아주 많이 머뭇거리면서 이 지역 시 교통국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나는 좀 이상한 마음이 들어 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그들이 말했다. “사람이 차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차에 치인 사람이 의식이 없는데, 선생님 남편 같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나는 불현듯 그날 아침이 떠올랐다. 그날 아침 남편은 휴무라서 일 보러 나간다고 내게 알려줬다. 나는 남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예감이 들어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학교 상사가 병원에 동행해 주면서 계속 나를 위로해줬다.

병원 응급실에 가서 보니 남편은 겨우 목숨만 붙어있었다. 심한 뇌 손상을 입었고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는 모두 골절돼 색이 변해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사흘을 버텨낸다 해도 식물인간입니다.” 비관적인 의사의 소견에 충격을 받은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져 앉고 싶었다. 학교 상사가 말했다. “정신을 차려야 해요. 양가에 전화해서 가족들이 빨리 병원에 오게 해요.”

나는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며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겨우 전화를 건 몇 시간 뒤 양쪽 집안사람들이 모두 달려왔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았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내 머리는 공백 상태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또한 다소 흐리멍덩해져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 속인지 분명치 않았다.

사고 사흘째 되는 날. 남편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혼미한 상태의 사람에게 가족이 큰 소리로 부르면 깨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 깨어나게 하려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가면 안 돼요. 당신이 가면 나와 아이는 어떻게 해요 우리는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

나는 남편 옆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두 마디를 불렀을 때 시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너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거냐?” 나는 멍해졌다. 무슨 마음이라니? 나는 단지 남편이 깨어나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한순간 나는 엄청난 억울함이 느껴졌다. 왜 시아버지는 나에게 이러시는가? 내가 당신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서러움을 쏟아내며 시아버지와 다투기 시작했다. 양가 사람들이 모두 와서 말렸다. 언니가 나를 한쪽으로 끌어가더니 계속 타이르며 눈물을 닦아줬다. 그날 남편은 내내 깨어나지 못했고, 결국 밤에 사망했다.

교통사고는 시 기계국이 낸 것이었다. 교통국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작은 길에서 도로로 올라갈 때 성(省)으로 회의하러 가느라 질주하던 기계국의 산타나 승용차와 부딪쳤다고 했다. 뒷일을 처리하는 데 대략 한 달이 걸렸다. 시댁 사람은 아무도 나서지 않아, 내 오빠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전부 해결했다. 오히려 시아버지와 시댁 사람은 잇달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했다. 그들은 내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아이는 그들 집의 사람이고 그들의 성씨이니 내게 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일은 셋째 삼촌이 막아줬다. 또 그들은 남편의 회사에 가서 후사 비용을 요구했다. 회사 노동조합의 상사가 그들에게 답했다. “우리는 돈을 사망자의 아내한테만 줘야 합니다. 당신들한테 줄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후사를 치른 후 시아버지는 보상금 일부를 원하며 떠나지 않았다.

당시 친정아버지가 병이 위중해 입원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앞으로의 삶이 막막한 내게 시아버지와 시댁의 행동들은 태산이 내 정수리를 누르는 듯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고 그들과 도리를 따질 여력이 없었다.

마음속은 화와 원한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어디에 이런 노인이 있는가, 그는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는가? 딸은 내 팔을 당기면서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말아요. 이제 할아버지는 내 친할아버지가 아니에요. 나는 할아버지가 싫어요.” 오빠와 언니는 모두 나를 타일렀다. “그런 사람에게 화내지 말라. 그냥 각자가 자기 인생을 살면 되지.”

그렇다. 내가 이후 또 시아버지와 시댁 사람과 왕래하겠는가? 어찌 또 왕래하겠는가? 내 마음속에는 그 어떤 것에도 견줄 길 없는 원한이 깊고도 깊게 묻혔다.

인연을 맺다

1993년 7월 내부 이동으로 나는 딸애를 데리고 지금 거주하는 도시로 돌아왔다. 두 집과 모두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나는 시아버지의 가족에게 알게 하지 않았다. 나는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또 그들을 볼 일도 없었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친척 한 명이 나와 같은 학교 직원이었다. 아마도 이 동료가 시아버지에게 내가 왔다고 알려준 것 같았다. 한번은 퇴근하는데 시아버지가 교문 밖에 서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게 됐다. 딸아이를 보러 온 듯했다. 나는 바로 아이를 데리고 다른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1997년까지 5년 동안 시아버지는 대략 세 번 학교로 찾아왔지만, 나는 모두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언니 집에 머물렀는데 출근하자면 꽤 멀었다. 비록 나를 상심하게 한 곳에서 멀리 떠나왔지만, 생소한 업무환경과 생활 부담에 직면해 있었다. 남편과 아버지까지 잃은 거대한 고통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다. 나는 점점 허약하고 초췌하고 예민해졌다. 신체도 갈수록 나빠졌다. 풍습, 부건염, 담낭염, 위염(위저출혈), 경추 골질증식으로 인한 뇌빈혈은 신체를 몹시 나빠지게 했다. 나는 약에 의지했다. 한약, 양약 한 꾸러미씩 집으로 사들였다. 나는 담임을 맡고 있었으며 수업은 두 개 반을 가르쳤다. 가끔은 3교시 수업을 하면 숨이 찼다.

당시 상사가 나를 매우 돌봐주었다. 동료 한 명을 파견해 함께 수업하게 했다. 이 동료는 파룬따파 수련자였다. 내 상황을 본 동료는 나에게 수련을 권했다. “이 공법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습니다. 수련하면 신체는 반드시 나아질 겁니다.” 그 당시 내 생활은 아주 단조로웠다. 매일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집을 오가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파룬따파 수련이 이미 세상에 널리 전해진 것을 몰랐고 어떤 공법인지도 몰랐다.

이후 내 신체는 갈수록 나빠져 아예 3교시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자주 병가를 내자 동료 선생님은 계속 파룬따파 수련을 권하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준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의 인품도 괜찮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파룬따파가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동의했다. 동료 선생님은 대법 책을 모셔왔다. 바로 이렇게 나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해 대법제자가 되었다.

원한을 풀다

수련을 막 시작한 그때가 마침 1998년 1월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나는 ‘전법륜’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 번 다 읽기도 전에 초상(超常)적인 책이라고 느꼈다. 좋은 사람으로 되게 하고 향상하게 하는 책이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아무리 생각해도 알지 못했던 많은 문제의 답안을 책 속에서 찾았다. 내 흉금은 전에 있어 본 적 없이 넓게 열리고 투명해지고 즐거워졌다. 자연스럽게 끝까지 배우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法輪大法 대원만법’에 따라 5세트 공법도 배웠다. 공법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뒤, 나를 힘들게 한 온갖 병은 나도 모르게 사라졌고 온몸이 가볍고 예사롭지 않았다.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면 마치 누가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듯했고 위층도 아주 쉽게 올라갔다. 예전의 한 걸음 걷고 세 걸음을 쉬는 상태가 사라지고 정말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기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연공인이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점차적으로 우주특성에 동화하여 당신의 그런 좋지 않은 것을 끊어버려야 한다.”[1]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1]

사부님의 대법에 대조해 나는 자신이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대법의 요구에 도달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몹시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시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생각하니 내가 달라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원한의 매듭이 매우 단단해 틈이 없었고 게다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행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어찌 수련자이겠는가? 내가 어찌 좋은 사람이겠는가? 나는 대법의 표준 진선인(真·善·忍)에 도달하지 못했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자비롭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침 그때 친척을 통해 들었는데 근래 시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나는 친척의 말을 듣고서 시아버지를 뵈러 가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내가 가기도 전에 시아버지께서 먼저 학교로 오셨다. 오랜만에 그를 보자 나는 여전히 다소 불편했고 무슨 할 말이 없었다. 또 그전의 일이 여전히 마음에 올라왔다. 나는 최대한 자신을 자제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평온을 유지했다.

5~6년 새 시아버지는 많이 늙었고 정신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그도 몹시 고달프다고 여겨졌다. 나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교실로 갔고 딸애를 보시게 했다(딸애는 내가 있는 학교에 있음). 아이를 보시더니 시아버지는 우셨다. 나도 눈물이 흘렀다. 아이는 울고 있는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시아버지가 손녀만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들을 그리워함을 느꼈다.

집에 돌아온 후, 내 마음은 매우 편치 않았다. 내가 편치 않은 원인은 원한이나 그 시기에 시아버지의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아버지에 대한 동정과 가련함 때문이며 강렬한 자책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시아버지도 역시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로서 시어머니가 일찍이 돌아가셨기에 그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엄마가 되어 아이 몇을 홀로 다 키워야 했다. 직장과 가정을 다 책임지느라 시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을까? 또 노인이 젊은 자식을 앞세우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이지적이지 못한 그의 행위를 탓할 수 없으며 그가 돈을 그렇게 중하게 본 것도 탓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몇 해 동안 이런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을까? 나는 시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지 못했고 늘 원한의 마음을 잡고 놓지 않았다. 게다가 손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고통을 더해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사무치게 했다. 그가 몇 번이나 학교에 와도 매번 아이를 볼 수 없었는데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망연해졌고 마치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닌 듯했다. 나는 완전히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 사상 관념은 아주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마침내 나는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전의 나는 이렇게 해 본 적이 없었고, 이런 것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체험했다. 바로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 연고이고 결과였다! 나는 내심에서 느꼈다. 아, 이것이 바로 수련이구나! 수련은 진짜 좋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진짜 좋다!

내심의 변화를 통해 전진하는 동력과 방향이 생겼다. 그 후 나는 시아버지를 집에 오시게 했다. 시아버지는 다소 부자연스러워했고 나도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했다. 나는 시아버지께 잘해야 하고 대법제자의 자비를 그에게 체현해야 했다. 나는 시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해드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아들은 없어도 그는 천륜지락을 누릴 수 있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시아버지는 내가 진심으로 그에게 잘해주고 있음을 느껴 매우 감동했다.

하루는 시아버지께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알려드렸다. 그는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시아버지가 좀 두려워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중공 사당(邪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설득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지적으로 가서 할게요.” 이어서 나는 파룬따파는 무엇이며 왜 중공 사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는지를 알려드렸다. 그에게 내가 온몸의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내가 왜 그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지를 이야기했다. 또 대법 사부님께서 내게 이렇게 하라고 하신 거라고 알려드렸다. 나는 그가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 하도록 도와드렸고 삼퇴한 시아버지는 밝게 웃었다.

그 후 시아버지는 한동안 혼자서 생활하다가 후에 양로원에 들어갔다. 나는 자주 그를 보러 갔다. 먹거리와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신발·침대 시트·이불 커버·속옷·양말·팬티 등)을 사드렸다. 시댁 사람 모두 내가 시아버지께 효도한다는 걸 알게 됐고 양로원의 사람들도 알았다.

한번은 내가 시아버지를 보러 갔는데 시아버지가 없었다. 나는 같은 병실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 시아버지는 당신이 가장 잘해준다고 말했어요.” 나는 말했다. “저는 조건이 좋지 않아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마침 대학에 다녀서 경제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자녀로서 해야 할 효도를 할 뿐입니다.” 그때 나와 이야기하던 노인의 눈빛이 문 쪽을 바라보더니 말을 멈췄다. 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시아버지가 마침 그곳에 서서 눈물을 닦고 있었다.

2005년 가을, 시아버지는 병들어 얼마 안 가서 세상을 떠났다. 유서에 그가 일생 모은 작은 저축을 아들딸에게 나눠줬는데 내 몫도 있었으며 일부 급여는 내 딸애 앞으로 남겨주셨다.

소원을 이루다

시아버지가 떠나시고 내 마음은 더욱 평온해졌다. 나는 시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때의 나날을 회억해 봤다.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남편이 떠났지만, 나는 시아버지께 효도를 다 했고 대법제자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또 시아버지에게 대법 진상을 알게 해 그의 생명에 좋은 귀속이 있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은 생명의 승화과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더욱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고상한 생명이 되어, 더욱 높게 되는 것이다.”[2]

내가 실제로 이런 일을 해낸 것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아버지에 대한 가득 찬 원한으로 영원히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혹독하게 굴었다. 실제로 찾아온 그를 피하며 만나지 않다가 수련하고 나서 그를 보기로 했으며 그를 한번 만났고 그 후 자주 만났다. 이 모든 과정은 심성을 제고하는 수련이었고 내 마음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바로 이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승화 과정임을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의 자비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은 내 마음에 가득 찬 아주 오래 응고된 차가운 원한을 녹였다. 나는 비로소 파룬따파로 수련해 낸 관용·선량·자비로 타인을 대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없으면 나는 해낼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하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나는 자신을 격려해 앞으로도 계속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베트남 수련생들에게’




대입 시험 지도교사의 성공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칭롄(靑蓮)

[밍후이왕] 나는 99년 7월 20일 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다. 20여 년간 순탄치 않은 인생을 걸어왔고 시련도 겪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의 보호와 지도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사람이 되고 점차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지금 이미 중년에 들어섰다.

2020년 초 우한 폐렴이 갑자기 폭발해 사람들은 단번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정상적인 생활이 파괴됐으며 각 업종은 모두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다. 그중 교육계에 영향이 가장 컸는데 가장 주목받는 문제는 대입 시험으로, 졸업반 학생들의 운명이 달린 문제였다.

어느 날 나는 한 낯선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나에게 그의 조카 샤오텅(小藤)을 가르친 적이 있냐며 그녀의 아들은 샤오텅의 이종사촌 남동생으로, 올해 대입 시험을 보는데 현재 성적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샤오텅은 여러 번 그녀에게 나를 추천했다며 자신의 아들을 지도해줬으면 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유감스러운 한 가지 일

전화를 받고 샤오텅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샤오텅은 우리 반 학생이 아니고 내가 몇 년 전에 지도해 준 학생이었다. 대입 시험 한 달 전 샤오텅의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해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가 가장 고독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나와 그녀는 간고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샤오텅에게 사실 마음속으로 줄곧 해결하지 못한 걱정거리가 있었다.

대법제자로서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가르친 학생은 모두 대법 진상을 알고 있고 삼퇴(중공 사당의 당·단·대를 탈퇴)를 한 학생 모두 성적은 빨리 향상됐다. 아울러 그들은 내 수업을 듣기 좋아했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없었다.

수업 중에 나는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과 문제 풀이 방법을 강의하는 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와 마음속 걱정을 해결해준다. 나는 파룬따파 수련에서 깨달은 법리로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진선인에 동화하게 했다. 학생들의 많은 걱정은 수업 중에 자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나는 여러 번 발견했는데 학생들이 수업 전에 감기에 걸리거나 기침 소리가 심하거나 몸이 불편했지만, 수업에서 그들의 증상은 서서히 감소했으며 수업이 끝난 후면 사라졌다. 정말로 대법 사부님 말씀과 같다. “우리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法輪(파룬), 그가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남을 제도할 수 있다. 밖으로 돌 때는 그가 에너지를 내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보게 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에너지장(能量場)에 덮인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어 그는 아마 아주 편안한 감을 느낄 것이다.”[1]

샤오텅은 착하기에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린 적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삼퇴’를 시키지 못했고 그녀는 졸업했다. 그러므로 샤오텅이 ‘삼퇴’를 못한 게 내 마음속의 한 가지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샤오텅의 이모가 전화를 걸어 나에게 보완할 기회가 온 것 같았다.

샤오춘(小春)이 왔다

약속대로 나는 샤오텅의 이종사촌 남동생 샤오춘과 만났다. 샤오춘은 재수생이다. 2019년 대입 시험을 봤는데 물리학을 잘 보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므로 올해는 물리학을 포기하고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선택했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이미 2년간 배우지 않았고 거의 다 잊어버려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시간은 아주 빠듯했다.

새해 전염병이 폭발해 수업 과정은 전부 온라인으로 바꾸었고 갑자기 바꾼 수업 방식에 교사, 학생들이 모두 잠시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효과는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대입 시험은 6월인데 전염병으로 학교는 개학할 수 없었다. 대입 시험을 정부에서 미룬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아 매 고3 수험생과 학부모는 마음속으로 불안했다. 샤오춘의 어머니는 더욱 애가 탔다. 그녀는 샤오춘이 재수생이기에 올해 대입 시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더는 재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기에 그녀를 위로했다. “마음 놓으세요. 제가 가르친 학생은 문제가 없어요. 그 외 대입 시험을 미룰 확률이 높아요. 대입 시험은 전국적인 시험이기에 매 성(省)을 고려해야 해요. 후베이(湖北)가 심각하기에 후베이에 전염병이 안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초조하지 마시고 이런 초조한 마음을 학생에게 보여주면 안 돼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샤오춘 어머니의 초조한 마음은 반복됐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주 전화를 걸었고 매번 모두 반 시간 이상 그녀의 감정을 하소연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경청했다. 수련인의 낙관적인 태도로 그녀를 일깨워줬다. 그러므로 매번 이야기꽃을 피웠고 걱정은 사라졌다. 나중에 대입 시험은 확실히 미뤄졌고 우리의 계획은 더 확고하게 됐다.

샤오춘의 현 상황에 직면해 어떻게 그를 도와 신속히 성적을 향상케 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있다. 진상을 알고 ‘삼퇴’하면 복을 얻는다. 이것은 여러 번 검증된 성공 경험이다. 그러므로 수업에서 나는 적당할 때 대법 진상을 그에게 알려줬다. 샤오춘은 인정했고 그는 중공의 부패에 명확한 인식이 있다. 나는 또 중공의 폭정, 중공이 ‘천안문 분신 사건’을 조작해 파룬궁을 모함하고 대법제자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등 진상을 알려줬다. 내친김에 그에게 공청단·소선대를 탈퇴시켜줬다.

학생에게 평온한 마음과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학습 효율에 영향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과목을 다시 선택한 압력, 전염병의 위협, 시간의 긴박감,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번 대입 시험 등으로 샤오춘이 받는 압력은 높다. 그러므로 그가 수업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무리 시험을 잘 보지 못해도, 아무리 터무니없이 틀려도 나는 적극적으로 격려했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샤오춘이 전염병에 대한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나는 그에게 알려줬다. “이번 전염병은 중공을 겨냥한 것이기에 중공의 당·단·대를 탈퇴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위험에 벗어날 수 있어.” 나는 또 후베이에서 일어난 많은 사례, 사람들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읽고 우한 폐렴에서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한 사례를 들려줬다.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그를 격려하고 위로해줘 한 걸음씩 나아가게 했다. 이후 대입 시험 점수가 나왔고 샤오춘의 어머니는 가장 먼저 나에게 점수를 알려주며 만족해했다. 그녀는 “정말 감사드려요”라며 나에게 보충 수업료를 주려 했다. 나는 일찍이 웨이신(微信)을 삭제했기에 그녀는 나에게 계좌이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수련인으로서 이미 이익을 담담하게 봐 돈을 버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고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 기회를 주는 게 나의 소원이다.

나는 그녀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가 합격한 후 함께 밥을 한번 먹자고 했다. 그때 마음을 터놓고 말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어 샤오춘은 지원서를 냈고 합격했으며 결국 자신이 바라던 대학에 합격했다. 모두 기뻐했다.

우리는 약속대로 함께 간단히 밥을 먹었다. 밥상에서 나와 샤오춘 어머니, 아버지는 기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 둘은 모두 의사다. 그러므로 전염병에 결합해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특히 우한 폐렴을 최초로 폭로한 우한 의사들의 이야기였는데 이 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외 하나는 두 우한 의사가 우한 폐렴에 걸렸다가 나중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해 기적처럼 회복된 일인데 이 일은 중국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 둘도 처음으로 들었다. 내친김에 주제를 대법 진상으로 옮겼다.

나는 중공이 자작극 ‘천안문 분신’으로 파룬궁을 모함했고 대법제자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등 진상을 그들에게 알려줬다. 그들은 좀 놀랐다. 샤오춘의 아버지는 말했다. “그해 지난(濟南)에서 공부할 때 첸포산(千佛山)에서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걸 봤어요.” 나도 확실하다고 말했다. “1999년 7·20전에 1억 명이 파룬궁을 수련했고 그해 원흉 장쩌민 혼자 파룬궁을 탄압했어요.” 마지막에 나는 구이저우(貴州)성 장자석(藏字石: 글씨가 새겨진 돌)의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을 언급하며 이 6글자는 천연으로 형성된 글자라고 말했다. 또 그들에게 핸드폰에서 ‘장자석’을 검색해보라며 발견된 과정을 서술했다.

나는 말했다. “하늘에서 중공을 소멸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당·단·대를 가입할 때 맹세한 적이 있어요. 생명을 그에게 바친다고 했어요. 이것은 독한 맹세입니다. 단지 마음속으로 당·단·대를 탈퇴하면 이 독한 맹세를 지울 수 있고 재앙을 피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선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중공에 따라 불운해지면 안 돼요!” 그들은 머리를 끄덕였고 나는 그들의 ‘삼퇴’를 도와줬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줬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인연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큰데 우리 오늘 몇 사람이 여기에 모일 확률은 아주 낮아요. 저는 이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해요. 저는 돈을 위해 온 게 아니고 저는 인연을 위해 온 것으로 당신들을 위해 왔어요!” 샤오춘의 어머니는 가방에서 두꺼운 돈다발이 든 편지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이것은 선생님께 준비해 놓은 거예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을 들은 후 저는 이것을 드리는 건 선생님에 대한 모욕인 것 같아요. 당신은 진정한 선생님이세요!”

샤오춘의 어머니는 또 말했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제 한 동창에게 샤오춘의 다른 과목을 가르치게 했어요. 하지만 매번 그는 아이에게 맞게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꾸짖었어요. 저와 아이는 그 집에 가서 지도를 받을 때마다 고통에 시달렸죠! 하지만 선생님은 다르세요. 매번 아이가 돌아올 때 자신감이 넘쳐요. 매번 선생님과 통화한 후 희망이 넘쳤어요. 정말로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선생님은 우리 집의 귀인이세요!”

나는 말했다. “샤오춘은 제가 비용을 받지 않은 첫 번째 학생이 아니고 또 마지막 학생도 아니에요.”

샤오텅(小藤)이 돌아왔다

샤오춘이 진상을 알고 걱정거리는 반쯤 줄었다. 샤오텅은 어떻게 하지? 과연 샤오춘의 어머니가 샤오텅이 며칠이면 여름방학이라 곧 나를 보러 온다고 말했다. 다른 절반의 걱정거리가 해결됐다. 마음속으로 사존의 자비로우신 배치에 감사드렸다.

며칠 후 보슬비가 내리는 오후에 샤오텅이 왔다. 몇 년 만나지 않아 이미 아가씨로 변해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만난 후 비로소 알게 됐는데 샤오텅은 곧 졸업했고 전공은 법학이었다.

옛이야기를 한 후 나는 그녀의 전공에 대해 말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지. 사회에서 가장 타락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직업이 있는데 교사, 의사, 판사라고. 교사는 글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며 학업이나 기예를 전수하고 아이에게 선악과 시비를 변별하게 하지. 그들 마음속에 선(善)의 종자를 심어줘.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며 의술로 사람을 구제해. 판사는 공평성을 유지하고 정의를 펼치지! 이 세 직업이 타락하면 나라는 사라져. 지금 중국은 이런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어. 예를 들면 네가 배운 법률을 예를 들어보자. 지금 어떤 판사는 법정에서 직접 변호사에게 말해. ‘당신 입 다물어. 나에게 법률을 말하지 마. 공산당이 바로 법이야.’ 어떤 판사는 법을 알면서도 법을 위반해. 넌 파룬궁을 알고 있지? 현재 중국 법률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공문서에 따르면 파룬궁은 완전히 합법적이야. 그러므로 많은 정의감 있는 변호사는 대법제자에게 무죄 변호를 해주지.”

샤오텅은 말했다. “선생님, 현실과 접촉할수록 중공의 어두운 면을 알게 돼요. 처음에는 법을 배워 정의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본 후 몹시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전공과 수업을 들을 때 우리 교수님은 많은 사건 사례를 말씀하셨어요. 저는 갈수록 그런 환경이 싫어져요. 그래서 대학원에 응시하려 해요. 나중에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런 시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나는 이어 말했다. “방금 그런 말에서 너의 선한 마음이 있는 걸 볼 수 있어서 선생님은 진심으로 너를 위해 기뻐! 중공 통치 아래 어디에 법치가 있어? 독재로 얼마나 많은 억울하고 잘못된 사건을 만들었어? 얼마나 많은 운동을 했고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어? 중국인은 선악은 응보가 있다고 말해. 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업보를 받고 한 정당이 나쁜 일을 하면 업보를 받아! 우리는 당·단·대에 가입할 때 독한 맹세를 했고 자신의 생명을 그에게 바친다고 말했지. 생각해봐. 이건 위험한 거 아니니? 중공은 죽기 전에 희생양을 찾으려 해. 그러므로 선생님은 여기에서 너에게 축복을 주려 하는데 네가 마음속으로 탈퇴하길 바라고 그 독한 맹세를 지우고 아름답고 광명한 미래가 있으면 해. 어때?”

“좋아요, 선생님 저는 당원이에요. 탈퇴하겠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어 그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삼퇴를 시켜서 다른 걱정도 해결됐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샤오춘이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은 후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한 단락 글을 썼다. “오늘 아들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어요. 정말로 감개무량해요! 굴곡진 길에서 우리는 운이 좋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우리 온 가족의 귀인이고 복음입니다.”
나도 감개무량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도 다른 교사와 마찬가지로 이미 물욕에 눈이 멀고 재물을 목숨처럼 여겼을 것이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내 어디에 평온한 마음과 지혜가 있겠는가? 또 어떻게 그들을 위해 미혹을 타파할 수 있었겠는가? 혹시 눈앞의 전염병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어떤 의의에서 말하면 나는 아마 당신 눈의 귀인이지만 당신은 알고 있는가? 진정한 귀인은 우리의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시다. 혹시 머지않은 장래 당신은 알게 될 것이고 전 세계에서도 알게 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감방 속의 대합창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1년 전, 나는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파룬궁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을 받아 출근 도중 경찰 7명에 의해 모 현(縣)의 구치소로 납치됐고 한 감방에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그 감방에는 10여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미온적으로 대했다. 내가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던 초기에 간수들은 매일 나를 취조실로 불러냈고, 나는 경찰에 밤낮으로 시달리느라 감방 사람들과의 접촉이 아주 적었다.

두 달 후, 내가 그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기회를 봐가며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렸다. 그들 중 절대다수는 비교적 쉽게 진상을 받아들였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보였다.

가끔 그들이 큰 힘을 쓰지 않는 일, 예를 들어 플라스틱 포대를 접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은 자연히 즐거워했다. 나중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나는 그런 좋은 기회를 이용해 중화민족 상하 5천 년 신전(神傳)문화와 수련인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중공의 무신론과 진화론 거짓말을 폭로했다.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분명히 알려주고 마귀 우두머리 장쩌민과 중공 깡패 집단의 사악함을 똑똑히 알렸다. 가끔 나는 서양인이 실제로 대법을 수련한 이야기를 열거하며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상황을 전해줬다.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는 대법 사부님에 대해 크게 감탄했다. 그들은 모두 파룬따파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높은 경지의 대법임을 알았고, 대법제자가 세상에서 진정한 좋은 사람임을 알았다.

내가 있던 감방은 유동적인 감방이어서 인원 변동이 컸다. 거의 4~5일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갔다. 나는 진상을 알릴 기회를 한 사람도 놓치지 않았다. 대략 83%의 사람이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에 동의했다.

나는 가끔 법률을 공부한 특기를 살려 감방에 있는 사람에게 소장 작성을 도와줬다. 나는 억울해 보이는 혐의자 두 명에게 연달아 항소장을 써줬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항소에 성공했다. 한 명은 1심에서 3년 형을 받은 젊은이였다. 내가 그를 위해 항소장을 쓴 지 3일 후, 법원은 최초 판결을 취소해 그를 무죄 석방했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다른 한 명은 1심에서 4년 형을 받은 농민이었는데, 내가 항소장을 쓴 지 3일 후 법원이 벌금만 2만 위안을 내도록 판결을 뒤집었고 구속을 면하게 됐다. 그 두 가지 일도 감옥 안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에 대해 감탄하게 했다.

용모가 수려한 젊은이 한 명은 휘발유를 훔치다 잡혀 왔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는데 대법제자인 나에게서 부성애를 느끼고 나에게 여러 차례 양아버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출소 후 결혼할 때 주례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폭로한 사당(邪黨)의 죄악을 아주 잘 알았고, 늘 민간의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예를 들어 ‘공안의 아버지’, ‘당나귀의 자살’ 등 이야기였고, 가끔은 ‘과거의 도적은 심산에 있고, 현재의 도적은 공안에 있다’는 등의 운율 섞인 말로 중공의 관리와 도적 같은 경찰을 조롱하고 야유했다.

나는 ‘자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경찰은 나를 잡아둘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불법적으로 감금된 지 4개월 후 이른바 ‘범죄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첩자 한 명을 감방에 파견했다. 그 첩자는 체포된 파룬궁수련생으로 위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와 접촉한 지 겨우 10여 분 만에 그의 신분을 알아챘고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첩자가 감방에 온 지 3일도 안 되어 감방에 있던 10여 명이 모두 그의 진실한 신분을 알게 됐다. 그는 가끔 수갑을 차고 심문을 받으러 가는 것으로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경찰과 함께 잘 차려진 식사를 했다. 한번은 내가 간수에게 이끌려 한 심문실 앞으로 지나갈 때 벌어진 문틈 사이로 요리 접시 몇 개가 놓인 테이블이 보였고, 그가 경찰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가 감방을 비웠을 때 감방 사람들은 저 첩자 때문에 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라며 선의로 나를 일깨워줬다.

1주일 후, 고육책을 맡은 그 첩자는 나에게서 진상을 모두 들었고 간수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밖으로 압송됐는데 다른 간수소로 이송된다고 했다.

어느 기간에는 저녁마다 잔업을 해야 했다. 책임이 무거웠으므로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일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어떤 사람이 제안했다. 각자 반드시 노래 한 곡을 불러야 하며, 차례가 돌아왔을 때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나는 음치였고 노래를 하면 음이 맞지 않았으므로 노래 쪽에는 자신이 없었다. 합창하면 그래도 다른 사람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었지만, 독창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내가 음치이며 혼자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다며 제외해 달라고 거듭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10여 명이 모두 인정사정없이 반드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나는 ‘내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세인을 구하면서 생사를 돌보지 않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데 음치까지 걱정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는 고함이었고, 거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끝까지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게 큰소리로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라고 외치며 장시간 열렬하게 박수를 쳤고 한 곡을 더 부르라고 했다.

내가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다시 노래를 부르게 했다. 황망한 가운데 내가 ‘득도(得度)’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좋아요. 다시 한 곡을 부를게요. 곡명은 ‘득도’입니다.” 나는 잠시 쉬면서 목을 틔운 다음 불렀다. “속세 깊은 곳에 떨어져 돌아갈 길 잃었네. 수천 년 방황하다 다행히 사존 만나 제도됐네. 제도를 얻었네, 제도를 얻었네. 기연을 절대 놓치지 마세.”

이번에는 가사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애썼고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하면서 노래를 제대로 불렀다. 아름다운 가사가 마음을 건드렸는지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면서 다 함께 소리를 쳤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같이 갇혀 있던 광고회사의 젊은 사장이 말했다. “이 가사는 정말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어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래 두 곡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감방 안의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불렀을 때는 아무도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태도에 감동했고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 하늘이 하사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노래를 한 구절 한 구절씩 정성껏 가르쳤다. 이틀 저녁에 걸쳐 가르친 후, 감방 안의 18명 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걱정한 방장 등을 제외하고 16명이 두 곡을 배웠다.

3일째 저녁에 사람들이 말했다. “각자 한 번씩 독창해서 틀린 곳이 있으면 함께 바로잡아 줍시다.”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한 번씩 불렀다. 그러고 나서 나와 16명이 함께 큰소리로 합창했다.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는 정법, 불광이 널리 비추네.” 우렁찬 노랫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노래를 마치고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좋아요! 좋아요!” 내가 있던 감방에서는 일주일을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저녁 30분에 걸쳐 ‘파룬따파 하오’ 노래 대합창이 펼쳐졌다. 며칠 동안 저녁에는 바깥의 7~8개 감방에 있던 사람이 화물 발송과 검사를 제쳐두고 창가에 몰려 이쪽 감방 소리를 들으며 웃고 고함을 쳤고, 가끔 열렬한 박수도 보냈는데 내가 있던 감방에서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은 당직 감옥경찰도 모른 체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감방 창문을 지날 때 늘 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들도 대부분 틀림없이 파룬따파 진상을 알고 있으며, 파룬따파가 사람들에게 선을 추구하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감방 안에서 ‘파룬따파 하오’ 대합창을 하던 신성하고 비범한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그 속에 있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그렇다. 암흑을 꿰뚫고 하늘까지 울려 퍼진 ‘파룬따파 하오’ 노랫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영원히 우주 속에서 울릴 것이다.



큰 복을 받은 고향 어르신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시골 대법제자이며 20여 년 이래, 줄곧 혼자서 수련해왔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제 신체와 심성에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고 아내와 아이도 그 가운데서 이로움을 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끊임없이 대법 진상을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줬습니다.

고향을 떠난 이후로 저는 집에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 돌아가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꼼꼼히 알려줬고 거의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그들에게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 누가 수련하면 그가 이로움을 받는다고 알려줬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왜 ‘삼퇴(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 탈퇴)’를 해야 하는지 말해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가 인정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장래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대법이 훌륭하다고 말하면 그들은 모두 믿었고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실명으로 ‘삼퇴’한 사촌 형이 대홍수에서 무탈하다

사촌 형은 70이 넘었고 학식과 교양이 있었으며 예절에 밝은 사람입니다. 문제를 토론하기 좋아하며 가족들 가운데서도 위엄과 명망이 높았습니다. 어느 해, 저는 특별히 고향에 돌아가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그는 “넌 어려서부터 정직하고 무던했지. 네가 말한 것이면 난 믿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어서 많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예를 들면 “왜 분신자살을 했을까? 왜 병이 있지만 약을 먹지 않을까?” 저는 하나하나 일일이 모두 해답해줬습니다. 저는 “형, 나로 말하면 평소에 닭과 생선을 모두 죽이지 않아. 그런데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분신자살할 수 있을까? 형이 봐봐. 그 앞장서서 분신한 사람은 타서 얼굴이 변형됐어도 눈썹과 머리카락은 여전히 멀쩡하잖아.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일이 있을까?”라고 말하자 그는 “그래, 나도 이상하게 여겼거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철저히 깨닫고서 분개하며 “장(江) 두꺼비는 좋은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어! 지금 현직 관리들을 봐봐. 정당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체면치레라도 좀 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고, 명색이 백성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거잖아. 어떻게 백성에게 살길이 있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악당은 오래 못 가. 형은 대법을 믿어봐. 누가 믿으면 그가 복을 받아”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삼퇴’해 평안을 보장받는 것을 알려줬을 때 저는 “형, 탈퇴할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시원스럽게 “탈퇴할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형에게 가명을 지어줄까?”라고 묻자 그는 “실명으로 해!”라며 배짱이 충만했습니다. 저는 또 옆에 있는 사촌 형수에게 삼퇴를 이야기하자 형수는 가명으로 할지 실명으로 탈퇴할지 망설였습니다. 사촌 형은 큰 소리로 “두려울 게 뭐가 있어? 실명으로 해! 써줘”라고 말했습니다.

사촌 형과 형수는 삼퇴 후 확실히 복을 받았습니다. 70여 세인데 더욱 정정해졌고 농사짓고 누에를 키우며 장작을 패는 등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딸은 대도시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아들과 며느리가 외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가장 신기한 것은 그해 고향에 한 차례 백 년에도 만나기 힘든 대홍수가 나서 산사태가 나고 마당 담장은 물에 쓸려 무너졌습니다. 그때 마침 밤이어서 큰물이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수위는 온돌 가장자리와 비슷하게 높았습니다. 마당 안에는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사촌 형과 형수는 두려워하지 않고 순조롭게 벗어났으며 집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지나간 후 주변의 몇 가구나 집이 홍수에 의해 파손돼 살 수 없게 되어 모두 이사를 하였습니다. 사촌 형의 집은 깨끗이 정리하니 별일이 없었습니다. 사촌 형의 삶은 예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사촌 누나의 위 천공이 신기하게 낫다

사촌 누나는 약을 달고 살았는데 일 년 내내 약을 먹어서 온몸에 힘이 없었습니다. 매형이 농사를 짓고 누에를 길러 번 돈은 거의 다 사촌 누나의 치료를 위해 썼습니다. 어느 해, 저는 특별히 사촌 누나 집에 가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제가 한 말을 매우 믿었고 모두 삼퇴했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사촌 누나는 제 손을 잡고 “넌, 인정이 많고 복이 있어. 나를 봐. 온몸에 병이 가득한데 끝은 언제일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누나는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어. 건너지 못할 고비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누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저는 매번 누나를 보러 갈 때마다 약간의 성의로 사과와 바나나 등을 조금씩 사 갔습니다.

어느 해, 사촌 누나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검사 결과 위 천공이어서 수혈이 시급했습니다. 의사는 회진한 후 매형과 아이에게 구멍 크기가 달걀만큼이라며 복강에 피가 많이 고여 심장까지 좋지 않으니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사촌 누나를 성(省) 육군 종합병원으로 즉시 보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둘러 돈을 마련해 사촌 누나를 성 병원으로 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병원에 간 그날 밤, 사촌 매형은 온 밤 자지 않았습니다. 사촌 누나를 약골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됐습니다. 사촌 누나는 집안의 기둥이기도 해서 누나가 없으면 정직하고 무던한 매형에게는 하늘이 절반 무너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사촌 누나가 집을 나서면서부터 매형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리 스승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청을 드립니다!”라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 육군 종합병원에 도착한 후 전문가가 사촌 누나를 회진한 후 “수술은 엄두가 안 나요. 약 처방을 드릴 테니 집에 가서 요양하세요”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들은 멍해져 “집에 돌아가서 요양하라고요? 그건 죽기를 기다리는 거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거절하니 집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촌 누나는 병세가 심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의식은 또렷했고 제가 알려줬던 말을 떠올려 마음속으로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묵념했습니다. 매형도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나중에 사촌 누나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뜻밖에도 그날 집에 들어서자마자 병세가 다소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는 사촌 누나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이 담긴 플레이어를 하나 주어 시간이 날 때면 사부님 설법을 듣게 했습니다. 매번 재생할 때 부부 두 사람은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앉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곤 했습니다. 점차 사촌 누나의 혈색이 돌아왔고 미음을 조금 먹을 수 있었으며 이어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습니다. 불과 두 달 만에 사촌 누나는 건강이 정상으로 회복됐으며 다만 약간 허약할 뿐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촌 누나를 보러 갔을 때 사촌 누나는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아니었다면 전 죽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촌 누나의 경위를 잘 알고 있어 변화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사촌 누나 집에 갈 때 진상 소책자가 있기만 하면 누나에게 몇 부씩 주면서 “누나, 다 보고 나서 버리지 말고 마을 작은 상점 안이나 누군가의 집 창턱에 놓아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로움을 받게 해”라고 말했습니다. 매형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한 번은 매형이 작은 가게에 가서 둘러보다가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 마을 사람은 매형에게 아침에 창턱에서 파룬궁 소책자 한 권을 주워서 버리려고 하는데 아직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매형은 “보면 좋은 점이 있어요. 병이 있는 사람은 다시 재발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촌 누나가 대법에서 혜택을 받은 것을 알고 소책자에 특히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서 다 보고 난 뒤에 또 다른 사람에게 보내 읽도록 했습니다. 가끔 저는 사촌 누나에게 “대법은 이렇게 좋잖아. 진상 자료는 누가 보면 그가 이로움을 받아. 백성들은 사악한 공산당에 놀라서 감히 못 보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산당에 의해 해를 입었어?”

10여 년이 흘러 그때 병원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을 받았던 사촌 누나는 이제 70여 세가 됐고 건강은 줄곧 매우 좋았습니다. 매형은 농사짓고 돼지를 기르며 임시 노동자로 일하면서 매년 번 돈을 더 억울하게 사촌 누나의 치료에 쓰지 않아도 됐으며 모두 가정에 보태어 사용했습니다. 부부 두 사람은 화목하고 순조로웠으며 아이들에게도 많은 부담을 줄여줬습니다.

사촌 누나와 매형은 진심으로 대법 사부님의 홍대하신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시간이 길어져 저는 사촌 누나의 집으로 가지 않게 됐고 그들은 제게 전화를 걸어와 제가 늘 그립다고 말합니다.

98세 막내 고모가 겪은 위험

막내 고모는 올해 98세가 되셨습니다. 고모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고 한평생 고생만 했으며 말솜씨가 없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늘 제게 “네 고모는 천대받으면서 살았고 아이는 걱정을 끼쳐서 네가 자주 뵈러 찾아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모는 저를 볼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는 팔자가 사나워 형제자매 몇몇 중에 나만 남았고 운이 좋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모, 고모는 팔자가 가장 좋으세요. 우리 아빠랑 큰고모랑 둘째 고모는 모두 돌아가셨어요. 막내 고모가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건 복이잖아요. 왜 운이 안 좋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고모는 “난 한평생 힘들었고 입도 우둔해 천대만 받아왔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생을 겪는 것도 복이에요. 고모 연배분들 중에 고모만 남으신 것은 파룬따파의 복음을 들으라고 그런 거예요. 이 복은 얼마나 큰가요. 고모는 기뻐하셔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갈 때마다 저는 모두 고모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고모는 제가 준 대법 진상 호신부를 매우 소중히 여겼고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웠습니다. 고모는 제가 알려준 대법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해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 또 제게 “이 구절만 외우면 효과가 있다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건 평범한 말이 아니라 신께서 사람에게 듣게 하신 말로서 위력이 커요. 고모, 진심으로 외워보세요. 분명 효험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일을 보러 도시로 가는 길에 고모 댁에 들렀습니다. 고모는 창문 밖으로 제가 오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땅을 딛고 걸어 나와 저를 맞이하며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네가 날 봐봐. 지금 얼마나 기운이 있어 보여”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관찰해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기운이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고모 매일 그 말을 외우세요?”라고 묻자 고모는 “외우지. 매일 외우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맞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네! 맞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고모는 또 “막내 고모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마라. 몸이 튼튼하잖아. 청력만 조금 안 좋을 뿐이야. 눈도 침침하지 않고 등도 굽지 않았어. 잘 먹고 마실 수 있고 마음도 한결 밝아졌단다”라고 말했습니다.

막내 고모는 아들 집에 살고 있었고 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며느리가 걸핏하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여 고모는 속을 끓였던 적이 많았습니다. 고모가 90여 세까지 살 수 있었던 건 고모 말씀으로 하면 “하늘이 돌봐 주셔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은 모두 대법을 위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돈이 얼마나 많든지 막론하고 눈 깜빡할 사이면 몇십 년이어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대법 진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똑똑한 사람이며 그래야만 큰 복이 있게 됩니다.

한 번은 제가 막내 고모 댁에 갔다가 고모가 제게 자신이 겪은 한 차례 위험을 말해줬습니다. 어느 날 오전,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밭에 농사를 지으러 나가서 고모는 혼자 집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고모는 거리에 나가서 좀 거닐고 싶었습니다. 고모네 집 문기둥 나무가 썩어서 대문을 밀자마자 ‘쿵’하고 대문이 무너졌습니다. 그 즉시 고모는 대문 밑에 깔렸고 그 대문은 철문이어서 수십 킬로그램 무게가 나갔습니다.

고모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기 시작했지만, 이웃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어. 문이 몸 위에 있어서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어. 난 갑자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가 생각나서 외우기 시작했지. 외우다 보니 이웃들이 건너와 서둘러 나를 도와 일으켜줬어. 또 아들에게 전화도 걸었어. 아들은 몹시 놀라서 나를 현 병원으로 데려가서 전신 검사를 받게 했지만, 발의 피부가 좀 벗겨진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없었어. 넘어져 다쳤을 때 쓰는 약 두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지. 네가 봐봐. 내가 이렇게 허약하고 발도 작은데 대법을 믿지 않았다면 깔려서 납작해지지 않았을까?”

고모는 말씀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나이가 있는 사람은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골절 아니면 외상이어서 일어나지 못하며, 죽음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고모는 수십 킬로그램 철문에 몸이 깔려도 아무 일 없는 대법의 기적을 경험하셨습니다.

사촌 동생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막내 사촌 동생은 젊은 시절 닭이나 개를 훔쳤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무엇이든 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고 아내도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고 선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이 잘못된 짓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삼퇴를 받아들였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자주 외우자 인생이 갈수록 순조로워졌습니다.

저는 일이 없을 때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의 삶이 이전과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제 절대 그런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작은 삼륜차로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팔았고 무엇이 나오면 그것을 팔았습니다. 1년간 돈을 많이 벌었고 삶도 윤택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또 새로운 가정을 꾸렸는데 부부가 화목했으며 또 작은 음식점을 개업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그에게 장사가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매우 좋아요! 가끔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가도 제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우기만 하면 기분이 곧 나아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몇 년간 저는 대법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현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듣자마자 고개를 젓습니다. 저는 ‘대법의 것을 듣지도 믿지도 않는 것은 모두 사악한 공산당에 의해 세뇌된 사람들이다. 이게 주원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아마 내가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의 느낌을 고려하지 않았고 마음이 조급해 오히려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상대방을 오해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한 가지 교훈이 있었습니다. 한 지인의 아이가 진학하는데 그의 부모가 저를 찾아와 “당신이 아이를 도와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관계를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모두 삼퇴해서 평안을 보장받고 있는데 당신은 뭐 하는 건가요? 빨리 탈퇴해요!”라고 말했고 말할 때 좀 조급해서 말투도 선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이것은 아이의 장래에 관계되는 큰일인데도 당신이 이렇게 말하다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 만약 제가 어머니 처지에서 생각하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이치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 어머니는 동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수록 어머니는 더욱 반감이 일었습니다. 저는 초조해져서 큰 소리로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아이 주머니에 폭탄을 넣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녀가 더욱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많은 사람과 제가 그 집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고 제가 공산당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제 아내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아내는 한참이나 제 언행을 수정해줬습니다. 제가 다시 그 아이 어머니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녀는 입으로는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몹시 거부했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꽤 오랫동안 후회했습니다. 본래 저는 아이가 잘 되기를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오해하게 돼 그녀가 대법을 거부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녀의 집이 수재를 당해 도시로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또 당뇨병에 걸려 심각했고 시력도 나빠졌습니다. 인생도 여유롭지 못해 힘들어 채소를 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운 채소를 뽑아 들고 도시로 그녀를 보러 갔습니다. 또 이 기회에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번에 그녀는 매우 감동했고 거듭 제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성심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외워봐요. 분명 효험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아이를 공청단원으로 만드는 그 일로 그녀에게 사과하면서 대법의 기본 진상을 알려줬고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도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매우 기뻐했으며 흔쾌히 공청단과 소선대를 탈퇴했습니다.

제 고향 집이 있는 마을과 주변 몇십 리 안에서 저 혼자 대법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줄곧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해왔지만,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수가 적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신의 친척, 가족, 친구, 동료 등 이런 사람들로서 그들에게 대법의 훌륭함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합니다. 사부님의 정법이 끝나지 않는 한 저는 계속 끊임없이 해나갈 것입니다. 더 많은 고향 사람이 진상을 알고 복을 받아 아름답고 훌륭한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
군인 대법제자의 회상


글/ 중국 대법제자 시위안(惜緣)

[밍후이왕] 만약 인생에서 제일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저의 답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하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인생 중에 제일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 무엇인지 제게 물으신다면 저의 답은 대법 사부님을 뵙게 된 순간이 되겠습니다!

1998년 12월 30일은 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저는 이날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그날은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은 부드러웠습니다. 저희는 평소대로 새벽 5시에 사관학교 체육관에서 파룬궁(法輪功)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저는 수강생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강의실 건물로 데려다준 뒤에 곧 위층 멀티미디어 강의실에 가서 수련생들과 같이 법 공부를 했습니다. 7시 50분쯤 어머니(수련생)가 급하게 집에서 학교까지 찾아와서 제게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핸드폰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수련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이 있다고 저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수련생에게 전화하니 전화기 너머로 수련생의 격동된 목소리가 전해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얼른 오세요!”

아! 사부님께서 오셨습니까!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는 5층에서 1층까지 날듯이 계단을 내려갔고 또 110개 계단과 학교 캠퍼스를 지나 학교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교외의 남산 산자락에 있는데 폐쇄형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정문에 자동차 운행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지만, 그날 제가 정문에 도착했을 때, 마치 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침 택시 한 대가 손님을 내려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택시를 타고 막힘없이 신속하게 수련생 집에 도착했습니다.

수련생 집 2층 거실에서 저는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약 70~80명 지역 보도원 수련생이 사부님 주변에 둘러앉아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공손히 듣고 있었는데 베란다와 방안이 모두 수련생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사부님의 정면에 앉게 했습니다. 저와 사부님 사이에는 오직 거실 테이블뿐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간 후에 저는 먼저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경례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맞은편에 앉아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공손히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을 뵙게 되어 기분이 한없이 격동되는 바람에 눈은 사부님을 보기 바빴고 설법 내용을 얼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많은 수련생이 계속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상이 제일 깊은 것은 사부님께서 왼손 집게손가락을 위로 가리킨 다음 오른손 손바닥은 왼손 집게손가락의 위에 놓으셨습니다. 사부님께선 저희에게 무엇이 ‘하늘’인지와 다른 공간의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닫혀서 수련하는데 평일에 주변 수련생들이 다른 공간의 신기한 일을 말하는 걸 자주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이런 명사에 대해서 아직 알듯 모를듯 일부 개념의 뜻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저는 진실하게 다른 공간의 진실한 존재를 느꼈으며 천체의 홍대함, 우주의 심오함과 파룬따파의 넓고 심오함을 느꼈습니다. 저의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은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마치신 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평소 수련 중에서 잘 모르고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도 했던 정말로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정말 사부님 앞에 있으니 오히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았고 머리가 텅 비었습니다. 제가 계속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어서 앞의 몇몇 수련생의 질문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이때 장소가 매우 조용했고 다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저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횡설수설하면서 사부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대략적인 뜻은 “저는 대법 수련생이어서 수강생들에게 출석을 부르고 평가하고 수업할 때(사관학교에는 수강생들에게 매일 출석을 부르고 평가해야 함) 대법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게 되지만 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거였습니다. 사부님께선 손으로 몸 뒤를 가리키신 뒤(우리 학교는 곧바로 사부님께서 가리키신 방향에 있고, 사부님께선 모두 알고 계셨음) 대략적인 뜻은,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들에게 바르고 좋은 쪽의 지도와 교육을 하는 것이 그래도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 말씀하셨는데 중간에 잠시도 쉬시거나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보도소 수련생에게 사부님께서 오후에 또 다른 도시에 서둘러 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선 곧 저희를 떠나야 했는데 다들 모두 매우 아쉬워하면서 모두 사부님을 기차역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보도소 수련생은 자리에 있는 모든 군인이 사부님을 고속도로 입구로 모셔드리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과 기타 수련생은 모두 모셔드리지 않은 것으로 했습니다. 제가 세어보니 자리에 총 이십여 명 군인이 있었고 육해공군이 모두 있었는데(저는 해군임) 군복을 입은 군인은 총 십여 명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봉고차에 탑승해서 가실 거라는 말을 듣고 곧 사부님 가까이에 앉고 싶었습니다. 이때 저는 머릿속으로 오직 어떻게 해야 사부님과 더 가까이 앉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곧 차 안팎에서 사부님을 찾아다녔는데 트렁크 쪽에 사람들이 에워싸고 얘기하는 걸 보고 사부님께선 반드시 뒤에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 눈을 뒤쪽으로 계속 쳐다보았지만, 사부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곧 트렁크 앞 2번째 줄에 앉았고 눈은 여전히 뒤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수련생(해군 캡틴)이 집에 가서 군복을 갈아입느라 마지막으로 차에 탑승했습니다. 그녀의 자리가 없는 걸 보고 저는 곧 왼쪽으로 조금 좁게 앉아서 자리를 비워주려고 했습니다. 이때 앞에 앉은 보도소 수련생이 사부님을 밀치지 말라고 일깨웠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리고 보니 아! 저는 바로 사부님 옆에 앉아 있었고 아까 수련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사부님을 밀쳤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선 차창 쪽으로 몸을 옮기셨고 괜찮으니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야 저는 알았습니다. 다들 모두 가능한 한 트렁크 쪽에 앉은 것은 사부님께서 휴식하실 수 있게 더 넓은 공간을 남겨드리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사부님과 더 오래 있으려고 무의식중에 사부님을 밀쳤습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부끄러워 진땀이 납니다. 정말로 이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수련생들의 격차를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정말로 이상합니다. 평소에 꿈을 꿔도 사부님을 뵙고 싶었지만 정말로 사부님과 함께 있으니 오히려 불편하고 사부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이때 저의 사상 업력과 각종 집착심이 한없이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집착심이 이제 다 사부님 앞에서 폭로된 게 아닐까?’ 당시 제가 입은 군복의 계급 표에 구멍 몇 개가 나 있었는데 꼬질꼬질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실까 봐 마음속으로 정말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과정에서 사부님께선 늘 미소를 띠며 자비하고 자상하게 보도소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매우 긴장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보도소 수련생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는지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했고 오직 차에서 내리면 사부님께 어떻게 경례를 올릴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약 20분 뒤에 저희는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차에 내리셔서 수련생들과 악수하며 인사하셨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께서 저와 악수하지 않으실까 봐 다른 수련생들과 악수할 때 곧 그 수련생 뒤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선 곧바로 몸을 돌리셔서 다른 수련생과 악수하시고 저는 곧 다시 다른 수련생 뒤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사부님께선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듯이 네 방향을 모두 돌아 모든 수련생과 악수하셨지만, 오직 저와는 악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시고 차에 탑승하려고 하셨을 때 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부님!”을 외쳤습니다. 사부님께선 몸을 돌리셔서 한마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빠졌군.”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시는 걸 보고 저는 얼른 앞에 가서 사부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한줄기 뜨거운 느낌이 치밀어 올랐고 저는 이것이 제 인생 중에서 제일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임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선 저의 손을 가볍게 치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마음속으로 기뻐하고 긴장했기 때문에 당시에 똑똑히 듣지 못했고 나중에 회상할 때 사부님께선 제게 이 한마디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차에 타셨습니다. 우리 전체 군인 수련생이 정연하게 대열을 지어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경례했습니다!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속도로 입구를 떠났습니다. 이 순간에 제 기분이 한없이 격동되었고 사부님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제 인생 중에 제일 강렬한 목소리를 외쳤습니다. ‘사부님! 저를 빠뜨리지 마십시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2년이 지났습니다. 저 또한 26년의 수련 과정을 걸어왔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에서 저는 매 시각 사부님의 격려와 독려를 느꼈습니다. 저는 깊게 깨달았습니다. 빠뜨려지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가려면 언제, 어떤 상황이든지 반드시 모두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라서 견정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진선인에 동화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 용맹하게 정진해야 합니다! 수련에는 아무런 지름길도 없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지지와 도움에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 딸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다


글/ 안후이 대법제자 무쯔(木子)

[밍후이왕] 저는 1997년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한 제자로 올해 58세입니다. 제게는 외동딸이 있습니다. 99년 7월 20일 이전에는 저녁에 집에 사람이 없을 때면 저는 딸을 법학습장에 데리고 가서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여덟 살이었던 딸은 정식으로 연공한 적이 없지만 법을 얻었습니다.

자라면서 딸은 대법제자에 대한 중공 사당(邪黨)의 잔혹한 박해를 보고 점점 대법을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늘 제 딸을 지켜주셨고 딸도 항상 정의의 편에서 대법제자를 도왔습니다. 결혼 후 딸은 완전히 속인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딸에게 “대법이 이렇게 좋은데 너 아직도 수련하지 않을래?”라고 물었더니 딸은 “수련 안 할래요. 좋은 날을 아직 즐기지 못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8월 25일, 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안색이 창백하고 핏기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딸이 요즘 감기에 걸려서 매일 약을 먹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고 소파에 데리고 가서 눕혔습니다. 이때 저는 딸이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색이 매우 좋지 않고 마치 숨을 들이쉬기만 할 뿐 내쉴 수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어서 사부님께 빌어라. 오직 사부님만이 너를 구하실 수 있단다!” “사부님 저를 구해 주세요. 사부님 저를 구해 주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딸은 간신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려고 했지만 딸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피곤하다면서 하룻밤 자고 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딸의 상태가 여전히 어제와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얘가 연공인인가요?” 남편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다시 딸에게 물었습니다. “아빠한테 널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할까?” “엄마, 가도 소용없어요. 병원에 간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아요. 병원에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어요. 병원에서도 이 병을 고칠 수 없어요.”

8월 26일, 남편이 딸을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혈소판이 정상인은 300단위인데 검사 결과 딸은 2단위 밖에 없었습니다. 원장은 의사에게 환자가 언제든지 사망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현재 우리 시에서는 이런 환자가 완치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원장은 우리에게 돈을 마련해 즉시 병원을 옮기라고 하면서 구급차를 불러 직접 의료진을 데리고 딸을 성(省)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이날 밤 딸은 성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께 부탁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라!” 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바를 모르는 남편에게 “겁내지 마세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사가 위독 통지서를 발급하고 가족들에게 중환자실 밖에 있으면서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환자실 바깥의 간이침대에 사람들로 꽉 찬 것을 보고 우리는 세 살 된 어린 외손자를 데리고 1층 접수실 앞 철제 의자에 가서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드려 잠든 아이와 남편의 지친 눈을 보고 저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딸이 아이를 가진 후에 사위는 악인(惡人)에게 협조해 대법제자를 박해했습니다. 사위는 딸의 산후조리 중에 우리 모녀의 통화내용을 녹음했으며 딸이 아이에게 대법제자의 노래를 불러준 것도 녹음해 협박했습니다. 딸이 출산한 지 10여 일째, 제왕절개 수술 자리에서 피고름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는 트집을 잡아 딸을 침대에서 바닥으로 밀어버리고 아기를 딸에게 내던지면서 모자에게 꺼지라고 했습니다. 만약 딸이 아기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정말 아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내동댕이쳤을 것입니다. 천둥 번개가 치는 밤 12시, 우리는 큰비를 무릅쓰고 딸과 아이를 친정으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딸이 대법을 떠난 후의 슬픔과 고통,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딸을 용서하실까? 딸이 어떻게 해야 이 생사관을 넘길 수 있을까?’

이어 “17병상, 의사가 찾습니다!” “17병상, 입금하세요!”라는 말이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바로 위독통지서와 각종 치료방안에 서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중환자실 밖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딸은 완쾌 후 집에 돌아와 자신이 중환자실에 있었던 경험을 적었습니다.

저녁에 나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 하게 했고 어떤 개인 물품도 소지할 수 없었다. 나는 병상에 혼자 누워있었는데 주위가 모두 새까맣게 느껴졌다. 밤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와서 피를 뽑았다. 주삿바늘을 혈관에 꽂아 빼낸 것은 모두 공기였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이 사람은 채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내 마음은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사람은 나를 구할 수 없다. 나는 파룬따파 사부님이 생각났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틀림없이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분명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나는 이미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주: 의사는 딸이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한 혈소판 감소와 약물 장기 복용으로 인한 급성 간 노화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과의 의사가 회진하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사망할 수 있다고 우리 부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들에게 우리는 믿음이 있고 사부님께서 돌보시기 때문에 틀림없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딸은 재활 기록에 또 적었습니다.

지난 네 번의 혈장 교체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사는 매일 부모님께 내가 언제든지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12일째 저녁, 엄마가 들어와 나에게 생명은 윤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를 보겠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삶의 의욕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주변 병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투명한 직사각형 상자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반드시 방법이 있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께 참회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자신을 속인과 혼동해, 사람의 정(情)에 관련된 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또 수련자가 범해서는 절대 안 되는 잘못이었습니다. 저는 덕을 너무나 많이 잃었습니다. 사람이 덕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한평생이 너무 유감스럽습니다. 저는 열심히 연공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시달림을 잘 넘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대법 가까이서 대법의 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후회합니다. 사부님, 빌고 빕니다. 저에게 한 번 더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 저는 반드시 수련을 잘하고, 어린 제자를 잘 거느리고, 절대 범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다섯 번째 혈장 교체다(의사는 마지막이라고 했다). 간호사 아가씨가 소리쳤다. “17병상, 혈소판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30이 넘었어요!” 중환자실 전체 의료진이 몹시 흥분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통해 흉강과 심장에 액체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는 핏물인데, 스스로 흡수하기는 매우 어려우니 핏물을 빼내라고 했다. 흉강에서 배출할 때 혈중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곤란하고 대소변도 통제되지 않으며 사지가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해 생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어떤 말은 그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없다. 나는 주위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쁜 것을 고려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살려주세요! 사부님께서는 분명 방법이 있으실 거예요. 분명 방법이 있으실 거예요.”

나는 기도에 호흡기를 끼우고 도뇨관을 꽂았다. 마침내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았다. 내 마음속에는 다시 생명을 주신 사부님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사의 마음이 충만했다.

나중에 간호사가 나에게 수혈해주면서 “그 말을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파룬궁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진실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심장에 찬 핏물을 뽑을 때 나는 이불에 기대있었는데 천둥이 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나중에 맑은 하늘이었음을 확인함). 나는 내가 드디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막아주셨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파룬궁을 배워야 한다. 나는 16일째 되는 날 중환자실에서 나와 19일째 되는 날 퇴원했다!

사부님께서 생명을 구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제 딸에게 다시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 모녀는 수련하는 길에 서로 도와주고 사람을 구하는 길에 서로 협력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의 역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해외 어린이들이 대법을 배우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해외 대법제자로, 밍후이 학교 교사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2020년 3월, 전염병이 폭발해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고, 어린이 대법제자들은 학교에 갈 수 없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린이 대법제자의 단체 법공부에 좋은 기회였다. 나와 다른 가장들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온라인으로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는데, 지금 이미 1년이 지났다.

사부님의 은혜로 어린이 대법제자들은 대법의 법광에 푹 빠져들었고, 심신에 모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도덕이 떨어진 혼탁한 세상 속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어와 영어 읽기 능력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다

우리는 매주 두 차례는 영어로, 네 차례는 중국어로 법공부한다. 음악 수업에선 대법제자의 노래를 배운다. 설령 나중에 학교가 개방돼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할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전법륜(轉法輪)’을 네 번 통독했다.

대법은 신기하다. 해외의 아이들은 중국어 실력이 몹시 부족해 대부분 글자를 모르며, 어떤 아이는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저학년 아이는 영어를 말할 수 있어도 읽지는 못한다.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한 글자, 한 구절씩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1년 동안 아이들은 글자를 알게 되었고, 현재 어떤 아이는 성인과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전법륜’을 다섯 번째로 배우면서 우리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영어로는 세 번째 읽고 있다. 법공부를 하면서 어린이 대법제자의 영어 읽기와 병음 실력도 아주 많이 늘었다. 우리는 겨울방학과 봄방학에 두 차례 9일 학습반을 열고, 영문판 ‘공산주의 유령이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와 중국어판 ‘9평 공산당’을 듣는다.

사부님께서 어린 대법제자의 신체를 청리(清理)해주시다

봄방학 때 열린 9일 학습반이 막 끝났다. 이번에는 어린이 여러 명에게서 신체상 소업 반응이 나타났다. 여섯 살인 이슈(一修)는 제1강의를 듣고 나서 다리 통증과 어지럼증을 겪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 새벽에는 어지럼증까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슈는 사부님께서 자신의 신체를 청리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친구와 함께 단체 연공을 한 후에 이슈의 소업 증상은 아주 빨리 사라졌다. 열다섯 살인 밍밍(明明, 가명)은 법을 듣기 며칠 전에 전신에 오한이 났고, 얼굴의 여드름도 몹시 심해졌다.

다른 많은 어린이 대법제자는 이번에 법을 들으면서 몸이 아주 편안하고, 아주 가벼운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하루 이틀에는 어린이 대법제자들이 주의력을 집중하기가 몹시 어려워 소란을 피우고, 졸기도 했지만, 뒤의 며칠 동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9일 학습반이 끝난 후, 원래 40분 동안 가부좌를 할 수 있었던 이슈는 현재 1시간 동안 할 수 있게 됐다. 다섯 살인 웨이나(維娜)도 원래 가부좌를 30분 동안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1시간 할 수 있다.

여덟 살인 샤오팡(小胖)은 법공부와 연공이 몹시 어려운 아이였다. 샤오는 법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매번 견뎌내지 못했고, 어머니까지 바빠 샤오를 데리고 법공부와 연공을 할 틈이 없었다. 이번에 9일 학습반을 여는 동안 샤오팡은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여전히 법을 듣는 것이 힘들었고, 산만한 데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래도 버텨냈다. 샤오는 집에서 늘 부모의 심기를 건드리고, 동생을 울렸는데, 이번 며칠 동안 계속 아주 안정돼 있었고 얌전했다. 매일 저녁, 법을 듣고 발정념을 마치면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워 ‘보도(普度)’나 ‘제세(濟世)’ 음악을 들으며 아주 빨리 잠들었다. 새벽에 샤오팡은 어린이 대법제자들의 단체 연공에 참가했고, 규칙적으로 활동하고 휴식하며 생활했다. 현재 샤오팡은 낮에 아이들과 놀 때 성격이 온순하고 명랑 유쾌한데, 이는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대법이 지혜를 열다

11살인 나의 딸 원원(文文)은 이번 9일 학습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회의를 통해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방영했기에 매일 아침 방영 준비를 한 다음, 가부좌하고 법을 들었다. 원원은 제법 자신을 단속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설득하기가 몹시 어려운 아이였다. 속인의 말로 한다면, 고집이 셌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되어 너그럽고 대범해졌다.

원원은 대법을 배우면서 지혜가 열렸다. 원원은 학교에서 대부분 과목을 아주 수월하게 배웠고, 어떤 기능이든 배우자마자 할 수 있었다. 내가 피아노 선생님이지만, 원원이 피아노를 배울 때는 내가 옆에 앉아 가르칠 필요가 없었고, 대부분 스스로 배웠다. 원원은 또 나의 피아노 학생 교습을 담당했다.

전염병 기간에 원원은 온라인 무용과 회화과 수업을 받았는데, 실력 향상이 아주 빨랐고, 몇 달 만에 다른 아이가 1~2년 배운 수준에 도달했다.

원원이 대법을 배운 후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어떤 일을 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장시간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 끝까지 마쳤으며, 부모의 감독과 보호가 필요 없었다. 원원이 서너 살이었을 때는 산만하고 주의를 집중하기가 매우 어려운 아이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현재는 서양의 교육도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원원은 진선인(真·善·忍)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하며, 학교에서 변이된 책과 음악을 보거나 듣지 않는다. 하루는 원원이 친구에게서 책을 한 권 빌렸는데, 책 속에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머니 두 명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바로 동성애 가정이었다. 원원은 즉시 그 책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는 읽지 않았다.

오락 중독에 벗어나 법 속에서 정진하다

로건(Logan)은 작년 7월 말에 정식으로 법공부를 시작한 아이다. 당시 그는 오락에 빠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단계였고,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전자오락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눈과 목,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래서 어린이 대법제자들이 함께 법공부를 하면서 전자오락과 관련한 사부님의 설법을 외웠고, 그를 도와 발정념 했다.

약 일주일 만에 그는 오락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 날마다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꾸준히 참여하는 가운데 법공부는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됐다. 매일 법공부 시간이 되면 스스로 컴퓨터를 켜고 법공부 준비를 한다.

로건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지 매사를 법으로 가늠하며, 고생을 견딜 수 있다. 로건의 어머니는 어느 날 로건이 제2장 공법의 포륜(抱輪)을 할 때, 손이 힘들어 시큰거렸지만, 내려놓지 않고 마음속으로 아홉 글자 진언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다고 말했다.

법공부를 한 후에 로건은 옳고그름을 더욱 분명하게 가릴 수 있게 됐으며, 변이된 것을 배척할 수 있게 되었고, 설거지, 청소, 자기 방 정리 등 집안일을 분담하게 됐다. 로건은 공부를 수월하게 해 회화반의 선생님도 몹시 감탄했다. 로건과 어머니의 심성이 제고된 것을 본 아버지도 성격이 갈수록 좋아졌고, 로건 모자의 수련을 갈수록 지지하고 있다.

진선인 수련으로 남매가 화목해지다

봄방학을 앞두고 여덟 살의 룽바오(龍寶)는 세 살인 남동생 더샹(德祥)과 늘 다퉜다. 아침마다 어머니가 많은 시간을 들여 화해시키느라 기진맥진했고, 아이는 늘 학교에 지각했다.

9일 학습반 이후, 어머니와 룽바오는 놀랍게도 동생과 다투는 일이 줄어들어 학교에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일 학습반 이후, 더샹은 법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어 했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단체 법 외우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한번은 법공부를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더샹의 차례가 됐을 때, 누나가 “더샹은 잠들었어요. 읽을 수 없어요”라고 하자, 더샹이 즉시 일어나며 말했다. “읽을래요! 읽을래요!” 더샹은 잠들었지만, 귀를 닫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의 무뚝뚝한 아이가 현재는 음악 천재

열두 살인 루이루이(瑞瑞)는 어린이 대법제자 중에서 가장 많이 변해 과거와는 완전히 딴 사람 같다. 루이루이는 어려서부터 자아와 개성이 몹시 강했고, 고집이 몹시 셌다. 어머니는 아이를 가르치면서 골머리를 앓았는데, 동쪽을 말하면 서쪽으로 가곤 했다. 1년 동안 어린이 대법제자들과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루이루이의 성격은 크게 변해 아주 평화롭고 선량해졌고, 얼굴 생김새까지 변해서 바른 기운이 가득하다.

2021년, 학교 선생님이 피드백하면서 루이루이가 많이 변해서 너그럽고 도량이 커졌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학급의 한 아이가 산만증이 있어 늘 루이루이를 괴롭혔는데, 루이루이가 과거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다투면서 불평을 했지만, 현재는 그 아이를 포용하면서 어떻게 괴롭혀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늘 그 아이를 도와주며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했다.

루이루이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어린이 대법제자들이 음악 수업으로 대법제자의 노래를 배울 때부터 그는 대법제자의 노래 연주를 즐겼다. 악보를 찾지 못한 일부 노래는 스스로 반복해서 들은 후, 악보를 썼고, 왼손 반주까지 맞추었다.

현지에서 대법 경축 행사를 개최할 때, 성인 프로그램과 어린이 프로그램 반주를 모두 루이루이에게 맡겼다. 루이루이는 자신에게 유튜브 채널이 있다며, 자신의 작품을 인터넷에 올리는데, 모두 피아노로 연주한 대법제자의 창작 음악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예술공연을 할 때, 루이루이는 대법제자 창작곡을 연주했고,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대법을 실증했다.

토론 중에 명리를 내려놓아 높은 점수를 얻다

열다섯 살인 녠녠(念念)은 현재 고등학생이다. 작년에 학교에서는 미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NDP(사회민주주의 정당) 당원 한 명을 초청해 강의하게 해서,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했다. 어린이 대법제자로서 ‘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읽었기 때문에, 녠녠의 사상은 아주 명확했고,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학교에서는 그것에 관해 심층 토론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녠녠은 그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두 번째 대표로 선정됐다. 기말이 되어 학교에서 과제 하나를 맡게 됐는데, 서양인 대법제자가 그에게 작전상 조금만 말하고,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현재 좌파 교육의 영향을 받아 학교 선생님과 학생이 모두 좌파를 지지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대법 진상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녠녠의 구상은 아주 명확했고, 방법도 아주 좋았다. 그는 북한을 예로 들어 공산주의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뜻밖에도 그의 과제는 선생님의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 기말에 그 과목 선생님은 그에게 9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는 당시 아주 놀랐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이 좌파를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녠녠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천재 어린이가 대법을 배우다

열네 살인 밍밍(明明, 가명)은 학교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에게 특수한 교육을 하는데, 밍밍은 기능을 배우고 응용하는 방면에서 일반적인 아이들을 능가한다. 밍밍은 아주 똑똑하지만, 공부에 큰 관심이 없어 평소 가끔 수학에서 A를 받는 것 외에는 성적이 특별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량의 법공부를 한 후, 1학기에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고, 2학기에도 모두 Excellent(최고 평가)를 받는 등 실력 향상이 아주 빨랐다.

그는 작년 성탄절에 학교 강당에서 선생님과 학생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성탄절 노래 외에도 대법제자 창작곡인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를 골랐다.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대법제자의 노래가 아름답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것은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면서 그들 학교의 환경 청리를 도운 대단히 좋은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매년 연설 대회가 열렸는데, 밍밍은 어머니와 상의해서 연설 대회라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결국 그들은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 강제장기적출이라는 화제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문장을 부드럽게 써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충고했다. 연설 시간은 4분으로 제한됐지만, 밍밍이 준비한 내용은 4분 30초 분량이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더욱 잘하려면 더 줄일 수가 없었다. 비록 제한 시간을 넘겼지만, 밍밍은 학급과 학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시간 초과로 학교의 결재를 얻지 못했지만, 백여 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중공의 파룬궁 박해 진상을 들을 수 있었다.

1년 동안 밍후이의 어린이 대법제자와 가장들은 수련에서 모두 크게 제고됐다. 여기에서는 몇 명만 소개했지만, 사실 모든 어린이 대법제자가 크게 변화했다. 나머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지면과 시간의 제한으로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어린이 대법제자를 잘 이끄는 것이 가장과 밍후이 선생의 책임이니 저희는 잘하여 사부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오직 사부님께 웃음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성 독창: 사은호탕(師恩浩蕩)
작사/ 징즈(淨植)          작곡/ 청칭(程淸)
반주/ 조셉 마(Joseph Ma)  노래/ 전쑹(珍頌)

[밍후이왕]

주불의 자비로 건곤을 바로잡아 새 하늘 새 땅이 법에서 생기고
신성한 음악과 노래가 감로를 뿌리니 인심은 선(善)을 향하고 일월은 밝네
사은(師恩)은 호탕하고 자비는 무상(無上)하니
대법이 널리 알려져 수승휘황(殊聖輝煌)하네
만 장(丈)의 두려운 홍진(紅塵)에서 은사(恩師)께서 신의 길 보호해주시니
삼계의 미혹 두려워하지 않아 법광이 하늘 높이 밝게 비치네
허영심 버리니 맞바람 가볍고 입으로 연꽃 뱉어내니 세인들 깨어나네
의지를 처음처럼 금강백련(金剛百煉)하며 사존의 인도에 감사드리네
사은은 호탕하고 지혜는 무량하니
홍미시방(洪微十方) 중생이 찬양하네
사존의 위덕이 대궁(大穹)을 정화하니 한매(寒梅)의 향기로 우주가 맑아지고
조사정법(助師正法) 더욱 정진하니 중생 구해 하늘로 돌아가네
사은이 호탕하니 신우주는 영원히 번창하고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니 영원히 노래 전해지네



여성 독창: 감사를 말로 다하지 못하네
작사 작곡 제작/ 옌징펀(顏靜芬)
노래/ 샤오한(笑涵)

[밍후이왕]

무량한 자비
무량한 지혜
재앙이 오기 전에 대궁(大穹)을 구하시고
법은 천지를 바로잡네
무량한 자비
무량한 지혜
성왕(聖王)께서 파룬(法輪)을 다시 돌려 세상 구하시니
중생은 감사를 말로 다하지 못하네
무량한 자비
무량한 지혜
중생의 원한을 선해(善解)하려 노심초사하시고
법을 전해 무한히 많은 중생 구하시네
무량한 자비
무량한 지혜
성왕께서 파룬을 다시 돌려 세상 구하시니
중생은 감사를 말로 다하지 못하네
성왕께서 파룬을 다시 돌려 세상 구하시니
중생은 감사를 말로 다하지 못하네



예서(隷書): 말겁(末劫)에 얻은 대법, 이 만고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
작자/ 중국 대법제자 징원(淨文)

[밍후이왕]


꿈과 환상 같은 속세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말겁 가을이 이미 지나갔건만
몇 사람이 남을지 아직 모르노라
사람 제도하는 법은 듣기 힘들고
세상 제도하는 인연은 맺기 어렵다네
고생 속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늘 밖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네



피리 독주곡: 정도행(正道行)
작곡/연주: 천궈화(陳國華)
반주/편곡: Bastian Kaemmerer

[밍후이왕]
정도행(正道行)
시/ 탕징(唐靜)
(1)
입세간(入世間)
층층 아래로 걸어 세간으로 들어와
비바람에도 급히 가며 의지 확고히 했네
결심하고 수련해 숙원을 이루고
사존 바짝 따르니 길이 하늘로 통하리
(2)
금강백련(金剛百鍊)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고
집착심 무거워 발걸음 어렵네
천백번 단련하고 정도(正道)를 따르니
훗날 공성(功成)해 사부님 따라 돌아가리라
(3)
서약이행
운운(芸芸) 중생 고통스러운 시련 겪고
말세대겁(末世大劫)이라 도망갈 곳 없네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더욱 정진하며
사람 구하고 서약 이행해 하늘 끝까지 오르리
회화:마음 속의 도를 단호히 지키다

글/ 쯔디(紫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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