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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78호 【수련교류】  
   2021-07-07 16:43:17 | 조회 : 400

한글판 제778호



수련교류

고생을 낙으로 삼고 법공부하여 집착을 버리다(지난 호) 
담이 작고 두려워하던 데서 두려워하지 않다 
‘아프다’에 대한 약간의 인식 
사악의 교란을 폭로하지 못하는 것은 사악을 용인하는 것이다
[국제온라인법회] 매체에서 전직으로 일하면서 수련한 경험 
관(關)을 넘으며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다 
현지에서 발정념 내용을 통일한 것에 관해 교류 
‘수련할 수 없는 신수련생과의 교류 소감’에 대한 생각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고생을 낙으로 삼고 법공부하여 집착을 버리다


글/ 북미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수련에 들어선 지 이미 20년이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졸업 후 운 좋게 매체에서 일했는데 아래는 저의 1년 남짓의 수련 심득입니다.

1. 사상을 바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

작년 3월부터 중공바이러스가 미국을 습격하면서 미국 지방정부도 ‘절반봉쇄’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해 뉴욕은 갑자기 죽음의 도시와 같아서 우리 매체 직원들이 여전히 출근하는 외에 길에서는 사람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배치된 첫 고험이 다가왔습니다.

‘절반봉쇄’로 회사에서는 직원이 반드시 방송국에 출근하라는 규정을 세우지 않아 재택근무도 가능했지만 저는 집에 있으면 자제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쨌든 회사에 나가 일할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길에 다니는 사람이 드물어지면서 집 없는 실업자들이 더 돌출돼 보였습니다. 평소에 그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여겼으나 그 한동안은 마치 어디에 가면 그들의 자취가 다 있는 것 같았고 일부는 심지어 행위가 괴이해 저도 모르게 두려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중에 괴상한 사람이 가는 길을 막아서며 지나가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손에 든 물건을 제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버스를 기다릴 때 괴상한 짓을 하는 괴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루에 2번이나 이런 일이 발생하니 두려워하는 마음이 최고에 도달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방송국에도 반드시 출근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 집에서 재택근무할까?’ 두려운 심정으로 끊임없는 안으로 찾기를 거친 후 갑자기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니야! 스스로 집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잖아. 이는 구세력이 나더러 갈수록 느슨해지게 배치한 게 아니겠는가? 방송국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고 법공부하며 연공할 수 있는데, 사부님께서 내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느슨해지는 것을 바라시겠는가? 이는 절대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이 아니다! 구세력이다!’ 전에는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혼란스러워 어떻게 부정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구세력의 배치가 얼마나 세밀하고, 일거일동, 일사일념에까지 미세한지를 갑자기 깨달을 수 있었으며 바르지 않으면 곧 그것들의 배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심지어는 그것들의 배치에 따라가게 됩니다.

또 때마침 사부님의 이런 법을 읽었습니다. “당신들이 어려움을 크게 볼수록,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으로,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그 일은 더욱 번거롭게 될 것이다. 상유심생은 또 이런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높게 놓고, 자신을 작게 놓았기 때문이다.”[1]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1] “반신(半神)문화는 내포가 있는 것이며, 상유심생(相由心生) 역시 이 한층 뜻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회 환경 중에서 자신의 범위가 있으며, 자신의 정서는 자신의 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1]

이 단락의 법을 읽었을 때 몹시 놀랐습니다. 계속 내려놓지 못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주변의 공간장에 변화가 발생했고 모두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의 정서와 주위 환경이 따라서 이끌려갔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정념을 강화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팝송을 듣지 않고 오직 션윈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만 들었고 차를 탈 때도 다그쳐 법공부를 더 했습니다.

4월이 되어서 두려움이 조금 옅어졌으나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길을 가면서 여전히 많은 수련생이 전혀 만나지 않은 괴상한 사람과 부딪혔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향하여 포효했고 심지어는 돈을 달라면서 나와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반복되면서 그들에 대한 혐오감이 쌓여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두려웠으나 나중에는 두렵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것을 믿고 잘 먹고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나 길에서 타인을 마구 놀라게 하는 등등의 행동으로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것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더욱 쉽게 다른 사람이 전혀 봉착하지 않은 일에 부딪혔습니다.

어느 날 밤 이튿날이면 또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회사로 가는 길에 또 그 괴상한 사람이 특별히 많은 길을 지나갈 때, 공포가 다시 저의 손발이 허둥댈 정도로 엄습해왔습니다. 또 그때 즉시 법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두려워하는 정서가 자신을 묶어두게 할 수 없었습니다. ‘홍음’의 ‘원만공성(圓滿功成)’을 펼쳐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하여 창궁에 오르네 자비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2]를 읽었습니다. 세 번째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에 의혹이 생겼습니다. “자비로 세계를 보나니” 어떻게 이런 일에 봉착하고 자비로 세계를 볼 수 있단 말인가? 하여 저는 다시 반복해 읽었습니다. “명리정 닦아버리고”를 읽는 그 찰나에, 아! 바로 명리정을 닦아야 하는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확 트였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에서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건드렸나? 저의 관념 속에서 그들은 나태한 폐인이었고 자신은 매일 근면하게 일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업신여겼고 자신은 자신의 인생에 많이 책임지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명(名)’으로 동시에 또한 ‘과시심’이었습니다. 그들이 먹기를 좋아하나 게으르다고 여겼고, 다른 사람들은 일터에서 고생하며 돈을 벌어 저들까지 보조해줘야 하므로 저들은 근본에서 사회자원을 까먹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는 ‘이(利)’며 또한 ‘질투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서술한 각종 두려움, 원망, 괴로움, 실망은 또 전부 ‘정(情)’에 해당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몸이 감당했던 무게가 갑자기 절반으로 가벼워졌습니다. 아직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바꿀지에 대해 명백해진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회사로 가는 길에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대법제자, 당신들은 혼탁한 세상(濁世)의 금빛이며, 세인의 희망이며, 사부를 돕는 법도(法徒)이며, 미래의 법왕(法王)이다.”[3] 외울 때 정념이 갈수록 강화됐습니다. 그랬습니다!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법제자, 당신들은 혼탁한 세상(濁世)의 금빛이며”를 외울 때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3월 초 제가 몇몇 수련생과 함께 밖에서 거닐고 있을 때 한 서양 여성이 길 건너편에서 저희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길을 건너 그녀의 옆을 지나갈 때 저희를 불러 세웠습니다.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나요? 제가 당신들의 몸에서 매우 강한 에너지를 보았습니다.” 이 일이 떠오르자 마음이 격동됐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때 잘 배치해놓으셨으며 일찍 저에게 알려주셨고 또 격려해주셨습니다. 대법제자에게는 모두 에너지가 있고 혼탁한 세상의 금빛으로 모든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오직 세 가지 일을 잘하면 사부님 법신께서 늘 지켜주십니다.

2. 질투심을 닦아 버리다

실업자와 괴상한 사람을 두려워한 이 일이 잠시 일단락 되고 5월이 시작되면서 잇따라 다른 한 심성 고비가 나타났습니다. 전염병 관련해서 세인이 저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방송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마스크를 쓸 것을 요구했고 또 퇴근 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일찍 집에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매번 많은 수련생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보면서, 심지어 다른 사람이 일깨워주면 ‘당신은 너무 시시한 말을 하는군요’라는 표정을 지을 때 마음속에서 그들에 대한 분노가 점차 끓어올랐습니다. 대법제자에게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나 어째서 잘 협조하지 않을까요?

이런 일에 화가 난 동시에 또 매우 괴로웠습니다. 왜 참지 못하는가? 도대체 안으로 무엇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다른 수련생과 이 일에 대해 교류할 때 한 수련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한 것을 적같이 미워한다는(嫉惡如仇) 말에서 ‘질(嫉)’자를 사용했는데 악한 것과 좋지 않은 행위에 대해 눈에 거슬려 하는 것으로, 눈에 거슬려 한다는 건 일종 질투심입니다.” 그랬습니다! 질투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째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자신은 반드시 순종해 협조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투했습니다. 동시에 또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얕보고”[4] 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또 진일보로 거듭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질투심 외에 자신에게 타인을 얕보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타인을 얕보는 마음은 사실 자신이 타인에 비해 낫다는 것으로 또 과시심입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이 빙빙 돌고 돌면서 가장 크게 저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6월에 미국에 폭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메이크업채널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 운동이 저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미국의 젊은이들이 일찍 이런 극좌 사상에 말이 아니게 해를 입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왕훙(網紅, 인터넷 스타), 메이크업 브랜드가 SNS 채널에서 홍보할 때 자신은 이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했고, 만약 태도표시를 하지 않으면 한 무리 사람들이 미친 듯이 끝없이 공격하고 비판했습니다. 물론 우리 채널에서는 이런 태도표시를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공격받는 대상이 됐습니다. 특히 저는 SNS 채널의 편집자이기에 맨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정보의 공격을 당했습니다. 저의 정서는 다시 무너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때 정말로 자신이 미국판 문화대혁명을 겪고 있는 듯 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忍)’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일에 봉착하면 참지 못하고 원망하고 억울함을 느끼는가? 또 그때 사부님의 이런 법을 공부했습니다. “사실 당신은 일반적인 참음조차도 해내지 못했다. 당신 자신이 거기에 앉아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은 공상이다.”[5]

“사실 당신은 일반적인 참음조차도 해내지 못했다.”[5]라는 사부님의 법은 무겁게 저의 뇌리에서 울렸습니다. 스스로 ‘참음(忍)’을 해냈다고 여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참음을 전혀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신의 이야기를 되돌려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한신이 무뢰한의 도발에서 첫 반응이 “내가 당신의 머리를 베어서는 뭘 하겠는가?” 였음을 발견했습니다. 한 사람이 정말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야 마음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그의 마음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원래 ‘인(忍)’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일이 발생한 후 매우 화가 나고 괴로워했으나 참아내도록 자신을 압박했으며 충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참음이라 여겼습니다. 사실 진정한 참음은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이러했기에 저는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하면 매우 탄연하게 일체에 마주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가 마음에서 돌아다니며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도 저의 마음에 잠시 두었습니다.

3. 색욕심을 닦아버리다

7월 각종 일이 발생하면서 미국 이 지역의 업력이 갈수록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의 분노도 갈수록 치솟았습니다. 동시에 무차별적인 공격 사건도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3~4월에 ‘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 고비를 아직 잘 넘지 못해 이번에 거듭 이 집착심을 버려야 했습니다. 처음에 역시 길에서 무슨 일을 만날까 봐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끊임없이 발정념을 강화해 자신의 사상업을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원망하는 염두도 갈수록 감소됐으며 또 좋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우수한 점을 보려 했습니다.

어느 날 룸메이트와 함께 출근하는 길에 공산사령이 어떻게 미국을 침식했는지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자신의 분노와 원한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사상이 부정적으로 변했기에 주변의 마당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앞에 저희를 기다리는 한 괴상한 사람이 나타나 그가 저희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룸메이트는 죄송하다는 말로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몇 걸음 걸었을 때 그가 갑자기 큰 힘으로 룸메이트를 밀었습니다. 저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이때 그가 또 룸메이트를 거세게 발로 찼습니다. 저의 공포가 다시 최고점으로 치달아 회사에 도착했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또 룸메이트에게 매우 미안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사상이 나쁘게 변하지 않았다면 아마 전혀 이런 일을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이 발생한 후 얼마 안 돼 회사 부근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발생해 단번에 스스로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매우 두려웠습니다. 매일 출퇴근 때 늘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사실 저의 두려움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 각종 불확정감에 두려웠습니다. 이 불확정적 과정이 저에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저는 어째서 이런 상태인지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의 이런 교류를 들었습니다. 한 수련생에게 중공바이러스 증상이 나타나 입원했는데, 교류하는 수련생이 원인을 알기 위해 가봤더니 입원한 수련생 마음에 “모두 (바이러스에) 걸리겠죠.”라는 생각을 다소 갖고 있었기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순간 저는 갑자기 자신도 이러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기본적으로 무슨 일에 봉착하지 않을 것이나 마음속에 늘 ‘비록 이렇게 아무렇게나 죽지 않을 것이지만 구타당하고 번거로움을 당하는 건 있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잠재의식에서 추구하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찾아온 것입니다.

같은 날 다른 한 수련생이 그녀가 중국에 있을 때 색욕심을 버리지 못해 구세력이 틈을 타 붙잡혀 노동교양소에 가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자신은 어째서 색욕심이 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조금의 집착이라도 구세력이 틈을 타고 우리를 끌어내리려 하며 박해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돌이켜 생각해봤습니다. 전에 ‘결과가 두려운 게 아니라 과정을 두려워 한’ 이 집착심을 발견했고 매우 강한 의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누군가가 저를 도와 이 장애물을 해결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안심할 것 같았고 속으로 두근거리는 나날을 보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괴상한 사람을 두려워 한’ 이 일에서 처음에 누군가 저와 함께 그 길을 걸어주기를 바라다가, 나중에는 남자와 함께 걸으면 비교적 안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는 그것이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명확한 형상으로 구성됐습니다. 말하자면 웅장한 체구의 남자가 저를 보호해주기를 바랐으며 이런 형상은 사실 그 한동안 드라마에 빠져 보았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었습니다.

드라마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드라마에 빠져 형성된 색욕심이 자신을 너무 깊이 영향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까지 깊이 영향주었습니다. 만약 수련생의 교류가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이 색욕심과 관계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4월에 ‘홍음’ ‘원만공성(圓滿功成)’을 읽으면서 명리정을 닦아버려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 그 당시 ‘정’은 이 일에 대한 두려움, 원망과 괴로움 등 부정적인 정서의 ‘정’이라고 여겼으나 늘 마음 한켠으로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 ‘정’은 바로 ‘색욕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드라마를 끊었고 이 일의 심각성을 인식한 후 ‘정’은 진흙과 같아 매우 끈적끈적한 물질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끈적함으로 온몸이 편하지 않았는데, 속으로 그렇다면 이 ‘정’을 어떻게 닦아 버릴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의 한 단락의 법을 공부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영문이라고 알려줄 적에 당신들은 법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라. 정념이 갈수록 강해질 때, 당신이 정말로 중생에게 자비(慈悲)할 때, 더는 정이 당신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6]

그래서 저는 대량으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저의 팀내 법공부와 차를 탈 때 법공부하는 외에 퇴근 후 한 강의 법공부를 했고 휴가 때 몇 번은 하루에 ‘전법륜(轉法輪)’을 4~5강의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대량으로 법공부한 후 자신의 공간장이 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으로 인한 끈적끈적한 느낌도 사라졌고 사상이 더욱 넓고 크게 변했으며 공기도 선명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법공부의 위력이 정말로 매우 강대하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안일한 마음을 닦아 버린 것과 ‘인(忍)’에 대한 인식

10월, 11월이 되어 다시 점차 느슨해졌습니다. 비록 평소에 고정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있지만, 양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공부할 때도 그렇게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이전과 같이 법공부하려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어이구, 다음 주부터 다시 정신 차리고 하자! 새로운 한 주면 새로운 시작이잖은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계속 뒤로 미루었고 정진(精進)할 수 없었으며 또 팝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2월이 되어서야 갑자기 일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내려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정진하지 않은 이 수개월은 인생이 매우 순조로워 무슨 난이 없었으며 또 안으로 찾아 집착을 버리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긴장감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드시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에, 단지 이런 잡다한 물질을 갖지 않겠다는 가벼운 일념만으로도 매우 큰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정진하려는 염두가 나온 후 저는 그날부터 실행하기로 결정했고 더는 미루지 않았습니다. 방법을 강구해 법공부, 연공하는 시간을 향상시켰고 발정념하는 시간을 더 추가해 자신의 사상업을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이렇게 정진하는 과정에 병업관이 나타났습니다. 신체적으로 상반신과 허리가 몹시 아팠고 잘 앉지도 서지도 못했고 누워도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아! 사부님께서 나를 책임지기 시작하셨구나!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전반 과정이 고통스러움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누워도 그리고 모든 자세에서 시달림을 받았으나, 심지어는 제4장공법을 연마하면서 ‘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갈’ 때 얼굴 표정이 찡그려질 정도로 아프고 전혀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는 수개월 제대로 법공부하고 연공하지 않아 너무 많은 업력이 누적돼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은 반드시 그것을 감당해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즐거웠습니다. 이 고비를 꼭 넘을 수 있다는 신심이 있었고 사부님에 대해서도 무한한 감격을 느꼈습니다.

신체적으로 감당하는 고통이 일주일이 됐고 바로 이때 급여를 받는 날짜가 곧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급여를 지급하는 날이 설날이라 대만의 은행은 5~6일 휴일이므로 만약 설날 전에 급여를 받지 못하면 다음 주에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급여가 그 전에 지급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집착이 너무 중하여 급여가 일찍 지급되지 않았고 반드시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일부 지급해야 할 돈이 필요했으나 당시 통장에 돈이 거의 없어서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일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게다가 신체적인 소업을 겪고 있는 터라, 각종 순조롭지 못한 일로 정서가 단번에 폭발됐으며 불평을 토해냈습니다. 심지어는 화가 치밀어 주변의 물건을 부수고 싶었고 부정적인 사상이 대량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내가 높은 급여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며, 매체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돼 급여가 높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오직 받는 급여로 내가 생활을 유지해나가고 가족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그러나 어찌하여 이렇게 적은 급여지급을 미루지 말라는 이런 요구마저 하지 못하는가? 내가 살아만 갈 수 있으면 되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수련생과 교류할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지난해부터 전염병으로 그리고 잇따라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그리고 미국 대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종래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소업에 또 이런 일에 부딪혔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버텨온 것 같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반응이 그렇게 큰가요?” 당시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알았습니다. 사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원망할 때 자신이 끊임없이 한마디 말을 중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단 말인가요?” 자세히 생각해본 후에야 비로소 배후에 매우 강대한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큰 부귀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나 평범한 생활을 요구하는 것도 하나의 매우 중한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7]

저는 바로 이런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편안하고 편안하게 수련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또 수개월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한 수련생이 제가 게으른 사람인 것을 알고 저와 교류할 때 ‘정진요지’의 ‘불성과 마성(佛性與魔性)’을 읽었습니다. “사람의 마성은 곧 악(惡)으로서, 살생하고, 훔치고 빼앗고, 이기적이고, 사념(邪念)적이며, 시비를 걸고, 선동하며 요언을 날조하고, 질투하고, 악독하며, 발광하고, 게으르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등등으로 표현된다.”[8] 그는 저에게 “보세요, 마성이 이렇게 많은 매우 엄중한 일을 대표하며 게으름이 속에 숨어 있다면 게으름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엄중하다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듣는 순간 사실 매우 놀랐고 스스로 이 문장을 여러 번 읽고 외울 수도 있으나 종래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렇다고 해도 여전히 마성과 게으름의 미세한 관련에 대해서 완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급여지급의 일이 발생하고 지난해부터 계속 억눌려왔던 정서가 폭발하고 나서야 안일한 마음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마성의 폭발이 여실하게 저의 눈앞에 펼쳐져서야 어째서 게으름을 마성이라고 하는지 철저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잇따라 저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지난해부터 매번 고비를 넘길 때 당시에 아마 두려움, 조급함, 즐겁지 않은 등 정서였으나 전반적으로는 정말로 매우 즐거웠고 곧 빨리 업을 갚고 집착심도 빨리 버릴 수 있었으며, 매번 고비를 넘길 때 정말로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배치에 대해 감사드렸는데 어찌하여 최종적으로 여전히 폭발했을까? 이때에야 발견했는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에 부딪힐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알려줬습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버텨나가면 곧 좋아질 거야. 버티면 좋아져.”

사실 이 ‘버틴다’는 것은 매우 속인적인 방식의 인내에 불과하며 모두 헛되게 억지로 버티는 것이지 수련인의 ‘참음’이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해의 의혹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참음’은 도대체 또 어떻게 해내야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이때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을 읽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이라, 늘 그런 한마디 말을 하는데, 바로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으므로 당신의 마음이 비로소 움직이며,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으면 마치 바람이 불고 지나가듯 당신은 전혀 감각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살인방화를 하려 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듣고 아주 재미있다고 할 것인데(사부님 웃으심), 이 말이 가당키나 한가? 웃고 지나가 버린다.”[9] 사실 답안은 이렇게 간단한데 집착심이 있기에 그러했으며, 그것을 찾아냈으면 그것을 버려야했고 그래야만 점차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답안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후 ‘정진요지’ ‘무루(無漏)’에서 다음의 법을 읽었습니다.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는 것으로, 버릴 수 있음은 수련의 승화이다.”[10] 단번에 ‘참음’에 대한 이해에서 또다시 제고했습니다. 전에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교해 보면 그것은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면, ‘버림’이라는 이 글자가 내포한 층면은 또 더욱 넓었습니다. 나쁜 것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좋은 일에서도 ‘버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금전에 대해 너무 강렬한 욕망이 없고 급여가 적어도 괜찮으나 그렇다면 자신의 통장에 정말로 한 푼도 없을 때 정말로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돌이켜보면 급여지급이 늦어져 다음 주에 지급되더라도 저에게 있어서 평소 생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슨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기에 돈이 있든 없든 사실 관계없습니다. 저의 안일한 마음으로 인한 방종을 짚어주고 ‘참음’에 대한 인식을 승화시키기 위해 사부님의 배치는 정말로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또 동일한 시간에 이런 법을 배웠습니다. “어떤 것을 나쁜 사람이라 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나쁜 사람, 그는 왜 나쁠 수 있는가? 바로 그가 두뇌 속에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부어 넣고,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배워, 그의 두뇌는 온통 모두 나쁜 것이라,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그는 나쁜 사람이다. 그럼 이러한 나쁜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곧 들어서 넣은 것이 아닌가?”[11]

이 법을 읽고 나서 깜짝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켰습니다. 나쁜 사람이란 모든 악한 짓을 하고 살인, 강도, 절도 등을 저질렀을 때 나쁜 사람이라 말한다고 여겼는데, 사실 머릿속에 나쁜 것을 부어넣으면 곧 나쁜 사람인 것입니다! 저희가 평소에 드라마를 추구하고 팝송을 들으며 머릿속에 이런 것을 부어넣을 때 저희가 갈수록 ‘나쁜 사람’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후 또 ‘유럽법회 설법’에서 다음의 법을 읽었습니다. “무엇이 나쁜 사람인가? 사회의 선전기구, 각종 신문, 잡지에 실린 그런 폭력, 색정을 당신 머릿속에 부어 넣는데 여러 사람은 그래도 보기를 좋아한다. 부어 넣은 것이 더욱 많으면 당신은 그와 같게 된 셈이다.”[12] 그래서 저는 팝송을 듣는 것을 끊기로 결정하고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나면 법공부를 더 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또다시 주변의 공간장이 청명하게 변하고 공기가 청신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맺음말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넘긴 모든 고비에서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직 참답게 법공부를 하면 매번 고비를 넘길 때 사부님께서 법에서 답안을 제시하여 저에게 보여주셨고 매번 매우 큰 제고를 했고 법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또 지난 1년 남짓의 시간에 정말로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13]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매번 제고할 때마다 마음으로 매우 깊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몸을 묶고 있던 그런 집착심의 무게도 매번의 깨달음으로 갈수록 가벼워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떤 정황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으신 것에 정말로 매우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원만공성 (圓滿功成)’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축사’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 수련’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과 마성(佛性與魔性)’
[9]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10]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루(無漏)’
[1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1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유럽법회 설법’
[1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홍음-마음 고생’




담이 작고 두려워하던 데서 두려워하지 않다
마귀굴에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박해를 제거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법을 얻기 전에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담이 작고 두려워했다. 법을 얻고 수련한 후 얼마 안 되어 사악이 대법을 겨냥한 박해를 시작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대법을 수호하려고 했고 수련생들과 진상 전단을 붙였다. 세인들이 진상을 알기 바랐는데 붙이는 과정 중에 아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완성하고 집에 돌아간 후 그날 가부좌는 한 시간 반을 돌파했다. 내가 맞게 했다고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심을 알았다.

그 후 나는 납치되어 검은 마귀굴에 들어갔다. 한번은 우리가 감방에서 가족이 보내온 사부님 신경문을 전해서 보는데 악경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우리는 급히 경문을 감추었고 악경은 이불을 들쳐 수련생이 쓴 신고편지를 찾아내서 읽기 시작했다. 경찰이 법을 집행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제지한다…… 악경은 수련생의 뺨을 두 번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무엇이 법을 집행하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인가?” 나는 그 당시 매우 두려웠지만 아주 격동되어 크게 외쳤다. “당신이 바로 법을 집행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악경이 멍해졌고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아마도 그 순간에 나의 정념이 두려운 마음을 능가하고 어느 한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었을 것이다. 정념이 공능을 이끌었고 사악의 기염을 꺾었다. 그래서 악경은 한순간에 머리가 하얘지고 계속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더욱이 사악의 마귀굴에서 신사신법은 입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부딪히면 진짜로 담담하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 당시 나는 마음이 불안정하여 이 관을 넘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을, 누구든 이 정념을 지켜낼 수 있으면, 그는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대법이 만든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1]

한번은 한 수련생이 공개적으로 연공하자 악경은 그녀를 구타했다. 멀리서 수련생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고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두려웠고 전기곤봉이 팍팍 소리를 내고 뺨을 때리는 “팍팍”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귀에 들려왔다. 나는 전기곤봉이 내는 소리가 아주 무서웠지만,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라고 느껴졌다. 남들이 박해를 받을 때 나는 가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두려워도 나는 반드시 가서 모두 저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서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 문을 열고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대법제자를 박해하면 안 됩니다. 박해하지 마세요!” 악경은 재소자를 불러서 나를 끌어가게 했고 연이어 경찰은 몇 마디 욕했지만, 이번 박해는 흐지부지되었다. 이는 절대로 나 개인이 무슨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박해를 저지해야 한다는 그러한 정념이 있었기 때문이고 어느 한 층차의 표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2] 사부님께서 악경을 저지하셨다.

한번은 저녁 식사 후 나는 복도에서 체형이 건장한 한 여자 재소자가 수련생을 구타하는 것을 보았다. 이 여자 재소자는 허리가 굵었고 마침 수련생 몸을 타고 앉아서 좌우로 뺨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는데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고개를 숙이고 무시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마음속으로 다소 두려웠지만, 그녀가 대법제자를 해치고 있는데 나는 보고서 상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을 때리지 말아요! 이 여자 재소자는 깜짝 놀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수련생의 몸에서 내려왔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는 깨달았다. 아마도 지극히 사악한 환경 속에서 그러한 한 점의 정념이 있기만 하면 즉각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나쁜 사람의 나쁜 사상에 대해 정화작용이 있고 나쁜 사람은 계속 박해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대법제자의 언행은 모두 에너지가 있는 것이고 자신의 정념이 나오기만 하면 사악을 해체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념이 주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마귀굴에서 ‘두려움’은 수련인에게 가장 직접적인 고험이다. 그 당시 오성이 너무 차해 사람마음으로 수동적으로 사악이 강제로 가한 박해를 감당하고 신통을 펼쳐보이는 것을 저애했다. 이런 신통은 모두 우리 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의식이 ‘사람’ 이 층차를 돌파하지 못하면 수련인은 바로 사람 여기서 빙빙 돌고 나쁜 사람과 구세력은 비로소 수련인을 해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사람은 전혀 신을 건드리지 못하는데 어찌 신을 박해할 수 있겠는가?

후에 사부님의 경문 ‘예견’이 전해져 들어왔다. 이 한편의 결속어는 “대법제자 하늘 높이 올라 천지를 주관하여 인도(人道)를 바로잡는도다”[3] 나는 읽고서 깨달았는데 대법제자는 곧 전면적으로 인간세상의 사악을 청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자 나의 담도 커졌고 격동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대법제자가 천지를 주관하고 인도(人道)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일체는 내가 정하는 것이니 사악이 무엇인가? 경찰이 말한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이 높고 크고 웅장하다고 여겨졌고 말 한마디로 건곤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정해졌다.

마침 이 한점을 깨달은 다음 날, 악경은 모든 사람에게 회의하러 가라고 공지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순정하게 일념도 움직이지 않았고 비할 바 없이 단호했다. 내가 말해서 정하는 것이다. 나는 표현이 아주 평온했고 내심에서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가지 않겠다! 나를 감시하던 바오자(대법제자를 감사하는 죄수)는 경찰에게 보고했고 경찰은 바오자에게 말했다. “그녀(나를 가리킴)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야 한다. 가지 않는 이가 있으면 몇 사람이 끌고 들어서라도 가야 한다.” 두려운 마음 없이 한마디 나오자 일은 즉시 변화가 생겼고 나는 법의 위력을 느꼈다.

여기서부터 나는 곳곳에서 자신에게 절대로 사악에 협조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록 두려움이 있고 일시적으로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지만, 정념을 지니고 정행하면 일정한 정도에서 박해를 제지할 수 있다. 노력하여 행하는 과정 중에 두려운 마음은 약해졌고 정념이 증가했다.

한점을 돌파하자 계속 심도있게 들어갔다. 나는 연공해야 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그러나 바오자가 끊임없이 제지했기에 나는 그녀들이 휴식하고 교대하고 주의하지 않을 때 급히 연공했다. 마당에는 큰 나무들이 가득했다. 나는 저녁 식사시간을 이용하여 나뭇가지가 바닥에 드리운 큰 나무 아래서 가부좌했다. 나는 나무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대법제자를 보호하기 바란다. 만약 내가 너희들의 나뭇가지를 다치게 했다면 너희들이 양해해라. 내가 원만하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너희들에게 더 좋은 귀속을 주실 것이다.” 이 나무들은 모두 아주 격동되어 나뭇잎을 움직이며 모두 반짝반짝 빛을 냈다.

이러한 날들이 아주 오랫동안 견지되었고 후에 한 ‘유다’(파룬궁을 수련했다가 배반한 자를 비유)가 내가 연공하는 곳을 발견하고 다음 날 모든 나무가 잘렸다. 검은 굴의 담벼락 네 군데는 감시등이 설치되었다.

한번은 사악이 힘을 축적하여 세뇌전향을 했고 복역자를 모아 회의를 열었다. 정법계통의 각급 관원들이 모두 현장에 왔고 사오자는 무대에 올라가 강연했고 사설을 선양했다. 한 대법제자가 일어나서 큰소리로 사부님의 ‘논어’를 외워 사오자가 재소자에게 거짓말 독소를 주입하는 것을 저지했다. 갓 몇 마디를 외우는데 경찰이 머리카락을 잡고 주먹질하고 발길질하면서 끌어갔다. 사오자는 또 입을 열어서 말을 했고 잇달아 한 수련생이 일어나서 계속 ‘논어’를 외웠다. 몇몇 경찰이 올라와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끌어냈고 그다음 또 한 명, 또 한 명……

끊임없이 대법제자들이 일어나서 릴레이했고 단호한 정념의 에너지는 그 자리에 있던 매 사람들을 진감시켰고 사악의 세뇌 계획이 파산되게 했다. 이 세뇌는 결국에 열리지 못했다. 매번 고험은 모두 한 차례 승화의 기회였고 지나가면 더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 수련생들이 아주 처참하게 박해당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것은 모두 가상이다. 사실 그들의 심성은 제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

낮에 이렇게 일어나서 호법하던 수련생들은 무더위에 끌려나가서 햇볕을 쬐게 했고. 밤에는 감금실에 갇혀서 잠을 못 자게 했다. 나의 두려움은 또 나타났다. 자신은 감히 일어나지 못하면서 다급하게 수련을 잘 한 수련생들이 일어나서 저지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루하루 그녀들이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다릴 수 없었다. 반드시 이번 박해를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침 식사시간에 마당에서 크게 외쳤다. “대법제자를 풀어주지 않으면 나는 단식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들었고 수련생 10여 명이 함께 나와 단식을 했고 감금실에 갇힌 수련생도 우리와 호응했는데 안에서 밖에서 함께 단식 항의를 했다.

보름 넘게 단식한 후 우리는 야만적으로 음식물 주입을 당하고 링거주사를 강제로 맞았다. 후에 악경은 감금실에 갇힌 그 몇몇 수련생을 석방했고 그 당시 사부님의 신경문 ‘제자의 위대함’이 전해져 들어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수련하는 것은 우주의 근본대법이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당신들이 정념(正念)으로 대법(大法)을 실증했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당신들이 거대한 난(難) 속에서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4] 우리는 열독한 후 모두 아주 격동되었고 자신이 제대로 했다고 여겼다.

마귀굴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집착은 제거하기 어려워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 속에서 장기간 헤어나오지 못해 결국은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되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연공하는데 온몸에 힘이 없었고 아주 빨리 탈수증상이 생겨서 잠깐 휴식한 후 연공하려고 했다. 나는 이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화장실에 갔다. 배가 찌르듯이 아프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힘이 하나도 없고 한가지 의념이 나의 의식에 들어왔다. ‘안되겠다. 빨리 사람을 부르자!’ 그러나 이 염두는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었고 나는 그것을 급히 부정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진수제자이고 대법을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어찌 이런 상태가 나타나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고 진정한 나는 이 상태가 아니고 아픈 그것은 내가 아니다. 진짜 나와 가상을 분간하고 사악을 간파하자.’ 나는 단호하게 이 일체의 ‘괴로움’을 부정했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픈 것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고 나는 진선인으로 만들어졌고 나는 병이 없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통증이 가중되고 사악은 나에게 아들, 어머니, 남편을 생각하게 했다. 속인은 생사이별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법제자이고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나는 법을 얻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결정해주실 것이고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을 것이고 누구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고 어떠한 일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다!

진짜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2] 나의 정념이 법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 한순간에 말려진 커튼 같은 검은 그림자가 나의 앞에서 “쏴”하고 떨어졌고 잇달아 나의 신체는 즉시 정상을 회복했다.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과 같았고 조금 전의 식은땀이 등에서 흐르고, 허약하고 무기력하며 생사를 건 필사적인 항쟁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마치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이 짧은 한순간에 나는 생과 사의 고험을 겪었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정념을 지켰고 진짜 나와 후천 외계에서 강제로 가한 관념을 분간할 수 있었다. 신사신법으로 나는 이 하나의 거대한 난을 넘었고 진짜로 사람과 신은 일념 사이였다! 난 속에서 얼마나 고달프더라도 모두 그것에 따라가지 말아야 하고 오로지 일념만 있어야 한다. “너는 내가 아니고 네가 아픈 것이지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고 나의 사부님은 리훙쯔(李洪志)이시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고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인가란 잡념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이 일념은 산을 가를 수 있다.

20여 년의 수련 역정 속에서 나는 사당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지만 여러 차례의 생과 사의 고험은 전부 대법에 대한 단호한 일념에 의지했고, 나는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거대한 감당하에 행운으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생각해도 아주 신기한데 내가 담이 작고 두려워하는 사람에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하에 끊임없이 바로 잡고 걸어가는 과정 중에 자신의 집착심이 끊임없이 폭로되게 하고 닦아서 없앴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가 개창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천천히 잘 닦아서 다시 되돌아와서 이 일체를 할 시간이 없다. 오로지 행하면서 자신을 닦아야 하고 수련하면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내가 이를 깨달은 것은 바로 “法輪(파룬), 그가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남을 제도할 수 있다.”[2]의 한 층의 함의일 것이다.

여러 해의 수련 역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두려움이 없었다.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비로소 사악의 음영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사부님의 호탕한 홍은에 감사드리고 사부님께 절하여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예견’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제자의 위대함’




‘아프다’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뤄메이(若梅) [밍후이왕]

1.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프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바로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다.”[1]에서 ‘생명을 성취한다’라는 네 글자를 보고 온몸이 움찔했다. 첫 번째로는 내가 정진 수련하면 원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설법을 여덟 번까지 배웠을 때 내 생각이 너무 좁고 이기적임을 인식했다.

우리가 삼계에 온 목적은 조사정법(助師正法)이고 구도 중생이며 더욱 많은 생명을 성취하러 왔다.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나의 세계 중생은 모두 미래의 생명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 재능, 재물, 육신 등 사람으로서 가진 모든 것으로 사람을 구한다. 마치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누가 준 것인가? 대법이 우주 중의 모든 것을 만들었고 사존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 속인의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성취’하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은 사실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는 수련을 시작해 지금까지 가부좌할 때 늘 다리가 아파 고요해지지 못했다. 갑자기 깨달았는데, 나는 너무 그 ‘아픈’ 것에 집착했다. 다시 말하면 육신에 대한 집착이다. 석가모니 그 법문은 열반을 말하고 최후 육신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가 수련해 낸 최고 과위는 여래다. 우리의 수련은 상한선이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육신에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층층이 내려와 삼계로 왔다. 육신은 단지 운반체일 뿐이다. 육신이 있기에 삼계에서 있을 수 있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존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 “아픈 것은 소업 과정이다.”라고. 그래서 나는 그 흑색 물질에 말했다. “너희들은 새로운 생명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우주 표준의 생명에 부합되는 백색 물질로 변하려면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대법에 동화하고 자기 생명과 원래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바란다.” 그러자 다리의 아픔은 순식간에 완화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법 중에서, 당신이 이 일체를 새롭게 하려하고, 심지어 그런 부족함을 제거하여 좋은 것으로 변하게 하려 하지만, 그것은 버리기를 아쉬워한다. 그래서 그것은 당신의 정법 중에서 당신을 교란하고, 정법을 그것이 원하는 그런 것으로 변하게 하려 한다.”[1]

법공부할 때 ‘못마땅’이라는 세 글자가 나타났다. 곰곰이 생각하니 못마땅한 모든 것은 모두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 ‘부족함’조차 못마땅해하는데 어찌 수련하겠는가? 아픈 것을 못마땅해하지 말아야 하고 흑색 물질도 못마땅해하지 말아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못마땅해하지 않고 잃어야 비로소 얻는다. 사존께서 ‘2018년 워싱턴DC법회 설법’이 발표된 후 나는 가부좌 한 시간을 아주 가뿐히 할 수 있었다.

2. 이가 아프다

중공 전염병이 오고 며칠부터 이가 가끔 아프기 시작해 몇 개월 지속했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사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했다. 점점 심각해져 비로소 나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어머니에 대한 정을 찾았고 좋은 말 듣기를 좋아하고 특히 남이 지시하는 것을 싫어하는 집착심을 발견했다. 하지만 며칠 지난 후 또 아프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아픔’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았다. ‘아픔’ 자체를 중히 여겼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되돌아가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즉,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이다.”[2] 아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고생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고생하지 않으려 한다면 되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3]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기뻐했는가?”라고.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뺨을 감싸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뻐하지 않으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법에 서 있지 않았다. 짧은 시간 내에 아픔은 속인 식의 ‘굳셈’으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법으로 가늠하지 않으면 넘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표현인가? ‘참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심지어 ‘누려야 한다.’ 이러면 기쁘게 ‘아픔’을 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누리는’ 것이 소업임을 알고 있다! 우리의 수련을 제고할 수 있다! ‘일거사득’이다! 진정한 수련인으로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안으로 찾는 동시에 항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아픔’이 가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연하게 ‘아픔’을 대면해야 한다!

3. ‘아픔’을 부정하다

작년 항목을 진행할 때 나는 수련에서 여태 없었던 고험을 겪게 됐다. 골반 부위가 60일이나 아팠다. 제일 심할 때는 삼 일 밤낮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겉 피부는 원래와 같고 전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송곳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낮에는 다리 한쪽을 끌며 평소처럼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열 몇 걸음 걸으면 앉아서 풀어줘야 했다. 밤에는 아파 침대에 올라가려 하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옷은 땀으로 푹 젖었다. 감당이 극에 달할 때 머릿속에는 진아(真我)와 거짓 자아(假我)가 정면 대결했다.

거짓 자아가 말했다. “병원에 가서 진정시키자.” 진아가 말했다. “당신은 신이고 속인 의사가 어찌 신의 상태를 바꾸겠는가?” 거짓 자아는 말했다. “수련생이 말하는데 이는 당뇨병 증상이다. 당신 아버지는 당뇨병으로 돌아갔고 마지막에 한 다리를 절단됐다.” 진아가 말했다. “처음에 법을 얻을 때 사존께서 우리에게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무슨 ‘당뇨병’ 이런 것은 나와 관계가 없다.”

거짓 자아는 말했다. “금강석 송곳이 없으면 자기(瓷器)의 수리를 맡을 수 없다.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않는가? 무슨 항목을 한다고? 내년에는 이런 고통을 당하지 말라. 다른 것을 해도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진아는 말했다. “이것은 나의 사명이다. 완성하지 못하면 사존께 어떻게 말하겠는가?” 거짓 자아는 말했다. “당신은 밍후이왕의 요구에 따라 한다. 남이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진아는 말했다. “안으로 찾는 것에는 조건이 없다. 내가 틀린 것이다. 구세력은 나와 수련생에 간격을 만들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너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진아와 거짓 자아는 끊임없이 뒤섞이고 각종 나쁜 염두는 끊임없이 머릿속에 더해졌다. 나는 힘들게 부정하며 구세력이 나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숨도 쉬기 어려운 상태였고 매분 매초는 모두 구세력의 요소와 격전했다.

남동생이 윈난(雲南)에서 백약제를 구해와 아픈 부위에 몇 번 분사했다. 순간 불을 지른 느낌이었다. 다리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심장마저 괴롭기 시작했다(왜냐하면, 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화장실로 뛰어가 샤워기로 씻어 버렸다.

어느 날 밤 나는 정말로 견디기 힘들어 사존께 청했다. 두 시간만 좀 자게 해달라고 빌었다! 수련생들도 끊임없이 나를 위해 발정념했다. 그날 밤 정말로 두 시간 잠을 잤는데 아주 달콤하게 잤다! 사존께서 나를 위해 너무 많이 감당하셨다! 나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았고, 끊임없이 아홉 글자 진언을 외웠다. 때로 좀 완화되었지만, 밤이 되면 또 견디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여동생 수련생이 우연히 우리 집에 왔다. 나의 상황을 보고 말했다. “ 사존께서 나에게 언니 집에 오게 한 것입니다. 언니 조급해하지 말아요. 이제 내가 매일 운전해서 항목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겠어요.” 나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마치 친인을 만난 듯했다. 나는 하소연하며 울었는데 울면 울수록 소리가 커졌다(스스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드물다).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 제고하려는 거예요.” 나는 눈물을 닦고 말했다. “가자, 빨리 가서 바른 일을 하자.” 그 후부터 여동생은 매일 아침에 밥을 싸서 나를 데리러 왔다. 밤에 나를 집에 데려다줬다. 항목이 끝날 때까지 줄곧 했다.

외지의 수련생은 우리 집에 와서 말했다. “마음을 넓게 먹어요. 점 하나에서 집착을 찾지 말고 벗어나 넘어서야 해요. 우리는 자신을 위해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항목을 위해 감당해야 해요. 자신 세계의 중생을 위해 감당해야 해요.” 나의 용량이 확대되자 아픔이 많이 감소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으로서는 모순에 봉착하면 마땅히 그것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당신이 진정으로 승화하여 올라올 수 있다.”[4]

항목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란받았다. 한 수련생은 넘어져 손목을 다쳐 찐빵처럼 부었고 한 수련생은 배가 아팠고 한 수련생은 이가 아팠다. 그렇지만 어느 한 수련생도 신체 교란으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고 모두 매일 질과 양을 완성했다(왜냐하면, 이 항목은 시간적 제한이 있으며 흐름이 이어져야 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견지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했다. 구세력은 이 항목을 겨냥해 온 것이다. 주요 원인은 나와 수련생이 방법에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해 정체에 누락이 생겨 사악이 틈을 탄 것이다.

어디에 누락이 있는가? 사존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점화를 청했다. 사존께서 내 머릿속에 두 글자 ‘모서리(棱角)’를 넣어주셨다. 곧바로 나는 모서리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에게 공산당문화의 중독이 아주 깊어 독선적인 마음, 일하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명을 구하는 마음, 수련생 사이의 정, 쟁투심이 있었다. 또 수련생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마음이 좁고 이기적이며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사존을 믿는가? 대법을 믿는가? 수련생을 믿는가? 자신을 믿는가? 자신이 신불로 수련될 수 있다고 믿는가? 너는 이런 시련이 정말로 좋은 일이라고 믿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체를 이룰 수 있는가?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기꺼이 조연을 맡고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협력해야 한다.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둘째, 일이 있으면 상의하고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당 문화의 ‘강세’를 없앤다. 셋째, 사과를 배운다.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고 바다 같은 흉금이 있어야 한다. 겸손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한다. 자신이 잘못하면 사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억울해도 전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사과해야 한다. 이것이 곧바로 제고다.

항목을 제시간에 완성하고 나는 대량으로 법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4~5강을 공부했다. 다리가 아파 가부좌하지 못하면 나는 무릎을 꿇어앉아 공부했다. 다섯 가지 공법도 견지했다. 특히 제5장 공법은 다리를 올려놓기만 하면 땀이 온몸을 적셨다. 심지어 온몸을 떨었다. 수련생들은 아플수록 더욱 가부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61일째 되는 날 아침 3시 나는 아파서 깨어났다. 나는 발정념을 했다. 단수입장을 하자, 신체 전체가 에너지에 둘러싸였는데 몸이 흔들렸고 입장한 손도 따라 흔들렸다. 나는 되도록 흔들리지 않게 통제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약했다. 나는 넓적다리 부위에 검정에 빨간 무늬가 있는 돌을 보았다. 그 빨간 무늬는 마그마처럼 비교적 가늘고 검은 것이었는데 마치 호흡하듯이 움직였다. 나는 사존께 제자를 가지해 달라고 청했다. 나에게 삼미진화(三味真火)를 주셔서 그것을 불태우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힘이 부족했다. 나는 외쳤다. “호법신, 빨리 나를 도와줘요.”

나의 호법신은 용이다. 크고 작은 한 무리 황금용이다. 사존께서 박해 초기 나에게 보여주셨다. 초기 내가 나가서 진상 책자를 배포할 때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속인 집 문에 진상 자료를 놓으려면 두려움으로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 했다. 사존께서는 나에게 꿈에서 호법신의 형상을 보게 했다. 꿈은 이렇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바람이 불었다. 이때 황금용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가장 큰 용이 우리 집 아파트 지붕 위에 내려왔다. 우리 아파트는 4단지고 7층까지다. 황금용의 몸을 다 담지 못했다. 용의 머리와 꼬리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는 아파트와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황금용은 머리를 숙이고 입으로 나를 안아주고 아주 친근했다. 나는 똑똑히 용의 수염, 용의 눈, 용의 코 위 주름 하나하나를 모두 봤다. 또 내 몸은 작은 용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 있었다. 그 후 나는 두려운 마음이 많이 제거됐다.

내 외침에 호법신인 큰 용이 내 넓적다리에 불을 내뿜었다. 불은 나선식이었고 드릴처럼 끊임없이 깊이 파고 들어가 한층 한층 돌파했고 한층 한 층의 무수한 공간을 돌파했다. 어떤 공간은 작은 용이 직접 날아 들어와 불을 뿜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다 됐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넓적다리의 고통이 사라졌다. 단수입장한 두 손은 허스(合十)로 변했다. 사존께 감사드렸다! 사존께 감사드렸다!

60일의 정사 대전으로 체중은 5kg 넘게 감소했다. 정말로 사존께 부끄럽고 수련생에게 부끄럽다! 정체로 잘 원용하지 못했다, 신사신법에 누락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존께서 자비롭게 나를 보호해 주셨다. 수련생들도 내가 무사하도록 도와줬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마음고생’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휴스턴법회 설법’




사악의 교란을 폭로하지 못하는 것은 사악을 용인하는 것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년이 넘는 박해 동안 나는 여러 차례 공안의 교란을 받았는데 매번 감히 폭로하지 못했다. 가끔 밍후이왕에 폭로하는 동료 수련생도 있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위축되었고 사악의 보복이 두려웠다. 하지만 폭로하지 않을수록 사악은 더욱 거만해졌다. 연속 몇 년 동안 민감한 날이나 양회 기간에 공안은 항상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억압을 받았고 늘 두려움의 그늘 속에서 살았다.

나는 궁금했다. ‘법공부와 발정념, 사람을 구하는 일에 정진하는데 어째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수련생보다도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무사태평하게 아무런 교란을 받지 않는데 나는 ‘정진’하는데도 끊임없이 교란을 받고 있다. 차이가 무엇인가?’ 계속해서 법공부 하고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면서 마침내 이유를 찾았다. 정법 수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뿌리가 여기 있었다. 안으로 이유를 찾았다. 무엇이 정법 수련인가?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 관해서 많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법에 따라 하지 못했다. 나는 비록 법공부를 적게 하지는 않았지만 일에 부딪혔을 때 여전히 개인 수련 상태에 빠져 있었고 거듭 참아가며 완벽을 추구했다.

교란을 폭로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려움 때문에 공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순종했다. 이로 인해 사악의 교란은 끊임없었다. 정법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교란이 무엇인가? 법을 파괴하는 것이고,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하는 것이며, 중생 구도를 파괴하는 것이다. 비록 공안이 교란을 피울 때 태도가 사악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모든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가? 공안은 구세력이 인간 세상에서 박해하는 수단이다. 탄압은 미시적인 표면에 이르는 거대한 시스템의 그물망인데 사부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경시하면 구세력의 박해를 묵인하는 것과 같고 마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한 교란과 박해를 회상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때때로 공안은 아주 위선적이었다. 그들은 소란을 피울 때 말했다. “우리 관계는 좋습니다. 내가 당신을 보러 오는 것을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바로 노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20여 년의 박해 중에 공안이 부드러운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항상 그들에게 조롱을 받을 수는 없다. 다른 공안은 위협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인터넷에 올리면 당신을 죽여버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폭로하면 그는 곧바로 풀이 죽었다. 당신이 더 부드러울수록 그는 당신을 더 붙잡고 놓지 않을 것이다. 구세력은 당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번은 공안이 소란을 피울 때 아주 흉악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파룬궁(法輪功)에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즉시 풀이 죽었다. 이 말은 사악의 뿌리를 찔렀다. 누가 감히 우주 대법의 적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이 그것에 협조하지 않기로 하면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후 그 공안은 다시는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밝아졌다.

장쩌민을 고소한 이후로 공안은 대법제자를 끊임없이 괴롭혔는데, 나는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아주 많은 수련생이 사악의 교란을 폭로하지 못했다. 소란을 더 피울 것 같고, 시간이 길어지고, 주눅이 들 것 같았다. 폭로하지 않으면 평안할 것 같았다. 우리 도시를 예로 들어 보면 올해 여러 지역의 동료 수련생들이 괴롭힘을 당했고 면적도 넓었지만, 인터넷에 폭로한 것은 아주 적다. 또한, 세 현의 수십 명의 동료 수련생들이 괴롭힘을 당했지만, 인터넷에 이 일을 폭로하는 어떠한 정보도 보이지 않았다. 한 협조인이 말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지역에서도 많습니다. 두려움 외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은 정법 수련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공안이 자신에게 어떻게 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서명하지 않았는데 만약 폭로하면 말썽을 자초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정법 수련 상의 인식이 아니다. 사악은 당신이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또한 계속해서 박해하기 좋다. 수련은 대강대강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사악을 폭로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악을 용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하는 것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고 있고 하늘마저 속이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는데 그것을 폭로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바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의 사악한 본질을 보게 하고 사악이 한 짓을 보게 하며 진상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1]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2]

사악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대법제자는 왜 두려워하는가? 많은 사람이 사악의 교란 등 박해를 폭로하지 않으면 구세력은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교란을 당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 두려움이 사소한 것인가? 이것이 무슨 대법제자인가? 계속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는 마치 어두운 먼지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반사동 요괴처럼 달라붙는다.

또한, 당신이 교란을 폭로하지 않으면 공안이 당신에게 부드럽게 대하겠는가? 그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연약할수록 그것은 더욱 움켜잡는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의 어떤 수련생은 해마다 한두 차례 교란을 당했다. 다섯 번까지 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감히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고 매번 교란을 당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알게 된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적지 않게 하고 아주 정진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세상을 떠났고 병업으로 인해 입원한 사람도 있다.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수련이 아니고 법리가 명백할수록 더욱 충실하다. 마난은 구세력이 안배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개인 수련의 인식으로 교란을 대하고 마난에 부딪혔을 때 정법 수련의 이치로 가늠하지 않으면 신의 일면이 억눌리고 사악한 마가 틈을 탄다. 그렇게 하면 구세력이 안배한 개인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는 것이다.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이런 교란을 승인하지 않아야만 그것을 돌파할 수 있고 마난은 자연히 당신을 떠날 것이다.

교란을 폭로하는 것은 공안에게도 좋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맞게 할 수 있다. 이치가 정당하고 엄숙한 말로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공무원법’은 이미 가루를 다 빻고 나면 당나귀를 죽일 포석을 깔았다. 종신제는 정년퇴직해도 책임을 물어야 하며 부적합한 법률을 집행하거나 바르지 않은 명령을 집행한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20년 동안 뒷조사한 정법 시스템의 대청소가 이미 시작된 마당에 주도면밀한 사람이 어찌 자신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겠는가? 대법제자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되었든 찾아와서 교란하고 박해하며 권고를 듣지 않는 사악한 공안을 헌법 등에 따라 기소할 수 있다. 대법제자를 괴롭힌 그들의 죄는 지울 수 없다.

최근 밍후이왕에 “정법의 기점에서 사당의 ‘제로화 운동’ 악행을 분명히 인식하다”라는 문장은 교란과 박해에 관해서 매우 이성적이다. 필자는 말했다. “나는 즉시 가장 미시적인 부분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구세력이 사당의 제로화 운동, 사부님의 정법에 대한 교란, 대법에 대한 불경, 중생에 대한 박해, 대법제자에 대한 파괴적인 검증을 철저하게 제거한다는 강대한 정념을 발했다.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따르고 정법에 대한 구세력의 참여를 일절 승인하지 않는다. 정법 구결을 염한 뒤 하늘이 맑게 느껴졌다. 나는 구세력의 음모가 패하고 법에서 해체된 것을 알았다.”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은 천리(天理)다. 사악은 폭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공안이 교란할 때 얼마나 사나운지만 보지 말라. 폭로된 후 누가 감히 나와서 책임을 지겠는가? 있겠는가? 모두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양회 전에 현지 공안은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웠다. 동료 수련생들은 공안, 검찰, 법원, 사법부와 정부 부문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노출시켰다. 해외 수련생들의 전화가 폭포같이 쏟아졌다. 당시 시장이 회의 중이었는데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시장은 매우 화가 나서 공안국장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들은 파룬궁을 건드리지 말고 멈추시오.” 대법제자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한다. 우리는 가장 바르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끊임없이 사악을 폭로하는 동시에 사악을 해체하고 박해를 종식시킨다. 공안은 대법제자를 보면 위축되고 얌전해진다. 그렇게 사악의 박해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사악의 교란을 폭로하지 않는 것은 사악을 용인하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세상에 온 것은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구도 중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제때에 사악의 교란 등 일체 악행을 폭로하고 동시에 공동으로 강대한 정념을 발해야 한다. 철저하게 ‘제로화 운동’ 배후의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시키고, 구할 수 없는 그런 사악한 무리가 즉시 벌을 받게 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형세를 종식시켜야 한다.

현 층차에서의 한 가지 체득이므로 수련생들은 법을 스승으로 삼고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




[국제온라인법회] 매체에서 전직으로 일하면서 수련한 경험


글/ 미국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시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8년 6월 워싱턴DC 법회 이후 저는 영문따지웬 구독부서에 들어갔고, 이때부터 영문따지웬의 구독 업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이후 매체가 신속히 발전하면서 영문따지웬이 사람을 구하는 힘도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졌을 때 사람을 구하는 진상 알리기 항목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문따지웬은 여전히 매월 독자들에게 몇백만 부 신문을 제공했고, 각종 소셜 플랫폼 홍보를 통해 날마다 수천만 명이 진상보도와 전통가치관이 담긴 문화란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종이신문 구독서비스만 제공했지만, 현재는 인터넷 문장과 잡지 구독서비스도 추진했습니다. 현재 구독량을 볼 때 영문따지웬은 미국에서 4위입니다.

끊임없이 견지하다

영문따지웬은 유료신문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상당히 힘들었고 지금의 모든 것이 결코 쉽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서양 사회에서 누구도 영문따지웬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을 보급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집에 우편으로 신문 견본을 부쳤고, 다양한 집회와 전시회 등 행사에 참여해 여러 단체에 대면해 신문을 소개하고 보급했습니다.

비록 많은 공을 들였지만, 최초 구독자 수는 매월 수백 명씩만 늘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에 수련생을 조직해 인쇄공장에서 수동으로 견본 신문을 준비했고, 도와주러 온 수련생들도 늦은 밤부터 새벽 3시쯤까지 일했습니다. 이러면 3000~4000부 견본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본도 우리에게 매주 20명 정도의 새 구독자를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일부 사람은 서비스 핫라인에 전화해 신문을 예약했는데 그렇게 증가한 새 구독자 수도 매일 몇 명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핫라인’이라 불렀지만 사실 하나도 ‘핫’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 신문의 1년 구독료는 99달러이고, 신문 한 부를 우편으로 부치는 비용은 약 2.25달러였습니다. 즉 신문 한 부를 부치는 비용이 1년에 117달러여서 사실 손해 보는 장사였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었고 반드시 우리 매체를 잘해 사람을 구해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이 없을 때일수록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1]

끊임없는 노력으로 2019년 4월, 구독자 수는 끝내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2019년 4월 19일, 우리가 자체 제작한 동영상으로 인해 1200명이 넘는 새로운 구독자가 생겼고, 이후 구독자 수가 하루에 2500명, 5000명, 심지어 1만 명씩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교란이 줄곧 아주 많았습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광고 금지를 당해 광고 수입을 주지 않았고, 우리를 악마화하며 공격했고, 대형 IT회사에 심사받고, 좌파 매체에 모욕당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구독자 수가 늘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새로 증가한 구독자 수가 주문 취소보다 적어 구독자 수가 마이너스 성장세인 날도 있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걸어 지나온 것이다. 당신들이 어느 면에서 맞게 걷고 바르게 걸어왔다면, 닫혀져 있는 문이 열리고, 길이 넓어질 것이다. 어떤 사업이든, 길은 모두 이렇게 지나왔다.”[2]

우리는 노력해 안으로 찾고 긍정적인 교훈을 받아들였습니다. 전통문화를 기점으로, 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기초로 신문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썼고, 대법이 부여한 지혜로 서로 다른 보급방법으로 다양한 독자층에 신문을 보급했습니다. 제가 느낀 점은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매체에서 일하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이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에 마음이 외부에 흔들려서는 안 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마음을 써서 일하다

구독자가 주문을 취소하면 어떤 날은 구독 수량이 마이너스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구독자 수가 계속 증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부님께서 매체 대법제자에게 알려주신 여섯 글자를 기억했습니다. ‘용심(用心), 수련(修煉), 구인(救人).’

구독 취소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취소한 원인부터 분석했습니다. 분석해보니 원인이 아주 다양했는데 주요 원인은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는 것, 대선 결과에 극도로 실망해 뉴스가 보기 싫다거나 다른 매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무료 뉴스를 볼 수 있다는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써서 구독자와 소통하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마음을 써서 소통하려면 우선 구독자를 잘 알아야 하고,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문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매번 설문조사가 끝나면 저는 거의 모든 피드백을 읽어봤고, 핫라인 전화도 받으면서 해지하고 싶은 구독자와 직접 소통했습니다. 또한 일부 행사에도 참여해 구독자와 만나 소통했습니다.

구독 데이터와 구독자층에 대한 정보를 통해 우리는 신문과 사이트 내용, 구독자 체험, 고객서비스 등을 다방면으로 향상하였습니다. 그중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독자에게 신문을 계속 구독하도록 알려주는 우편물을 수정한 것도 포함됐습니다. 우선 구독자가 우리의 우편물을 읽도록 하고, 그다음 구독자에게 왜 우리 신문을 계속해 주문해야 하는지 알려주려 했습니다.

‘주문연장 통지서’는 ‘여러분의 구독을 충분히 이용하시고, 누려야 할 어떤 것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로 변경했습니다. 편집자들과 함께 의논해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장 안내 편지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 따지웬은 이윤이 아닌 독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 따지웬은 독자들에게 진실한 소식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 따지웬은 줄곧 우리 모두에게 너무 많은 불행을 조성한 공산주의를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써낸 이 문장은 독자들에게 따지웬을 통해서만 이런 좋은 점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이런 좋은 점은 독자들에게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구독자 피드백에 근거해 계속 통지를 수정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하기만 하면 그들도 우리가 다른 매체와 다르다는 걸 알고, 더욱 많은 구독자가 신문을 연장 주문할 거라 믿습니다.

선을 닦다

좋은 수련 상태는 대법 일을 잘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공부, 특히 단체 법공부를 아주 중시하고, 발정념과 연공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2월부터 몸에 소업 상태가 나타나 늘 배가 부었습니다. 부을 때면 배가 벨트에 조여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몸에 나타난 소업 상태를 없애기 위해 저는 발정념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아침에 45분 혹은 더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고, 진지하게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1. 질투심을 찾아내다

날마다 바삐 보내다 보니 조용히 자신의 수련을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안으로 찾는 것이 영원히, 그리고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표면에서부터 심층으로 하나씩 집착심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구독팀의 매주 토요일 교류를 통해 저는 자신이 수련에서 확실히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찾은 집착은 일부 사람과 일에 대해 아주 강한 관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假理)를 위해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람은 줄곧 자신으로 하여금 더 사고하지 않고 오히려 일체를 아끼지 않고 대가를 치러도 동요하지 않게 하는, 이런 염두(念頭)를 자신의 사상이라고 생각하여 진리를 보아도 다 배척한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眞)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3]

대법에서 우리는 주이스(主意識)를 수련해야 하고, 관념과 진정한 자신을 똑똑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저는 늘 관념을 자신이라 여기면서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관념은 거짓 이치이고, 진선인(真·善·忍)이야말로 진정한 우주의 진리입니다. 마땅히 진선인 진리를 따라야지, 그런 거짓 이치가 저에게 일을 지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관념이 아주 강할 때는 제가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완고하게 다른 사람도 제 방식대로 따라 하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사존께서 저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제고할 기회를 많이 주셨지만, 오랫동안 저는 줄곧 자신의 관념을 고집했습니다.

한 대형 IT회사에서 줄곧 우리를 봉쇄했는데 어떤 플랫폼에서는 광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 어떤 곳에서는 우리 프로그램에 광고를 넣지 못하게 했으며, 어떤 곳은 이메일 발송업무를 갑자기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매체에서 자체 시스템과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수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플랫폼을 통해 진상을 알고 구원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한 후 저는 재작년부터 IT업종에 종사하는 수련생들을 만나 그들과 소통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뉴욕에 왔고, 어떤 수련생은 원격 업무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현재 참여하고 있고 어떤 수련생은 나중에 참여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이런 수련생들과 교류했고 그들이 매체에 와서 전담으로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각종 원인으로 성사되지 않았는데 가정적인 원인, 회사가 곧 상장된다거나, 혹은 이제는 코딩이 싫고 상담만 하면서 지도하겠다든가, 또는 기타 원인 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정말 우리 매체를 얕보면서 우리가 자체 소셜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말한 매체의 계획을 믿지 못하면서 제가 한 말들은 모두 빈말과 헛소리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무실로 초대해 매체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도 거절했고 그것도 여러 차례 거절했습니다. 물론 어떤 수련생은 제 전화에 신속히 반응했습니다. 제가 우리 매체에 IT 인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자 그들은 즉시 제 사무실로 와서 우리 항목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람들은 특히 좋아했고 반대로 거절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런 관념 뒤에 어떤 집착이 있는지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끝내 질투심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20년 전, 저는 급여가 괜찮은 일을 그만두었고 집과 편안한 생활,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했습니다. 여태껏 부유한 사람에게 질투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밍후이왕에서 질투심에 관한 교류문장을 읽은 후 저의 많은 질투심이 숨겨져 있고 알아채기 어렵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4]

저는 매체에서 하는 일이 모두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계속 잘해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저는 어느 당파든 불문하고 정치인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고, 2000년에 비해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도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체에서 일만 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중생을 구하려는 특별히 강한 긴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이후에 저는 질투심이 이걸 방해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사실 이런 정치인들도 모두 우리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 그들을 질투하거나 그들이 이것저것을 해주기를 바라서야 되겠습니까? 가끔 그들이 이 일 저 일은 하면서 왜 우리 매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생각하면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그들에 대해 몹시 실망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밍후이 교류문장 한 편을 읽으면서 저는 질투심의 다른 표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깨닫게 됐는데 이런 마음에는 모두 같은 출발점, ‘사(私)’가 있었으며 ‘내가 제일이다’고 하는 한 가지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최고이기에 매우 고상하며 듣기 안 좋은 말은 들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를 대조해보니 무의식중에 자신이 회사 원로이기에 젊은 직원이나 새로운 직원들은 마땅히 저를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제가 업무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중요한 관리직을 많이 담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시장마케팅과 구독자 유치 업무는 다른 업무보다 더 중요하고, 회사에 더욱 많은 수입을 갖다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수입은 중생을 더 많이 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여기면서 아주 잘난 체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쉽게 화를 내고 직원들과 시비가 발생하면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이 질투심의 표현이 하나의 악(惡)이며, 부정적인 물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악으로 악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대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출근할 때 늘 지각해 시간을 지키라고 귀띔해주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숨겨진 질투심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는 과정에 질투심이 있기에 이 마음이 제가 진정한 선과 관용으로 그들과 소통하는 걸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2. 당문화(黨文化)를 제거해야만 선을 닦아낼 수 있다

제 마음속에는 늘 매체에 대한 원대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능 있는 수련생들이 하루빨리 매체에 가입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련에 옳고 그름이 없고 오직 두 가지 일, 즉 심성제고와 중생구도만 있다고 이해합니다. 대법제자는 법에 대해 모두 본인 층차에서의 이해가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이 없고 능력 있는 수련생들이 모두 제 소원대로 매체에 전직으로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수련생은 경제적 부담은 없지만 중생구도와 매체에 대한 이해와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나간 한 가지 일에서 제가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당문화를 보아낼 수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제수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우리는 30분 정도 얘기했고(사실 줄곧 저 혼자서 얘기함), 제수는 듣고만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제수에게 삼퇴하겠냐고 묻자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몹시 유감을 느끼면서 더 말하기 싫어 급히 전화를 끊었고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저는 방에서 나와 아내에게 제수가 삼퇴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뜻인즉 저는 임무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제수를 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진상 알리기를 임무 완성으로 여겼습니다. 진상을 알린 과정이 속인 중에서 고객에게 마케팅한 프로세스보다 더 간단했고, 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날마다 이토록 바쁜데도 오랫동안 시간을 내어 당신에게 진상을 알렸으면 탈퇴해야지. 그래도 탈퇴하지 않은 걸 봐서 당신도 참 고집불통이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관념이 많았습니다. 이런 관념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바로 질투, 원한, 불평, 불만, 원망 등이었습니다. 또한 관념의 배후에는 마성(魔性)과 당문화가 있었습니다. 진일보 이런 집착들을 분석해보면서 여러 해 동안 제 수련에 줄곧 무엇이 부족했는지 발견하게 됐습니다. 바로 ‘선(善)’이었습니다. 저의 선은 수많은 관념과 마성, 당문화에 꽁꽁 묻혀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우리에게 방금 중국에서 온 수련생들은 당문화가 비교적 심각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온 지 28년이 넘었기에 자신을 당문화가 있는 부류에 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다른 수련생은 저에게 당문화가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9평 공산당’, ‘악마가 우리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를 읽었지만 ‘해체 당문화’는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했고 자신을 대조해봤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깊게 은폐된, 수많은 미세한 당문화가 저에게서 표현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는 구실을 많이 대면서 ‘이러면 문제없겠지!’, ‘이렇게 해도 상관없겠지!’, ‘별것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자신의 관점이 정확하다고 고집했고,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 목소리가 아주 높았습니다. 목적은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데 있었는데 목소리가 높을수록 제가 옳다는 걸 설명하려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맞고 상대방이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아주 강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끔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얘기할 때 늘 상대방의 말을 자르지만 정작 그걸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안이 가장 좋다고 여기면서 기세등등할 때도 있었고, 남과 소통할 때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이 하려는 일을 숨겼습니다. 사람을 구하려는 각도에서 얘기했기에 다들 제 방안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매체에 와서 전직으로 일하는 등 ‘사람을 구하는’ 방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문화 표현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은 상대방에게 사실을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그가 틀렸다고 확정을 지었고, 심지어 가끔 상대방을 찾아가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제가 속으로 이미 그들이 틀렸다고 확정한 것이고, 평온한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바탕 논쟁을 벌일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많이 하면서 갈수록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 중에서 드러난 당문화를 중시해 닦아버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에 대한 저의 믿음, 그리고 결심을 내리고 나쁜 생각과 관념을 닦아버리려는 마음을 보시고는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더욱 깊게 안으로 찾았고 수련에서 돌파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자신의 관념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고 남을 위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수련생이 아직 납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이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 수련의 일이고, 저는 자신에게 좀 더 잘하자고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열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당문화이고 일종의 ‘독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생각은 갈수록 명석해지고, 평소 업무 중에서 정상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남을 존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전직으로 매체 일을 하는 것을 거절해도 순리에 따르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날마다 장시간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서도 도와주셔서 뱃속의 화가 갈수록 적어졌습니다. 지금은 날마다 집중해 일할 수 있고 교란도 적어졌습니다.

매체에서 열심히 일한다 해서 수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매체 환경은 저에게 수련할 기회를 주었고 도량이 넓어야지 좁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수련생에게도 마음이 좁다면 어찌 속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차츰 저는 어떻게 해야 사심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배우게 됐습니다. 20년 전 제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해서 돈에 집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평온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방과 소통해야만 수련생 사이의 오해를 줄일 수 있고,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하게 됩니다. 저의 경력은 자신을 착실히 닦지 않는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대법 수련에서 저는 항상 겸허한 사람이 되고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할 것입니다.

저는 쉽게 화를 내고 선을 닦는 부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진심으로 이 방면에서 자신을 제고해 관용과 선한 마음을 닦아내고 싶습니다. 저는 매체에서 일하는 모든 수련생, 특히 젊은 수련생들이 진심으로 너무 고맙습니다. 그들은 편안한 생활과 속인 사업, 꿈과 수많은 속인의 아름다운 것들을 내려놓고 매체에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인연이 있다는 걸 설명합니다. 저는 이 성스러운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기면서 함께 매체를 잘 꾸려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으로 합당하지 않는 부분은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관(關)을 넘으며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4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수련생이다. 최근 몸에 한 차례 병업관(病業關)을 겪었는데 비교적 심했다. 그러나 사부님과 법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이번 난을 지나왔다. 내 경험과 깨달음을 발표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해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실증하려 한다. 사부님의 고심(苦心)한 제도에 감사드린다!

지난해 12월 어느 날 정오경, 매체 일을 하는 동료 수련생과 전화로 업무 문제를 상의하는데, 갑자기 심장 부위에 경련이 일어났다. 나는 전화하면서 급하게 말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잠시 후 괜찮아졌다. 그러나 경련은 완화되지 않고 곧 더 심해졌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부정맥 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이상을 느끼고 즉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발정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란이므로 발정념으로 그것을 없애려고 했다. 30여 분 정념을 내보냈지만 경련이 좀 줄었을 뿐 심장 박동은 계속 빨랐고 심장에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는 듯이 호흡이 곤란하고 아주 괴로웠다. 그날 오후 나는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한 차례씩 발정념과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사부님의 배치만을 인정하고 구세력(舊勢力)의 배치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반복적으로 다짐했다. 그러자 괴로웠던 상태가 조금 완화됐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려는데 심장 박동이 또 매우 빨라졌고 마치 작은 북 하나가 명치끝을 계속 두드리는 듯했는데, 경련까지 일어나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생각해봤다. ‘이렇게 하다가 심장이 쇠약해져 멈추는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맥을 짚으며 1분에 몇 번 뛰는지 보려고 했다. 그때 나는 그런 생각, 자신의 심장 박동이 아주 빨라지면 ‘쇠약’해질 거라고 걱정하는 그런 마음은 이미 법(法)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비록 그러했지만 그 당시 일어나 연공해야 한다는 약간의 정념은 남아있었다.

1장 공법의 ‘천(抻)’ 동작을 할 때 심장 박동 속도는 작은 북을 두드리는 느낌에서 무거운 북채가 북을 치는 것처럼 변했고, 박동할 때마다 명치를 두드리듯 괴로웠다. 나는 연공을 멈출 수 없으며 견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심장과 한번 대화를 해봐.’ 나는 연공하며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심장에 말했다. ‘느슨하게, 천천히, 둥글게’, ‘느슨하게, 천천히, 둥글게.’ 2장 공법을 할 때 또 명치 끝에 돌덩이가 있는 듯 호흡이 어려웠고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을 할 때는 손을 들고 있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렇게 하룻밤 내내 잠을 자지 못했다. 적막하고 깊은 밤에 두려운 마음이 내 공간장에 계속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너는 아직 젊지만 이 심장병이 단번에 네 목숨을 가져갈지 몰라.’ 나도 모르게 생각에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 내가 이렇게 죽으면 내가 하던 항목은 어떻게 하지? 나는 아직 사전(史前)의 서약을 완성하지 못했잖아. 두 아이는 어떻게 하지?’

다음 날 아침, 연공 준비를 할 때 동료 수련생이 전화로 알려준 소식이 떠올랐다. 우리 매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을 캡처한 것이었다. 한 시청자가 댓글을 달았다. “나는 10여 년 전에는 파룬궁이 박해받고 수련생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댓글이 이어졌다. “그래, 이런 거짓말과 원한, 폭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의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해!” 또 다른 댓글은 “20년 동안 파룬궁을 오해했네. 미안해, 파룬궁!”이라고 했다. 중생의 이런 댓글을 보며 나는 매우 격려를 받았다. 연공할 때 댓글을 생각하며, 중생을 위해 파룬궁이 바른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잠시 후 나는 또 생각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아있는데? 여전히 진상을 알지 못하는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 그 순간, 내 마음에는 중생에 대한 자비와 더 많은 중생을 구하려는 열망이 가득했다.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중생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위해 살아서 그들을 구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명치를 막고 있던 물질이 순식간에 녹으며 심장 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와 단번에 홀가분해졌다. 그때 내 두 팔은 위아래로 충꽌(沖灌)을 하고 있었는데, 눈물이 흘러내려 온 얼굴을 다 적시고 있었다. 위대하신 사존께서 사람을 구하려는 내 마음을 보시고 그 순간 나의 난(難)을 없애주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나는 다시 명치에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큰 주먹밥을 삼키지 못하고 가슴에 남아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조금만 무거워도 물건을 들지 못했다. 들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수시로 심장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두려움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음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법공부를 했지만 단지 형식적으로 했고, 비록 매일 법공부를 했지만 난을 만나면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의 관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생각해봤다. ‘그렇다, 내가 들은 밍후이 방송의 ’병업(病業)의 가상(假相)에서 걸어 나오다’라는 일련의 문장에서 수련생들이 병업관을 넘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법리가 그들의 정념을 강화시켜 걸어 나온 것이었다.’ 나는 연속 세 문장을 들었는데 사부님 법을 인용한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듣고 갑자기 마음속에 활력이 생겼다. ‘수련인은 병이 없으며 그것은 병업(病業)으로, 그것이 신체상에 반영되면 모습은 병과 똑같지만 사실은 가상(假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심장에 병이 있다고 하면, 이 손을 심장부위에 대고 잡아 쥘 때, 다른 공간의 그 손이 들어간다. 순간적으로, 아주 빨리 잡아 쥔 다음 당신의 바깥 손이 잡기만 하면, 두 손을 한데 합쳐 곧 손에 잡게 된다.”[1] 사부님께서 이미 법에서 여러 차례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 매 대법 수련자에게는 모두 공능이 있다.’ 곧바로 나는 왼손을 들어 명치 부위를 손끝으로 한번 긁고 밖을 향해 던졌다. 이 동작을 연속 세 번 하면서 ‘몌(滅)’하고 강한 일념을 내보냈다. 잠시 후 신기하게 명치를 가로막고 있던 느낌이 점차 약해졌다. 비록 명치를 막고 있는 느낌은 며칠 계속됐지만 법리를 명백히 이해하니 점점 활력이 생겼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안으로 찾아보고 깨달았다. 원래 내 두려운 마음은 심장이 불편해서 생겼는데 사람의 관념으로 심장은 생명의 급소이고, 목숨을 일시에 가져갈 수 있으므로 머리가 아프고,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몸 어디가 가려운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연히 심장에 나타나는 병업과 신체 다른 곳에 나타나는 병업을 비교해 내 이 마난(魔難)을 더 크게 봤다. 사실 사부님께서 이미 알려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업을 지을 수 있으며, 그 업을 지었는데, 그것이 당신의 신체상에 반영되면 그 병과 완전히 똑같다. 그것이 만약 당신의 코에 반영되면, 당신은 코가 막히고, 콧물을 흘리는데, ‘아, 감기에 걸렸구나.’라고 한다. 당신은 그것을 감기라고 말한다. (사부님 웃으심) 그러나 그것은 감기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위에 반영되면, 당신은 배가 아픈데, ‘아이고, 내가 오늘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다.’라고 한다. (사부님 웃으심) 그것이 아니며, 업력이 당신 거기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럼 왜 거기에만 가게 하는가? 거기에만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가게 할 수도 있고, 그곳에 가게 할 수도 있다. 당신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기 때문에, 당신을 도와 수련시키려고 할 때 그것은 당신 그곳에 가게 해준다.”[2]

나는 깨달았다. 이런 난을 만나는 것은 나의 심성(心性)을 제고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심성은 무엇인가?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1강에서 말씀하신 “씬씽(心性)이란 무엇인가?”[1] 그 부분을 반복해 외웠다. 나는 지난 7년간 수련하면서 비록 겉으로는 세 가지 일을 하고 매일 매우 바빠 보였지만, 스스로 마음을 닦고 제고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대법제자로서 매체에서 맡은 일 하는 것 외에도 일부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했고 집안일과 아이 둘을 보살폈다. 그렇지만 진정하게 마음을 써 법을 배우고 많은 공부를 하지는 못했다. 적극적으로 안으로 찾지 못하고 법과 세세히 대조해 자신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단속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 법으로 바로 잡지 못했다.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고 그래도 스스로는 매우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발정념하면서 첫 5분간 자신을 청리할 때 종종 머릿속에는 바로 전에 하고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자신의 공간장 청리를 중시하지 않아 스스로 난을 불러왔다. 나는 자신에게 반드시 법공부를 중시하고 사부님의 진수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심장에 병업 가상이 나타난 2주 후가 바로 지난해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한 속인 친구와 화상통화를 하다가 미국 대통령 부정선거 진상을 말하게 됐다. 10분 정도 이야기하는데 의견이 서로 같지 않고 마음이 답답해 화상통화를 끝냈다. 아이패드를 내려놓는데 심장에 또 맹렬한 경련이 느껴졌다. 갈수록 심해져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탁상에 있던 ‘전법륜’을 들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발정념을 하려고 했다. 동시에 일념이 나와 큰 소리로 반복해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다)!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제자다.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그 소리는 내 신체의 가장 미시적인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으며 내 신체 안의 모든 세포가 진동하면서 나온 그런 일념이었다.

다른 방에 가서 막 가부좌를 준비하려는데 심장 경련이 멈추고 박동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큰 관(關)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부터 내 심장 병업 가상은 점차 사라졌다.

대법의 신비한 기적이 내 몸에 몇 차례 나타났다. 사존의 제도와 불은호탕(佛恩浩蕩)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내가 난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 수련생에게도 감사드린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현지에서 발정념 내용을 통일한 것에 관해 교류


글/ 다롄(大連)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다롄 지역에서 여러 수련생이 납치되어 매우 큰 손실을 조성했다. 수련생들은 이 일에 대해 많은 것을 안으로 찾았다. 오늘 나는 메일에서 이 일에 관한 발정념 통지를 보았다. 생각을 거쳐 장애를 돌파하고 나는 발정념을 통지한 이 일에 관해 개인 인식을 써내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개인의 현재 수련상태 중의 인식이며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없으며 나중에 아마 변경할지도 모른다.

발정념 내용에 관해 밍후이 편집부는 2005년 ‘발정념 요령과 전 세계 동시 발정념 시간(수정2)’에서 이미 명확히 했다. 그해 ‘수정2’는 각 지역 대법제자가 발정념하는 내용이 같지 않은 정황에서 밍후이 편집부가 통지한 것이다. 이후 밍후이 편집부는 더는 갱신하지 않았으며 여러분은 마땅히 밍후이 편집부의 통지에 따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최근 현지에서 보내온 발정념 통지는 자신이 귀납한 일부 내용을 제외한 후 마지막에 멸!(滅) 멸! 멸! 세 개 ‘멸’자를 더했다. 여기에서 글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구결을 다 염(念)했을 때 강대한 염력(念力)을 집중하여 ‘멸(滅)’자 하나를 염(念)한다.”[1] 그러나 ‘멸’자를 세 번 더하는 것은 개인의 국한된 것을 명확히 더한 것이다.

수련은 엄숙하기에 개인 행위가 아니며 우리 시 전체가 통일적으로 동참할 것을 제의했다. 만약 법에 있지 않으면 교란 파괴 작용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생각해 보라. 오늘 한 단어를 가하고 모레 한 단어를 가하여 오래되고 오래되면 다음 세대 제자들은 누가 말한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여 서서히 대법(大法)을 개변할 것이다.”[2]

이러한 발정념 통지는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며 줄곧 존재했다. 얼마 전 미국 대선도 일부 발정념 내용을 귀납한 후 4번 정각 외, 모두 온종일 대선을 겨냥해 발정념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해외 수련생의 대 형세에 협조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떠어떠한 것을 초래하며 반드시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라고 강조했다. 그중에는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투지가 격앙된 것이 있었다. 당시 법공부가 깊지 못한 일부 수련생은 해외 대법제자가 모두 일종 어떤 정사(正邪) 분쟁에 참여했다고 생각했으며 사람 마음이 중한 개별적인 수련생은 해외 수련생과 연락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난법(亂法)에는 여러 형식이 있다. 그중 내부 제자의 무의식적인 파괴가 가장 알아차리기 어렵다. 석가모니교의 말법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 것이며 교훈은 엄중하다.”[3]

돌이켜보니 현지에서는 몇 년 동안 줄곧 이러했으며 이틀 전에 메일에서 현지 단체에 협조해 발정념을 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또 접할 수 있는 다른 메일로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발송된 통지문은 우리 시에 호소하는 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도시와 시골 수련생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농촌 수련생은 흔히 시내의 협조인 수련생, 기술 수련생을 매우 존중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많은 항목은 시내 수련생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 시내의 수련생을 신임하기에 만약 적절치 않은 곳이 있어도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며 통지를 받으면 즉시 그대로 한다. (분간하고 즉시 바로잡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수련생도 있다) 늘 수련생 집에서 출력한 내용이 다른 발정념 통지를 본다. 간혹 단체 법공부에서 발정념을 할 때 수련생이 지금은 원래 그 내용이 아니며 통일적으로 하는 발정념 내용을 고쳤다고 알려준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물론, 만약 특수한 상황에서 단독 혹은 단체로 하나의 사악 혹은 몇 개의 사악을 겨냥하여 통일적으로 발정념을 할 때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집중된 역량도 매우 커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매일 여러분의 단체 발정념(發正念)은 곧 더욱 큰 범위로 사악을 추적해야 하며, 매일 매번 모두 하나 혹은 몇 개의 사악을 집중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1]

우리가 이렇게 정체 발정념 내용을 자주 고치면 만약 여러분이 장기간 한 명 혹은 몇몇 사악을 목적으로 고정하면 역시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때때로 유사한 발정념 내용을 편집했으며 또한 메일에 모두 통지, 혹은 긴급통지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그 때문에 현지 협조 메일에 제의가 나타나면 수련생들은 재빨리 전달하고 그대로 해 정체로 악을 제거하는데 확실히 매우 큰 작용을 일으켰다. 만약 메일을 받은 수련생이 매번 엄격히 점검하고 법의 표준으로 하면 위력이 더욱 크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장기적으로 발정념 내용이 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제창하고 전달하고 그대로 하면 수련생도 법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수련생들이 자세히 숙고하기 바란다.

본래는 이 건의를 현지 메일로 보내려고 했는데 개인 수련경지도 한계가 있고 사람의 관념도 내려놓지 못하고 또 이어 한번 또 한번 교류하고 싶지 않아 직접 밍후이왕에 보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이해하시기 바란다. 아마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광범위하게 교류하면 효과가 더욱 좋을 수 있다.

만약 수련생이 납치되거나 긴급한 일이 있으면 수련생이 책임을 다해 메일로 통지해 정보를 빨리 여러분에게 알려 즉시 구출하는 것은 대단하며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표준을 파악하고 방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이며 사악의 박해가 나타나면 즉시 소식을 통지하면 된다. 매사를 한 사람이 통일해 어떻게 발정념을 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현지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일념(一念)을 더 추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지 ○(某) 강제노동수용소, 세뇌반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한다거나, ○악인이 현세현보를 받게 한다는 등등이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구체적인 목표는 너무 많거나 너무 세밀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4]

이외 이 일을 빌어 한 가지 현상을 말하려 한다. 현지에서 해외 수련생을 접촉하는 수련생은 모두 뛰어난 수련생이며 모두 협조하기를 좋아하는 상대다. 심지어 이전에 회피하던 수련생이 해외 수련생과 연계가 있고 난 뒤 지금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무슨 일이나 그와 말하기 좋아하며 회피하지 않고 협조하는 것으로 변했다.

사실 해외 수련생이든지, 국내 수련생이든지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어디에서든지 수련할 수 있다. 왜 기필코 해외 수련생이 한 말을 중히 보는가? 당신은 사부님께서 해외 수련생과 협조하라고 배치하셨다고 확정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인위적으로 해외 수련생과 협조해야 하는가, 적어도 일부 사람은 호기심, 숭배하는 등 사람 마음이 섞여 있다. 정말 개별적인 수련생이 해외 수련생과 협조해야 한다면 협조하는 범위, 다 참가해야 하는지에 주의해야 한다.

무심코 수련생에게 해외 수련생이 어떠어떠하다고 담론하지 말며 미국에서 누구누구(어느, 어느 아나운서)와 한 법공부 팀이며 또 어떤 항목에 참가하고 어떤 법회에 참가하고 또 사부님은 만났다는 등등을 말하지 말라. 이 방면에서 주의해서 수구 하며 우리 국내, 해외 수련생도 서로 조장하지 말고 우리 각자 바로 잡자!

나도 수련 중의 사람이며 이 건의 중에 많은 개인 수련의 부족, 인식하지 못한 집착이 그중에 있다. 우리는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런 일들을 모두 정리해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 버림으로써”[5]에 따라 하자.

적절치 않은 곳은 수련생이 원용하기를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정념(正念)’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급히 깨어나라(驚醒)’
[4] 밍후이 편집부 통지: ‘발정념 요령과 전 세계 동시 발정념 시간 (수정2)’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수련할 수 없는 신수련생과의 교류 소감’에 대한 생각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 교류문장 ‘수련할 수 없는 신수련생과의 교류 소감’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다음은 이 문장을 읽은 후 떠오른 두 가지 생각을 말하겠다.

1. 대법제자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은 표현이 중생을 망칠 수 있다

이 교류문장을 읽은 후 갑자기 10년 전 내가 한 회사를 떠나기 전에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고 아주 원망하며 한 동료에게 회사를 원망하는 일부 무책임한 말을 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당시 동료는 매우 놀라워하며 나에 대해 매우 의문스러워하고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지금도 내 머리에 떠오른다. 이 동료는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켜서 내가 잘했을 때 나를 매우 존경했었다. 그 순간 그에게 예전에 형성된 대법제자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그의 마음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주었을까?

나는 이 일을 진작에 잊어버렸는데 이 교류문장을 읽은 후 갑자기 이 10년 전의 장면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법공부를 착실히 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나는 명리정(名·利·情)의 언행에 깊이 빠져 대법에 좋은 인상이 있던 동료를 반면으로 가게 했다. 이 일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 나는 매우 후회스럽고 괴로웠다.

나는 줄곧 자신이 진상을 알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우리 자신의 언행이 사실 진상의 매우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세인은 우리의 말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표현도 보고 있다. 세인은 법에서 우리의 부족한 표현을 인식할 수 없기에 표면적으로 우리를 본다. 아마 우리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일시적인 표현이 중생을 구할 수 있고 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명리정을 집착하고 있을 때 후련하게 말하고 통쾌하게 털어놓기만 해서 중생의 느낌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 정말 매우 이기적인 것이다. 중생의 안위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세인과 신수련생에게 말과 행동이 맞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관점을 주기 쉽다. 우리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을 때 심각하게 법을 이탈하고 진선인(真·善·忍)을 이탈한 그런 표현은 중생을 망치고 생명이 법을 얻지 못하도록 막는데 정말 매우 무섭다.

그러나 나중에 나는 지나친 후회와 자책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더는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나는 정념으로 모든 부정적인 요소와 사유를 제거하고 그런 상태를 조절했다. 이제는 이전의 일부 일은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갔으니 어떻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지금부터 시작해 나중에 어떻게 잘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자신에게 꼭 이런 교훈을 명심하고 반드시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진정하게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일깨워줬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꼭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세인과 타인의 느낌을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정말로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의 안위를 마음에 담아두면 항상 자신의 언행을 단속할 수 있고 자신을 잘 관리할 수 있기에 법에 부합되지 않고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언행이 점점 적어지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나는 우리가 정념으로 중생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발정념할 때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세인과 중생을 가지(加持)하고 그들 사상 속의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제거하며 그들이 구원받고 법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한다는 일념을 내보냈다. 현재 이렇게 발정념한 후 자신의 용량이 확대된 것을 느꼈고 사상이 탁 트인 것을 느꼈다.

2. 수련에서 타인을 보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그 교류문장에서 언급한 신수련생이 수련할 수 없는 원인은 매우 많았다. 내재적, 외재적 원인이 다 있었고 사악(邪惡)도 그를 막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보았다. 수련은 속인 중의 어떤 일과도 다르고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어렵고 엄숙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련은 모두 이러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1]라고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명시하셨다. “매 한 관(關), 매 한 난(難)에는 모두 수련하여 올라가는가 아니면 떨어져 내려가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2] 사실 신수련생뿐만이 아니라 수련을 오래 한 노수련생도 난관 앞에서 수련해 넘느냐 떨어지느냐, 수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존재할 때가 많다. 이런 근본적인 시험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얼마 견지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많은 사람이 각종 이유로 대법 수련을 떠난 지 오래됐다. 요 몇 해 줄곧 걸어온 수련생을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거나 휘청거려도 각종 가혹한 ‘시련’과 박해 중에서 줄곧 사부님을 따라 지나왔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세 가지 일을 줄곧 잘한 대법제자는 대단하고 서로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다.

그 외에 그 신수련생은 주변 수련생이 수련인의 표현이 아닌 것을 보고, 동시에 법을 얻은 어머니의 나쁜 표현이 그에게 장애를 형성하고 충격을 주어 그가 대법을 의심하게 됐고 흔들리는 표현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표현에서 우리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해도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켜보거나, 다른 사람이 좋으면 나도 괜찮고 다른 사람이 나쁘면 그만두는 경향이 좀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보고 조류에 따르며 한 무리가 떠들면 믿는 이 역시 속인의 보편적인 상태다. 우리가 속인에서부터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좋지 않은 관념과 습관이 다소 반영되어 나온다. 따라서 박해 초기 장쩌민은 감히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떠들었다. 사악은 파룬궁수련생 중에 소장, 보도원 등 핵심을 붙잡기만 하면 나머지 수련생은 ‘지도자’와 ‘리더십’이 없어 파룬궁은 흩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1999년 7월 20일, 박해가 시작됐을 때 소장, 보도원은 이 방면의 압력과 고난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많은 수련생이 다른 사람을 보는 마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년간 우리는 확실히 소장과 보도원이 소위 ‘전향’한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수련생이 따라서 ‘전향’하고, 소장과 보도원이 수련하지 않으니 그들도 수련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대법제자는 어쨌든 수련인이기에 진정한 대법제자는 다른 사람을 전혀 보지 않고 진수하고 선을 향하는 마음에 따라 수련한다. 대법제자 중에는 속인의 어떤 조직도 없고 어떤 본보기도 없다. 진수하는 대법제자는 착실한 수련 중에서 대법의 위대함과 초범성을 체험할 수 있다. 착실한 수련에서 나온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반석처럼 확고한 정신(正信)은 생명 깊은 곳에 뿌리내려 어떤 생명과 요소도 동요시킬 수 없다. 이 점을 속인과 사악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3개월 후 사악이 소장과 보도원을 거의 다 붙잡고, 사악의 모든 매체와 선전 도구가 매일 하늘을 뒤덮을 듯이 비방하고 모함하며, 그렇게 많은 소장과 보도원이 사악의 핍박과 속임수에 넘어가 반대편으로 갔지만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은 여전히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히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수년 전에 밍후이왕에서 사악의 박해 초기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비방과 모함, 생사 시험과 거대한 압력 앞에서 내심으로부터 전 세계 사람이 모두 수련하지 않아도 그는 계속 수련해 줄곧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가겠다고 한 수련생이 적지 않은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이는 얼마나 대단한 정념인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보던 많은 수련생이 굽은 길을 걷고 손실을 본 후 사부님의 자비로운 감당으로 새로운 수련의 기연을 가졌고, 더는 다른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점차 성숙됐고 법을 사부님으로 삼았다. 1999년 7월 20일을 걸어온 수련생은 이런 과정을 걸어온 수련생이 매우 많다.

그러므로 신수련생이 다른 사람의 상태를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가 곤혹하고 동요할 때 노수련생이 선의로 이해하고 진심으로 관심하며 가끔 이해하고 관용하는 말을 하면 그들이 이 난을 걸어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공산당 악당이 대법을 박해한 이래 지금까지 많은 곳에 박해 전의 그런 교류 환경이 없어졌다. 신수련생은 조건이 없으면 최대한 그들에게 ‘밍후이 주간’을 보게 하고 조건이 있으면 그들에게 스스로 밍후이왕에 접속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전 세계 대법제자의 교류 플랫폼이다. 매일 밍후이왕에 접속하면 신수련생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고 가장 좋은 것이다.

개인 인식이므로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마음고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수련교류 발췌


2020년 설을 앞둔 어느 날 밤, 저는 한 가지 또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말하자면 꿈이었지만 사실 저는 정말 보았습니다. 우리 집 거실의 연한색 옷장 평면 위에 한 폭의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대략 1m 폭(높이)에 길이는 2m에 가까웠습니다. 그림 중앙 평면 위에는 ‘대법제자의 중생구원도(大法弟子救衆圖)’라는 7글자가 나타났습니다. 글자는 밥그릇의 입구만큼 컸고 이 ‘도(圖)’는 번체자였습니다. 화면에 펼쳐 나타난 것은 공중에서 무수한 대법제자가 수많은 세인을 구하고 있었고 매 대법제자는 분발해 하늘로 향했습니다. 즉, 하늘로 사람을 힘껏 던졌습니다(끌지 않고 당기지도 않으며 던짐). 그 세인은 대법제자에 의해 힘껏 하늘로 던져졌고 매 대법제자는 한 명씩 하늘로 매우 힘들게 던졌으며 온 힘을 다해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인을 던지면서 구했습니다. 대법제자가 세인을 던지면서 구하자 공중에는 세 가닥의 사람띠가 형성됐습니다. 일렬이 아니라 사람띠(이렇게 형용할 수밖에 없음)였습니다. 아울러 하늘의 무지개처럼 완만한 호의 모양으로 장관을 이루었고 무지개보다 더 장관이었습니다. 우리는 비가 그쳐 날이 개이고 난 후 쌍무지개 즉, 두 줄의 무지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세가 더욱 장엄한 세 가닥의 사람 띠였습니다. 뭇 대법제자와 던져지고 있는 세인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세 가닥의 사람 흐름 중간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샛별들로 금빛이 반짝이면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정말 장관이었고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장관이었습니다. 그림에서 대법제자는 매우 힘들었고 온 힘을 다해 사람을 던져가며 구하고 있었습니다! 세인은 두 손을 내밀고 몸도 앞을 향해 돌진하면서 닿으려 했고 대법제자에 의해 단단히 끌어당겨 던져졌습니다. 대법제자는 힘을 많이 쓰다 보니 신체가 뒤로 젖혀져 있었고 던지면서 구하고 있었습니다! 세 가닥의 사람 흐름은 천상에서 용솟음쳤습니다. 이 장관을 이룬 ‘대법제자의 중생구원도’ 그림을 보다가 저는 깜짝 놀라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이 사람을 구하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이 그림의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저는 열려서 수련하는 수련생이 아니지만 사부님께서는 왜 제게 이 ‘대법제자의 중생구원도’를 펼쳐 보여주셨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사존께서 제자가 온 힘을 다해 미혹 속에 있는 세인을 구하고 사람을 많이 많이 구해야 한다는 것을 점화해주신 것입니다. 이 ‘대법제자 중생구원도’는 제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저는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는 긴박함과 겸하여 짊어지고 있는 역사적 사명과 책임이 중대하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대법제자의 중생구원도(救衆圖)


저는 수련생을 큰 소리로 꾸짖은 후 스스로 무언가 더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습관이 되어 늘 이처럼 성격이 시원스럽고 솔직하여 입바른 소리를 잘했기 때문에 태도가 나빠도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팀에서 나온 뒤 저는 같은 길을 가던 A수련생에게 “형, 형이 보기에 제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넌 쉽게 조급해지고 격동돼서 좀 닦아야 해. 수련생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고 선념이 있어야 해. 수련생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지적할 수 있어. 하지만 태도가 좋아야 하고 큰 소리로 질책해서는 안 돼. 자비롭고 선념이 있기만 하면 설령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너는 법에 부합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형 말이 맞아. 자신을 좀 잘 닦아야 하긴 해”라고 말했습니다.…… B수련생과 갈등을 빚어 일어난 이 일을 통해 저는 ‘더 이상 밖으로 보지 말고 반드시 안으로 찾아서 자신을 수련해야 해. 절대 더 이상 C수련생과 논쟁을 하지 말아야지. 그에게 부족함이 있는 것은 그가 마땅히 스스로 닦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그를 위해 수련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자신을 경계하여 일깨웠습니다. 저는 “심성을 지키고 다시 만났을 때 반드시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자신을 경계하여 일깨웠습니다. 다음번 법공부 때 과연 문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법공부를 마친 후, C수련생은 끊임없이 탁상공론을 했습니다. 이야기한 것은 모두 일부 부정적인 것이었고 모두 수련생들의 일부 부족함이었습니다. 법에서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속인처럼 뒤에서 타인을 헐뜯으면서 전혀 법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저는 또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저는 ‘심성을 지키자. 설령 그가 말한 것이 나이고 나를 욕한다해도 나는 심성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자신을 경계하여 일깨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비몽사몽간 저는 자신의 공간장에 족히 폭 한자, 길이 한 자 반이나 되는 한 덩이 검은색의 두껍고 견고한 얼음이 서서히 자동적으로 떨어져 내려가 녹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온몸이 홀가분해지면서 대단히 미묘한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가 심성을 지켰고 법에 부합하자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해주셨고 저의 그 완고한 업력을 없애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법공부 때, C수련생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하는 말은 법에 있었으며 수련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런 강한 태도는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일체의 표현은 모두 가상이며 제가 제고되어 올라온 것으로 제가 수련되어 올라오자 곧 막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 수련의 미묘함


아침에 연공을 마치자 저의 공간장에 저를 두렵게 만들던 물질과 요소가 갑자기 연기가 걷히듯 사라졌고 다시 그 소장을 대면해 진상을 알릴 것을 생각해보아도 마음은 매우 고요했고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없애주셨으며 제가 그곳에 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격려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운전하면서 저는 계속 자신을 닦으면서 ‘우리 법공부 팀을 제외하고 다른 법공부팀의 수련생도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 정체적인 역량은 비할 바 없이 거대하므로 무조건로 정체에 협력하는 심성을 수련해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수련생이 저와 협력하고 있고 그렇게 많은 제자가 하나의 원용한 정체를 형성했으니 역량이 얼마나 클까요. 또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고 계시고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師徒恩)]를 생각했습니다.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이 염두가 나오자마자 저는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염두는 일정 층차에서는 정념이며 예전에도 이런 종류의 정념으로 시련을 돌파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단락의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책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걸어가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리(李) 스승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자동차에 부딪힌다 해도 두렵지 않다.” 이것은 대법(大法)을 파괴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진수(真修) 제자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저는 가끔 이른바 정념 속에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믿는 데가 있어 두려움을 모르는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체를 사부님의 안배에 맡기고 ‘결과가 어떠할 것’이라든가 또는 ‘어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사(爲私)한 ‘나’가 안배해 일을 하는 결과가 있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즉시 바로 잡고 법의 요구에 따라 했으며 다른 염두를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을 따랐습니다.
— ‘제로화’박해에 직면해 마음을 닦고 진상을 알린 경험


5월 27일 밤, 저는 한 가지 매우 또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매우 많은 사람이 높은 산 하나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산은 매우 높고 가팔랐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노력해 위로 올라갔고 말하기로 산을 오르는 과정은 의지를 연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모두와 함께 위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르다가 저는 더 이상 오르고 싶지 않아서 내려왔고 산타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이때, 하늘에서 “정진하지 않는 사람,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리치는 맑고 깨끗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의 의식적으로 저를 부르는 것 같아 번쩍 고개를 들어본 순간 깜짝 놀라 멍해졌습니다. 하늘에 대법제자가 백일비승(白日飛昇)하는 장면이 나타났고 여성 대법제자들은 모두 여러 가지 빛깔의 고대 복장으로 공중을 날고 있었으며 신체는 모두 매우 밝고 금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멍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방금 산을 오르는 것은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소리치면서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하고 찾았습니다. 저는 울면서 마당 바깥을 향해 걷다가 마당 문입구에 이르렀을 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고 보니 아내(수련생)였습니다. 그녀는 공중에 서 있었고 그녀 주변에 수많은 고대의 의상을 한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미안해요(저는 아내가 말한 미안하다는 말은 저를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았음)”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날아갔습니다. 저는 여전히 울면서 사부님을 찾았고 사부님을 불렀습니다. 저는 수많은 구원받은 세인들이 공중에서 비승하고 있는 대법제자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일부 정진하지 못한 수련생들이 부끄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울면서 깨어나 아내를 부르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해요! 너무 무서워요!” 저는 꿈속의 장면을 아내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마땅히 써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저처럼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에게도 한 가지 일깨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체득했습니다. “정말로 원만을 이루는 그날,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정말로 대법제자들이 백일비승 하는데 전 세계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박수) 원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날 당신은 거기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다!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보건대 울어도 늦었다.”(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저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하라고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이 바로 의지를 연마하는 과정이며 대법제자를 이룩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 정진하지 않던 나는 울면서 사부님을 찾았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수련하는 사람도 아직 닦아 없애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사람에 대해 이미 관념이 생겼기 때문에 늘 타인의 단점을 보고 장점을 소홀히 합니다. 살펴보면 매 사람에게는 모두 좋은 면이 있습니다. 다시 자신을 깊이 파헤쳐보았을 때,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에는 항상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또는 인정하지 않는 일이었고 다른 사람도 저의 견해를 인정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이 나쁜 일을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로는 납득시킬 수 없는 일이면 표현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있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질투심이 은폐돼 있었습니다. 또한 종종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과시하는 마음의 일종 표현이었습니다.
— 진실을 말하는 것과 수구


저는 문득 ‘이 의심,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질투심은 바로 당문화의 사고가 아닌가? 왜 늘 나쁜 방면에서 생각하는가? 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지 못하는가? 아마 수련생은 몹시 지쳐서 생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수련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제가 타인을 위해 생각할 때, 마음을 막고 있던 그 물질이 많이 경감됐습니다. 저는 즉시 그 나쁜 물질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사악한 공산당문화 사유가 형성한 거짓 자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첫 번째 일념은 먼저 의심하는 것이며 이어서는 곧 부정적인 생각이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당문화의 사고로 의심하고 원망하며 미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은 “너무 지쳐서 생각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쁜 사유를 따라 생각하면 이것은 갈등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 거짓 자아를 경계하여 그것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그것을 해체해야 합니다.
—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잘 닦다


겉으로 우리가 수련생을 돕는 것은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교활한 이기적인 사심이 폭로되어 나오자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내켜하지 않았고 체면을 위하는 마음과 수련생이 싫어할까 봐 두려워했으며 이것저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결국 사심이었습니다. 많은 일에서 알든 모르든 모두 사(私)자였습니다. 먼저 제가 어떠하다는 일체는 모두 나(我)였습니다. 어떤 것은 겉으로 보기에 옳기까지 했지만, 이것은 위사(爲私)한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서 깨달아 없애면 다른 한 가지 일에서 사심이 또 반영돼 나왔고 다시 없앴습니다. 부동한 층차에서 이 사(私)자를 닦아 없애고 그것을 해체하여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을 수련했습니다. 전염병 발생 기간 진상 자료를 나누어주었고 본 아파트 단지에서 거의 배포하고 나면 다른 아파트 단지에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파트 단지는 또 들어가지 못했고 거리에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받지 않아 온종일 몇 부밖에 나눠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의 통행증으로 다른 아파트 단지를 들어갈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각 아파트 단지에서 통행증을 나누어 주었고 또 경찰관이 문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 가방 가득 진상 자료를 메고 들어가려 하자 “통행증은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경찰관이 문입구의 작은 관리실에 있었고 저는 그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침착하게 “있어요”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통행증을 꺼내자 그는 “됐어요.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매번 경찰관이 모두 확인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사부님께서 제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제게 만능의 통행증을 하사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정말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師徒恩)]였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셨고 제자는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 신수련생이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고 더 정진하다


사부님의 보호로 우리 집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우면서 오늘날까지 안정적으로 걸어왔습니다. 자료점은 안전제일입니다. 저는 먼저 신사신법하고 경사경법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법공부를 하며 연공을 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먼저 손을 씻고 온가부좌를 하며 두 손으로 대법 책을 받쳐 들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통독을 했으며 매일 아무리 바빠도 한 강의씩 법공부를 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더 배웠습니다. 갈등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았습니다. 분명 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사실에 입각하여 시비 득실을 논하면 안 되었습니다. 그때 만약 찾아내지 못하면 억지로 참았고 그것을 참아내었습니다. 다시 자신을 찾아보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법공부를 하면 서서히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법에 있어야 하고 법으로 가늠하며 법에 부합하는 일이면 행하고 법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7번의 정각 발정념을 했습니다. 4개의 정각 외에 밤 7시, 8시, 9시에 발정념을 하여 현지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니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밤 12시 정각 발정념을 마친 후 다시 잠을 잤습니다. 3시 10분에 일어나(예전에는 3시 30분 기상함) 연공을 했고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아침을 준비했으며 아침에 깨었다가 다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속인 인터넷을 하지 않았으며 퉁타이왕(動態網)도 보지 않았고 일이 없으면 친척과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모임을 갖지 않고 여행을 가지 않으며 수련생과 직접 연락했으며 특수한 상황 없이 수련생을 집에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료 배송은 출근 시간과 장을 보는 시간으로 안배했습니다. 평소에 가사일을 하면서 법을 들었고 밍후이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법을 필사하고 법을 외우며 몸과 마음을 계속 법 속에 잠기게 해 정념이 강했습니다. …… 우리 자료점이 평온하게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련생들의 정체 협력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고 있는 수련생이 겪는 박해가 얼마나 심각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자료점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겪지 않는 수련생들도 줄곧 자료점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원용불파(圓容不破)의 정체를 형성했습니다.
— 10년간 작은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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