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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부님】사부님 은혜를 회억 (제 1 부)  
   2021-11-01 23:14:03 | 조회 : 278
 사부님 은혜를 회억 (제 1 부)

글: 장춘 대법제자 
원문발표: 밍후이왕 2006년 1월 25일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서 학습반을 열 때 신체적인 피로뿐만 아니라 노심초사하시는 심적 어려움은 더욱 컸습니다. 정말이지 “인간의 일에 속 태울 대로 태우고 하늘의 고생에 마음 쓸 대로 쓰네(操盡人間事 勞心天上苦)” (󰡔홍음󰡕-높은 곳은 쓸쓸해)와 같았습니다.

92년 9월, 장춘 4기 학습반에 천명 이상이 참가했지만 입동(立冬)이 지난 후까지 견지한 연공장은 많지 않았습니다. 학습반에 참가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여전히 다른 공법을 섞어서 연마하여 사부님께서 넣어주신 파룬(法輪)마저 모두 변형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연말에 장춘에 돌아오셔서 이런 상황을 보시고 몹시 상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씀 없이 파룬을 조절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파룬이 변형된 원인을 알려주시며 앞으로는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사부님께서 가장 고통스러워하신 것은 바로 수련생들이 대법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확고하게 수련하는 수련생에 대해서 더 잘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떤 연공장의 한 보도원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93년 3월 말, 자전거를 탄 한 젊은이가 연공장에 와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모(某) 기공사가 와서 학습반을 연다면서 참가하기를 종용했습니다. 당시 연공장에 있던 수련생 8명은, 자신들은 오직 파룬궁만 연마할 것이며 다른 학습반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젊은이가 자전거를 끌고 막 연공장을 떠나던 순간, 8명의 수련생 중 7명이 사부님의 법신께서 자신들 옆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감동한 그들은 사부님께서 고무격려하시는 것으로 여겼으며, 자신들이 한 결정이 분명히 옳았음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수련생들사이에 신속히 알려졌습니다. 그 이후 연공장에 나오는 수련생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단번에 백 명을 넘게 되었고 장춘에서 비교적 큰 연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연공장에 류(劉)씨 성을 가진 70여 세의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류씨 할머니는 10년 이상 중풍을 앓아 반신이 마비된 상태여서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할머니는 포륜을 연마할 때 몸 한쪽으로 뜨거운 흐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이후 스스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병업 반응이 아주 심각하게 나타나도 견정하게 견디며 병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나러 갔을 때는 이미 어려운 고비를 넘긴 상태였습니다. 류씨 할머니는 생사관을 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자신을 고무 격려해 주셨고, 사부님의 법신께서 줄곧 자신을 간호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목이 열린 상태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하면 내가 진정으로 책임질 것이다’라는 내용의 금빛 찬란한 6글자(你眞修,我眞管)를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한 편, 94년에 쑹(宋)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은 사부님께서 아무런 공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부님을 고소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차를 타고 사부님을 환송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사고는 아주 경미하여 차량만 약간 손상을 입었을 뿐 인명사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공능을 구비하고 계시지만 사람을 제도하러 오셨는데, 함부로 공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미혹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미혹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공능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부님께서 약간의 공능을 사용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장춘역의 부(副)역장이 북경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느 날 몇 번 차량을 타고 장춘에 오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부 역장은 한 수련생과 함께 사부님을 마중하러 역에 나갔습니다. 각각 해당 객차의 앞과 뒤 출입문에 서서 사부님께서 나오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사모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사부님께서는 바로 그 기차를 타고 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부님께서 일부러 수련생들이 마중 나오는 번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당신을 보지 못하게 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분명히 그들 앞을 지나가셨는데도 그들은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게 1994년 12월 14일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날 사부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날 저는 새벽 5시에 연공장에 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굴러떨어져 벽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텅’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큰 나무가 벽을 치는 것 같았고 발도 심하게 접질렸습니다. 당시에 통증을 참기 힘들었지만 나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어서 일어나 절룩거리며 연공장으로 갔습니다. 머리의 통증은 곧 사라졌지만 걷기만 하면 발에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할 일도 많아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통증을 참으며 일을 마친 뒤 법학습을 하려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이 󰡔전법륜󰡕 책에 나오는 사부님의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오늘 오전 8시 반경에 우리 집에 오셨던 분이 사부님 같아요(그는 수련하지 않았기에 사부님을 뵌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키가 크고 검은색 상의를 입었는데 태도가 아주 온화하고 예의가 바르셨어요.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여기가 지린(吉林) 대학 화학과 교수님 댁입니까? 교수님을 치료하려고 왔는데 집 번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다른 사람이 그 교수를 좀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교수가 화학 전공자라는 것만 알지 이름은 모르신다고 하셨어요.
우리 가족이 “혹시 그 교수님 성은 아세요?”라고 여쭈니 사부님께서 모른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우리 가족은 “화학을 전공하는 교수님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이름을 모르면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사부님께서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되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 날짜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때 사부님께서 저를 소업 해 주셨으며, 제가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일에 지장을 받지 않았고 고비를 하나 넘긴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족은 사부님을 한 번 뵙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이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그때 제가 집에 없었던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찾던 사람이 분명히 우리와 같은 동에 사는 린(林) 교수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에 린교수의 병을 치료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서 그에게 연공장에 나가 연공하라고 하셨고 그는 병이 나은 후에 우리 연공장에 와서 연공을 같이 했습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 회사에 자리도 생겼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를 격려하며 퇴직도 했고 큰 병도 있는데 다시 출근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면서 “우리 연공장에 와서 함께 연공하십시오.”라고 했지만, 린교수는 며칠 나오지 않더니 나중에는 아예 연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나았던 병이 도로 심해지자 또 사부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오신 것이라 속인이 되려는 사람이 병이 낫고 싶어 사부님을 찾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부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식구들이 각각 사부님께서 오실만한 길목에서 8시부터 9시가 넘도록 기다렸는데 사부님을 뵙지 못했어요. 분명히 8시 반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사부님께서는 정확히 8시 반에 오셨지만 집을 찾지 못하셔서 우리 집으로 오셨어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앞을 지나가셨을 테지만 그의 가족들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날 사부님께서 바로 북경으로 가셨습니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5/11933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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