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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혜주간 제786호 【수련교류】  
   2021-08-30 17:42:27 | 조회 : 544

한글판 제786 호



수련교류


누가 극본의 결말을 쓰고 있는가? 

수련인은 독이 있는 백신을 맞는 민중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상을 명백히 알리는 것이 관건 

QR코드 등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와 상관없다 

자아의 속박을 돌파해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을 발견하다 

위챗 등 소프트웨어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병’이 왜 낫지 않는가? 

직장에서 좌절당하며 집착심을 버리다 



수련교류



누가 극본의 결말을 쓰고 있는가?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저는 어머니와 함께 ‘2016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늘 말했다시피 인류는 바로 한 부의 연극과 같다. 그러나 최후에 사람이 구도될 수 있는지 없는지, 정법 중에서 중생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이것은 미지수이며, 이 극본 중에 없다. 인류의 문화, 사유, 행위 이 일체는 모두 최후의 그런 현념(懸念)을 위한 것이며, 도대체 최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남길 수 있는지 이것은 배치가 없다.”[1]

여기까지 배우고 문득 전에 이 구절을 본 적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정법 전체 과정이 모두 잘 배치된 것이며, 언제 끝나는지, 결과가 어떤지도 잘 배치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연스럽게 마치 극본에 따라가는 것 같았고, 자신이 성심성의껏 하는 정도에 따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단락 법에서 최후 결과는 먼저 배치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현념(懸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법 결말이 어떻게 되는 것은 사부님께서 최종 무엇을 하시는가에 결정되며, 아울러 우리 대법제자가 조사정법에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과정을 완성하는 중 어느 정도로 하는가에 달려있으며, 결말은 사부님께서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마음껏 발휘하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정법 결말을 말하면 많은 수련생은 마음속으로 모두 생각할 것입니다. “언제 끝나는가? 일찍 끝나면 좋겠다.” 어떤 이는 예언 등을 통해 끝나는 시간을 추정합니다.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구도할 사람의 숫자가 차면 사악은 함께 끝장나리라”[2]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최소한 대륙의 100분의 50 이상의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형세는 어떠합니까? 만약 저희가 계속 정념으로 정진한다면, 이 목표를 초월할 희망이 있습니까? 100분의 60에서 70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부: 왜냐하면 매 한 층의 신이 세상의 일을 보고 그들이 모두 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층의 안배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지상의 사람 열에 하나를 남기도록 안배했다. 현재 당신들이 한 정황에서 보면, 아직 모자란다. 내가 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되도록 구해야 하고, 최저한 절반을 남기거나, 혹은 100분의 70, 80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가급적 하라고 했다. 바로 이 원인이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사람들 다수가 모두 위에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당초 그런 신들이 배치할 때의 정황과도 달라졌다. 그들이 오늘날의 인류가 이러한 인류이고 모두 고층에서 온 것임을 알았었더라면, 애당초 누구도 감히 세상 사람을 열에 하나를 남긴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악은 이미 이런 정도로 배치했고, 이런 일을 누구도 거둬들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악이 조성한 이런 저항을 마주해 진상을 알리는 일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3]

지금 우리는 3억 8천여만 명을 구했고, 중국인 수의 절반은 7억이 넘습니다. 20여 년을 보면 3억 8천여만 명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중국인의 절반을 구하는 것은 까마득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계산해 보겠습니다. 만약 4천만 명 대법제자가 걸어 나와 매 사람이 평균 10명을 구하면 바로 4억 명입니다.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고 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정체를 이뤄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입니다. 다른 사람을 관망하며 다른 사람이 해결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착실하게 자신이 구해야 할 그 부분의 중생을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며, 손꼽아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실제 행동에서 허둥지둥하지 않고 여유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법이 언제 끝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들이 구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나마저 당신들을 도와서 하고 있다! 속인을 구하는 것은 본래 당신들의 일이다. 나는 당신들을 구하고 당신들은 속인을 구하는 것으로, 지금 나마저도 당신들을 도와서 하고 있는데, 당신이 하지 않으면 당신은 대법제자인가? 최후에 장부를 총결산할 때 당신은 어떻게 결산할 것인가? 울어도 이미 늦었다.”[4]

충분히 딱 맞진 않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출근하는 것과 같이 하루에 이미 정해진 업무량을 완성해야 하고, 대략 약속된 퇴근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산만하게 천천히 일한다면, 자연히 제시간에 전체 업무량을 완성할 수 없게 되는데, 퇴근 시간이 되면 어떻게 퇴근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상사에게 언제 퇴근하는지 반문할 수 있을까요? 이런 행동은 좀 우습지 않을까요? 집에 가려고 생각한다면 행동으로 되도록 빨리 자신이 해야 할 그 일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고 적절치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겁’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각지설법10-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수련인은 독이 있는 백신을 맞는 민중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글/ 진야오(金堯, 중국)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중공)은 광범위하게 강제로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게 하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모두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맞았다면 핍박하여 맞으라고 할 일도 없을 것이다.

파룬궁 진상을 알고 중공의 조직을 탈퇴한 사람들에게는 강제로 백신을 접종해도 큰 심리적 부담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홉 글자 진언을 알고 있기에 중공의 독이 있는 백신을 해체할 수 있으므로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만약 수련생들이 모두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중점을 두어 이번 전염병이 어떻게 된 일인지, 생명을 구하는 특효약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면 사람들은 더 전염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중공의 말단 직원도 강제로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수련생도 어떻게 하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을까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



진상을 명백히 알리는 것이 관건
백신에 관해 말하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먼저 내 상황을 말하자면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모두 핵산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당시에는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상부에 명단을 보고하는 동료는 대법 진상을 알아 내가 파룬궁 수련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묻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신고하지 않았고 내 이름도 올리지 않았어요.” 지금은 모든 직원에게 예방접종을 하라고 지시했고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출근할 수 없다. 동료는 다시 나와 자신을 보고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핵산 검사와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도 순조롭게 일하고 있다.

또 다른 동료 수련생의 경험이다. 수련생의 남편은 수련생의 직장에서 예방접종을 통지했고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직원은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위챗에서 보았다. 수련생은 남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백신을 맞지 않아요. 직장에서 지금까지 나에게 구체적으로 통지한 사람이 없어요. 나는 대법제자이고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인데 신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이 예방접종을 할 수 있어요?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요.”

이번 백신 접종에 대해서 내가 법에서 인식한 것을 더 말해 보겠다. 개인의 인식이다.

1. 진수(真修) 대법제자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므로 진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야 한다. 법의 기점에서 백신을 맞는 것은 몸에 독소를 주사하는 것이고(진수 제자에게 약물 자체는 어떤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 신체의 순정함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커다란 업력을 감당해주신 것이다. 끊임없는 신체 정화를 통해서 수련이 가능하다. 따라서 백신을 맞아서는 안 된다.

2. 예방접종의 배후에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요소가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처한 환경은 압박이 비교적 강하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으면 자녀들의 등교와 출근, 외출, 쇼핑이 불가능한 등의 제약이 있다. 중공은 ‘자원’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모든 지역에서 주로 정치적 성과 중심이며 사람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예방접종을 선택한다. 진상을 모르는 일반인은 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신사신법하는 수련자로서는 일반인처럼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구체적인 일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가 예방접종에 직면해서 어떤 나쁜 감정이 반영되어 나오는지를 보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수련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수련 과정에서 우리가 씬씽(心性)을 제고하고 집착을 버리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안배해주실 것이다.

3. 구세력이 강제로 배치한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정법은 최후의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대법의 표준이 요구하는 것은 점점 더 엄격해져 생각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구세력은 허점을 파고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일에 부딪혔을 때 사람의 사유 논리를 개변하고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 항상 법에 따라서 법으로 가늠하면 대법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를 줄 것이고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실 것이다.

개인적인 인식으로 층차의 제한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동료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차이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두 손 모아 허스 한다.




QR코드 등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와 상관없다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에 백신 접종 여부에 관한 인식을 교류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백신을 맞건 맞지 않건 다 틀리지 않고, 관건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떤 마음 상태로 백신 접종 이 일을 대하는가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수련인으로서 어떤 일에 부딪히든 모두 우리의 심성을 수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마스크를 쓰고 우리 집에 왔는데, 최근 전염병이 심각해 전염병에 걸릴까 봐 겁내며 마스크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어요. 백신을 맞지 않으면 아이도 데리러 오지 못하게 하는걸요”라고 말하는 수련생이 있는가 하면, “백신을 맞지 않으면 출근을 못 하게 해요”라고 말하는 수련생이 있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매장 출입을 거부당하는데요”라고 말하는 수련생이 있다. 또 사부님께서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야 하는바”[1]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수련생도 있다. 보기에는 그럴듯한 이유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속인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신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신(神)은 사람 마음이 없다!

박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학습반(세뇌반)’에 납치되어 간 것으로 기억한다. 사악(邪惡)은 ‘전향’하지 않으면 공직에서 해고하고 퇴학시키고 노동교양을 보내겠다고 떠벌렸다. 적지 않은 수련생이 고험(考驗)에 직면해 타협하고 ‘전향’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중 한 교사는 “나는 수련을 견지하겠다. 가져가려면 가져가라”라고 말했다. 그 결과 세뇌반이 끝난 후 책임자는 그 수련생을 존경해 마지막에는 차로 그를 학교에 데려다주었으며 학교 지도자에게 그에게 난처하게 굴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계속 원래 있던 교사직에 종사했다.

나는 백신 접종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수련인이 무슨 백신을 맞는가? 접종하지 않으면 슈퍼에 못 가고 버스를 못 탄다는 등 문제에 대해 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책임지기에 차가 산 앞에 이르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수련인에게 지나가지 못할 고비란 없다. 한동안 우리 지역에서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며 통제가 매우 심했었다.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QR코드를 스캔하지 않으면 버스를 타지 못한다고 했지만 내가 차를 탈 때 나에게 스캔하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로 기사가 QR코드를 스캔하라고 말할 때 내가 핸드폰이 없다고 하면 그냥 지나갔고, 가끔 등록하라고 하면 나는 ‘노인증’을 보여주었다. 그럼 그들은 책자에 재량껏 한 번 적었다. 아파트단지에서 상부 지시로 모든 주민이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구(社區, 현대 중국 도시주민들의 거주지역) 관계자가 방문해서 접종 여부를 묻자 딸이 접종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 뒤로 사구 부주임 한 명이 와서 접종 여부를 물었을 때 나는 “맞지 않았어요. 우리 수련인은 병원에도 가지 않는데 무슨 백신을 맞아요? 바이러스는 수련인의 몸에 닿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질병예방센터 공무원마저 국산(중국) 백신의 효율이 낮다고 승인했잖아요. 접종 후 감염률이 접종하지 않은 경우보다 높은데 뭐하러 맞죠?”라고 말했다. 그 부주임은 “이런 것은 우리도 압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마디 말을 했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2] 나는 수련인으로서 너무 많이 생각하면 사실 사람 마음이고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5-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



자아의 속박을 돌파해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을 발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악한 공산당이 ‘제로화’ 교란을 해온 이래, 밍후이왕에서 대다수의 수련생이 매우 잘한 것을 보았지만 일부 미흡하게 한 수련생도 있었고 또 극소수는 굽은 길을 걸었습니다. 잘하지 못한 수련생은 모두 법공부를 충분히 착실하게 잘하지 못해 두려워하는 마음과 기타 사람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제가 바로 미흡하게 한 수련생에 속했습니다. 3월 이래, 우리 지역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어느 날부터 현지에서 큰 움직임이 있을 테고 6월 말이 돼서야 멈출 것이라며 어느 수련생 집은 이미 악인(惡人)이 자물쇠를 뜯고 집에 난입해 대법책을 전부 빼앗아갔으며 서명과 지장 날인을 강요하면서 서명하지 않으면 전부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온 수련생은 집을 떠나 잠시 피해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 저는 더는 생각해보지 않고 잠시 피해 있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우리 지역에서 여러 번이나 박해를 받은 적이 있는 비교적 ‘알려진’ 그런 수련생에 속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친척(현지 사악이 그녀를 모름) 수련생의 집으로 갔고, 주말이면 집에 돌아와 청소하면서 이틀만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며 오전에 3시 10분이면 일어나서 연공을 했습니다. 매주 하룻밤은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새로 법을 얻은 수련생 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했습니다. 얼마나 늦게 집으로 돌아오든지 막론하고 새벽 한 시가 넘어 잠드는 한이 있더라도 아침이면 마찬가지로 제 시간에 일어나 연공을 했는데 낮에 졸리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 줄곧 아침 연공을 돌파하고 싶었지만, 줄곧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척 수련생 집에 있으면서 함께 법공부와 연공 그리고 발정념을 약 3개월 동안 강화했습니다. 6월 말에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스스로 놀란 점은 마침내 자신의 ‘근본집착’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아는가? 지금 낡은 악의 세력이 대법(大法)을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 중 하나가 바로 당신들의 근본적인 집착이 덮어 감춰진 것임을. 그리하여 이 난을 더 크게 해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1] 저는 줄곧 근본집착을 찾지 못해 고생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계속 피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만났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7월 12일, 일이 있어서 막 집을 나서자마자 대문 입구에 사구(社區, 중국 도시지역의 사회관리체계)에서 나온 여성이 가로막으면서 “당신이 모모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가 저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어찌된 일인지 이미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일이 있어서 꼭 가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1초만 기다려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제가 가려고 하면 분명 갈 수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전화를 걸었고 약 5분이 지나자 세 사람이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를 무슨 일로 찾는지, 모두 어느 부서의 사람들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일일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은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였고 한 사람은 사무국 관계자였으며 한 사람은 사구 관계자였습니다. 처음에 잠복근무했던 그 사람까지 모두 네 명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미소 지으며 “여러 사람과 연합해서 이 일을 하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웃으면서 조금 미안해했습니다.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는 “당신 집에 좀 가려고요”라고 말해서 저는 그럴 필요 없으며 아파트 단지 벤치에 가서 앉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오늘 온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 하나는 좋다고 생각하면 집에서 수련하고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당신에게 서명하라고 해도 당신은 서명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앞으로 절대 오지 마세요. 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요. 당신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면 이웃집에서 모두 보고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한 줄 알겠어요. 제가 난처해지잖아요.” 그가 “그러면 저 혼자 오면 괜찮죠?”라고 말하자 저는 “그래도 안 돼요. 기회가 되면 제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라고 하면서 그 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에게 일부 진상을 알렸습니다. 예를 들면, 신문출판총서령 제50호 문건 중 제99조, 제100조에서 파룬궁(法輪功) 서적에 대한 금지를 해제했으며 공안부에서 인정한 열네 가지 사교에는 파룬궁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12389 플랫폼에서 민중은 언제든지 사법부의 범죄행위를 신고할 수 있습니다. 당국은 누가 사건을 처리하면 그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법률을 내놓았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일을 하면 누가 보증을 서고 누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책임을 지나요? 여러분은 공산당이 역대로 벌여온 정치 운동이 모두 다음에 청산한다는 점을 아셔야지요.” 나중에 그들에게 또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정치법률위원회 책임자가 우리 수련생에게 자신이 어떻게 공산당의 속임수에 걸려들어 기만당했는지 말해준 일입니다.

잠시 앉아 있다가 제가 일이 있다고 말하고 가려고 하자 그들은 그러라고 말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 사무국 관계자인 여성이 입을 열었습니다. “서명하면 당신에게 좋아요. 앞으로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군인이 되며 공무원 시험을 보는 등 영향을 받지 않게 되죠.” 저는 즉시 높은 소리로 “제게 서명하는 일을 언급하지 마세요. 모두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요. 서명을 하면 스스로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격이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사고방식이 틀렸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문 앞 도로에서 정치법률위원회와 사무국의 두 관계자가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그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제가 운전해서 태워다줄 수 있다고 묻자 그들은 괜찮다고 해서 저는 혼자 떠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언니(수련생)가 “넌 지금 얼굴이 참 보기 좋아. 처음에는 가무잡잡했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방금 내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서 아직 고요해지지 못했어.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었거든. 정치법률위원회에서 한 무리가 왔었는데 잘하지 못한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왜 일에 부딪히기만 하면 자신이 어떠어떠하다고 먼저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오지 말라고 한 것은 동네에서 제 체면이 상할까 봐 두려운 것이었고 서명하지 않은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인데 서명을 왜 해야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이 어떠어떠하다고 강조하기만 했고 자신을 실증하기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도 자신을 위해, 저를 박해할까 봐 그들 자신들한테 안 좋다는 식으로 저를 찾아와 박해하지 말라고 겁을 줬습니다.

왜 늘 그런 사람들은 교란하러 온 것이고 박해하러 온 것이며 사악이라고만 생각하면서 그들이 구원해달라고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요? 마침내 이 ‘위사위아(爲私爲我)’하는 근본 집착을 찾았습니다.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나(我)’를 에워싸고 어떠어떠하다고 했고 ‘나’는 어떻게 상처받으면 안 된다면서 이 ‘나’를 수호했습니다. 친척 수련생 집에 있을 때도 곳곳에서 ‘나’의 취향에 맞게 일을 했고 늘 자신의 관념을 타인에게 강요했으며 밖으로 보고 타인의 집착에 집착했습니다.

이 근본 집착을 깨달은 후, 온몸이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고 생각은 탁 트였으며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공간장의 수많은 어두운 물질이 사라졌고 사부님께서 떼어내 주신 것을 느꼈습니다. 그야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2]였습니다. 아, 바로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3]입니다. 그로부터 문을 나서도 더는 잠복근무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느라 두리번거리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그들을 더욱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시 그들을 만나면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그 ‘사(私)’를 포착하여 그것을 소멸해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 수련생이 쓴 글을 보고 이 ‘자아집착’하는 것을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스스로 진정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사(私)’를 보기 어려웠는데 의념 속에서 그것을 포착할 리는 더욱 만무했습니다. ‘사(私)’는 구우주(舊宇宙)의 속성이며 신우주의 표준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이므로 신우주(新宇宙)는 비로소 원용불멸(圓容不滅)합니다. 우리는 수련 과정에서 이 ‘사(私)’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모든 집착을 닦아 없애야 비로소 원만할 수 있고 신우주의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욱 높은 층차에서 말한다면 무엇을 성취하려고 한다는 이 개념마저 없는 것으로 그것은 바로 우주의 선택이다. 내가 오늘날 정법 중에서 한 일체, 내가 갖고자 한 일체는 명백히 말하면 바로 미래 우주의 선택이며, 바로 미래 우주의 수요이다.(박수) 구 우주의 생명으로서 일체 생명의 요소를 포함하여 정법 이 일에서, 나의 선택 중에서, 모든 생명들이 모두 내가 선택한 대로 그것을 원용(圓容)하고, 당신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내놓으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고치려하지 말고 내가 한 말에 따라 그것을 원용하는, 이것이 바로 우주 중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4]

저는 기왕 사부님께서 신 우주가 어떤 모습일지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신 우주에 동화해야 하고 일체를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원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이요, 소업이요, 고비를 넘는 것이요, 마난(魔難)이요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바로 이처럼 간단합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약간의 이치를 깨우치게 해주셔서 수련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갈수록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현 층차에서 깨우친 것이므로 틀린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신생(新生)’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위챗 등 소프트웨어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서 위챗 소프트웨어를 삭제하는 것에 관한 통지를 일찍이 2018년에 발표했지만, 그때 저는 사악의 박해를 받아 제때 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5월에서야 밍후이왕에서 본 수련생 교류 문장에서 이 통지를 언급한 것을 보고 통지 원문을 찾았습니다. 저는 낙오되지 않아야 하며 보완해야 하면 곧 하겠다고 깨우쳤습니다.

저는 휴대전화 소프트웨어의 사용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앉아서 이 일을 하려고 준비했을 때에야 어려운 정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통지에서 언급한 네 가지 소프트웨어 중 한 가지는 제게 없었고, 설치하지도 않았었습니다. 한 가지는 제 휴대전화에 비록 설치됐지만 사용하지 않았고 직접 삭제하면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위챗이었고 클라우드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매번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핸드폰 가게에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 자료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휴대전화로 옮긴 후, 제가 직접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스스로 삭제하면서 비로소 조금씩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고 그중에 설정된 것을 이해했는데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했고 또 곤란을 두려워하는 정서와 경박스러운 정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클라우드에서 주소록을 삭제할 때는 그야말로 정신이 붕괴될 지경이었습니다. 몇백 개의 정보를 하나씩 삭제했습니다. 간편한 방법이 있는지를 몰라서 저는 이렇게 한 개씩 삭제했습니다. 사실 예전에 많은 사람과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삭제하지 않아서 주소록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연락방식도 일찍이 바뀌었지만 제때 업데이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이것이 한 가지 방대한 작업이라는 생각에 한 번씩 미뤘는데 이번에 철저히 깨끗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챗은 제가 줄곧 사용했고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인들과 그리고 결제수단으로 사용 빈도가 상당히 높은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여러 ‘친한 친구’들도 많이 추가됐습니다. 삭제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연락할 사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정말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많지 않으며 대부분 한 번 만난 인연으로 모종의 업무 관계로 한두 번 연락해서 정보가 휴대전화에 남은 것이고, 제때 깨끗이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일부 상점은 인맥을 얻기 위해 위챗으로 ‘친한 친구’를 추가하면 작은 혜택을 줬습니다. 동창 그룹에 대해서는 저는 존재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각종 사람의 집착심, 탐욕, 호기심 등을 보았습니다. 저는 휴대전화를 정리하는 것도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위챗 채팅은 무료이기 때문에 친구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고 무슨 말이든 모두 나누었으며 어떤 때에는 한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위챗이 없으니 전화를 걸 때 비용이 들었지만, 친구들이 알아서 일이 있으면 일 이야기만 해서 저도 모르게 시간을 많이 절약하게 됐습니다.

위챗이 있을 때, 자주 메시지가 있는지를 주시해야 했고 마음도 묶이게 되었는데, 때로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매료되어 클릭해서 들어가서 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일부 정보를 받아들였고 어떤 때에는 교란받으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자신의 근황을 나누고 싶었고 좀 과시하고 싶었으며 좀 인정받고 싶었고 각종 집착심이 그 속에서 방해했습니다.

위챗을 삭제하니 늘 짊어지고 있던 짐을 벗어 던진 것처럼 매우 상쾌했습니다.

결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자결제가 없을 때는 원래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았던가요? 이것은 가장 합법적인 화폐입니다. 편리하다는 것은 사람의 느낌이며 장기적으로 주입된 관념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위챗을 삭제했을 때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연병 발생 기간 동안 외출할 때 건강 코드를 제시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한 번 찾아보니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 가능했으며 이것은 또 제게 ‘관념’을 보게 했습니다.

초기화를 하려 했기 때문에 모든 부가적인 소프트웨어들을 다 다시 설치해야 했고 휴대전화 앨범도 깨끗이 정리해야 했습니다. 매번 한 가지를 진행할 때, 저는 모두 약간의 집착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선별에 주의했으며 필요한 것만 설치했고 대체 가능한 것은 모두 설치하지 않았으며 일을 덜기 위한 것은 모두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면하여 소통하고 연락하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상태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계를 통해 사람과 연락해야 할까요? 마치 기계의 종속물이 되어 기계가 삶을 관여하고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예상외로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삭제는 제게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이런 소프트웨어, 특히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 질문에 직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친지와 친한 친구들은 모두 위챗을 사용하고 있어 그들은 이미 위챗에서 정보를 얻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었으며 위챗을 통해 정보를 전달합니다. 제가 떠난 것에 그들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일은 별로 많지 않으며 정말 일이 있을 때, 전화 한 통이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들은 전화마저 걸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지 하나로 그룹 창에서 한 번 부르고 나면 끝날 일이었고 또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발표할 수도 있었습니다. 비록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속뜻은 ‘별일 없는데 위챗을 삭제해서 뭐 하느냐, 우리가 얼마나 불편한가’였습니다! 저는 마치 그들 중의 별종이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상점들이 어떻게 한 가지 물건으로 사람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지를 더욱 똑똑히 보게 했습니다.

수많은 사물은 모두 이렇게 우리 주변에 안배됐고 의존하는 마음을 형성하게 했으며 삶의 일부분이 되게 했습니다. 각종 관념을 포함해 이렇게 형성된 것이며 수련의 목표와 상반됩니다. 수련은 후천적인 관념을 일일이 없애는 것입니다.

위챗이 있기 전 어떻게 연락했던가요? 불편함을 느꼈던가요?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욱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챗에 너무 의존하고 있습니다. 의존은 곧 집착이지 않은가요?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도인과 사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집착하고 있어서 나중에 겁이 났습니다. 이어서 곧 저는 한 가지 물건의 사용 여부는 본래 우리의 사용 선택 여부에 달린 것으로서 주도자는 기계, 외부적 환경, 기타 사람의 관념 등등이 아니라 마땅히 사람 자체입니다. 한 가지 물건이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두루 퍼져 있을 때, 사람들이 그것에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부여해주면 사람은 곧 서서히 주도자의 위치를 포기하고 그것이 주도자가 되게 하여, 우리가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위챗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별종으로 간주되게 하는데, 그것은 위챗이 사람들의 생활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위해 그것의 존재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고 그것에 정상적인 사물보다 높은 가치와 지위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해나가다가는 후과가 정말 두렵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일을 법에 따라 해야 합니다. 저는 사상적으로 이 일의 진실한 면목을 똑똑히 인식하는 것도 제가 완성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이 왜 낫지 않는가?


글/ 무위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 많은 수련생이 갓 수련을 시작하고 아주 엄중했던 병들이 모두 나았다. 나는 이미 7년을 수련했는데 ‘병’이 왜 낫지 않을까? 자신의 수련과정과 최근의 깨달음을 종합한 인식을 말해본다.

1. 갓 법을 얻고 생각이 바르니 병을 제거하는 기이한 효과가 생기다

갓 법을 얻고 ‘전법륜(轉法輪)’을 보니 사부님께서 매 수련하는 사람에게 신체를 정화해주시어 수련인은 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고혈합,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있었지만, 나는 나도 수련하니까 아무 병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정념으로 나는 4년 반 동안 약을 먹은 적이 없었다.

갓 수련해서 2년 반이 되었을 때가 기억나는데 하루는 고열이 나고 온몸이 뜨겁고 무기력해 괴로웠다. 7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더니 나중에 또 심한 기침이 나타나고 호흡도 어려웠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소업해 주신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생생세세 아주 많은 나쁜 일을 했고 매우 많은 업을 지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에는 하나의 과정이 있는데, 바로 당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정화해 주어 사상 속에 있는 모든 좋지 못한 것들, 신체 주위에 있는 업력장(業力場)과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내는 것이다.”[1]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수련할 수 있게 하려고 대부분 업력을 우리를 대신하여 감당하셨다. 이 한 점도 감당하지 못하겠는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고 나는 이 한 개 관을 잘 넘을 것이다. 이 기간에 나는 정상적으로 식사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평소에 아주 괴롭다가도 연공을 시작하면 아무 증상이 없었고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일어나지 못하면 MP3로 사부님 설법을 듣고 조금 정신이 들면 일어나서 법공부를 했다. 저녁에 잠을 잘 때 기침이 아주 심했고 호흡할 때 실 하나가 폐 속에서 헤집는 것 같았는데 숨을 쉴 수도 누울 수도 없었고 매우 괴로웠다. 이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으니 많이 좋아졌고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었다. 7일 후에 약 한 알 먹지 않고 고열이 사라지고 기침이 나았다.

그때 나는 정념이 아주 강했고 수련하기에 병이 없다는 것을 믿었다. 이 기간에 체중은 84kg에서 54kg으로 줄었고(연공동작이 정확하지 않고 입술을 다물지 않았는데 장기간 이를 몰라서 체중이 내려갔다. 지금은 84kg으로 회복되었다) 나도 자신이 무슨 병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2.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여 관을 넘기 어렵다

2018년 여동생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당시 혈압이 매우 높았는데 여동생의 사망은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다. 입원에서 사망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나에게 아주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했다. 그 당시 나는 정신이 흐리멍덩했고 저녁에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두려웠다. 남과 말하는 것이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 같지 않았고 이 세상과 분리된 것 같았다. 이때 회사에서 신체검사가 있었고 심전도가 비정상으로 나타났다. 의사는 나더러 빨리 입원하라고 했는데 나는 아주 두려워서 병원에 입원했고 심장, 고혈압, 갑상선 항진 검사 모두 비정상이었다. 나는 수련한 후 지금까지 약을 먹은 적이 없었는데 수련인은 약을 먹지 말아야 하고 약을 먹으면 바로 사부님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마음은 무척 괴로웠고 약을 먹지 않으면 여동생과 같은 상태가 나타날까 봐 두렵고 약을 먹으면 사부님께 죄송했다. 나의 주변에는 수련할 수 있는 수련생이 없었고 또 약을 먹기 시작했다. 비록 약을 먹었지만 나는 매우 부끄럽다고 느꼈다. 잘 수련하지 못하여 정신적 압력이 매우 컸다. 나는 날마다 법공부하고 밍후이왕의 ‘병업 가상에서 걸어나오다’ 시리즈 교류문장을 들었다. 의사는 나에게 ‘관상동맥조영’을 하려고 했지만 두 차례 테스트에서 입이 모두 마비되어 나중에 의사도 감히 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신 것임을 알았는데 내가 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약은 10일 정도 먹고, 더 먹지 않았다. 2달 뒤 나는 다시 심전도를 검사했는데 정상이었다.

이 기간에 두 가지 의념이 대뇌에 반영되었다.

한 가지는 정념이다. 연공인은 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신체를 청리해주셨고 지금의 병업 반응은 사부님께서 병을 밖으로 밀어내고 계신 것이다. 한 단락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밀어내주시는데 그것은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였다.

두 번째는 사람 생각이었다.

1) 전에 고혈압 증상이 있었고 늘 연공해서 나았다고 여겼고 증상이 없었다. 그럼 협압을 재면 반드시 정상수치여야 한다. 그런데 측정할 때 혈압은 늘 비정상이다. 왜 혈압이 정상이면 병이 나았다고 여길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2) 혈압이 높기만 하면 곧바로 속인의 사로(思路)에 따라서 생각한다. 고혈압이 무슨 무슨 상황이면 신체의 기타 장기를 파괴할 것이고 병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역시 두려운 마음이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대뇌에 반영되었다. 대부분 시간은 모두 주이스(主意識)가 아주 강한 것을 느끼는데 ‘연공인은 병이 없다’이다. 그러나 늘 자신이 무슨 반응이 없다가, 우연히 혈압이 정상인지를 생각하고 정상인지를 보고 싶은데, 혈압이 높게 측정되면 안 되겠다고 느끼며 정념이 없어졌고 아주 빨리 약을 먹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연공인인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당신이 구하여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은 눌려 들어갈 수 있다. 한 연공인으로서 心性(씬씽)은 마땅히 높아야 한다. 당신은 늘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병이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집착심이며,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1]

내가 이렇게 늘 병일까 두려워하는 사상이 대뇌에서 들썩이는데 이것이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 구세력이 마침 당신에게 병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끊임없이 법공부하면서 심성이 제고되었고 두려운 마음이 많이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수시로 뛰쳐나왔다. 최근에 우측 치아가 갈수록 흔들리는 것이 심각해졌는데 이가 비정상인 것이 이미 2년이 되었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게 되었으니 병원에 가서 이를 뽑아야 했다. 이를 뽑으려면 먼저 혈압을 재야 했는데 혈압을 재니 이완기 혈압 120mmHg, 수축기 혈압 230mmHg라 혈압이 너무 높아서 발치하지 못했다. 이렇게 높은 혈압수치를 갓 들었을 때는 머리에 드는 첫 번째 반응이 바로 이 고혈압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단지 나 육신의 일종 반응이다 하는 것이었다. 마음에 두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제고되었고 이렇게 높은 혈압이라고 들어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고 또 기뻐하기도 했다.

비록 이번에 시작할 때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환희심이 또 구세력에 덜미를 잡혔는지 머리에서 은근하게 드는 생각이, 혈압이 높으니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또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천천히 이 염두가 갈수록 커졌고 나중에는 여동생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일이 대뇌에 반영되었다. 혈압이 너무 높으면 뇌출혈이 된다. 이때 동료가 혈전이 높아서 뇌출혈이 왔고 온몸에 강철 침을 가득 꽂았는데 아주 무서웠다. 그녀는 나에게 그녀가 주삿바늘을 가득 꽂은 사진을 보내왔다. 반복적으로 나에게 말했고, 또 같은 병실에 한 달 만에 혈압약을 먹지 않아 뇌출혈이 온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때 나는 반복적으로 사부님 ‘전법륜’, ‘미국법회 설법’, ‘정진요지-병업’, ‘2019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병업에 관련된 설법을 읽었고 두려운 마음이 점점 사라졌다.

이 기간에 또 한 번 가부좌했는데 자신이 무척 거대한 것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부처가 거기에 앉아있는 것 같았고 사람이 그렇게 작아져서 아래에서 오가는 것을 느꼈다. 이때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작고 작은 병업이 나에게 닿을 수 있는가? 그것은 나 여기에 머물 수 있는가? 내가 병이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부처가 손을 한 번 휘저으면, 전 인류의 병이 모두 없어지는데, 이것은 보증코 해낼 수 있다.”[1] 그 병이 또 무엇이겠는가? 또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겠는가?! 우리의 병은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셨다.

3. 근본 집착을 제거하다

나는 병치료를 위해 대법에 들어왔기에 때문에 수련을 통해 병을 제거하려는 마음이 아주 무거웠고 이 병을 제거하려는 마음은 나에게 근본적인 집착이 되었다.

어머니는 86세이고 다리 경련이 몇 년간 지속되어 모든 약을 먹어보고 갖은 방법을 다해도 낫지 않았다. 어머니는 수련하면 병을 제거한다는 것을 알고 진지하게 ‘전법륜’을 보고 연공을 했고 다리 경련이 많이 호전되었다. 마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을 얻은 것 같았고 연공하는 것이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았다. 하루는 진지하게 책을 읽는데 갑자기 다리가 또 경련이 일어났고 곧 나에게 물었다. 내가 책을 읽는데 왜 다리가 경련이 일지? 나는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가 연공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책의 요구대로 하셨나요? 100% 사부님을 믿으세요?”

나는 7년간 연공했는데 왜 병이 낫지 않았다고 느껴지는가? 이 세 가지 문제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연공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인가? 시시각각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했는가? 나는 100% 사부님을 믿었는가? 나는 초기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법에 들어왔고 7년간 수련했다고 여기고 있는데 2차례를 제외하고 거의 약을 먹은 적이 없었다. 늘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수련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인가?” 답은 아니오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늘 병은 여전히 나의 수련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다. 특히 갑상선 항진과 혈압이었는데 일단 고험이 나타나면 자신은 바로 속인 그곳으로 떨어졌으며 근본 집착은 여전히 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아주 깊이 숨어있지만 나에게 각종 가상을 조성했고 나에게 이 마음을 일찍이 제거했다고 여기게 했다. 지금 발견하니 사실 여전히 제거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것을 붙잡고 그것을 제거할 것이다.

4. 눈으로 보아야 사실로 여기는 관념

최근 마침내 아주 깊이 숨어있는 또 한 가지 집착을 찾아냈는데, 바로 눈으로 보아야 사실로 여기는 마음이었다. 이 눈으로 보아야 사실로 여기는 관념은 내가 계속 자신의 병이 낫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과 아주 큰 관계가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불교 중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상인가? 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거기에 놓여 있는 물체, 그것을 누가 가짜라고 할 수 있는가?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이런 것이지만, 그것의 표현 형식은 도리어 이런 것이 아니다.”[1]

이 한 단락 법을 얼마나 많이 보고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를 모른다.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면서, 표면에서는 자신이 또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자신은 병 치료를 위해 대법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왜 병이 있는가, 우리 육신이 불편한 상태이면 의사를 찾아서 병을 보고 의사가 진단한다. 의사는 무엇으로 진단하는가, 약물검사결과와 의료기계로 측정한다. 이런 것은 모두 눈으로 보이는 병이 있는 결과이다. 눈으로 본 이런 결과가 있어서 자신은 이 병에 걸렸다고 믿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고 알려주셨고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신체를 청리해주었다고 알려주셨다. 이런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하셨다. 우리는 확실하고 확실하게 보지 못했고 나는 단지 법리에서 알게 된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이렇게 믿었는데 진짜로 믿었는가?

수련했으니 마땅히 병이 없다. 그러나 이 병이 없는 결과를 확인하려면 또 병원에 가서 약물검사를 하고 의료기기로 측정을 해야 한다. 나는 왜 자신의 고혈압이 낫지 않았다고 여기는가? 혈압 측정을 통해 혈압이 정상이면 나는 비로소 고혈압이 나아졌다고 여긴다. 그러나 측정 과정 중에 가끔은 높고 가끔은 정상이다. 의심하는데, 이 혈압은 왜 늘 비정상인가? 갑상선 항진도 그렇다. 약물검사 결과를 통해서 정상이면 나는 나아졌다고 여겼다. 가끔 또 생각하기를, 갑상선 항진도 약물검사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이 고혈압은 여전히 비정상인가? 마음속으로 늘 내려놓지 못했다. 이는 진짜로 믿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신사신법할 수 없다는 것이고 눈으로 보아야 진실로 여기는 속인 관념이 장애가 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심성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사상경지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또 속인의 눈으로 보아야 사실로 여기는 방법으로 가서 수련의 결과를 검증하려고 했고 구세력은 혈압 측정 결과가 아주 높게 나오게 하고 당신이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보았다. 때문에 ‘병’이 왜 낫지 않는 것인가? 눈으로 보아야 사실로 여기는 이 관념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병이 있다는 생각을 제거하고 진짜로 그 마음이 없을 때 병원의 의료기계를 통해 검증할 때는 물론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병이 있다는 각종 관념을 안고 특히 두려운 마음을 안고 있으면 심성이 그 층차에 도달하지 못했고 의료기기를 통해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려고 하니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다.

5. ‘병’이 왜 낫지 않는가에 대한 분석

7년간의 수련을 통해 병업에 대해 일정한 인식이 있게 되었다.

1) 왜 병이 있는가

하나는 생생세세 지은 업력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왜 사람은 병이 있는가? 그에게 병이 있음과 모든 불행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은 업력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 그것은 음성(陰性)인 것에 속하고, 좋지 않은 것에 속한다. 그런 좋지 않은 영체 역시 음성인 것으로서, 모두 검은 것에 속하므로 그것은 올라올 수 있는데, 이 환경이 그것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의 병을 초래하는 근본원인이며, 이것이 가장 주요한 병의 내원(來源)이다. 물론 또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나는 아주 작고 아주 작으며 밀집도가 아주 높은 그 작은 영체(靈體)로서, 업력덩어리와 같은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일종의 수송관을 통해 수송하는 것과도 같은데, 이것은 비교적 보기 드물며, 모두 조상에게서 아래로 누적된 것으로서, 이런 정황도 있다.”[1]

사부님께서 이미 무척 똑똑히 우리에게 병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셨다.

두 번째는 자신이 속인 중에서 형성한 병에 대한 관념과 집착이다.

사람은 속인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병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형성했다. 무슨 병은 무슨 증상이 있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고 현대의학에도 모두 한 세트의 완전한 이론과 치료 방법이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속인을 겨냥한 것이다. 만약 우리 수련인이 이 한 세트 이론으로 나타난 ‘병’을 대하면 그럼 당신은 바로 속인이고 곧 병을 얻게 된다. 특히 자신이 속인 속에서 장기간 각종 병이 있고 각종 집착심을 형성했다면 병이 있다는 관념이 더욱 뿌리를 뽑지 못하게 된다.

세 번째는 구세력의 박해이다.

구세력은 대법제자를 고험한다는 명의로 병업을 형성하여 수련인을 박해했다. 이는 현재 수많은 대법제자 신체에 나타난 ‘병업’의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이다.

2) 사람 생각(人念), 신의 생각(神念)을 분간하다

사람 생각: 병에 걸렸고 이 병은 무슨 무슨 병이고 무슨 상태가 있고 발전해나가면 어떻게 된다. 예를 들어 고혈압에 걸렸고 혈압이 높으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메스껍고 온몸이 괴롭다. 혈압을 내리는 약을 먹지 않으면 뇌혈관, 심혈관이 파괴되고 뇌출혈이 오고 심근경색이 온다.

신의 생각: 모든 병은 사람의 업력으로 조성된 것이고 그곳에 한 영체가 엎드려 있다.

수련인: 수련인의 생각은 사람 생각과 신의 생각 사이에 있는데 우리가 법에 입각하지 않을 때는 바로 사람 생각이다. 생각이 법에 입각했을 때는 바로 신의 생각이다. 무엇이 법에 입각한 것인가, 바로 생각이 법의 요구에 부합되었는지 문제를 법의 표준으로 가늠했는지이다.

사람 생각이 당신을 통제할 때 당신은 바로 속인이다. 속인은 물론 병을 얻고 마땅히 무슨 병에 걸려야 하면 무슨 병이다. 사람은 바로 생로병사가 있고 바로 마땅히 그러하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길 때 당신은 바로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당신의 사상이 법에 입각하지 못했을 때는 바로 사람 생각이고 그럼 당신은 법을 얻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이 법에 입각했을 때 바로 신의 생각이고 그럼 병이 없는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모두 법에 입각했을 때, 사고하는 문제를 모두 법의 표준으로 가늠할 때 당신은 바로 신의 생각이고 전혀 병이 없는 것이다.

3) 수련인은 어떻게 ‘병’을 대해야 하는가

진아(眞我)는 나의 주왠선이지 나의 육신이 아니다. 나의 육신이 각종 집착심에 의해 포위되었고 매개 집착심 모두 시커먼 것들이고 나의 신체에 붙어있다. 수련은 바로 이런 시커먼 것들을 제거해서 닦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집착심들은 모두 살아있고 당신이 그것을 제거하려 하고 당신이 그것을 죽게 하려면 그것은 반항한다. 그것은 각종 좋지 못한 의념을 당신의 머릿속에 넣는데, 당신이 만약 일사일념 모두 법의 요구로 가늠할 수 있으면 당신은 그것이 모두 당신이 아님을 분간할 수 있고, 그것이 나오기만 하면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멸할 수 있으며 집착심이 제거된다. 그러나 각종 집착심은 부동한 층차에 있고 그 층차에 도달하지 못하면 또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는데 당신은 사람 마음의 느낌, 고통 등 정감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비록 법리가 당신에게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라고 알려주지만, 단지 이 설법이 있음을 알 뿐 진짜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이 바로 그 한 층차의 법에 동화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 나타난 ‘병’ 역시 이러하다.

예를 들어 병업에 대한 견해인데 병이 왔고 자신의 육신은 진실한 감수가 있고 괴롭고 불편하다. 이때 머릿속의 생각이 무엇인지가 아주 관건이다. 속인의 생각 혹은 구세력이 당신 머릿속에 부어 넣은 생각은 바로, 이것이 무슨 병이고 병은 무슨 상태이니 빨리 무슨 약을 먹거나 혹은 빨리 병원에 가라. 발전해나가면 무슨 상태인데 모모는 바로 이 병으로 갔다. 만약 자기가 병이라고 여기면 이런 상태는 모두 아주 진실한 감수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작용을 발휘하고 당신 육신은 이런 병 증상이 나타나게 되거나 이로 인해 진짜로 가게 된다.

이 생각이 나올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부정해야 한다. 법의 요구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 이는 병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여러 해 수련하면서 사부님께서 일찍이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셨고 그 업력, 그 영체는 일찍이 나의 바른 에너지에 의해 죽었다. 만약 이 병이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오고 누르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구세력이 넣어주는 것인데, 이때 발정념하여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2]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그것을 제거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사부님의 이 방면의 법을 외우면 그것이 제거되고 그것을 없애버리면 우리의 대뇌에서는 이런 생각이 없어진다.

사부님의 법을 보고 나는 늘 이런 생각이 약간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약간의 걱정을 구세력은 모두 덜미를 잡고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공간장의 이런 병이 있다는 사상, 염두, 생각을 모두 멸해야 한다. 그럼 또 병이 있겠는가, 물론 병이 없다.

4) 병업을 제거하고 신체(神體)를 다시 만들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우주는 성, 주, 괴, 멸 속에서 마지막으로 걸어가고 있고 대궁을 구하기 위해 창세주께서 지구를 만드셨고 각 천체에서 대표를 파견하여 지구로 하세하여 사람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집착심을 제거하고 법에 동화할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대응된 천체 부분을 복원해주신다. 그러나 수련인이 ‘병’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원만할 수 없다. 그리고 육신의 사망을 조성할 수 있고 내세의 서약을 실현할 수 없으며 자신의 천체 세계는 구도될 희망을 잃게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매 한 걸음이 어떻게 배치된 것이든지 그것은 아주 체계적인바, 당신의 어떤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이 한 난에서 제고하여 올라오는 동시에, 마땅히 당신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풍부하게 해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 어떤 것을 수련해 내게 해야 하고, 경지가 어느 한 곳에 있게 하는, 그건 모두 배치가 있는 것인즉, 아주 체계적이기 때문이다.”[3]

사부님께서 체계적으로 우리 원만의 매 한 걸음을 잘 배치해주셨는데, 반드시 법공부를 더 많이 해야 사상이 비로소 법에 있고 법공부를 더 많이 해야 부동한 층차의 법에 동화할 수 있으며, 층차를 끊임없이 제고하고 비로소 신체를 정화할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를 원만할 수 있고 우리 세계의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병’이 왜 낫지 않는가? 사부님을 어느 정도로 믿으면 사부님께서는 어느 정도로 해주신다. 심성이 어느 정도로 제고되면 층차는 비로소 어느 정도에 도달되고, 병에 대해 법에서 어느 정도로 인식하면 병은 육신에서 어느 정도로 반응된다. 오로지 사부님의 법에 동화되어야 병업이 멀리 떨어진다.

자신의 현 층차에서 깨달은 법리를 수련생들과 교류한 것이다. 부적절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직장에서 좌절당하며 집착심을 버리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24세이고, 미국 미시간주에 살고 있습니다. 운이 좋아 2세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파룬따파(法倫大法) 수련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오늘 제가 구직 과정에서 여러 번 좌절당하는 가운데, 결국 여러 가지 집착심을 찾아 버린 수련 체득을 교류하겠습니다.

원한심(怨恨心)의 근원은 밖에서 찾는 데서 시작돼

간호학교를 졸업한 저는 첫 직장이 한 병원의 아동 중환자실(ICU)이었는데, 계약 기간이 약 5개월이었습니다. 빠른 템포와 고강도의 환경이었는데, 전력을 다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실습 기간의 마지막 몇 개월에 저는 새로운 지도교수에게 안배되었는데, 그녀는 직설적이고 거리낌 없이 말했고 저는 자주 꾸중을 들었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저에게 일을 더 빨리해야 하고 기능을 향상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개선하기 위해 지도교수의 조언과 비평을 적었고, 업무가 끝나면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며 다음날 어떻게 더 잘할 것인지 계획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자주 어떻게 해야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의 꾸중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매우 불편했는데, 이 지도교수를 만난 것은 저의 심성을 고험(考驗)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받아들이고, 지적해주신 데 감사해 하고 태도를 바르게 하며, 그녀가 지적한 대로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왜 생트집을 잡지?’ 혹은 ‘내 방법도 틀리지 않은데, 그녀가 말하는 것과 다를 뿐이야’라는 원망의 마음이 생기고, 그녀가 말을 부드럽게 하지 않아 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잘못을 저질러서 지도교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는데, 점심시간에 억울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결국 밖에 나가 펑펑 울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녀의 지적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개선해서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아무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저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일하는 방법을 부정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원한(怨恨)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도교수의 평가에 따라, 기초 지식과 기본 간호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른 곳에서 기초업무 경험을 쌓으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충격에 휩싸였고 자신이 패배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 고생, 땀과 시간을 인정받지 못했기에, 저는 너무 실망해서 원한심이 날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밖에서 찾으며 책임을 남에게 떠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부정적인 정서를 버렸고, 진지하게 안으로 찾으며 이미 발생했던 모든 일의 경과를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그제야 자신을 수련인(修煉人)으로 여기지 않았고, 이것을 집착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인 같았고, 결과가 불공정하다고 여겨 괴로웠습니다. 참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원망하는 처지에 처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사부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아주 송구스럽습니다. 원한심이 이렇게 강하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생긴 것에 대해 사부님께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도 성결(聖潔)한 세계에서 떨어져 내려오게 된 것은, 당신들이 그 층차 중에서 집착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비교해 보면 가장 더러운 세계에 떨어지고서도 당신들은 재빨리 되돌아 수련하지 않고, 오히려 또 더러운 세계 속의 그런 더러운 것들을 붙안고 놓지 않으며, 심지어 조금만 손해를 보아도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당신들은 아는가? 부처(佛)는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해 일찍이 속인 중에서 동냥했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大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어도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1]

이 교류문장을 쓰면서 저는 원한심과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밖에서 찾는 데서 시작됨을 깨달았습니다. 진지하게 자신을 찾지 않았고, 지도교수가 지적하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교수님이 성격이 까칠해서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지적하는 방식에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가 저의 문제를 지적할 때, 그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할 게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녀가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지적하지 않았기에, 지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수련 중에서 줄곧 밖에서 찾으며 밖에서 구하고 밖으로 보고 있는데, 누구는 자신을 잘 대해주지 않고, 누가 한 말은 거슬리고, 누구는 너무 속인적이고, 누구는 자신을 늘 못살게 굴고, 자신의 의견은 늘 채택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써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어떤 일마저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홧김에 수련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누구를 위해 수련하고 있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당신은 이 내키지 않는 일이 당신의 수련을 도와주고, 당신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당신이 수련하는 그날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길이 수련의 길로 개변된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마주친 일체는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은 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정말로 귀로 듣는 것이 모두 듣기 좋은 소리이고, 대법제자가 모두 당신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해야만 당신이 비로소 수련하려 하고, 당신이 비로소 제고할 수 있다고 여긴단 말인가?”[2]

처음에는 제가 겉으로는 완전히 지도교수의 지시와 지적한 것에 따라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을 하면 전혀 진보가 없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일할 때의 상황이 저의 수련 상태와 직결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끊임없이 밖으로 보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원망했습니다. 제가 지도교수가 지적하는 의견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으므로, 빠르고 착실하게 제고할 수 없던 것입니다. 그때 만약 안으로 찾으며 수련과 심성을 제고하려 애썼다면, 이런 결과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해고되는 과정에서 저는 마침내 깊이 숨겨졌던 집착을 분명하게 알게 됐고, 제가 전에 전혀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숨겨진 원한이라는 집착심을 깨닫게 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이런 집착을 깨닫자, 일할 때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자신이 바로 또 원망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지했고, 아주 빠르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속에서 배척하고 버릴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점화(點化)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집착을 버리고 사존께서 안배하신 것을 믿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 대유행 때 저는 직장을 구하는 데 꼬박 4개월이 걸렸습니다. 친구가 다니는 한 아동 간호시설에 일자리 A를 신청하며 저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복이 있었고 몇 차례 거절을 당했습니다.

저는 일자리 A에서 면접은커녕 서류조차 거절당해 실망과 절망감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울어서 다음날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이때 또 저를 지적하던 그 지도교수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일자리를 추천해주면서 저에 대해 혹평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다음 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저를 다시 일자리 A에 고려해보겠다고 했고, 저는 다시 기쁨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취소 메일을 받았고, 나중에는 또 그것이 시스템 오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소식을 알기 전까지는 두 번의 좌절을 겪고 실망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나중에 좋은 소식을 접하고는 희망을 품으며 기뻐 날뛰었습니다. 저의 주이스(主意識)는 정서와 감각에 이끌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바뀌는 상황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매번 좌절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것이 심성을 고험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자리 A에 대한 집착을 반드시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데 따라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지만, 여전히 해내기 어려웠습니다.

사부님께서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3]

결국, 저는 일자리 A 면접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른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일자리 B에도 면접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간호하는 일자리 A에 아주 집착했기 때문에, 저는 어른을 돌보는 것이 꺼려져서 B 면접은 보기 싫었습니다. 그때 A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기에, 저는 심드렁하게 새로 들어온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B 직무 면접을 준비하면서 A 직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마치 자기 이익에만 관심 있는 속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직무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했고, B 직무처럼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으면서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며 강한 애증의 정서를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이를 좋아하고, 그들이 더 귀엽고 일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어른보다 작고 가벼우며, 육체노동을 덜 하기 때문인데, 저의 게으름과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착심을 깨닫게 되어, 저는 심성을 제고하며 이러한 집착심을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학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B 직무의 장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자리 B 면접을 볼 때, 저는 이미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갈 수 있어, 결과와 관계없이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을 믿었습니다.

B 직 면접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로부터 A 직 면접 결과가 이미 확정되었는데, 사장이 저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간호사를 고용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세 번째로 같은 일자리에서 좌절당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았고, 사장과 고용된 간호사에 대해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에는 선의와 위안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사장이 선택한 것이 왜 제가 아닌 그 간호사인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간호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이 환자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믿고 자신의 집착에 따라 일자리 찾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저의 미래에 대해 신심과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당신들이 속인 중의 명(名)·이(利)·정(情)에 해를 입어 괴로워한다면 아직 속인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은 기억해야 한다! 수련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신들이 명(名)ㆍ이(利)ㆍ정(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들은 비로소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1]

비록 조금 괴롭긴 하지만, 그것을 제거하고 이런 정서에 좌우지되지 않을 수 있어, 저를 실망케 하는 집착심을 버리자, 더는 정서에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침내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튿날 새벽, 친구가 제가 A 직에 합격했다고 알려주는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친구는 사장이 저를 초빙하기 위해 특별히 일자리를 늘렸다고 알려줬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안배하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이었지만, 전에 저는 사부님의 제자라고 진정하게 여기지 않았고, 수련의 길에서 봉착한 심성 고험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심성을 제고할 기회로 여기며 집착을 바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또 완전히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완전히 집착을 버리고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을 믿자, 마침내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맺음말

수련은 엄숙하므로, 집착심을 깨닫게 되면, 마땅히 그것에 좌지우지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집착을 아주 빨리 찾을 수 있었고, 심성의 변화도 더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아직도 두려움, 안일을 구하는 마음, 질투심, 욕망, 감상적인 것 등등 많은 집착심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비롭게 시간을 연장해주셨기 때문에, 제자는 꼭 더 정진하고 마지막 집착을 버리며 진상을 분명히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개인 층차의 제한으로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써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진수(眞修)’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냄’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2021년 청년 대법제자 온라인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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