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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81호 【수련교류】  
   2021-07-28 13:48:03 | 조회 : 734

한글판 제781호



수련교류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을 타파하다 

[밍후이법회] 영문 밍후이왕에서 번역 일을 하면서 견정하게 수련하다 

[밍후이법회] 밍후이왕 매체에 따라 마음을 닦다 

법공부를 마음에 와닿게 해 진정으로 법을 얻다 

무엇을 보더라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강요하는’ 당(黨)문화 사유방식을 해체하다 

한 차례 심성관을 넘은 경험을 적다

수련교류 발췌 




수련교류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을 타파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즘 들어 사람의 관념이 내 수련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갈수록 분명히 느낀다. 사람의 관념을 타파해야만 우리는 사람에서 벗어나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어제 법공부할 때 사부님의 말씀을 보았다. “현미경 아래에서 보는 인체는 바로 이러한데,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인체와는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사람의 이 한 쌍의 눈이 당신에게 일종의 가상(假相)을 조성해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1]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 모두 가상이라면 지금 내가 받들고 있는 이 ‘전법륜’도 눈으로 보기에는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쓴 속인 공간의 책에 불과하며, 그것의 진실한 체현이 아니다. 그럼 그것의 진실한 체현은 무엇인가? 그 순간 한 층의 물질 관념이 벗겨진 것 같았다. 이 ‘전법륜(轉法輪)’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층층첩첩(層層疊疊)의 불(佛), 도(道), 신(神)이며, 계속해 보면 사부님의 법신, 또 계속해 보면 모두 층층첩첩의 진선인(真・善・忍)이었다.

그 순간 나의 모든 것이 텅 비었고, 법공부할 때 잡념이 하나도 없었다. 자그마한 잡념도 모두 법에 대한 불경이라는 걸 느꼈다. 나는 법공부할 때 구하는 바가 없이 무위(無爲)의 마음가짐으로 솔직하게 봐야 하고, 사부님에 대해 지극히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 말씀의 표면 뜻만 알면 되지 ‘이 말씀의 내포를 보아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구하는 마음이며, 법의 내포는 마음가짐과 심성이 위치한 층차에 따라 법의 배후에 있는 불도신(佛道神)이 점화해주시기 때문이다.

법공부를 마친 후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나에게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하나의 관념, 바로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이 존재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현재 어떤 사람은, 이 한 쌍의 눈은 우리 이 세계 중의 어떤 물질, 어떤 물체든 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일종의 고집스러운 관념이 생겨서 그는 눈을 통해 본 것만이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라 여기며,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과거에는 줄곧 이런 사람을 오성(悟性)이 좋지 않다고 여겼는데, 일부 사람은 역시 왜 오성이 좋지 않다고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1]

예전에 이 단락 법을 배울 때 여태껏 자신은 오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다른 공간과 신불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내가 바로 이런 오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며, 이 관념이 나의 수련, 그리고 내가 법에 동화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경우에 나는 이 관념의 지배하에 수련 중의 문제를 인식했고, 두 눈으로 보고 인식한 사람의 이치와 이 공간의 가상으로 수련 중의 문제를 대했다.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가로막는, 겉으로 보이는 주된 사람마음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주요한 것은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마음이다. 누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가? 경찰과 세인이 아니라 그들 배후의 사악이다. 대법제자는 다른 공간의 사악을 두려워하는가? 물론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악이 병업 가상으로 수련생을 박해할 때 대부분 수련생은 모두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념이 확고하다. 사악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해도 모두 정념으로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악이 경찰을 통제해 박해하는 형식으로 나타날 때, 어떤 수련생은 두려워 숨어버린다. 그럼 우리가 다른 공간의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속인 중의 경찰이다! 그럼 왜 경찰을 두려워하는가? 왜 박해 전에는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박해가 발생한 후에 경찰을 두려워하게 됐는가? 박해 후에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이 경찰이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는 새로운 관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즉 이 관념이 반응한 것이지 진정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학생이 식물을 짓밟은” 예처럼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식물 자체가 아니라 조금 전에 식물을 짓밟는 과정에서 형성된 관념이 반응한 것이다. 진정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은 경찰 본인이 아니라 그 배후의 사악이며, 경찰은 우리가 구도해야 할 생명이다. 그 배후의 사악이 없다면 어느 경찰이 감히 대법제자를 박해할 수 있겠는가! 배후의 사악이 없다면 경찰의 명백한 일면은 자발적으로 대법제자를 찾아와 진상을 듣고 구도 받으려고 할 것이다.

내가 두 번째로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갔을 때 톈안먼광장 분국(分局)으로 납치됐다. 경찰들은 오늘만 파룬궁 수련생들이 광장에 오지 않아 한가했는데 마침 내가 또 왔다고 했다. 그들은 수갑으로 내 두 손을 긴 의자에 채운 후 “계속 말하지 않으면 본때를 보여줄 테야!”라고 협박했다. 그리고는 발로 나를 한 번 걷어찼다. 이건 경찰 배후의 사악이 한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엄숙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국가 경찰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알려주겠는데, 이번에 올 때부터 살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즉시 웃는 낯으로 대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배후의 사악이 해체됐다는 것을 알았고, 그 후에 그는 떠나갔다.

많은 경우에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 관념이 우리를 속였다. 현실 공간의 소위 표현에 현혹되고, 사람의 이치에 구속돼 걸어 나오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를 하면, 만약 당신이 다른 공간의 사악이 경찰들을 오리 쫓듯 당신 곁으로 보내고, 꼭두각시처럼 경찰들을 조종해 당신을 박해하는 것을 본다면 그래도 경찰을 두려워하겠는가? 전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수련이란 속인의 명(名), 리(利), 정(情)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명, 리, 정을 내려놓기 어려워한다. 왜 어려워하는가? 나는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에 지배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공간에서 명, 리, 정의 표현을 너무 사실로 여기기에 이것의 진상을 보아내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현실 이익 중에서 그것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 이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겠는가? 그는 어렵다고 여기는데, 실제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1]

2000년에 내가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갑자기 노발대발하며 모든 화분을 바닥에 던진 후 바닥에 누워 뒹굴었다. 또 칼을 들고 만약 내가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간다면 죽어버릴 거라고 협박했다. 나와 여동생이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고, 울며불며 죽어버릴 것이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 방에서 나와 북쪽 방에 가서 ‘전법륜(轉法輪)’ 책을 펼쳤다. 마침 “당신의 元神(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1]라는 말씀이 보였다. 당시 몹시 격동돼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모두 다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책을 들고 회사에 가서 보았다. 저녁에 돌아오니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시켜 내게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게 했는데 직접 오기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수련생들이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손자에 대한 정을 내려놓기 어려워요.”라고 하는 것은 사실 이때의 기점이 사람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마땅히 이런 것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내려놓을 때 몹시 고달프고 힘들다. 사실 이것은 천천히 닦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수련은 이렇게 수련하지 않는다. 우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법에서 수련”[2]하기에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그러면 법에서 진상을 볼 수 있고, 법리를 통해 왜 수련에서 정(情)을 없애야 하는지 명백히 알 수 있다.

사람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는 이 근본적인 관념을 타파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후천적 관념들이 형성될 것이다. 오직 후천적 관념을 형성하는,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라는 관념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후천적 관념이 형성되지 않게 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수련형식’



[밍후이법회] 영문 밍후이왕에서

번역 일을 하면서 견정하게 수련하다


글/ 영문 밍후이왕 번역팀 파룬따파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2005년 가을에 영문 밍후이왕팀에 합류했고 지금까지 거의 16년이 되었습니다. 이 항목에 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밍후이왕 웹사이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외국인 수련생을 우연히 쇼핑센터에서 만나서 였습니다. 몇 마디 나누고 나서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영문 밍후이왕 번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당신은 중국어로 글을 쓴 경험이 있고 영어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 후 외국에서 온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의 번역팀에서 일할 번역원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팀에 합류했습니다. 내가 영문 밍후이왕 번역팀에 참여한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부님의 배치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영문 밍후이 웹사이트 번역이 나의 사명임을 알고 있습니다.

외로움의 역경을 극복하다

밍후이 웹사이트는 특수하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높습니다. 항목 참가자는 세간의 이목을 피하고 이름을 엄격하게 기밀로 유지해야 합니다. 회의에서도 가명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하거나 소통할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교류한 세 명의 동료수련생은 팀 협조인 뿐입니다. 수년에 걸쳐 이러한 업무방식과 요구사항은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어려움이 생기게 했습니다. 지역 도시에서 동료 수련생들은 종종 서로의 항목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목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해야 했는데 이는 때때로 동료 수련자들 사이에 오해와 단절, 압력을 받기도 했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무척 외로울 때가 있었습니다. 정법시기에 나의 노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밍후이 번역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와 밍후이 번역원이 된 의미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때로는 동료 수련생이 누구인지 아는 다른 항목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기복이 있었지만 결국 항목을 책임지고 싶어서 남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잡은 시기는 항목을 떠나려는 마음의 이면에 있는 집착을 깨닫고 그 집착을 제거했을 때였습니다.

외로움은 수련자의 의지를 갉아먹을 수 있는 집착임을 깨달았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소통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도 밖으로 찾고 수련의 지름길을 추구하는 집착입니다. 이 집착 뒤에는 안으로 찾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대법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료 수련자들과 소통해야만 더욱 부지런해진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오래 전에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心性(씬씽)을 어떻게 제고하는가에 달렸다.”[1]

한편, 어떤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의 집착을 반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집착이 없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자극하는 상황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종종 파룬따파 자료점에서 일하는 중국 동료 수련생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외로움의 시련에 직면해서 조금만 길을 벗어나면 매 순간 삶과 죽음의 시험에 직면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직면한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파트타임 자원봉사자라는 사상을 제거하다

오랫동안 나는 일주일에 한두 편의 문장을 번역해 왔습니다. 당시 다른 항목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이 속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느꼈습니다. 바쁜 직업도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보통 다른 진상 알림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을 냈지만 돌파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날려고 노력했지만 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대법의 힘이 없이 생각만으로는 개선할 수 없고, 대법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수련의 상태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그래서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법을 외우면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날마다 나에게 법리를 펼쳐보여 주셨습니다. 나의 수련상태도 계속해서 빠르게 돌파했습니다.

나는 밍후이 번역을 할 시간이 없다는 문제를 먼저 돌파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력 개발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집착에 이끌려 갈수록 직장에서 바빠졌습니다. 초과근무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매일 늦게 집에 돌아왔고 자정에 발정념을 하기 전에 간신히 법공부를 조금하고 연공을 일부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번역을 하려면 법 공부나 연공을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나는 경력 개발에 대한 집착을 인지한 후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 마음을 보시고 항상 그랬듯이 제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해 주셨습니다. 전환점이 왔습니다. 구직자가 손을 내밀어 소규모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험도 동시에 왔습니다. 나는 곧 대기업으로부터 더 높은 직책을 제안 받았습니다. 두 가지 반대되는 선택에 직면해서 나는 흔들렸습니다. 교활한 집착은 내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왜 C 급 직책을 받아들이지 않지? 그러면 더 많은 주류 사람과 교류할 수 있어서 법을 더 잘 실증하고 션윈을 홍보 할 수 있어.” 기로에서 나는 자신의 의도를 확인했습니다. 우선순위는 자신을 잘 수련하고 영어 밍후이 웹사이트에서 더 많은 번역을 할당 받는 것임을 알았습니다.(저자 주: 당시 자신의 수련상태에 부합하는 개인적인 결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나는 작은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제 나는 사부님께 마음속으로 약속 드린대로 번역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매일 2시간씩 더 남았습니다. 나는 적절한 결정을 내려서 매우 기뻤습니다.

나는 더 부지런 할수록, 더 높은 표준에 따라 생활할수록, 마난에서 벗어나기가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번역을 하는 것과 퇴근 후 연공하는 것 사이에서 오랜 시간 갈등을 겪었습니다. 한 동료 수련생은 연공을 하기 위해 오전 2시 20분 전에 일어나서 대법 항목을 수행하고 사람들을 구할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경험을 들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즉시 수면 패턴을 조정하고 자정 이후 또는 작업 전에 5조공법을 연공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활기차고 더 효율적으로 되었습니다.

동시에 매일 단체 법학습에 참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항목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제거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패턴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에는 정법시기에 밍후이 번역을 하는 자신의 사명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잘 수련해야만 항목을 더 잘 할 수 있다

번역 작업은 기계적인 반복에 빠지기 쉽습니다. 배정을 받고, 번역하고, 제출하고, 다른 배정을 받고, 다시 번역하고, 다시 제출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수련상태에 있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과정은 반복적이고 지루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수련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집착을 감지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사용하여 집착을 폭로해 주십니다.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부 사항이 많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논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번역하는 동안 종종 마음속으로 불평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얕보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져서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한 페이지 미만의 짧은 문장을 번역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느슨해진 상태를 돌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복해서 읽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조바심과 불만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심지어 팀장에게 배정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간신히 단어 단위로 번역할 수 있었지만 교정된 문장은 검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서 교정된 문장을 읽었는데 당연히 교정된 곳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꿀 때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얕보는 것이 질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없애고 싶었지만 없애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전혀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선하려는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행이고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질투는 자신에 대한 집착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자기 중심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강점을 볼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이것이 구우주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우주의 이기적인 관념을 가지고 이기심을 없애지 않으면 어떻게 사부님의 신우주에 속하는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면서 자신을 잘 수련하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점차적으로 나는 모든 생각을 파악하고 그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지 확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많은 숨겨진 집착을 감지하고, 그것들을 자신과 구별하고, 거부하고, 억제하고, 이러한 나쁜 생각을 따르지 않고, 점차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수련상태는 번역의 품질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수련상태에서 한 번역은 일반적으로 교정원의 변경 사항이 거의 없이 신속하게 잘 이루어집니다. 수련상태가 좋지 않으면 교란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느슨해졌을 때는 뇌가 전혀 작동하지 않거나 졸리고 피곤했고 한 단어씩만 번역할 수 있었으며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집착이 없어지면서 다른 수련생들에게 더 협조적으로 되었고 배려심이 생겼습니다. 번역원들의 체크리스트를 주의 깊게 읽는 법을 배웠고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기사를 몇 번 읽었습니다. 독자가 수련자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수련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법의 훌륭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다시 쓰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번역을 하고 나면 마침내 번역문을 제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는 없었습니다. 대신 나는 그것이 독자들에게 의미가 통하는지, 그것을 표현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찾기 위해 초안을 적어도 두 번은 읽었습니다.

나는 또한 다른 나쁜 습관, 즉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속도가 빨라서 급변하는 업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빠르게 말하고 걷습니다. 따라서 내 손가락은 대부분의 경우 내 두뇌보다 빠릅니다. 이 습관은 번역에도 반영됩니다. 과제를 받자 마자 번역을 시작했고 서둘러 했습니다. 나는 번역원의 체크리스트를 주의 깊게 읽을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상식적인 실수를 자주해서 동료 수련생들의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안으로 들여다 보니 조바심도 당문화에 뿌리를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참을성이 없는 이 물질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나쁜 물질을 제거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더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거래 스킬이 향상되다

영어 실력 향상에 관해서 말하자면 번역을 하면서 오랫동안 향상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신이 휴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에 빠듯한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르고, 심지어 쉬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 했어. 하룻밤 사이에 내 일의 품질과 기술을 향상시킬 수는 없어. 어차피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수련이 제고되고 더 높은 표준을 유지하면서 나는 더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노력하지 않았고 나의 전문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의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정된 문장을 주의 깊게 읽지 않았고 영문 밍후이 웹사이트를 읽지 않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번역의 질이 훨씬 더 좋았을 것입니다.

나는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을 꺼리는 것이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번역의 질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번역원이 일을 잘 한다고 가정하면 자연스럽게 교정팀의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법제자들의 시간을 전체적으로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항목의 모든 동료 수련생에게 어떤 항목에 참여하든 전문적으로 기술을 향상시키라고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어쨌든 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듣습니다. “속인들의 기술을 배우는 대신 수련 항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항목에 대한 책임 부족과 게으름을 반영합니다. 우리가 전문적으로 발전하고 싶어할 때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는 빠르고 쉽게 기술을 연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에서 혜택을 입다

“도전적인 사람에게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배우고, 좋은 사람에게서 해야 할 일을 배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팀에서 나는 자비의 힘을 경험했고, 자비의 힘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자신이 느슨해지거나 참을성이 없을 때, 또는 실수를 했을 때 '이번에는 비판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난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들은 것은 이해와 격려 뿐이었습니다. 그런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나는 놀라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팀에 머물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팀장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왜 놀랐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팀원들의 실수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망설이지 않고 비판했을 겁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방법을 몰라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요?”, “왜 또 이러세요?”

게다가 그들은 모두 평화롭고 부드럽게 말하고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념이 담긴 그들의 말과 행동을 거울로 사용해 내 안에 있는 당 문화를 감지하고 조금씩 자신을 바로 잡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서서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번역이 더 효율적으로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부드러워 졌으며 더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나는 매일 중국어 밍후이 웹 사이트를 읽는 습관을 들여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매일 수련교류 법회에 참가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동료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읽고 많은 혜택을 얻었습니다.

동료 수련생들이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어떻게 난을 돌파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는 정념과 정행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심을 몇 번이고 목격했습니다.

당연히 여러 차례 내가 배정받은 문장은 내가 겪고 있는 마난을 동료 수련자들이 어떻게 돌파했는지에 관한 문장이었습니다. 문장을 번역함으로써 나는 안으로 찾고 자신의 부족을 보았으며 자신을 제고해서 다시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맺는말

돌이켜보면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배치하신 그 길이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낍니다.

중국어 밍후이 웹사이트에서 일하는 동료 수련생들과 다른 언어 밍후이 웹사이트의 모든 동료 수련생들에게 이번 기회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밍후이 항목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수련생들은 불필요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다른 수련생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의 축하문, 교류 문장, 보고서가 쏟아지는 명절이나 기념일에 중국어 밍후이의 업무량은 특히 많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그 기간 동안 밤낮으로 일을 합니다.

동료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법공부를 잘하고 사부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위치에서 잘하도록 서로에게 상기시켜 줍시다. 앞으로의 길이 아무리 길더라도 사부님의 자비와 고통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시다.

존경하는 사부님, 마난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혼란스러울 때 우리에게 점화를 주시며,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안내해 주기 위해 우리가 침체되어 있을때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련할 기회와 정법시기에 자신의 사명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의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밍후이법회] 밍후이왕 매체에 따라 마음을 닦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밍후이법회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다는 통지를 받고 이것은 얻기 어려운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배치에,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수련 경험을 보고하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밍후이왕 매체에 참여

저는 2000년 법을 얻었습니다. 그때 사악은 기승을 부렸지만 저는 오히려 파룬따파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는 삼촌을 뵈러 갔습니다.

삼촌은 저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너 이거 한번 해봐. 너무 좋아.” 삼촌은 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열몇 살부터 줄곧 수련의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전법륜’을 본 후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찾던 대법 대도를 찾았습니다

처음 3년, 저의 수련환경은 단지 삼촌과 제한돼 있었고 두 사람은 자주 심득교류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둘은 모두 개인 수련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삼촌은 경제 압박으로 60세에 미국에 이민 갔습니다. 삼촌이 간 후 저는 유일한 수련환경을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수련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찾았고 현지 법공부팀에 참가했습니다. 저의 정법시기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혹은 2004년) 어느 하루 우리 현지 밍후이 협조인은 저에게 밍후이 항목 번역원으로 참가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밍후이왕 여정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 사이트는 아직 밍후이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표준에서 멀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매일매일 끊임없이 번역했습니다. 왜 번역해야 하는지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이것이 저의 사전 서약으로 이해됐습니다.

국제 밍후이왕에 참여

2010년 처음으로 ‘밍후이국제’를 접촉했고 협조인은 내가 밍후이왕 항목을 하는 과정에 스스로 제고가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선 최근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여러분도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원만을 향해 가기 위한 것이다.”[1] 사부님께선 명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 스스로 원만으로 걸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밍후이팀 매 사람에게 자비심, 관용, 얻기 어려운 기연을 주셨습니다. 매 사람이 이 항목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저에게 큰 일깨움을 주었습니다. 밍후이 항목에서 수련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를 인식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물론 기타 책임도 담당했고 심지어 다른 항목의 책임자는 밍후이 편집자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과 격려에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저는 여태 밍후이 항목을 진정으로 그만둔 적이 없습니다.

의견 대립과 심성 제고

수련 길의 기복 과정에서, 확실히 말하면 몇 년 전 우리는 편집장을 잃었습니다. 그는 많은 저애와 교란을 겪었고 속인의 생활에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전에 이 일로 그와 교류했고, 이어 우리 팀 법공부에 매일 참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이미 팀에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세 번 지난 후 사람은 또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항목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본래 같은 팀에서 저의 직책을 바꿔 줄 수 있는 적당한 사람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협조를 책임지는 외에 저는 전의 편집 일로 돌아갔습니다. 때로 글의 양이 부족할 때 스스로 번역해 매일 발표한 수량을 채웠습니다.

몇 개월 전 우리 편집자가 저에게 우리 팀의 한 사람을 집행 편집자로 추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활동 기간에 동의했습니다. 몇 개월 관찰을 통해 명확히 좋은 업무 표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대신해 전직 편집자가 되게 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는 항목의 전체적인 협조와 확장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편집자에 의해 이 생각을 버리게 됐습니다. 그는 분명히 저에게 실망을 표시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저를 그전에 그만둔 편집자와 별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의 이해는 협조인으로서 반드시 팀에서 이미 표준에 도달한 성원은 제고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더욱 큰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팀에서 매 성원은 적당한 시기에 그가 발전하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신(神)이 방법을 제출했을 때, 그들은 급급히 부정하거나, 급급히 자신의 것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른 신이 제출한 방법의 최후 결과가 어떠한지를 먼저 본다. 길은 같지 않으며 매 사람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바, 생명이 법 중에서 깨달은 이치는 모두 같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틀림없이 같을 것이다.”[2]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는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보고, 신은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본다.”[3]

이 과정에서 저는 반드시 자신이 제기한 배후의 동기를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는 우리 둘(저와 저를 반대한 편집자)의 출발점을 보고 성실함과 순수함을 봅니다. 진정으로 이 항목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의견 대립에서 저는 어떻게 대하는가?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갑자기 다른 의견을 지닌 편집자 그도 이 항목을 책임지고 있다고 의식했습니다. 저는 항목 협조인이 무엇인지 다시 뒤돌아보았습니다. 협조인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게 아닙니다. 번역, 편집, 업무에서 협조와 항목의 발전 등을 책임지면 효율이 높지 않습니다. 그 외 팀에서 매 팀원은 그들 자신의 위덕을 쌓고 있습니다.

갑자기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명할 수 있으며,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하면 역시 안 된다.”[4] 이 일을 깨달은 후 저는 두 편집자와 새로 가입한 편집자와 교류했습니다. 최후로 두 편집자는 새 편집자가 전직 편집자로 승격하는 것에 동의했고 저의 직책을 대체했습니다. 새 편집자는 임무를 맡기 원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저의 책임을 대신해 준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같은 팀의 두 수련생 A와 B는 모순이 생겼습니다. B는 밍후이 항목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B에게 전화 걸어 자신의 결정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전했습니다. 우리는 잘 교류했습니다. B는 더는 감정적이지 않고 전에 결정을 취소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얼마 전에 정례회의에서 B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전화를 걸어 그에게 말할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아주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너무 오래되었어요. 그때 우리는 당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에서 관찰하니 당신 수련은 더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B는 이어 한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충돌이 생긴 후 그날 밤에 그는 꿈을 꿨어요. 꿈에서 수련생 A가 문을 열어 그를 따라 한 방에 들어갔어요. B가 들어간 후 그는 똑똑히 보았어요. 전체 밍후이팀은 이미 그 방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깨어난 후 B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물러서지 말라는 일깨움임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교류를 한 후 저는 갑자기 ‘자아’를 의식했습니다. 자신이 작용을 발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력해 기타 수련생을 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배후에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이 일은 또 저에게 자신을 너무 중히 보지 말아야 하고 자만심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일은 제가 밍후이왕 교류 문장을 읽을 때 수련생이 법공부를 매일 2강 혹은 심지어 3강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속인처럼 안으로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저도 제고하고 싶습니다. 더욱 깊이 안으로 찾고 싶습니다.” 말하고 저는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한번은 본부와 교류 후 저는 우리 인터넷 내용이 아직 부족하기에 밍후이라디오 책임자와 교류했습니다. 저는 매주 팟캐스트 두 개를 늘리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원인은 이것저것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듣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차가 빨리 달리려면 반드시 엔진과 바퀴, 모든 부품이 협력해야 합니다.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전에 한 수련생이 저에게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참을성이 있어야 해요. 나는 전에 모 활동을 추진하려 했는데 소원이 실천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내가 원하는 그 활동이 성공했고 효과도 의외로 좋았어요. 아주 시기적절했어요.” 그 후 저는 더는 이 일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하루 밍후이라디오 책임자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팀과 양을 늘리고 수련심득을 방송하는 외에 밍후이뉴스 방송을 늘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물론 기뻐했습니다. 어느 하루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왜 갑자기 밍후이뉴스 방송을 하려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답했습니다. “당시 당신이 말할 때 나도 하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장애는 너무 많았어요. 나는 사부님께 나를 지도해 달라고 청했어요.” 저는 갑자기 협조인으로서 쉽게 희망을 잃어버리면 안 되고 마음은 더 너그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더 잘 알아보고 자기 팀 수련생이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는지 관심 둬야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 신변에 동반해 인도해 주신다고 생각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의 일 또한 수련이다. 속인 사회 중의 일 처리 방법과 대법책임자를 모두 한데 연결하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전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형식과 일하는 방법이 없었다. 책임지면서 또한 보통수련자이다. 당신들은 탐색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며, 대법의 책임자도 모두 자신을 단련시키고 있다.”[5]

밍후이법회 통지

통지를 받은 후 이튿날 저는 즉시 우리 팀을 찾아 이 일에 협조하라고 통지했습니다. 어떤 이는 듣고 열정적이고 어떤 이는 침묵했습니다. 협조 기간 많은 사람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두 편집자도 도착하지 않아 이튿날 우리는 다시 협조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번에 한 편집자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화 걸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귀찮아졌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계속 불평만 늘어놓았습니다. 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저는 우리 팀의 한 팀원에게 즉시 이 편집자를 연락해 찾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찾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더는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가?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연공인으로 봐야 합니다. “모순이 생길 때 갑자기 나타나지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오직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은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다”[4]

저는 느낌에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저를 일깨워주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심성 제고의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귀찮아하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 원망을 닦아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의 이런저런 것을 추측하는 게 아닌가? 왜 모순을 피하는가? 왜 스스로 그에게 전화 걸지 않는가? 왜 다른 사람을 시켜 연락하게 하는가? 그날 밤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고 다시 전화 걸었습니다. 전화는 성공적으로 걸렸습니다. 전화를 받았고, 이렇게 밍후이법회 관련 회의를 3번이나 열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대할 때 몸은 가볍게 변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이 편집자는 태만한 태도를 개변하고 원래 빠르게 답장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결과는 확실히 우연한 것이 아니고 모두 나의 마음을 닦고 제고해 올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팀에 젊지만 이미 인터넷 기술 방면에서 중요 작용을 하는 팀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나와 말할 때나 다른 팀원이 무슨 일을 잘못하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엄격하게 비평합니다. 매번 저와 말할 때 그가 저에게 ‘선배’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우리 관계는 심지어 이미 경직돼 그의 이름도 부르지 않습니다. 속으로 늘 답답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예의를 알고 있는가? 이 과정은 한동안 지속했습니다. 줄곧 제가 이 일에 조금씩 담담해질 때까지입니다. 저도 그에 대한 태도가 평범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회의를 열고 밍후이법회를 선포할 때 그는 비록 이 협조 회의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저는 자발적으로 그와 연락했습니다. 그때 그는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저 이번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이어 저는 기타 편집자에게 어떤 사람이 법회에 참가하는지 저에게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늦어도 답장이 없습니다. 저의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이 나왔습니다. 전에 편집자와 모순이 생긴 교훈이 생각나 자신에게 참으라고 일깨워주었고 더욱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가 참가하는지 참가하지 않는지는 모두 배치가 있습니다. 본부에서 우리에게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빨리 신청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은 어떤 집착심도 생기면 안 됩니다. 지정 날짜가 지나도 여전히 일부 사람은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장기간 번역하는 사람들이, 진일보 참여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팀 법공부에 참가하지 못했고 협조 정례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전체 과정 중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셔서 자신의 흉금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밍후이 항목 수련 과정에서의 일부 심득입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의 지도와 보호에 감사드리고 저에게 수련 기연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련생의 정체적인 협력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따지웬 씬탕런매체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창춘보도원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법공부를 마음에 와닿게 해 진정으로 법을 얻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주위 수련생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수련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근본 원인은 여전히 법공부가 부족한 것으로 수련이 따라오지 못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상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층차 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왜 층차가 제고되지 못하는가?

개인적으로 그 중의 원인 하나가 신사신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공부가 표면형식에 그쳐서, 법공부를 하지만 법을 얻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신사신법’을 입에 달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정말 마음에서, 행동에서 ‘신사신법’을 해냈는지 안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수련생의 교류문장에서 수련을 잘한 수련생들을 보았을 때, 얼마나 많이 자신과 대조해서 승화하고 제고했는가? 대부분 겉으로 며칠 감개무량하다가 끝난다. 그 수련생들이 진정으로 신사신법하고 마음에 와닿게 법공부하여 법을 일상생활 행위 중에 녹여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달마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마디에 근거에 선종 법문(禪宗法門)을 창립했다고 말씀하셨다. 달마는 부처님의 한마디 말씀에 근거에 한 법문을 창립했는데 그럼 우리는 여러 해 법공부하면서 얼마나 많은 걸 얻었는가? 대법을 배우기 전에 나는 ‘달마조사(達摩祖師)’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영화에서 달마가 사부님에게 보여준 믿음, 생사를 내려놓는 믿음과 금강부동의 의지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넌 건’ 수행의 체현이다. 그럼 달마에 비해 우리가 어떠한지 되돌아보자. 다른 건 둘째치고 ‘신사신법’의 정신을 우리 수많은 수련생(나 자신을 포함)이 정말 해냈는가? 어느 정도로 해냈는가? 찬물을 몸에 끼얹고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가부좌할 때 몇 분이라도 더 앉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면 뭘 할 수 있겠는가! 고생은 한꺼번에 다 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하면 된다. 왜 제고하려는 마음조차 없는가? 어떤 사람은 다리가 조금만 아파도 참지 못해 견지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俗)과 성(聖)은 한 갈래 냇물 사이이고 진(進)과 퇴(退)는 두 하늘이라 수림 속 절 들어가려 하거니 한걸음에 구름 위로 오르네”[1] 우리가 자신을 사람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로 여기는지, 그것이 바로 일념이 아닌가?! 그 일념의 차이는 서로 다른 상태를 불러온다. 예전에 가부좌할 때의 고통을 이렇게 생각했다. “요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아?” 가부좌 중에 다리가 떨려도 견지하고 또 견지했다. 1초 또 1초, 이렇게 결국 내가 설정한 시간까지 가부좌를 견지했다. 다리를 내려놓을 때 이빨까지 떨렸지만 그래도 내가 이겼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기 전엔 원래 천상의 왕이었거니”[2] 사부님께서 우리를 비할 바 없이 높은 왕이라 하셨기에 나는 자신을 믿는다. 내가 감히 하려 하고, 해낸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대법제자, 중생을 구도하러 인간 세상에 내려온 왕이라고 믿는다면,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기에 무슨 고비를 넘기지 못하겠는가? 정말 행하여 보기 바란다!

우리가 수련 중에서 혹은 시련에 부딪혔을 때, 정말 자신을 왕으로 여긴다면 대법제자의 풍모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높고 크게 변하고, 눈앞에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수련생 여러분, 우리 모두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사람에서 벗어나 신을 향해 나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일념(一念)’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찾아라’



무엇을 보더라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이곳에 소방 방면 점검을 강화했다. 며칠 전 근처 상가에 갔는데 도시 관리원이나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와서 뭔가를 조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시 관리원들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지 않아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에 혐오감이 일었다.

상가에서 볼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우리 회사에 왔다. 그들의 리더가 소방 안전을 점검한다며 가스통을 사용했느냐고 물었다. 사장이 없어서 직장 동료가 답변을 불분명하게 하자 그들은 다짜고짜 안에 들어가 여기저기 뒤졌고, 우리 회사 식당에서 평소에 쓰던 가스통 2개를 찾아내고는 압수하려 했다. 동료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장은 맞서기 싫은 데다 가스통 자체도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 가져가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가스통을 가져가고는 다시 인근 가게로 점검하러 갔다.

이 장면에 내 마음은 매우 동요했다. 안전을 점검하는 것은 문제없으나, 무슨 근거로 다른 사람이 자기 돈으로 산 물건을 가져가고, 적어도 시정할 수 있는 기한을 줘야 하는데 너무 무례했다. 토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내가 만약 사장이라면 그들과 어떻게 싸우고 그들을 통제하게 하며, 법률로 이야기하고 고발할 것이며, 심지어 폭력으로 폭행을 다스려 그들을 모질게 혼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연공과 법공부할 때 고요하지 못했고,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뒤죽박죽이 됐다.

이런 상황은 다음날도 계속됐다. 이튿날 그들은 또 다른 가게를 점검했다. 나는 다시 그들을 보자 마음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오후에 마침 근처의 한 가게에서 볼일을 보던 나는 가스통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서, 현재 점검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들은 즉시 가스통을 별도 보관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법공부를 하자, 마음은 매우 고요해졌다. 나는 이 일에 대한 일사일념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을 해왔으니,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반드시 내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 이 일은 나의 어떤 문제점을 드러내는가?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익이다. 비록 내 물건이 압수되지 않았고 사장이 바로 전자레인지 하나를 가져왔기에 우리가 식사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나의 마음은 확실히 움직였다. 가스통은 약 300위안(약 5만2천5백 원)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수련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못했다. 표면으로 보면 그들의 행위가 부당하지만, 수련인은 고층차에서 문제를 봐야 하며, 표면적인 옳고 그름은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 일의 인연 관계는 아주 복잡하고 속인의 각도에서는 분명하게 볼 수 없는데, 나는 바로 속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본 것이다. 내가 가게 사람에게 점검하고 있다고 알려줘서 그들이 가스통을 별도로 보관해 좋은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재물을 잃어 업을 갚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끼어들어 엎을 갚지 못했다면, 결국 나중에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속인의 정에 흔들렸다. 내가 그들을 보자 바로 혐오했기에 이는 이미 옳지 않다. 수련인은 마땅히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속인이 좋든 나쁘든 모두 우리가 구도해야 할 대상들이다. 속인의 옳고 그름이 대법과 무관하면 우리와도 무관한 것이고, 그것은 속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며 업력윤보다. 배 한 척이 가라앉을 때, 배에 있는 사람들의 좋고 나쁨은 우리와 무관하며, 우리는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배에서 뛰어내려 평안을 보장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네 번째는 쟁투심이었다. 나의 머릿속에 '그들과 어떻게 옳고 그름을 다퉈볼까'라고 생각했다. 그 자체가 쟁투심이었다. 쟁투심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 꼭 1, 2등을 다투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직위나 물품 등을 다투는 것만이 아니다. 당시 나는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려는 생각까지 했다. 이는 수련인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다. 수련인의 염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잠긴 상태로 수련해서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마음은 얼마나 많은 업력을 초래했을지 모를 것이다.

결국 나는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1]를 해내지 못했다. 평소에 자신이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우연히 보게 된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조차 너무나 많은 사람의 마음이 드러났다. 그야말로 속인 사회는 정말로 큰 수련의 장이다. 어떻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대하는지에 따라 수련 성취할 수도 있고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도(道) 중에서’



‘극단적으로 강요하는’ 당(黨)문화 사유방식을 해체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아, 극단, 밖으로 보다

최근 현지에서 한 노수련생이 노령연금 지급이 보류된 일을 둘러싸고 모두 마음이 그에 따라 무겁거나 들떴다. 이미 승소했는데 사회보장국은 판결에 따라 집행하지 않고 여전히 연금 발급을 거절했다.

나는 줄곧 이 일을 주시했다. 수련생이 그녀 집에 가지 말며 감시카메라가 있고 어떻다고 소식을 보내왔다. 시종 마음에 걸렸는데 줄곧 그녀와 만나지 못했다. 감시카메라보다는 그 노수련생이 전화에서 본명 등 무엇이든 다 말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만나지 않으니 정황을 알지 못해 안심되지 않아 그녀 집에 갔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 없을 뿐만 아니라 당일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 집에서 돌아온 후 나는 줄곧 모순된 심정으로 뒤엉켰다. 한 편으로는 그녀 가족을 설득해 가족과 함께 변호사의 도움으로 연금을 받고 싶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노수련생이 수구(修口)에 주의하지 않아 무의식 간에 자신을 팔아먹을 것 같아 걱정됐다. 수년간 전화 안전 등 방면에서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가 연상되어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원망했다. 즉시 현지에 존재하는 정체 수련환경을 수호하는 교류문장을 썼으며 주로는 이 노수련생을 겨냥해 써서 현지 메일함에 보냈다. 그러나 자신에게 악당문화의 극단적이고 강요하는 마성이 있어 결과적으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 후 여전히 마음이 평온하지 않아 경각심을 갖고 사부님의 경문 ‘재인식(再認識)’을 외웠다.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의 문제를 나는 이미 더없이 명백하게 말했다. 사실 당신들이 넘은 고비는 바로 당신들의 마성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 차례 한 차례씩 각종 구실 또는 대법(大法)으로 덮어 감추어 지나갔으며 心性(씬씽)을 제고하지 못했고 한 차례 한 차례씩 기회를 놓쳤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하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1]

처음에 외우고 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세 번째 외울 때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수련생을 질책하고 원망하는가? 모두 여러 해 동안 시련 중에서 걸어 나왔으며 수련생의 어느 한 마음도 모두 사부님의 보살핌에 자신이 법에서 인식해 제고한 것이다. 어느 마음이 강요해 바뀐 것인가? 매 수련생은 모두 구세력이 오랜 연대를 경과하며 배치한 것이며 의식하기 힘들고 또 돌파하기 어려운, 자신도 돌파하기 어려운 장애를 포함해 일부를 강요당했는데 어찌 밖으로 구하고 타인을 고치려 하는가? 이것은 마도(魔道)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던 것이 가라앉았다. 속으로 메일함을 통해 수련생과 소통하고 사과하며 간격을 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지 생각뿐이지 이 일은 지나간 것 같았다. 사실 그 교활한 사람 마음이 덮어 감춘 것이며 깊이 파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 한 가지 의념이 나타났다.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라.’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약속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실행하라는 것인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쳐버렸다.

취중(取中), 평화, 중정(中正)

여러 날 지난 후 메일함에서 수련생이 전달한 밍후이 문장을 보았는데 그중 한 소제목이 ‘자신을 내려놓고 수련생의 부정적인 표현을 바르게 대하자’였다. 처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진지하게 문장을 본 후 나는 나를 관심하는 수련생이 이런 방식으로 나와 소통한 것을 알았다. 속인은 ‘자신을 돌이켜 봐도 완벽하지 않듯이, 남을 자세히 논하면 잘못이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정법 수련하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만난 문제가 어떻게 자신의 마음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또 발정념을 해 자신 몸에 존재하는 문제를 깨끗이 제거했다. 이때 머릿속에 한 가지 의념이 나타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부님께서 나를 걱정하신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사람은 가장 진귀한 것으로서 만물의 영장인데, 당신이 어찌 이런 것들에게 통제당할 수 있는가? 당신의 신체마저도 버린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2]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제거하며 더는 그것에게 이용당하지 않겠습니다.

나와 그 노수련생은 왕래하면서 사람이 정이 너무 많았다. 수년간 그녀가 전화를 사용하는 등 이지적이지 못한 언행을 나는 줄곧 저지했고 확실히 일부 문제를 막았다. 보기엔 내가 옳기에 한 번도 자신이 버려야 할 사람 마음과 대응시켜 무엇 때문에 늘 그런 일에 부딪히는지 찾지 않았다. 또 수년간 그녀의 표현으로 이 완고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인식하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노수련생은 난(難) 중에 있었다. 순간적인 쾌감을 위해 강요하는 극단적 행위는 그녀에게 빨리 이 사람 마음을 제거하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수련생을 타격하고 그녀에게 어려움을 크게 해 악당을 돕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것은 얼마나 악독한가! 만약 정말 그녀를 위한다면 시기를 선택해 그녀와 소통하고 그녀가 법에서 인식하게 도와줘야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녀의 여러 표현은 내가 뒤돌아봐야 할 거울이었다. 내 소행은 파괴 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많은 수련생은 자아를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와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는데 나는 도리어 갑자기 타격을 가했다. 이것은 마에게 이용당해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번거롭게 한 것이 아닌가?!

노수련생이 학교에 다닐 때는 바로 악당의 ‘책을 읽는 것은 소용이 없다’라는 시기였기에 그녀는 지식이 없었고, 게다가 구세력은 의도적으로 그녀가 일하는데 그다지 주체적이지 않게 배치했다. 그러나 나는 줄곧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대법에 대한 절대적이고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을 존경하고 탄복했다. 지식이 없는 노인이 이렇게 큰 압력에 맞서 확고히 오늘까지 걸어온 것은, 위대한 사존께서 이렇게 대단한 생명을 만드셨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는가? 내가 어찌 그녀의 장점을 무시하고 그 약점을 주시하며 내려놓지 못하는가? 사실 이 몇 년간 그녀의 문제에서 폭로한 것은 나의 마성(魔性)이며 그것은 내가 제고할 한 번 또 한 번 승화할 기회였지만 나는 법에서 인식하지 못해 수년간 좋은 기회를 놓쳤다.

‘교활’과 대화’ 이 문장에서 작가는, 한 수련생의 교활함이 지적당해 두 사람이 다툼이 벌어졌을 때 다른 공간의 표현은, 수련생의 사악한 기운과 교활의 쟁투라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나 이 세대는 한창 악당문화의 세뇌 속에서 자랐으며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극단적인 쟁투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정말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칭호에 부끄럽다.

내가 대응하는 무량한 천체 중생을 위해, 우리 정체 수련환경을 위해 나는 그것이 내 공간장에 존재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고 절대로 그것이 내 사상을 다시금 통제하지 못하게 즉시 발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했다!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라’를 생각하고 이 교류문장을 쓴다. 수년간 자신의 마성에 많은 수련생이 상처를 입었다. 나는 허심탄회하게 수련생들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밝히며 간격을 제거하고 공동제고해 구세력이 어떤 사람 마음의 빈틈을 타게 하지 않게 할 것이다.

만약 법에 있지 않은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한 차례 심성관을 넘은 경험을 적다


글/ 지린(吉林)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자신의 진실한 경험을 통해 병업관을 넘는 동료수련생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난에 부딪혔을 때 반드시 견정하게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며 행동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또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펼쳐 보인 신기한 일들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인들이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병업관 겪는 것을 심성관을 넘는다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이 일은 실제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수준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5시가 넘어서 시어머니댁에 가서 물건을 내려놓은 뒤 내려왔다. 내려올 때 오른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고 아픈 것 같아서 발정념을 하고 부정하면서 내려왔다.

자전거를 타고 수련생 집에 가는 길에 다리가 여전히 아팠다.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시 시어머니댁에 가서 위층으로 올라갈 때 오른쪽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그때는 어디가 아픈지 알 수도 없었다. 서 있어도 아프지도 않고 걸을 때도 아프지 않았다. 8시가 넘어서 시어머니댁에서 내려올 때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힘들었다. 그때 시아버지가 아래층으로 채소를 날라주셨다. 나는 시아버지가 보지 못하게 하려고 억지로 참았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고 구부리지도 못해서 자전거로 집까지 10분이면 가는 길이 20분 넘게 걸렸다. 오른쪽 무릎 부위에서 발가락까지 아팠고 허벅지 위로 쭉 뻗어나갔다. 집에 도착해서 위층으로 올라가기는 더 힘들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똑바로 서 있지 못해 난간에 부딪혀 소리를 내면 이웃이 놀라므로 한 걸음씩 움직여야 했다. 왼발을 먼저 올린 다음 오른발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오른발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 정도의 고통을 초래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9시 30분쯤에 1시간 30분짜리 연공을 시작했다. 이후 1시간이 못 되게 발정념을 했다. 이때 오른쪽 무릎 바깥쪽에 두 곳의 통증을 발견했는데 이는 오른쪽 다리 위아래로 뻗치는 통증을 유발했다.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할 때 무엇이 잘못되어 그렇게 심한 박해를 일으켰는지 스스로 물었다. 이때 ‘과시심’이라는 몇 글자가 떠올랐다. 갑자기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지만 아주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뿌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았고 계속 찾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과시심은 분명 이번 박해의 화근이었다. 하지만 왜 과시심인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틀 동안 나는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 그것은 일종의 업신여김이고 무의식중에 자신을 실증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전 동료수련생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나 자신과 비교해봤는데 그런 상황은 나에게 발생할 수 없고 자신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주의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종의 경멸과 독선이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계속해서 안으로 찾으려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실증하고 법을 실증하지 않는 것, 독선적인 것, 수구(修口) 하지 않는 것, 수련생과 교류할 때 자신과 다른 수련생을 예를 드는 것 등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다. 사실 그 동료수련생은 많은 장점이 있었고 현지에서 큰 공헌을 했다.

그 당시 본래 의도는 수련 중에 어떤 문제와 모순이 생기더라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동료수련생들이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일어난 일을 계기로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내 바람이었다. 내 말은 동료수련생들에게 아무런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심태가 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 내 말이 아무런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깨달았다. 동료수련생에게 미안하다. 여기서 그 동료수련생에게 사과한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실증했으며 무심코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얕잡아 보았다.

갑자기 나는 자신이 이전에 인식하지 못하던 문제를 깨달았다. 마음이 아주 밝아졌고 많은 것을 얻었으며 아주 행복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1] 지금 나는 자신이 이전에 일념지차로 인해 여러 번 신체에 바르지 않은 상태를 초래했다고 깨달았다. 늘 호기심이 화를 부르고 마난을 초래했다고 생각했는데 뿌리는 과시심이었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조성한 것으로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새벽 3시에 깼을 때 오른쪽 다리를 옴짝달싹 못 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걸핏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속으로 어떡하나 싶었다. 그냥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남편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나는 혼자 살았다). 나는 사람의 관념을 움직이면 안 되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이번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고 스스로 일깨웠다. 나는 정말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난 후 더 어려워졌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구부리면 아팠고 어떻게 해도 아팠다. 손으로 거들려고 해도 손도 댈 수 없었다. 다리 전체가 아팠다. 자리에 한참 앉아있으니, 마치 주저앉은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앉아있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하지 못한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의 관념을 움직이니 더욱더 번거롭게 되었다. 주변 언니들(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음)이 알게 되면 두려워할 것이고 그러면 문제가 커질 것이다. 나는 반드시 스스로 돌파해야 하고 진정하게 행동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2] 나는 사부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것이다. 사부님께선 이번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제자도 박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대법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따를 뿐이다. 나는 다른 배치는 인정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이렇게 스스로 격려했다.

겨우 침대에서 침대 가장자리 쪽으로 가기도 쉽지 않았다. 심한 통증을 참으며 일어섰지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속으로 걸음을 옮기자고 생각하고 입으로는 걸음을 옮겼지만 통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리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때 동작 하나가 나에게는 고험이었고 힘든 일이었다. 나는 캐비닛과 벽을 짚고 앞으로 이동해 보았다. 장애인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때 절감했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일념이 스쳤다. ‘이미 안으로 찾았는데 왜 더 심하지?’ 나는 즉시 알아차렸다. ‘이것은 원망이다.’ 즉시 원망하지 말라고 자신을 일깨웠다. 절대 원망해서는 안 된다. 우연은 없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다. 이 신체적 고통의 근본 원인을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셨을 수 있지만, 신체적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 있을 수 있다. 조금도 감당하지 않으려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고생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안일함이며, 더욱이 자신의 신사신법에 대한 시련이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로 믿고 행동으로 박해를 부정하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못 하는 일은 없고 하면 된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 2시간 30분 동안 동공과 정공을 연마했다. 제4장 공법을 하는데 몸을 구부릴 때 다리가 아파서 온몸이 떨렸고 구부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는 자신이 최대한 표준을 따르도록 했다. 이어서 가부좌할 때는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정공을 한 후에는 분명히 오른쪽 다리가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서둘러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격려에 감사드렸다. 그런 후에 나는 견정하게 밥을 짓고, 방을 치우며, 자신을 환자로 여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이날 나는 정공을 모두 세 번 연마했다. 매번 정공을 할 때마다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 오후가 되었을 때 나는 외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둘러 수련생이 필요로 하는 음성 파일을 녹음했다. 4시가 넘었을 때 걸을 수 있을 것 같고 자전거 타는 것도 별일 아닌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물건들을 수련생에게 보내기로 했다. 나는 가까운 길로 가지 않고 육교를 멀리 돌아서 평평한 길로 걸어갔다. 내려갈 때는 오른쪽 다리가 여전히 안 되어서 한 걸음씩 내디뎠다. 자전거를 탈 때도 여전히 아팠지만 참고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수련생 집에 가서 위층에 올라가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찌나 기쁜지 몰랐다. 하루 만에 제자가 돌파하도록 도와주신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렸다.

오후에 2시간 넘게 원고를 쓸 때 다리가 완전히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가서 시험해 보고 움직였는데 정말 완전히 좋아졌다. 다리가 원활하고 가벼웠다. 흥분한 나는 서둘러 복도에 올라가서 정상적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봤는데 결국 나는 정상적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중에도 오성이 너무 부족해서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아 하는 자신을 봤다.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고 너무 신기했다.

나는 실제 경험에 관해 썼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파룬따파가 보여주는 신기함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병원에 가더라도 내 상태는 그렇게 빨리 좋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수련생들이 수련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은 수련을 통해 매우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초상(超常)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시카고 법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수련교류 발췌


저는 오늘 입을 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이 예전과 다름을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말솜씨가 유창해서 말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도 반드시 탈퇴하지 않더라도 저는 상대방의 태도를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오늘, 사실 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저의 심신은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선(善)으로 가득차서 상대방의 태도가 어떠한지 막론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심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설사 자신이 어느 방면에서 잘 하지 못해도 중생을 위하는 그 진심어린 마음은 사부님의 가지와 격려를 받으며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시고 대법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중생에 대한 우리의 가장 진실한 선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가장 큰 선념은 사람을 구하는 것


우리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진상을 알리며 신분에 따라 화제를 조정할 뿐이며 상대방이 깨닫는 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이 몇 년 동안 밖에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빈부귀천, 사회 계층의 높고 낮음을 포함하여 어떠한 것도 다 있었습니다. 시국과 천상의 변화에 따라 매 개인의 마음은 모두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양지가 아직 남아 있다면 모두 고생스럽게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을 때, 상대방은 진상을 다 듣고 정말 구원받은 기쁨과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당신에게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제가 “당신에게 가명을 지어 드릴 테니 탈퇴하세요”라고 알려주면 상대방은 오히려 “싫어요. 저는 본명으로 탈퇴할게요!”라고 말합니다. 가끔 물건을 파는 사람을 만나면 격동되어 저의 손에 그가 파는 물건을 집어 주고 어떤 사람은 작별 인사를 할 때 거듭 “꼭 자주 오셔야 해요. 당신은 문화 수준이 이렇게 높아서 당신의 이야기는 정말 듣기 좋아요”라고 합니다. 사실, 제게 무슨 높은 문화 수준이 있을까요, 모든 지혜는 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늘 어떤 대상을 마주하여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나오며 ‘자연’스럽게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도 진상을 아리는 과정은 곧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개별적으로 탈퇴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저는 ‘어느 부분을 잘 이야기하지 못했는가? 마음을 써서 알리지 않고 주제를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모두 어떤 집착심이 초래한 표현인가’하고 모두 원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 22년을 걸어 지나오다



1223 한글명혜주간 제18회 중국법회(특간1) 2021-12-02
1222 한글명혜주간 제799호 【수련교류】 2021-12-02
1216 한글명혜주간 제798호 【수련교류】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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