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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부님】사부님 따라 만리길-제1부  
   2020-12-21 00:52:02 | 조회 : 258
사부님 따라 만리 길 

글/미국 대법제자
원문발표: 밍후이왕(明慧網) 2002년 9월 16일

󰡐사부님 따라 만리 길󰡑 은 한 파룬궁(法輪功)수련생이 1993년부터 사부님을 따라 중국 대륙 각 도시를 다니면서 설법을 들은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녀의 소박하고 상세한 문장은 장쩌민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혹독하게 파룬궁(法輪功)을 대하고, 무엇 때문에 이런 엄중한 박해 속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을 꿋꿋이 수련하는가에 대해 더욱 똑똑히 알 수 있게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음 사항들에 대해 묻습니다. 장쩌민이 무엇 때문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을 이렇게 시기하고 미워하는지, 왜 5억 달러의 거액을 들여 미국에 계신 리 선생님을 중국 본토로 인도받고 싶어 하는지, 왜 파룬궁(法輪功)수련생들을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할 때는 무엇인가 원인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문장은 특수한 역사시기에 파룬궁(法輪功)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중국에서 법을 전할 때의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할 만한 구체적 답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장이 3부로써 비록 길긴 하지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존경하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위해 특별히 이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사부님 따라 만리 길 – 제 1부

1992년부터 시작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9년 동안 널리 전해진 여정을 담은 󰡔정법의 길󰡕 사진 전시회가 곧 열리게 됩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지난 사진들을 보니 최근 몇 년간 대법이 세간에서 전해지는 가운데 겪어야 했던 온갖 우여곡절들이 새삼스레 떠오르곤 합니다. 정법의 길 사진전을 개최하기까지는 사부님께서 친히 지도하시어 8개월이란 오랜 시간을 거쳐 선발하여 제작한 끝에 마침내 완성하게 된 위대한 작품들입니다. 이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제가 실증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글로 적어 헌납하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병이 많아 늘 약을 먹곤 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의사와 약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92년 말 저는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자 가족의 부축으로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가서 기공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만났던 기공사는 뽑아내고 보충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치료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93년 7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책꽂이에 ‘파룬궁(法輪功)’ 이란 책이 있어 본능적으로 꺼내어 읽어 보니 ‘연공인의 아랫배 부위에 하나의 파룬(法輪)을 넣어 준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생명의 오묘함에 대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데 기공사가 영혼이 있는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니,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너무도 큰일처럼 여겨졌습니다. 또 생각해 보니 파룬(法輪)이 나의 아랫배 부위에 있다면 반드시 제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 한시가 급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방법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7월 25일, 저는 리 스승님께서 북경에서 개최하신 제11기 파룬궁(法輪功) 학습반에 참가했고, 이때부터 저의 수련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48년생입니다. 불(佛), 도(道), 신(神)과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었을 뿐 실질적인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더구나 기공과 수련에 대한 개념마저도 없었습니다. 무신론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학창시절 점수를 따기 위해 마지못해 배운 것들이라 신앙이라 할 것도 없이 제 머리 속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이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11기 학습반은 북경의 공안(公安) 대학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스무 번째 줄에 앉았습니다. 첫날 제1강 강의는 곧장 저를 빠져들게 했습니다. 사전 문화에 대한 스승님의 말씀을 정신을 가다듬고 들으면서 속으로 매우 놀랐습니다. 저도 최근 몇 년 간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는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을 맞아 인간 세상의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정치적인 유희를 직접 목격하였고, 침통한 현실에서도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정치와 권력, 각종 사조에서 모두 빠져나와 냉정하게 그것을 관찰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학습했습니다. 그러나 이 망망한 세계에 대해서는 마음을 둘 곳이 없어 무슨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무엇을 표준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직장에서는 매일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속이고 속이는 환경이라 아주 역겨웠습니다. 저는 한가할 때면 늘 󰡐오묘한 비밀󰡑과 같은 잡지를 뒤적이면서 인생 이외의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럴 때 제 마음은 세상 밖에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가뿐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한 번에 새로운 것에 대해 듣고 나니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고 아주 흥분되었습니다. 저는 매 시간 매우 흥미진진하게 강의를 들었고, 매번 강의가 끝나면 신체의 고통이 아주 많이 완화됐습니다. 저는 매일 오후만 되면 일찍이 강의를 들으러 갈 준비를 했습니다. 11기 학습반이 끝났을 때 저는 또 다시 학습반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기 학습반은 ‘우커쑹(五棵松)’에 있는 모 기업 강당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다급히 표를 구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우커쑹까지는 매우 멀었기 때문에 몇 차례 강의를 들은 후부터 열이 나고, 기침이 나면서 목과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련생은 그런 저에게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학습반에 참석하기를 견지하라고 하였습니다. 3, 4일 후 열이 내렸고 아프던 곳은 큰 덩어리가 없어진 감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13기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13기 학습반은 ‘2.7차량 공장’에서 열렸는데, 우커쑹보다도 더 멀어서 그곳에 가려면 우선 ‘시볜먼(西便門)’까지 가는 차를 탄 후, 거기서 다시 309 노교구(路郊區) 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했습니다. 매일 오후 4시경 집을 나서서, 7시 반에 시작하는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가 넘었습니다. 학습반에 세 차례 참석한 뒤부터 가사도우미를 내보내고 제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매 기 학습반마다 스승님의 강의내용은 점점 더 높아져 모두 제가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했던 참신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어야 할까요? 믿지 말아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북경 교외에 있는 농촌에서 몇 년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불(佛), 도(道), 신(神)과 귀신에 대한 개념은, 모두 그때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들은 것입니다. 그 무렵 농촌에는 전기가 없어서 아이들은 늘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들 모두 이야기 소재로써, 각각의 별마다 모두 기이한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일체 아름다운 동경, 일체 알 수 없는 비밀, 모두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너무도 먼 하늘 위에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귀신이 있다고 겁을 주며 ‘착한 일을 하면 착한 일의 결과가,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일의 결과가 반드시 따른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은 제 마음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자 학교 선생님은 이런 것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도시에 가니 도시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그런 것에 대해서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저 또한 그때까지 불·도·신(佛·道·神)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문제가 단번에 눈앞에 놓이자 그야말로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명은 짧으며, 경험 또한 유한한 것으로, 무엇이든 다 체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믿거나·믿지 않는 것은 스승님을 보아야 합니다. 스승님이 믿을 만하면 스승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승님을 자세히 관찰하느라 제 눈은 항상 스승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 하나하나, 세세한 동작까지 모두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면 늘 머뭇거리며 스승님 뒤에서 걸었습니다. 

어느 날 12기 학습반이 끝난 후 우커쑹 역에서 기차를 기다릴 때 스승님께서 뒤에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승님 옆에는 가족과 또 다른 수련생이 한 명 있었고, 그들은 도시락을 들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문 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스승님이 계신 방향을 향해 비집고 들어가 같은 칸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살피고 일단 빈자리가 보이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서 앉으려고 합니다. 저는 기차에 올라탄 뒤 스승님께서 제가 탄 옆 칸에 승차하시려고 기다리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급히 차량이 연결된 곳으로 다가가 스승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스승님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낸 후 거의 마지막으로 기차에 오르셨습니다. 스승님께서 타실 때는 그래도 한두 자리가 비어 있어 서두르기만 하면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급한 마음에 ‘빨리 빨리’ 하고 생각했으나 스승님은 차분하게 마치 아무런 감각도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빈자리에 앉았고 스승님만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승님은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르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묵묵히 ‘스승님은 어떤 마음으로 주변 세계를 대하실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점차 제 마음에는 ‘바를 정(正)’ 이란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리 스승님은 어째서 그렇게 올바르실까, 불가사의하실 정도로 올바르셨습니다. 인간의 어떤 표면적인 것에도 가려진 게 없었습니다. 일체는 너무나 진실하고, 지어내지 않고, 과장도 없고, 억지도 없고, 가식이 없었습니다. 강의하시는 방식도 제가 지금까지 겪어 본 그 어떤 강의와도 달랐습니다. 강의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강의를 하셨고, 둘러대지 않고, 직접 강의 내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어떤 사회 저명인사가 부추기는 것도 없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뒤에서 절을 하거나, 읍하면서 병을 치료해 달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학비도 아주 싸서 9일 동안 10회 강의에 겨우 40원(元 역주: 한국 돈으로 약 5천원)에 해당되는 금액을 받았습니다. 기존수련생은 절반을 할인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기공과학연구회는 파룬궁(法輪功) 학습반에서 학비를 너무 싸게 받는 바람에 다른 기공 학습반에서 학비를 받는데 지장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50원으로 올렸지만 기존수련생은 여전히 절반을 할인해 주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여러 지역에서 하신 강의는 모두 그 지역 기공과학연구회의 초청 형식으로 주최했습니다. 학습반을 꾸린 수입은 기공과학연구회와 4대 6의 비율로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절반도 안 되는 돈에서 수행 인원의 식사와 숙박비, 여행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돈을 벌기 위해 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병을 치료하지도 않으신다. 그렇다면 저 분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매 기 학습반마다 스승님은 강의시간에 사람들의 신체를 조절해 주셨습니다. 수련생들의 반응은 아주 컸습니다. 한 기 학습반이 끝나면 어떤 사람은 한평생 앓던 병이 모두 나아 아주 신기해했습니다. 신체가 건강해져 놀라고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을 활짝 열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체 모두 그렇게 투명했고, 그 어떤 비밀도 없으며 가깝거나 멀거나 귀천이 없었습니다. 인간 세태의 냉담함마저 우리 이 강의시간엔 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마음은 한 곳으로 모아졌습니다. 모두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수련하고자 했으며, 매 강의시간이 끝날 때마다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조용해졌을 때 저는 제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가?'하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저는 스승님께서 언제나 타인을 위하시고, 스승님께서 강의하신 모든 것이 제 마음속 아주 깊은 곳까지 일종의 호응, 공명 혹은 감응이 일어났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마침내 알아내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眞’이라는 것을. 저는 일생 동안 ‘眞’을 숭상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眞’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세속에 빠지지 않고 세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일생동안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느라 몸과 마음이 아주 고달팠습니다. 오늘 스승님을 만나 묵묵히 체험하고 보니 그것은 진정으로 그렇게 고결하고, 그렇게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떨렸습니다.
 
북경 제 13기 학습반이 끝난 후 다음 학습반은 우한(武漢)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여전히 스승님의 강의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혼자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그때 저로서는 너무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건강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보온병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났습니다. 제가 끊은 기차표는 이층 침대였는데 사실 위 층 침대에 올라가기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차에서 아래 침대에 앉아 있으니 침대 주인이 나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자 옆 사람이 곧장 물을 부어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아래 침대 젊은이가 “이층 침대에서 주무실 수 있겠어요? 안 되면 저랑 바꾸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한번 시험해 보자고 대답했습니다. 겨우 침대에 올라 누웠으나 흔들리는 것이 마치 바다에 뜬 배와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내려와 젊은이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하니 그는 군말 없이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우한 역에서 내릴 때도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제 짐을 역까지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운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사부님께서 저를 보살펴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우한(武漢)에서는 3기 학습반이 연속해서 열렸습니다. 즉, 우한 제3, 4, 5기인데 제3기는 우창(武昌)의 재경(財經) 대학, 제4기는 한커우(漢口)의 시위원회 강당, 제5기는 우한 강철공장에서 각각 열렸습니다. 

우한에서 3기에 걸친 학습반이 끝나자 이미 10월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음 기는 광저우(廣州)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저는 스승님을 따라 광저우로 가서 광저우 제2기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스승님의 매 기 학습반 강의 내용은 대체로 일치했지만, 완전히 똑같지 않았습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 강의하실 때 많은 부분은 같았으나, 어떤 때는 다른 각도에서 강의하셨는데 그 몇 마디 말씀에 저는 단번에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스승님의 강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명백해졌고, 들으면 들을수록 이 일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의 부처에 대한 이해는 사람을 도와 고난을 해결하는 보살이라는 것입니다. 도(道)에 대한 이해는 악을 징벌하고 선을 선양하는 의로운 지사(義士)라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스승님의 강의가 불(佛)이나 도(道)보다 높다는 것을 점차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인 이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파룬(法輪)을 만드실 수 있고 이렇게 생명을 분명하게 아시며 우리들의 업을 제거해 주시는데, 이는 일반적인 기(氣)를 내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누구십니까? 저는 긴장되어 감히 더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도 커서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와서 배우라고 했고 또 외국에 나가 있던 아이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빨리 돌아와 스승님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때 스승님께서 어디에서 강의하신다는 소식이 들리면 최대한 참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만약 매 기 학습반마다 모두 따라 다니려면 학습반의 마지막 저녁 강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가 미리 기차표를 끊어야 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기차표를 구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일단 한 지역에 가면 될 수 있는 한 저렴한 여관을 찾아 비용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멈추고 좀 쉬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 기 학습반이 끝마칠 때마다 스승님의 말씀에 격동할 수밖에 없었기에 저는 다시 결심을 내리고 또 따라나섰습니다. 

톈진(天津)에서의 제2기 학습반이 마무리 될 때였습니다.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이 대법을 여러분에게 ‘남겨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겨준다’는 말씀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스승님께서 이 세상에서 강의를 하시기만 한다면 하늘 끝 바다 끝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이 있었는데 그때 중국에서는 고급에 속했습니다. 가방 안에는 전기밥솥, 쌀, 조미료, 녹음기, 테이프, 플래시, 옷가지, 우산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름과 소금을 먹을 수 없었고 가장 먹기 쉬운 게 우유와 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스스로 끓여 먹어야 했습니다. 이런 몸으로 스승님을 따라 다닌다는 것은 확실히 고생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학습반이 열리는 강의 장소에서 강단에 오르시는 스승님을 보기만 하면 모든 고생스러움이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즐거움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그 친근함은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비할 바 없이 위대하고 무한히 영광스러웠고, 인간의 일체가 모두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스승님을 따라 신성하고 장엄한, 아름다운 그곳으로 가고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매 기 학습반이 끝날 때마다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심득 체험을 쓰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유감스럽게도 늘 한 편도 쓸 수 없었습니다. 병이 없어지고 신체가 건강하게 되어 감지덕지했지만,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늘 이런 한 마디 말만 메아리쳤습니다.  ‘스승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길 바라며, 스승님의 광채가 영원히 우리 생명의 길을 밝게 비춰주시길 바랍니다.’

1000 【나의 사부님】사부님따라 만리길-제2부 2021-01-03
991 【나의 사부님】사부님 따라 만리길-제1부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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