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간(북경) : 오후 09~10시 6030 KHZ
명혜망대법서적
  • 시사&평론
  • 수련교류
  • 꼬마제자
  • 나의 사부님
  • 전통문화
  • 천인사이
  • 천음
  • 수련이야기
수련교류
애플 팟캐스트, 팟빵에서 명혜라디오 팟캐스트 방송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한글명혜주간 제790호 【수련교류】  
   2021-09-29 01:39:31 | 조회 : 347

한글판 제790 호






수련교류

빗속에서 사람을 구하다​

신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읽고 깜짝 놀라 깨어나다

신공표라는 배역

가게 주인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지다

남편이 나의 수련을 반대하던 데에서 지지하게 되다

심리적 장애를 타파하고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다
정념에 대한 얕은 깨달음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

진상을 알리는 문장을 쓴 약간의 체득​

올림픽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수련교류




빗속에서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1월 말, 한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비로소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하루에 10여 명 혹은 수십 명을 탈퇴시키는데 나는 한 달에 겨우 40여 명밖에 탈퇴시키지 못한다. 비록 매달 20여 일 넘게 나가지만 진정으로 구원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정말로 부끄럽다.

올해 7월의 어느 날 오전,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들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구하려고 진상을 알리러 마트에 갔다. 마트에 도착하니 마트 셔틀버스에 한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차에 올라 그 사람에게 삼퇴를 권했다. 그런 후 마트에서 50분 가까이 돌아다녔지만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또 10분마다 한 바퀴 도는 마트의 단거리 셔틀버스에 올랐다. 내가 앉자마자 한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았다.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바로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곧 얼굴에 웃음을 띠며 동의했다. 이어 중공의 당단대(黨團隊)에 가입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붉은 스카프만 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목숨은 자기 것으로 말해주면서 또 중공의 사악한 본질과 목숨을 중공에 바치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기쁘게 탈퇴에 동의하고 또 “감사합니다!”라며 연거푸 말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바로 또 한 명의 아주머니가 올라와 앉으면서 “한 정거장이라도 앉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웃는 얼굴로 내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와 아주 자연스럽게 한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간부를 한 적이 있거나 당단대에 가입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가입한 적이 있는데 옛날 일이에요. 외지에서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지요”라고 말했다. 바로 그녀에게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의 중요성을 말하고 이전에 가입했던 당단대에서 탈퇴하도록 했다.

이때 차는 이미 마트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나는 즉시 우산을 펴서 그녀와 함께 비를 피하려고 하자 그녀는 나의 마음이 좋다면서 나를 칭찬했다. 내가 당연한 것으로 답하자 그녀는 삼퇴에 동의했다. 성씨를 물으니, 가명으로 ‘삼퇴’하는 데 동의했다. 헤어질 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생명과 평안을 보전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그녀가 대답한 후 마트에 들어갔고 우리 둘은 기쁘게 헤어졌다.

이때 한바탕 폭우가 내렸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손님은 어쩔 수 없이 입구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어느 분이 지금 가고 싶으면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당신은 정말 좋네요. 비가 오는데도 자신을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집에 바래다주다니, 아직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네요”라고 말했다.

한 언니는 셔틀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데려다주면 좋겠다면서 또 비가 많이 오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바로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자 이 언니는 내가 너무 좋다면서 끊임없이 칭찬했다. 나는 “별거 아니에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고 남에게 좋은 일 하기를 요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면서 “와, 당신들 파룬궁은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에 대한 언론의 날조와 모략을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나의 말을 끊더니 “TV에 나온 그런 말들을 전혀 믿지 않아요. 당신에게서 진실한 파룬궁을 보았어요. 나의 이전 직장에도 동료 한 명이 파룬궁을 연마했거든요. 나는 그를 찾아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 남을 잘 생각해준다고 말할 거예요. 지금 나는 파룬궁을 더 잘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가면서 이야기했는데 도착해 보니 셔틀버스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언니 조급해하지 말아요. 제가 언니를 데리고 안내 데스크에 가서 다음 셔틀버스 시간을 물어볼게요”라고 말했다. 물어보니 아직 10여 분이나 남았다. 나는 그녀에게 10여 분만 더 기다리면 차에 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놓기 아쉬워하면서 나를 만나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그만 바래다주어도 된다면서 여러 번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비닐봉지를 주면서 나갈 때 머리에 씌우라고 말했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나는 또 다른 중생을 구하려고 마트 출구로 다시 갔는데 여전히 몇십 명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길 건너 아파트에 사는 한 언니가 가려고 해서 데려다주려는데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때 비가 많이 왔지만 나는 언니가 우산을 쓰기만 한다면, 그녀를 구할 수 있어 비를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은 함께 길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언니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자 나는 “괜찮아요, 사람 돕는 건 당연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후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삼퇴를 이야기했다. 처음엔 그녀도 탈퇴에 동의하고, 자기가 공청단에 가입한 적 있다고 말했다. 그런 후 또 나에게 “우리,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파룬궁이 부처 수련을 하는 것이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으로 말했다. 그녀는 자기도 가끔 절에 간다고 말했다. 나는 절에 가는 것은 형식적일 뿐인데, 사람이 선을 닦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 형식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하자 그녀도 그렇다고 말했다.

시간이 긴박해 나는 직접 그녀에게 말했다. “입단할 때 주먹을 들고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을 분투하겠다고 맹세했는데, 언니의 목숨을 공산주의에 맡길 수 있나요?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인데, 마음속으로 가입했던 단, 대에서 탈퇴하기만 하면 목숨과 평안을 보전할 수 있어요. 신은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후 가명을 지어주어 단에서 탈퇴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기를 당부하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원하자 그녀는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이때 비가 여전히 매우 많이 내렸다. 나는 원래의 길을 따라 마트 출구로 걸어갔는데 여전히 두 사람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두 사람도 내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중 한 할머니에게 “집까지 바래다 드릴까요?”라고 말하자 “당신의 일을 지체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면서 할머니를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바로 앞줄에 있는 집에 산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할머니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라면서 많이 읽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자 그녀는 좋다고 했다. 그런 후 다시 할머니에게 단, 대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묻자 단에 가입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입단할 때 목숨을 공산주의에 바치겠다고 선서했는데 목숨을 공산주의에 바칠 수 있나요? 목숨을 자기에게 바쳐야지요.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탈퇴하면 목숨과 평안을 보전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좋다고 말했다. 이미 할머니의 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할머니에게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는 가명을 지어주었다. 할머니는 기뻐하며 나와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마트 입구로 돌아왔을 때 한 60대 남자가 손에 물건을 들고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제가 당신을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해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주 정보와 소통하는 거예요. 읽고 나면 바른 에너지가 생겨 사악한 기를 없앨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른바 ‘천안문 분신자살’은 파룬궁을 모함한 것으로 알려주었다. “사람 몸에 불이 붙어 그렇게 심하게 탔는데, 사람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전혀 없어요. 또 그렇게 단정히 앉아 있는데 다리 사이에 휘발유를 넣은 사이다병은 오히려 왜 멀쩡하지요. 이 사건은 이후에 반드시 진상이 밝혀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당단대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묻자 그는 붉은 스카프만 착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입대 선서는 생명을 공산주의에 바치겠다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은 자기 것이므로 공산주의에 바치지 말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선대에서 탈퇴하라고 하자 그는 동의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빨리 가명을 지어 탈퇴하도록 하고, 그가 반드시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도록 했다.

이날 빗속에서 사람을 구한 것은 내가 대면 진상을 알린 이래 가장 기분 좋은 하루이자 혼자 나와서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한 숫자가 가장 많은 하루이기도 했다. 이번 빗속에서 세인들에게 대법제자의 선(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은 선의 에너지가 매우 커서 속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잘못된 생각을 녹이고 변화시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느끼도록 했다.




신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읽고 깜짝 놀라 깨어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여러 번 읽으면서 좀 두려웠다. 나는 1인 미디어를 하는 수련생은 아니지만 최근 3년간 수련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직장에서 일들이 좀 있었는데 줄곧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했다. 여러 번 교류문장을 써서 이런 나쁜 집착심을 버리고 고비를 넘으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오늘 오후만 해도 자극적이고 불편한 장면을 보면 몸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련생 교류문장 ‘사부님의 평주를 배우고 생각한 것’에 보면 “억울함을 당했거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는데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참음을 해내지 못하고 무조건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하지도 못해 불만이 가득한 게 아닌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내가 그랬다. 이전에는 그래도 자신의 집착심을 찾고 그것을 버리려고 결심했지만, 오늘 이 강렬한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은 마(魔)에 통제된 것 같았고, 이 상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신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통해 무엇을 깨달을 필요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똑똑히 말씀해주셨다. “이런 사람은 늘 心性(씬씽)상의 집착을 불만으로 바꾸어 사람을 찾아 쏟아내는데”[1] “당신의 불만을 내려놓으라. 그것은 당신의 집착이다. 당신의 입을 잘 단속하라.”[1] 정말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요즘 정말 마음의 고비를 넘기가 힘들어 항상 수련생에게 불만을 토로하면서, 내가 도리에 맞으니 억울하고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에 아주 너그럽다고 여겼다. 실제로 이것은 사부님께서 하신 “일부 사람은 대법 수련 중에 나타난 모순을 사회의 웹사이트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엄중하게 위배했고, 대법제자가 생명으로 신과 서약한 엄숙성과 신성함을 모독했으며, 세인들이 구원받을 희망을 파괴하고 있다.”[1]라는 말씀과 차이가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 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울러 발정념으로 자신의 공간을 청리(清理)했다. ‘자신의 사상 중의 좋지 않은 사상 염두(念頭), 업력과 좋지 않은 관념 혹은 외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한다.’ 서서히 조용해졌다.

나는 이 경문을 보고 수련생 사이에도 속인의 말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에서 교류하고 제고해야 옳은 것이고 우리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법에 있지 않은 말을 당신은 해서는 안 된다.”[1]

‘크게 꾸짖다’를 읽고 깜짝 놀라 깨어났으니 정말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다. 수련 상태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자비로운 상태가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깨달아 행할 수 있어야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크게 꾸짖다(猛喝)’





신공표라는 배역

글/ 리톈퉁(李天童)

[밍후이왕](독자 추천) 신공표(申公豹)라는 배역은 매우 특수하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그 신선들은 선연(仙緣)을 잃고 대부분 그에 의해 타락한다. 그리고 그도 정말 바빠서 한가할 때가 없었다.

이 배역이 몇몇 신선을 끌어모을 수 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대담한 말재주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소능소술(小能小術)이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를 잘못되게 이끌지 못했을 것임) 게다가 그는 공식적인 옥허궁(玉虛宮)의 문하였다.

한 가지 아주 이상한 것이 있는데, 강자아(姜子牙)가 한 일은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 언어로 설명하면, 그는 삼교봉신(三敎封神)이라는 대사(大事)의 대리인이었다. 신공표는 말로는 개인적으로 강자아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강자아가 하는 바른 일을 방해했는데, 이는 사문(師門) 등 삼대교(三大教)에 변칙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닌가? 이 배역은 성질이 정말 대단해서 화가 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즉 극도로 자아중심적이었다. 극도로 자아중심적이면 또 남을 미혹시킬 수 있는데, 바로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옥허궁은 왜 그가 제멋대로 해도 방임하고 단속하지 않았을까?

사실 ‘봉신연의’ 제72회에서 신공표는 옥허궁에 한 번 잡혀간다. 당시 신공표는 거의 강자아를 해칠 뻔했지만 옥허궁의 원시천존은 신공표가 맹세하자 그를 풀어주는 등 그를 가볍게 처벌했다. 그러나 신공표는 그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사부의 자비와 자신이 한 맹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책 속에서 숨겨진 의미는 이렇다. 신공표를 놓아준 것은 사실 그를 이용해 신선이 되지 못할 자들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신공표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고 그가 기어코 소란을 피우려 한다면 장계취계(將計就計)해, 누구든 그를 따라가라는 것이다. 삼교는 이미 사전에 제자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했기에 이때 누가 신공표를 믿고 따라간다면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그의 감언이설에 속았든, 가식에 현혹됐든, 그의 격장법(激將法)에 넘어갔든, 어쨌든 그래서 움직였다면 그 이끌린 부분은 봉신(封神) 이 일에서 신선의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그 스스로 안 된다는 뜻이다. 안 된다면 앞길을 끊고 다시는 신선이 되지 못했는데, 이 점은 과거에 조금도 모호하지 않았다.

물론 나쁜 일은 신공표 스스로 해야 했는데 그러므로 만선진(滿仙陣)이 지나간 후 그는 쓸모가 없었다. 맹세는 지켜져야 하므로 그는 정말 잡혀가 북해안(北海眼)에 갇혔다.

신공표는 원래 선가(仙家)였는데 ‘사(私)를 위해, 분노를 위해’ 자신의 내력을 말하지 않으면서 한 무리 사람을 망쳤다. 이런 배역은 질투로 대중을 현혹하기에 정말 해서는 안 되며, 이런 일은 남도 자신도 해치는 것이므로 그야말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강자아는 사문대사(師門大事)를 잘 마쳤는데, 신공표도 동문(同門)이기에 역시 혜택을 받았다. 만약 강자아가 정말 잘하지 못한다면 그를 도와 일을 잘 처리해 주면 그만이다.(‘봉신연의’에서 많은 신선이 모두 이렇게 했음) 왜 굳이 높낮이를 따지고 심지어 강자아와 다퉜을까? 생각해보면 하나는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질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에 사부를 존경하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말 큰일임).

바른 길과 삿된 길은 때로는 일념지차(一念之差)에 불과하다. 수련인에게 질투심과 쟁투심이 있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발을 헛디뎌 신공표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마(魔)가 되는 일이 흔하다.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견할 줄 알고, 닦을 줄 알며, 고칠 줄 알고, 법이 일체를 제약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 고집대로 해서 갈수록 법과 멀어지면 정말로 신공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북해안(北海眼)에 갇히면 절대 더 이상 봉신방(封神榜)에 오를 수 없다. 신공표라는 배역이 만약 계속 방치됐다면 절대적으로 무서운, 막다른 길로 갔을 것이다.




가게 주인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느 한 해 구정을 앞두고 나는 대야를 사러 큰 도매시장에 갔다. 그때 마침 밍후이 탁상용 달력을 배포할 때였기에 어디를 가든 항상 가지고 다녔다.

나는 목욕용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 주인은 50세~60세 남성이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각종 대야를 소개했다. 말하는 중에 내가 밍후이 탁상용 달력을 꺼내 주었더니 그는 단번에 표정이 변했고 대야도 팔지 않겠다면서 큰소리를 질렀다. “가시오! 가시오! 나가시오!”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소리 지르면서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대야를 사지도 못하고 나왔다.

한동안 지나 또 대야를 사러 갔다. 시장이 워낙 커서 나는 어느 가게가 어느 가게인지 몰라 무의식중에 또 그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선 후 “어, 이 가게에 온 적이 있는데?”라고 하자, 그 사장은 말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아주머니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파룬궁(法輪功) 달력을 배포한 사람이잖아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파룬궁과 원한이 있습니까? 그렇게 파룬궁을 싫어합니까?” 그는 고개를 젓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말도 하지 마시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국가 지도자를 공격하고 공산당을 반대하며 남몰래 전단을 배포하는 그런 일을 합니다. 우리 집과 가게에서도 자주 봅니다…….”

나는 말했다. “좋아요.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한밤중에 남몰래 전단을 사장님 집에 가져다주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라고 말했다. “그럼 그들이 사장님 집의 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까? 아니면 사장님 밥을 한 번 먹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럼 사장님에게 그들의 고마움을 말하라 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런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럼 그들이 무슨 이익을 얻은 겁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말하지 않았다.

나는 또 이어서 말했다. “지금은 섣달이어서 낮에도 사람들은 춥다고 할 것인데 한밤에 전단을 주러 갈 때 추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쁜 사람에게 무고를 당하여 체포되어 옥살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전단은 자신이 돈을 들여 인쇄한 것인데 그들이 뭘 바라는 걸까요? 그들이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사장님에게 준 전단은 절대로 일반 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 그건 진상을 알도록 하고 사장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기에 사장님은 그들에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자, 나쁜 사람이 길바닥에 보이지 않는 깊은 함정을 파고 그 위에 꽃과 돈을 가득 놓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 길로 가게 하고는 누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그의 목을 벨 것이라고 떠벌렸을 때 이 진상, 이 비밀을 알고 사장님에게 이 길로 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알려주면 내가 남몰래 알려준다 해도 사장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사장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남몰래 사장님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 하고 나를 미워해서 되겠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공산당을 반대한다’고 했는데 공산당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어떤 조직이든 말을 잘못하고 일을 잘못하면 우리는 반대할 수 있습니다. 건장한 남성이 나약한 여성을 때릴 때 우리는 반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우리는 반대할 수 있고 법원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도 서로 반대할 수 있잖아요. 파룬궁은 불가(佛家) 수련 대법입니다. 가장 낮은 면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 되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기에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운 점은 있으나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공법이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국가에 모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데 공산당이 탄압, 박해하고 있으니 우리가 반대하면 안 됩니까?” 그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하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투는 처음의 노기등등함과 증오가 사라지고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또 말했다. “또 ‘국가 지도자를 공격한다’라고 말했는데 사장님이 말한 국가 지도자가 바로 장쩌민이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파룬궁 박해는 파룬궁 수련생만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모두 반대해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은 전 국민을 모두 바보와 멍청이로 취급한 겁니다. ‘톈안먼 분신자살’을 놓고 말하면 분신자살 중의 그 어린 소녀는 기관지 절개 수술을 하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나는 의학을 배웠습니다. 기관지를 절개한 후엔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일반인은 의학 상식이 없다고 해도 생활 상식은 있잖아요? 건장한 왕진둥을 보세요. 온몸이 타서 시커멓게 됐는데 그의 머리카락과 양다리 사이에 있는 휘발유가 든 페트병은 온전합니다.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머리카락과 휘발유는 가장 쉽게 타는 것임을 다 알 겁니다. 화상의 고통은 일반인은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불꽃이 피부에 튕겨도 매우 아픈데 그는 피부 표면이 모두 탔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아무런 고통스러운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철로 만들었을까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면 가짜라는 것을 압니다. 틀림없이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사실 ‘톈안먼 분신자살’ 전 과정은 바로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람을 찾아 연출한 겁니다. 물론 이 한 가지 일만이 아닙니다.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모든 것이 다 가짜입니다. 따라서 사장님께서 말한 장쩌민을 공격한다고 한 것은 사실 그가 그렇게 한 것을 우리는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는 다 듣고 나서 감격하며 말했다. “아, 원래 이런 거였군요!”

그는 자기 온 가족은 모두 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사장님이 정말 신을 믿는다면 공산당을 믿으면 안 되지요. 공산당은 무신론입니다. 사장님이 공산당을 믿으면 사장님이 믿는 신도 사장님을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3퇴’를 권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가 이미 180도로 바뀌었다. 나는 언젠가 그가 분명하게 중공 악당을 탈당할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은 사람을 구도하는 것 역시 몹시 어렵기에 당신은 그들의 집착을 봐가며 해석해야 하는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 사상 중에 그 어떠한 장애도 조성해 주지 말아야 한다.”[1] 그에게 맞춰주지 않고 그와 대립하거나 상반되는 면에 서면 그들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모순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의 집착, 의도에 따라 말하면 더 정확하게 사악(邪惡)의 단점을 찾을 수 있고 사악의 진을 깨뜨리고 더 쉽게 사람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순회 설법’




남편이 나의 수련을 반대하던 데에서 지지하게 되다

글/ 산건(善根)

[밍후이왕] 저는 2005년에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대법 배우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다른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알리기만 하면 때리고 욕했습니다. 저를 버드나무 가지로 후려쳤고 소몰이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심지어 도끼를 들고 “당신 남동생을 먼저 죽이고 당신을 손보겠다!”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대법 책을 보고 있는데 저의 책을 빼앗아 가 법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 살 난 아이는 놀라 엉엉 울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복도에서 바라만 보고 아이를 돌보지 않았으며 혼자 울게 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디서든 모두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신 바를 생각하면서, 화내지 않았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았으며 일을 해야 하면 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일하지 않았고 온 가족이 몇 무(畝, 약 200평)밖에 되지 않는 땅에 의지해 생활했습니다. 저는 소 한 마리를 샀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집안일을 아예 하지 않아 하루 세끼 제가 다 했습니다. 그들은 온돌에 누워있을지언정 돕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일하라고 해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저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땅을 경작하지 않아 저 혼자서 경작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집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저는 먹기 아까워하면서 식구들이 먹도록 남겨두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남편은 모두 분명하게 봐왔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비로소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며 대법이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수련 전, 무슨 일이든 남편은 저와 상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둘이서 결정했고 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저는 돼지를 기르고 소를 사는 것은 집안 살림을 잘하는 옳은 일로 생각하는데, 두 사람은 모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마음은 갈수록 답답했고 점점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집안일을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아졌으며 이 가정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도 몹시 가슴 아파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됐는데 시어머니는 저 때문에 화가 나서 밭에 나가 우셨다고 했습니다.

2012년 봄, 그때 저는 대법 수련 때문에 사악한 공산당에게 박해받아 노동교양소를 나온 지 1년 정도 된 무렵이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제기했지만, 8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있어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남편은 저에 대해 매우 냉담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중공의 탄압과 박해는 남편에게 무거운 압력이었습니다. 남편과 가족은 모두 큰 압력을 견뎌야 했고, 제가 박해받을까 봐 매일 마음 졸였습니다.

남편은 이혼을 제기했고 제가 이혼하지 않자 저를 쫓아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남편과 함께 민정국(民政局, 결혼 증명서 발급 기관)으로 갔습니다. 민정국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제게 “수련 그만두면 안 되겠어요? 그러면 우리 집에 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변화가 모두 대법을 배웠기 때문이란 걸 압니다.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저는 계속 우울했을 것이고 가족은 행복하지 않았을 겁입니다. 대법을 배우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이혼 후, 아이는 남편 밑으로 됐고 재산도 모두 남편에게 돌아갔으며 저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와 살고 싶었지만 키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난 후, 여동생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아이가 그리웠습니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린 데다가 제가 막 집을 나왔으므로 바로 돌아가서 볼 수 없었습니다…….

이혼 후, 반년이 되지 않아 남편은 곳곳으로 저를 찾아다니면서 관계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자신은 수련인이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어디에서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타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신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을 생각해보니, 그도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어르신과 아이까지 있고 시어머니는 또 류머티즘을 앓아서 다리가 아파 몇 걸음도 걷지 못했으며 집안 형편 또한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저를 쫓아냈던 일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내려놨습니다. 남편은 제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더는 반대하지 않고 대법도 반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진정으로 대법 진상을 깨닫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재혼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박해받을까 걱정돼 남편은 저의 수련을 여전히 못마땅해했습니다. 남편은 공산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록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련에서 오히려 점차 느슨해져서 대법 책도 별로 보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보지 않게 됐습니다. 비록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여전히 말했지만, 수련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대법의 가르침이 없으니 문제에 부딪히면 저는 곧바로 남편과 싸웠습니다.

남편은 제가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때 저는 마치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보니 저는 여전히 그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제게 “나랑 같이 대법 책을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과 함께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남편은 오성이 좋아 “책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라는 이치에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옳아요!”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직장에서 남편에게 일어난 변화도 있습니다. 남편은 매우 힘든 일을 했지만, 쉬운 일을 하는 사람과 버는 돈은 비슷했습니다. 남편은 속으로 평형을 잃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었습니다. 대법 책을 읽은 남편은 이치를 일부분 알고 있어 “대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죠. 일을 조금 더하고 고생을 조금 더 하는 것은 무슨 나쁜 일이 아니라고요.”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답답한 마음이 단번에 탁 트이면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사고가 났을 때도 남편의 반응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지난해(2020년) 9월, 우리 여섯 살 난 아들이 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사각지대 모퉁이를 돌 때 삼륜차와 부딪혔습니다. 사고로 자전거 페달 아래 쇠막대까지 구부러졌습니다. 남편은 자전거를 본 후, 아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대법 사부님 보호 덕분이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대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또 저를 도와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더욱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기를 바라면서 제가 나가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것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가 예전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남편이 대법을 알고 직접 겪은 체득과 사실에서 일어난 천지개벽 같은 변화입니다.

불은이 호탕합니다! 대법이 깨졌던 우리 가정을 따뜻하게 변하게 했고 아이에게 완벽한 가정을 주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심리적 장애를 타파하고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르고 지식수준이 낮아 20여 년 수련하면서 항상 다른 수련생에게서 자료를 가져다 썼다. 비록 주위에 대학을 나온 수련생이 있지만, 그들도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할 줄 몰라 늘 다른 지역 수련생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여태껏 컴퓨터 시스템을 암호화하고, 진상 자료를 편집·인쇄하며, 메일을 통해 밍후이왕에 투고하는 일은 모두 기술 난도가 아주 높아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관념이 있었다. 나처럼 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여러 원인으로 피치 못하게 이런 관념을 바꿔야 했고, 더욱이 실천해야 했다. 왜 그랬을까?

1. 매번 법공부 팀에 진상 자료를 가지러 가면 어떤 것은 내용이 전면적이지 않고, 어떤 자료는 너무 커서 차가 없이는 휴대하거나 배포하기 어려웠다. 의견을 제기해도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소통하기 어려웠다. 내 요구에 못 미치니 받은 진상 자료들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2.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폭발한 후 도시뿐만 아니라 길과 단지도 봉쇄해 진상 자료를 가져오기가 더 어려워졌다. 우리 집은 법공부 장소에서 두 구역 떨어져 거리가 아주 멀었다. 조금만 일이 생겨 차가 다니지 못하거나 단지가 봉쇄되면 진상 자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이 들었고, 더는 기다리거나 의지해서는 안 됐다.

3.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할 줄 아는 수련생들이 납치되거나 병업으로 세상을 떠나 주위에 아는 수련생이 없었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은 한 명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법공부 팀에 가서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 복사와 워드 사용 방법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걱정됐지만 아무리 걱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신에게 의지해야만 한다!

나는 구글 접속이 가능한 휴대전화기가 있었다. 그래서 동영상 강의를 검색해 찾아봤다.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자습했는데, 그래도 이해되지 않거나 알 듯 말 듯 했다. 조금만 봐도 머리가 아파 컴퓨터를 가져와서 동영상을 보며, 따라서 버튼을 눌러보니 조금 이해가 됐다.

또한, 타지 수련생을 통해 OS 설치 기술을 문의했더니 수련생은 나에게 글로 된 시스템 설치 설명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받아보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글자마다 천서(天書) 같았다! 아주 평범한 말 한마디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문득 집에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은 컴퓨터 한 대가 있는 것이 생각났고, 간편한 프리게이트(自由門)를 이용해 인터넷 봉쇄를 돌파할 수 있었다.

찾아보니 ‘천지행(天地行)’ 문서 자료실에 상세한 설명서가 있었고 안에 그림도 자세히 삽입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해 수련생이 준 설명서와 문서 자료실에 있는 기술설명과 설치과정을 보면서 반복해 컴퓨터로 시도해보았다. 가끔 어느 부분에서는 컴퓨터를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 껐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보았다.

꼬박 일주일 동안 잠자고 밥 먹는 외에는 컴퓨터 앞에서 반복해 시도했는데, 끝내 설치에 성공했다! 나에게 어떻게 설치했냐고 묻는다면 나도 똑똑히 모르겠다. 줄곧 사부님께서 도와주시고 내 지혜를 열어주셨다. 이 한 주간의 힘든 시련을 통해 컴퓨터 지식을 많이 습득한 것 같았다.

이후 두 번 더 시도해봤다.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갈수록 좀 더 쉬워졌다.

올해 수련생이 ‘도구함’을 발명한 것을 보았다. 이것을 사용하면 설치가 더 쉬울 것 같았다. 컴퓨터와 복사기를 연결하고, 컴퓨터에 연결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은 OS를 설치하면서 다진 기초가 있었기에 빨리 설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운로드와 복사 방법을 몰라 천지행에 가서 이 방면의 자료를 찾아 반복해 시도해봤다. 차츰 설명서에서 말한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이것들을 배운 후 밍후이왕에서 우리 지역 상황에 적합한 진상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게 됐다. 내용이 불완전한 것은 추가로 다른 한두 가지 진상 자료와 합쳤다. 예를 들어 ‘밍후이주보’와 밍후이전단(흥미진진한 최신 뉴스가 있지만, 진상 내용이 전면적이지 않음)에 낱장으로 된 ‘인연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합쳤고, 여러 곳에 놓기 편하게 큰 것과 작은 것을 각각 만들었다.

이제 직접 진상 자료를 만들 수 있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기계 몇 대를 서로 합친 것이 마치 손오공이 손에 여의봉을 쥐듯 무엇이든 마음대로 내 진상 알리기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컴퓨터를 습득할 수 없다는 심적 장애를 타파하고, 다른 인터넷 기술도 더 습득해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에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이 일을 통해 정말 느끼는 바가 많았다. 스스로 이런 기술을 배워낼 수 없다는 관념에 가로막혀 일찍이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결과적으로 많은 중요한 일을 그르쳤고, 사람을 구하는 힘과 효과에도 영향 주었다.

지금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전염병 때문에 수시로 도시, 길이나 단지를 봉쇄한다. 그런데 다른 수련생이 자료를 제공해주길 바라면 안 된다. 예전의 나처럼 다른 수련생이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수련생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컴퓨터를 모르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수련생이 도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 가로막히지 않으면 좋겠다.

여러분에게 반드시 컴퓨터 시스템 설치를 배우라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으로 밍후이왕에 접속해서 보고 싶은 문장이나 진상 자료, 대법 서적, 대법 음악을 검색할 줄 알아야 하고, 따지웬 사이트에 접속해 ‘삼퇴’(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천지행에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설명서나 지식을 찾는 방법을 배운다면 조건이 되는 수련생들은 스스로 가정 자료점을 세울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처럼 힘들게 독학할 필요 없이 수련생의 지도로 아주 빨리 배울 수 있다. 만약 집에 젊은이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 더 쉽게 조언이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이상은 나의 일부 수련 심득이다. 수련생 여러분의 비평과 시정을 바란다.




정념에 대한 얕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법공부를 할 때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수련인의 정념은 집착을 포기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1] “수련생으로서 머리에 담은 것이 모두 대법(大法)이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진정한 수련자다.”[1]

사부님의 설법에서 수련인은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데에 이르는 하나의 용기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공간장의 우주 특성에 동화해야 할 불성(佛性)이 있는가 하면, 아직 바로잡지 못한 바르지 않은 요소가 있다. 수련인이 끊임없이 불성을 증강하고 마성을 억제하거나 해체하면 수련상태에 반영되는데 바로 사람들의 집착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성은 점점 강해지며 사람이 갈수록 선해진다. 그러면 용기(容器)도 갈수록 깨끗해진다.

때로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 수련생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사람을 구할 때 참으로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며 조사정법(助師正法)에서 신적(神跡)이 나타난 것을 본다. 수련생의 체득을 보니 나는 그렇게 강한 정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리거나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법에서는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른 일이고 누구도 교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상 속에 일부 부정적인 생각이 튀어나온다. 진상을 알렸다가 이 사람이 신고하면 어떡하지? 지금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있는데 자료를 배포하다 찍히지 않을까? 머리로는 ‘가짜 나(假我)’의 교란인 것을 알지만 이 악순환에서 배회했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왜 정념이 부족한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때 머릿속에 물질이 나타났다. 이 물질은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명백해졌다. 원래 자신이 정념이 강하지 않다고 느낀 원인이 속인의 일을 중하게 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용기처럼 이 용기에 이 사람의 일체 요소가 담겨 있는데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법에서 끊임없이 마성을 제거하고 불성에 충실해야 한다. 마성 즉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는 동시에 불성이 충실해지고, 수련상태에 나타나면, 바로 정념이 강한 것이다.

원인을 찾고 내려다보니 사람의 물질이 왜 나를 괴롭힐 수 있을까? 나는 ‘탐내는 마음(貪心)’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탐심은 이익심이 돌출되는 표현 중 하나이다. 이 탐심 때문에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탐심의 주도하에 생각은 상상을 통해 이익의 만족을 달성하고, 이는 사상업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때 만약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심성을 높이지 못하면 이런 무형의 부정적인 물질에 의해 통제될 것이며, 마치 그 사람이 잠든 것처럼, 주왠선(主元神)이 느슨해져, 좋지 않은 부정적인 물질이 교란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주왠선(主元神)이 법을 얻는다. 주왠선이 자신을 느슨하게 하면 변형된 삿된 길로 갈 것이다. 때로 생각해본다. 수련한 지 20여 년이 넘었다. 사부님께서는 명백히 설법하셨다. 그런데 왜 사람의 것을 그처럼 실속있게 보는 것인가? 사부님의 법에서 나는 게으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수련인에게 사자처럼 용맹정진하라고 하는가? 사자는 목표를 정하면 멈추지 않는다. 그럼 나는 왜 게으름을 피우는가? 법공부를 진정하게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이 있어야만 어떻게 더욱 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법이 있어야만 길을 잘못 걷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법 역시 당신들 자신을 성취시키고 있다.”[2]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수련인이 정진하는 보장이자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체현이다. 우리 이 ‘용기(容器)’에 진정으로 법을 담아 사람의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의 것을 많이 제거하고, 법을 많이 담을수록, 법에 동화하는 생명의 요소가 점점 더 많아진다.

개인의 체득이며,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맞지 않은 곳은 수련생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독일법회에 보냄’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동안 매체에서 기능을 배우기 위해 수련생과 왕래하면서 두 가지 작은 에피소드가 있다. 돌아온 후 본 지역에서 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나는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고 의식했고 수시로 자신의 일언일행을 주의해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요구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1]

그날 나는 한 수련생 옆에 앉아 진지하게 그에게 파일을 만드는 것을 배웠다. 이 수련생은 미국에 오기 전에 일본에서 공부했고 또 일본에서 직장을 다녔다. 그는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껌을 씹으시나요?” 나는 평소 껌을 씹지 않기에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얼마 후 그는 또 물었다. “껌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또 필요 없다고 답했다. 나중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제가 이렇게 묻는 것은 선생님에게 입 냄새가 난다는 뜻이에요. 그거 아세요? 일본 직장에서 직원들은 입에 수시로 껌을 씹고 있는데 자신의 입 냄새가 타인에게 영향 줄까 봐서죠.” 나는 그의 직언에 감사했고 기뻐하며 껌을 받았고 이후로 주의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와 그는 함께 버스를 타며 전화를 받았다. 나는 스피커폰을 켜고 전화하고 버스 안에서 큰소리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또 나와 교류했다. “이런 행동은 일본에서는 실례고 일본 지하철은 아주 조용하고 절대로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이 없어요. 중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련생은 이 방면에서 특히 주의해야 해요.”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중국에서 막 나온 수련생을 한번 대표한 것이다.

돌아온 후 나는 수련생과 온라인에서 법공부하고 이 문제를 교류했다.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중국 수련생의 특징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기를 좋아하고 서양인은 이런 사소한 것에 주의합니다.” 나는 그녀가 말한 것이 맞다고 말하고 나도 이런 단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교류할 때 아내 수련생이 옆에서 일깨워줬다. “당신이 교류하려면 잘 교류해요. 왜 거기서 두 다리를 떨고 있어요. 앉을 때도 자세에 주의해야 해요!”

나는 갑자기 의식했다. 생활에서 나는 아직 많은 사소한 일에 주의하지 않는다. 평소 무의식중에 자신을 방임했다. 오래되면 습관이 되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그 사람은 세간(世間)과 천상(天上)에서 천명(天命)을 부여받았으니, 두터운 德(더)를 갖추었을뿐더러 그 마음이 착하고,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 법리에 해박하여 미혹을 타파하나니,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제도하여 공이 절로 크도다.”[1]

작은 일에 소홀히 하는 것은 공산당 문화의 표현이고 대법제자가 세인에 대한 이미지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또 이틀이 지난 후 아침에 연공하러 공원에 갔는데 좀 늦었다. 다가가니 평소와 좀 달랐다. 원래 연공음악 소리가 컸는데 오늘은 왜 작아졌지? 좀 궁금했다. 연공이 끝나자 급히 물었다. 그날 아침 5시 30분에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연공을 막 시작하자 경찰차가 옆에 멈춰섰다고 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이 엄숙하게 말했다. “시청 규칙에 따르면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소리 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생각했다. 처음에 올 때 아침에 연공음악이 꽤 크다고 느꼈지만 더 크게 틀고 싶었다. 하지만 길 맞은편에 한 거주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생각은 이곳이 오랫동안 유지된 연공장이라 상황을 잘 모르기에 내내 말하지 않았다. 오래되자 습관이 됐다. 이 일에서 나는 의식했는데 막 해외에 왔어도 만약 작은 일에서 중시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경찰이 정확한 시간에 온 것은 주변의 그 거주자가 오랫동안 고민한 후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 거주자는 아마 우리의 신분을 알 것이다. 수련생도 소리를 크게 틀어 이 기회로 홍법할 생각이었지만 만약 작은 일에 주의하지 않으면 아마 정반대로 될 것이다.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국내에서 발생한 한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해 수련생은 아파트에서 집 한 채를 임차해 단체 법공부 팀을 조직했다. 많은 사람은 교류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파괴됐고 손해가 컸다. 사악은 많은 물건을 강탈해갔다. 법공부 장소가 파괴된 후 각종 배후의 요소가 있긴 했지만 표면적인 원인은 이랬다. 이 집을 임차한 후 평소 노년 수련생 한 분이 여기에서 거주했다. 이 노년 수련생은 귀가 어둡고 평소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연공음악을 크게 튼다. 수련생이 일깨워줬는데도 듣지 않고 매일 새벽 3시가 넘으면 연공음악을 크게 튼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이웃이 신고했다. 며칠 후 나와 수련생은 밤에 들어가 물건들을 옮겼다. 온 바닥이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사악은 매 수련인을 모두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다. 작은 일에 주의하지 않으면 작은 일이 큰 일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며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공개적으로 공원에서 연공하고 홍법할 수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반드시 사회규칙을 지켜야 한다. 한 항목 책임자는 항목팀이 적당한 장소를 구하지 못하자 임시로 자기 집 뒷마당과 차도에 차량 몇 대를 세워 가끔 견인차가 온다. 얼마 되지 않아 이웃의 시선을 끌었고 어느 날 이웃이 직접 찾아와 왜 차를 그렇게 많이 주차하냐고 물었다. 수련생은 솔직히 말했고 곧 바꾸겠다고 했다. 서방 사회에서는 특히 지역사회 문화를 중시하고 공동으로 지켜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쓸 때 다시 19년 전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관련 대사관 앞 정좌할 때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았다. 글에서 분명히 이런 건의를 발견했다. “3. 큰 소리로 떠들지 말 것. 특수 상황(예를 들면 뉴스 브리핑 등) 외에는 일반 큰 확성기로 연공음악을 틀고 연공하지 말 것. 주의할 점은 아침 9시 전, 밤 8시 이후(주민 휴식 시간)에는 연공음악을 틀지 말고 연공음악을 틀고 말하려면 되도록 소리를 작게 할 것.” 시간이 오래됐다. 우리는 미국 문화를 깊이 알고 있는 수련생이 언급한 건의를 잊었는가? 사부님께서 이 글 평어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중국인 수련생들이 모두 평소의 행위에서 조금 더 주의하고, 조금 더 정결(整潔)하여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모두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풍모이자 본보기이다.”[2]

사부님께서는 또 다른 글 ‘사람을 구함에 반감을 사면 되겠는가’의 평어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일을 함에 있어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억지로 하려 하는가? 어찌하여 그 사당(邪黨)에 의해 파괴된 인류의 행위를 국제사회에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3]

우리는 이런 방면에서 정말로 중시해야 하고 끊임없이 이런 작은 일에서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시범해주신 것처럼 “역시 줄곧 사회에 대하여 책임지고, 사람들에 대하여 책임지는 태도로 행하였다.”[2]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시종 바른 효과를 얻어야 하고 진정으로 속인에게 대법제자의 남다른 좋은 풍모를 느끼게 해야 법을 실증한 것이다.
이전에 자신이 이 방면에서 부족함을 지금 의식했다. 이후에 더욱 잘하기를 희망하고 자신 약간의 깨달음을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성자’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평어’
[3] 리훙쯔 사부님의 평어: ‘사람을 구함에 반감을 사면 되겠는가’




진상을 알리는 문장을 쓴 약간의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써 봤다. 약간의 깨달음을 정리해 자신을 일깨워 정진하려 한다.

나는 마주 보고 진상을 알리든지, 글로 진상을 알리든지 수련 중에 스스로 닦지 못한 그런 집착은 모두 문자와 표현하는 정보에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평소에 자기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쓴 문장은 어조가 조금 강해 보일 것이다. 평소에 일하고 말하는 것이 비교적 조급하다면 진상을 말할 때도 조급하고 그다지 상냥하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어느 한 번 진상을 알리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나는 아이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며 아주 많이 말하고는 마지막에 “아저씨는 네가 잘되길 위해서야”라고 했다. 당시 우리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마치고 나는 멜론 한 조각을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그 멜론이 뜻밖에 탁자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날 점화시키고 계셨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이 잘 되길 위해’라는 이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멀고도 멀었기 때문이다.

진상을 말하는 글과 말은 자신의 수행과 경지의 체현이다. 평소에 작은 것 하나하나와 일사일념(一思一念) 중 착실하게 수련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생명이 진선인(真·善·忍) 우주의 특성에 얼마나 동화되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체현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평소 인품이 고상하고 수련이 잘됐다면 진상을 말할 때의 말과 글의 숨결이 유난히 친화적일 수 있어 자신의 수련 상태를 충분히 드러낸다.

하루는 다른 수련생과 진상을 말하러 나갔다. 나는 웃으며 수련생에게 말했다. “보세요, 왜 당신이 진상을 알리니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어떤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면 금세 남들의 미간이 펴질까요? 수련인의 말에 담긴 정보와 남을 위한 심리상태가 저절로 숨김없이 드러나는 이것은 수련 상태의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수련생도 이에 동의하며 자신이 평소 말을 서툴게 하는 버릇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로써 수련은 엄숙하며 자신이 수련을 잘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자신을 잘 수련하기로 마음먹었다.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착, 망념, 소견을 닦아 버리는 이런 상태에서 사람을 구해야만 비로소 중생이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뼛속 깊이에 있는 이기적인 근본 집착을 닦아 버린다면 진상을 말할 때 사람에게 아주 좋은 느낌을 줄 것이다. 자신의 이기심을 여전히 보존하거나 원만을 추구하는 이러한 근본 집착을 남겨 놓고 남들이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진상을 말할 때 그런 정보가 모두 자신의 말에 담겨 나올 것이다.

최근 진상을 알리는 글을 쓰면서 평소 각자의 전통문화에 대한 수양, 지식수준이 진상 문장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글을 쓰는 수련생은 모두 지식인이기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 펜을 들어 글을 써 보니 나와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 쌓아둔 것이 적었다. 중국과 세계 전통문화,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글쓰기로 진상을 알리려면 자신을 좀 전문화해야 한다. 당연히 지식, 문화적 소양뿐만 아니라 적절한 학습과 축적도 필요하다.

전통문화 지식을 많이 배우게 되면 때때로 자신의 신체와 사상에 방해가 된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에 대법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우리는 20여 년을 수련했기에 우리는 모두 매우 좋은 에너지장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우리는 그것을 단지 진상 문장을 쓰기 위해 이용하고 있으며, 또 그에 상응하는 법을 갖고 지도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방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법공부 중에 사부님께서 청리(清理)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우주 대법 수련에서 언제나 법의 지도가 있고 우리는 또 진기(眞機)를 깨닫게 되므로 표현 사이에 자연히 진리의 힘과 시와 같은 순수한 운율이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문필과 수행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써서 스스로 정진할 것을 일깨운다.




올림픽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언론 기자로서 얼마 전 도쿄 올림픽 취재에 참여한 소감을 전하고 싶다. 그 기간에 나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고 하신 사부님 말씀을 실감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나는 현장 뉴스 인터뷰를 위해 파견됐다. 전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살핌 속에서도 여전히 제거해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나는 A 수련생과 올림픽 성화 봉송에 관한 뉴스를 인터뷰하기 위해 예정된 장소에 갔다. 그런데 일본 전염병 당국이 공식적인 통보도 없이 노선을 변경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말았다. 자료 조사를 내가 맡았는데 이런 누락이 생겨 미안하다고 A 수련생에게 말했다. 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아주 좋은 A 수련생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겨도 모두 정상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했다.

우리는 성화 봉송 종점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성화 전달식이 거행되는 무대를 찾았다. 그러나 보안 요원과 경찰들이 모두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고, 지금은 사전 예약 없이 명함만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일본에 전염병이 없었을 때는 이런 행사에 예약하지 않더라도 기자 명함만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우리는 바깥에서 일부 장면을 찍고 몇몇 사람을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는데, 장소가 넓어 인터뷰 위치를 바꿀 때마다 안전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나는 A 수련생에게 예전에는 인터뷰 예약을 잘해서 사람들이 추켜세워 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곤경에 처하게 되니 심성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라고 농담했다. 비록 농담이긴 했지만, 나 역시 순조로운 상황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역경(逆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있음을 인식했다.

우리가 인터뷰를 마치고 제작한 뉴스가 나중에 발표되지 않았을 때, 나는 마음이 몹시 소침해져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자신이 또 다른 B 수련생에 대해 질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그녀가 쓴 것은 여러 번 채택됐고 내가 쓴 것은 무시됐어도, 나는 속으로 내가 그녀보다 더 잘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기사는 당시 우리 팀의 첫 인터뷰 뉴스라서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뉴스가 채택 안 된 이유를 물어볼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데, B 수련생으로부터 “너는 티를 내고 나서기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 마음속의 질투와 부정적인 물질이 요동쳐 다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근에 일이 바빠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싸늘하게 대했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 역시 이것이 잘못됐으며 질투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쁜 생각을 버리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우리가 수련하는 과정의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분명히 내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곳이 있어 그 뉴스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으로 찾아보니, 나의 이 질투심이 바로 그 뉴스가 발표되지 못하게 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깊이 찾아보니, 내가 뉴스를 할 때 마음속에 과시심이 있었다는 점도 발견했다.

안으로 찾자 상황이 즉시 바뀌었다. 나와 함께 했던 A 수련생이 갑자기 나에게 우리의 인터뷰 뉴스가 발표됐냐고 물으면서,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이 좀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나는 3일을 기다렸는데 아직 못 봤다고 말했다. 뉴스에 대한 책임감으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간에 몇 사람을 거치는 과정에서, 뉴스를 발표하는 수련생이 우리가 올린 뉴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내 집착이 사라졌고 오해도 깨끗이 없어졌다. 그 인터뷰가 채택되지 않은 것은 나와 A 수련생의 마음속 유감이었다. 그 당시 심지어 ‘(그 인터뷰 기사가) 사용되지 않으면 이다음 일도 그만 두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다행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둘째 주에는 정해진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배경 화면을 좀 촬영하러 갔다. 여름이라서 나는 수련생 A와 상의해 더위를 좀 피하고자 오후 3시경에 외출했다. 수련생과 만나서 배경 화면을 찍고 있었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했고 폭우가 내렸다. 나와 A 수련생은 아직 공식적으로 개방되기 전인 텅 빈 선수촌 처마 밑에서 겨우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마 밑으로 피했지만, 비는 마치 우리를 향해 온 것만 같았다. 천둥이 계속 우리 머리 위를 맴돌았다. 촬영 장비가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하느라 나와 A 수련생 모두 흠뻑 젖었다. 여름철 비는 보통 금방 지나가는데 그날은 비가 한참 동안 내렸다. 비가 그친 뒤 우리는 계속 찍으려고 했으나 몇 장면을 찍지 않았는데, 비가 또 오기 시작했다.

A 수련생도 비가 우리를 향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원래 준비했던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일을 대충 마무리했다. 일이 끝난 후 A 수련생은 자기에게 안일한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된 것 같다면서, 날씨가 어떻든 간에 법 공부를 잘하고 연공을 다한 후 나왔더라면 상황이 아주 달랐을 거라고 말했다.

다음날 마침내 올림픽이 개막돼 우리가 전에 찍은 장면을 바로 쓸 수 있었다. 나와 수련생은 감탄했다. 가끔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정말로 알기 어렵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날 다시 인터뷰까지 했더라면 뉴스가 좀 더 좋았을 텐데, 사부님께 죄송스럽다.

내 컴퓨터는 올림픽 기간에 문제가 한 번 생긴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켜도 부팅 화면에 머물러 있고 로딩이 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시 마음속으로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평소 너는 멀쩡했는데, 어째서 중요한 때에 네가 나를 곤란에 빠지게 하는 거니?’ 당시 나는 매우 조급했다. 원고 한 편을 빨리 써야 하는데 컴퓨터가 켜지지 않아 나는 우선 휴대전화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후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몇 년째 수련하는 동안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실 내 수련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 많든 적든 내 집착심과 관계가 있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났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내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 사실 그때 정말로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 외에 불평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 수련생이 무슨 일이든 내게 떠넘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내게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깨달은 건 내가 다른 수련생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컴퓨터도 내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이 변덕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 계획대로 하지 않고 그걸 바꾸게 하려고 한다면 협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가 나에게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게 하려고 고장이 난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반드시 고쳐 (다른 수련생에게) 협조하겠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소식이 있었다. 수련생이 우리에게 올림픽 뉴스 센터에 집합하라고 했다. 갑자기 발생한 일정이라서 나는 그때 나가는 것이 썩 내키질 않았다. 집에서 기사를 모아쓰기로 했는데, 이 더운 날에 나가면 피곤하고, 냄새나고, 또 내 컴퓨터가 좋아졌는지도 모르겠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뛰쳐나왔다. 컴퓨터 생각을 하자 어제 사부님께 수련생과 무조건 협조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떠올라서 장비를 잘 챙긴 후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보니 컴퓨터는 이미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몇 차례 인터뷰한 것 중 일부는 사용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내내 아쉬웠다. 또 우리 인터뷰를 받은 중생들 역시 그들과 인연이 있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그 인터뷰를 통해 이런 생명들에게 진상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나는 인터뷰 내용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올림픽을 총결하는 내용을 한 편을 제작하되, 전염병 상황과 국민들의 심리 변화에 맞게끔 만들어보려고 했다.

나는 당시 올림픽 기간에 매주 전염병 상황 변화에 대해 대략적인 개념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인 숫자 데이터는 머릿속에 없었다. 그래서 먼저 생각나는 대로 인터뷰 내용과 대략적인 관련 키워드를 모두 적었다. 바이러스 데이터를 찾다가 일본 언론에서 관련 문장 한 편이 나온 것을 발견했는데, 구체적인 감염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원래 마지막 폐막식 인터뷰에서는 저녁 폐막식의 불꽃놀이 장면을 찍기로 했는데, 괜찮은 뉴스 파일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4시간 앞당겨야 하는 파일이라 서둘러야 했기에, 나는 동료 수련생에게 빨리 알리고 바로 밖에 나가 인터뷰를 해야 했다. 다행히 수련생도 잘 협조해서 바로 집을 나섰다. 당시 10호 태풍이 막 일본을 떠났는데, 밖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수련생이 내게 비가 와도 괜찮냐고 물었는데,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날 그 상황에서는, 아무리 비가 오더라도 촬영하러 나가야만 했다. 비는 오락가락하다가 우리가 인터뷰 촬영할 때는 그쳤고, 날이 갰다.

촬영하러 갈 때 수련생이 기모노 입은 일본인을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정말로 기모노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외국 기자에게 음료를 나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원봉사자는 우리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줬다.

그다음에는 집에 가서 뉴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집에 가려면 취재 현장에서 차를 세 번 갈아타야 했다. 운이 좋게 버스를 바로 환승하면 50분밖에 안 걸리지만, 차를 놓치면 90분이 걸렸다. 뉴스는 서둘러 해야 했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해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결국, 차가 한 대씩 이어서 왔다. 정류장마다 내가 도착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출발해 나는 45분 만에 집에 도착했는데, 평소보다 절반 빠른 시간이다. 결국 나는 뉴스를 제시간에 방송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돌봐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실 이전 촬영 때부터 우리는 올림픽 마스코트 한 쌍을 찍고 싶어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원래 그날 오전 분량 촬영을 마치면 뉴스가 나오기에는 충분했다. 오후에 다른 곳에 가서 배경 장면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가기로 했다. 하루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찍고 싶었던 마스코트를 봤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날 만약 배경 장면 찍으러 가는 걸 중간에 포기했다면 마스코트를 찍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길을 모두 사부님께서 잘 안배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는데, 지불한 만큼,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은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법에서 벗어난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1195 한글명혜주간 제793호 【수련교류】 2021-10-20
1193 한글명혜주간 제792호 【수련교류】 2021-10-14
1190 한글명혜주간 제791호 【수련교류】 2021-10-06
1185 한글명혜주간 제790호 【수련교류】 2021-09-29
1176 한글명혜주간 제789호 【수련교류】 2021-09-21
1175 한글명혜주간 제788호 【수련교류】 2021-09-14
1172 한글명혜주간 제787호 【수련교류】 2021-09-07
1166 한글명혜주간 제786호 【수련교류】 2021-08-30
1165 한글명혜주간 제785호 특간【수련교류】 2021-08-30
1161 한글명혜주간 제785호 【수련교류】 2021-08-26
1160 한글명혜주간 제784호 【수련교류】 2021-08-18
1152 한글명혜주간 제783호 【수련교류】 2021-08-10
1145 한글명혜주간 제782호 【수련교류】 2021-08-04
1141 한글명혜주간 제781호 【수련교류】 2021-07-28
1135 한글명혜주간 제780호 【수련교류】 2021-07-21
12345678910
ⓒ 2007-2011 명혜라디오 한글판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